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67
00567 128. 정리 =========================
일사분란한 대답에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오랜 세월 동안 수직적인 지배에 길들여진 탓일 수도 있지만, 당장은 빠른 의사처리를 위해서라도 이쪽이 수월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을 받도록.”
형진은 그들에게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를 건네주었다. 이것은 그저 집단의 기동력을 일체화시키기 위한 물품에 지나지 않았지만, 발찌라는 착용부위의 특성 때문인지 노스페라투들은 그것을 복종의 상징 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새다.
모두가 착용을 마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형태까지 선택하는 과정마저 끝내자, 형진은 곧바로 그들을 이끌고 저택을 나섰다.
“가장 먼저 정리할 곳은 라바스 공후의 저택입니다.”
노스페라투는 크게 네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대공, 공후, 열후, 방백이 그것으로서, 라바스는 그 중 두 번째인 공후의 작위를 지닌다.
두 번째라는 건 참 모호한 위치다. 분명히 상위에 속하는 등급이긴 한데, 어떻게 보면 중간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런 애매한 위치랄까. 역대 라바스 공후들은 그래서 대공으로의 승격을 열망하는 욕구가 강했고, 그 결과 인위적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수단을 찾는데 열중하게 되었다.
‘가장 오래된 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라바스 공후와 같은 자들은 아주 좋은 노스페라투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라사스 공후의 가문은 ‘실종’이 가장 많이 발생한 가문으로 유명했고 이것이 그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문제는 이들의 이런 상승 욕구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 사기를 끌어 모으고 자신들의 힘을 비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은 비인도적인 수단을 서슴지 않게 되었으며, 이것은 다른 노스페라투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배제된 노스페라투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표상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라바스 공후의 세력을 일소하는 일은 단순한 정리 작업을 넘어 새로운 시대로의 이정표를 찍는 중대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즈라탈의 말에 형진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의 뜻을 보였고, 이전에 성전을 찾아갈 때처럼 이 땅의 형상을 그에게 보여준 다음 구체적인 위치를 가리키도록 했다. 다른 노스페라투들이 그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즐기며, 즈라탈은 얼른 라바스 공후의 저택이 있는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미리 이런 상황을 대비해 지도를 가지고 연습을 해둔 보람이 있다.
즈라탈이 구체적인 위치를 가리켜 보이자, 형진은 모두가 쉽게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시각 정보에 화살표를 띄웠다. 이제 노스페라투들의 시야에는 하늘 위에서 아래쪽으로 콕콕 내리찍는 듯한 느낌의 표식이 나타났다. 공포와 죽음이 퀘스트 목표를 표시할 때 쓰는 바로 그 방식이다.
“따르라.”
형진이 먼저 그렇게 말하고 훌쩍 뛰어올라 호버 보드를 가동시키자, 다른 노스페라투들도 허겁지겁 그 뒤를 따라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즈라탈은 바로 그 뒤를 따르려다가 저택에 남게 된 힐리에타에게 말했다.
“다녀오마.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네. 아버지.”
전에는 다소 서먹했지만 형진 아래서 같이 뒹굴다보니 그런 느낌도 많이 없어진 모양이다.
어쨌든, 형진을 선두로 그렇게 하늘로 날아오른 노스페라투들은 줄지어 라바스 공후의 저택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라바스 공후의 저택 자체가 회합이 열린 샤라스델 방백의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탓에, 노스페라투들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목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압하라.”
“네.”
형진은 하늘 위에 멈춰 선 채 그렇게 명령을 내렸고, 곧바로 노스페라투들이 저택을 에워싼 채 강습을 시작했다.
“누구… 컥!”
“적이다! 기습이다!”
저택이라기보다는 고딕 형식의 성을 연상시키는 라바스 공후의 근거지는 순식간에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었다. 힘을 키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가문의 근거지임을 증명하듯, 그 안에 머물고 있던 구성원 하나 하나가 제법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곳을 기습한 것은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노스페라투들이었다.
새로운 힘이 근원에 채워진 상태라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도 불구하고, 노스페라투들은 이 땅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었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라바스 공후의 가솔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기 시작했다.
물론 상극인 힘을 다루는 자들끼리의 대결이니만큼 부상자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나 라바스 공후가 후계자로 키우던 자들의 저항이 매우 극렬했는데, 제압하는 과정에서 노스페라투 가운데 하나가 큰 피해를 입었을 정도다.
“죄송합니다. 이따위 애송이들을 잡는데 다치다니…”
“신경 쓰지 마라.”
형진은 다친 노스페라투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손실된 힘을 보충시켜 주고는 포박되어 끌려 나온 가솔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오! 다른 가문의 근거지에 함부로 난입하여 가솔들을 해하고, 마땅히 존중되어야 할 노스페라투의 가족마저 이리 대접하다니!”
꽤 꼬장꼬장한 음성으로 창백한 안색의 귀부인 하나가 자신을 형진 앞에 무릎 꿇리는 노스페라투들에게 그렇게 외쳤다.
“저 여자는?”
“전대 라바스 공후의 부인입니다. 신선한 인간의 피로 목욕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여자죠.”
“그렇군.”
혐오가 가득 담긴 은가즈의 대답에 형진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손을 들었고, 어김없이 영혼포식자가 작렬하며 귀부인을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만들어 버렸다.
“헉!”
“이, 이게… 무슨!”
방금 전의 격렬했던 전투에서도 죽음을 당한 이는 없었다. 격렬한 힘의 폭발에 팔다리가 날아가 버린 이가 있긴 했지만, 그런 부상쯤은 근원에 힘을 채워 넣기만 하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었다. 그들이 지닌 불사의 은혜란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러한 불사성을 통해 이 가문 위에 군림하던 권력자 가운데 하나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했을 뿐인데 한 줌 재로 변해 버렸다. 기세등등하던 라바스 공후의 가솔들은 그 모습에 놀라 기가 팍 죽어 버리고 말았다.
형진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공후의 가솔들을 주욱 둘러 보았다.
원래는 이들 가운데 옥석을 가려 사특한 행위에 몸담은 자들만 처리하려 하였으나, 그들에게 엉겨 붙은 원념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러한 일이 소용없음을 이해했다.
딱.
형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포박되어 무릎 꿇려진 가솔들의 몸 안에 자리 잡은 근원의 위치가 다른 노스페라투들의 시야에 드러났다. 자신의 그들에게 시각 정보를 그들에게 공유한 것이다.
“집행하라.”
“네.”
형진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노스페라투들은 자신들의 시야에 드러난 근원의 위치를 향해 거침없이 무기를 휘둘렀고, 서로 상극인 두 개의 힘이 격돌하는 순간 가솔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패 폭발하며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순식간에 노스페라투 하나의 근거지를 절멸시키는 일이 끝나자, 그들은 다음 목표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하나 배제된 노스페라투들의 근거지와 잔당들을 초토화시키고 이 세계로부터 지워버렸다.
노스페라투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형진은 또한 공헌도를 들여 이 행성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힘의 통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타나토스에 존재하는 망자의 대지처럼 인위적으로 사기를 집중시켜 처리하는 장소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본래부터 노스페라투들의 근거지에는 이와 비슷한 설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각 가문이 다스리는 영지로부터 사기를 끌어 모으는 설비가 바로 그것이다. 언데드인 이상 달리 음식이나 물과 같은 것을 섭취할 필요는 없었지만, 대신 그들은 사기를 받아들여 근원에 힘을 보충해야만 했다. 사기의 포집은 바로 그것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설비였던 셈이다.
형진은 그러한 포집 설비들을 서로 묶어 몇 군데의 집하장을 만들고 그곳의 처리를 은가즈와 같은 몇몇 노스페라투 가문에 일임했다.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맡겨주신 임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집하장은 모두 네 곳. 그 장소들을 지키는 것은 은가즈를 비롯한 최상위 노스페라투 넷으로 정해졌다.
이곳 차야 메사는 상대적으로 여러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지구나 타나토스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인구를 보유한 상태였지만, 과거에 있었던 조석 고정과 같은 대규모 천재지변이나 오래된 자들의 기나긴 지배로 인해 축적된 사기의 양은 절대로 적지 않았다. 이것을 처리하는 문제와 더불어 이전에 지구나 타나토스가 겪었던 과부하 같은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사기의 압력을 분산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집하장 역할을 할 장소를 넷이나 만든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가문들을 정리하고, 사기를 모아 처리할 시스템이 완성한 다음에는 추종자로 포섭된 노스페라투의 가문들을 돌며 그들을 정화시켰다. 그 모든 일이 끝나고 나자, 마침내 차야 메사라는 이름을 지닌 이 행성에서 언데드의 세력을 일소하는 일이 모두 끝났다.
물론 낮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들에게 노스페라투는 여전히 공포스러운 지배자였고, 형진 역시도 당장은 그러한 지배 구조 자체를 바꿀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박힌 관념을 뿌리째 바꿔 버리는 것은 이 행성에서 언데드의 세력을 일소하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 가지 일을 마치고 나자 형진은 일단 엘리시온으로 돌아가 자신이 겪은 일을 신들에게 보고했다.
“대단해요. 언데드를 정화하다니.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과찬이십니다.”
보호와 균형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아니더라도 다른 신들 역시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희망과 생명이나 허세와 망상 같은 경우는 다소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에게서 언데드의 힘이 완전히 정화되었다는 것은 면밀하게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 게다가 망자의 대지 같은 장소를 조성했다며? 예전의 일을 떠올리고 그 힘을 받아들이려는 자가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가 있지?”
“그것은… 직접 그들 가운데 하나를 살펴보시면 될 것 같군요.”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차야 메사로 건너가 즈라탈을 데리고 왔다.
“확인해 보십시오.”
즈라탈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을 축하하며 낮의 영역에서 술을 가지고 와서 가솔들과 함께 축배를 들다가 갑자기 나타난 형진에게 납치되어 신들 앞에 내던져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 꽤 신기한데.”
“과연. 이런 식이라면 사기를 흡수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알아서 자멸하겠군.”
“어떻게 보면 흑요호와도 비슷한 형태인 것 같아요.”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꼬맹이 여신들부터 시작해서 헐리웃의 여신으로 군림하는 희망과 생명까지 가세해서 그렇게 몸을 살피자, 즈라탈은 그들이 내뿜는 강력한 신의 힘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형진처럼 직접적인 지배력을 발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역시 근원을 채운 힘은 형진이 나누어준 신의 힘이기 때문에 신들이 지닌 강대한 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아. 이런 거라면 딱히 문제는 없겠지.”
“대단해요! 정말 대단해요! 역시 진이야!”
“이들이 다소 특이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언데드였다면 어림도 없었겠죠.”
형진이 경직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즈라탈을 그의 집으로 돌려보내자, 문득 꽃과 바람이 말했다.
“그럼… 이제는 그 멈춰버렸다는 세계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차례인가요?”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조석 고정은 얼핏 보기엔 멈춰 있는 것 같아 보여도 계속 자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다. 공전 속도와 자전 속도가 균형을 이룬 상태라 모성이 보기에는 움직임이 멈춘 것 같아 보여도 계속 자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만약 자전 자체가 멈추어 버린 것이라면 인간은커녕 노스페라투고 뭐고 살아갈 수 없는 완전한 지옥이 되어 버릴 것이다.
더구나 조석 고정은 행성의 입장으로 봐서는 가장 안정적인 운동 상태에 가깝다. 바꿔 말하자면, 인위적으로 그런 상태를 해제하는 것은 조석 고정 상태를 유도하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이미 한 차례 거대한 혼란을 거쳐서 어느 정도 생활권이 안정된 상태에서 다시 그와 같은 대격변이 일어나게 되면 그나마 살아남은 차야 메사의 인류는 이번에야 말로 확실한 절멸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대로 계속 고통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건가요?”
동정심이 가득 묻어나는 황혼과 망각의 말에 형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생활권이 너무 좁아서 곤란하기는 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현재의 생활에 적응한 상태일 테니 그걸 고통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르죠. 지구만 보더라도 극지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 자체를 고통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문제는 폭우나 폭풍 같은 천재지변 같은 것이겠죠. 사실 그런 문제는 지구나 타나토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고, 또한 여기 계신 분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고요.”
“하긴.”
신들이 수긍한 기색을 보이자 형진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결국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제한된 생활권과 그로 인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공간과 자원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차야 메사를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 같은 리스크가 큰 방식보다는 다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좋겠죠.”
“어떤?”
“다른 터전을 제공하는 것도 좋겠지요. 이를테면 천공의 다섯 자매라 불리우는 근처의 행성을 새로 개척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 작품 후기 ============================
두편째.
컴이 열을 받았나 봅니다.
다시 꺼지고 켜지는 사태가 반복되어서 그걸 해결하느라 좀 시간이 걸려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본문에도 나오지만 다시 한 번 더 설명을 하자면 조석 고정은 행성이 멈춘 상태가 아닙니다. 공전속도와 자전속도가 조화를 이루어서 모성에서 바라봤을 때 한쪽면만 보이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정말로 자전이 멈추면 앞서 묘사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재앙이 덮치게 됩니다.
게다가 차야 메사의 인류에게 재앙이었던 것은 ‘급격한’ 변화였습니다. 조석 고정 자체는 지구에서도 느리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것이 단기간에 일어나면서 기존의 환경이 순식간에 뒤바뀌어 버린 것이 그들에게 재앙으로 연결된 것이죠. 여기서 다시 행성을 팽이돌리듯 돌려버리면 그런 급격한 변화가 다시 한번 일어나게 됩니다. 그건 원상 회복이 아니라, 그나마 남은 사람들까지 다 죽여버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착오가 없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