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71
00571 130. 대결 =========================
이래저래 바쁘고 복잡한 일들이 많았지만, 경사도 있었다. 마침내 하엘이 낳은 다섯 공주들에게서 꼬리가 나온 것이다.
“빠아! 해바. 빠아!”
“뺘아?”
미엘이 낳은 일곱 공주들은 동생이 생기자 나름 언니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 자신들도 아직 어린 아기인 주제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거든다고 열심히 랄까. 그래봐야 아직 형진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는 아이들 주위에서 빠아 거리면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며 흥미를 유도하려고 애쓰는 것이 고작이지만.
하지만 새로 태어난 다섯 공주는 그런 언니들의 행동에 조금 흥미를 보이다가도, 이내 형진의 몸에 기대 그의 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따뜻하고도 강력한 정기를 받아들이는데 여념이 없더니 마침내 탐스러운 하얀 꼬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체구가 약간 작은 것을 제외하면 먼저 태어난 일곱 공주와 나중에 태어난 다섯 공주를 구분하는 방법은 엉덩이 근처에서 몽실몽실한 모습으로 흔들리는 꼬리의 색깔 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다. 두세 명 정도의 쌍둥이만으로도 외모 구분이 쉽지 않은 판에, 비슷한 자매가 무려 열두 명이나 있다.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구분조차 어려운 일이다.
“어이쿠. 우리 공주님. 아빠 불렀어요?”
“뺘아!”
꼬리가 나오자 다섯 공주 역시 형진의 몸에서 일단 떨어져 나왔지만, 지금처럼 형진이 모습을 드러내면 어김없이 우르르 몰려나와 달라붙어 버린다. 그러면 나름대로 아기들과 놀아주고 있던 언니들 또한 질세라 달려들게 되고, 형진은 순식간에 아기들 속에 파묻힌 모습으로 변해버리기 일쑤다.
“뭐하고 놀았어?”
“언니들이랑 노라써여.”
“재미있었어?”
“네!”
“그래? 그럼 아빠가 좋아, 언니들이 좋아?”
“뺘아가 조아여!”
“어이쿠! 이렇게 황송할 데가.”
“빠아! 나도 빠아 좋아요!”
“나도! 나도!”
“아하하하하!”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즉답을 던지는 아기 공주의 모습과 그에 질세라 자기들도 좋아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아기들의 모습에 형진은 입이 귀 끝까지 주욱 늘어나 버렸다.
“와… 진짜 바보 같은 표정.”
“쿡쿡.”
엄마들이 뒤에서 그렇게 웃으며 흉을 봐도 형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기들과 놀아주는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결국 달라붙어 있던 아기들이 먼저 지쳐서 잠이 들고 나서야 형진은 아쉬운 기분을 달래며 아기들의 방에서 나왔다.
“에고… 좀 더 충전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놀아주고서도 부족해요?”
“당연하지! 나의 행복 전지는 무한대라고.”
“킥. 하여튼 욕심은.”
그렇게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미엘이 말했다.
“저번에는 왜 저희들을 부르지 않으셨죠?”
“음… 딱히 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라서.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기들 옆엔 역시 엄마가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도 위급하다 싶으면 언제든 부르세요. 아셨죠?”
“걱정 마.”
이미 두 번이나 탐사를 실행했지만, 그때마다 예상과는 다른 상황에 직면해야만 했다. 언데드의 영역 역시 일반적인 이쪽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환경 들이 존재한다는 것 만큼은 이 두 번의 탐사를 통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별을 먹는 괴수 티폰이나, 스스로 신이 되기를 준비하던 ‘가장 오래된 자’ 모두 가만히 방치했다면 언제고 큰 위협이 되었을 만한 존재다. 특히 ‘가장 오래된 자’의 경우엔 파괴와 재생이 접촉을 시도한 정황이 있는지라 그 근거지였던 차야 메사의 결계는 더 엄중하게 설치되어야만 했다.
미엘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다. 아직은 운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파괴와 재생이 이끄는 군세와 마주치지 않았지만, 언데드의 영역은 기본적으로 적지이므로 앞으로의 탐색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형진은 어쩐지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미엘의 시선에 빙긋 미소를 짓고는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이미 반신의 위계에 오른 자신이건만, 이 여자에게는 덩치 큰 어린애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엘도 이리 와.”
“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감히 둘의 포옹을 마주 보지 못하고 슬며시 눈을 피하고 있던 하엘 역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몽실몽실하고 부드러운 마눌들의 몸을 안고 있으니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두려움마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다.
잠시 그렇게 마눌들과의 포옹을 즐기던 형진은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그녀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고는 곧바로 엘리시온으로 향했다.
“벌써 세 번째 탐색이네.”
“그렇습니다. 마중 나와 주신 겁니까?”
“흥. 영광으로 알아. 한번만 만나주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는 녀석마저 있는 몸이라고.”
“와우. 허락하셨습니까?”
“미쳤어? 그런 짓을 하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툴툴거리는 것을 들어주고, 마중 나온 다른 꼬맹이 여신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언데드의 영역만 아니면 정말 함께 가고 싶은 대상이지만, 아무리 계약을 맺은 사이라도 금기를 강제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속한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제단에 올라서자, 프리츠가 사기의 주입을 시작한다. 검은 기운이 뭉실거리며 제단을 감싸고 그 힘이 극대화된 시점에서 마침내 변화가 일어났다.
구구구구.
제단 전체가 떨리는 느낌과 함께 하나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얼핏 보기에는 인간의 형태를 닮았지만, 팔이 둘이 아니라 넷이다. 단순히 검은 빛의 사기로 몸을 감싼 정도가 아니라, 사기 자체로 신체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 같은 모습. 하지만 그렇다고 비실체화 상태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형진은 이 존재가 엄연히 실체를 가진 존재임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지금까지 그가 만나왔던 언데드들은 무언가의 죽음으로부터 파생된, 살아 있다가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쳐 언데드로 변질된 존재에 가까웠다. 물론 티폰의 경우는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인지 확실하게 단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눈앞에서 나타난 존재처럼 아예 본질 자체가 사기로 이루어진 경우는 처음이다.
이 새로운 존재는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으로부터 강력한 음의 기운을 오러처럼 발산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후광이라고 해야 할까. 지켜보던 신들마저 그 후광을 접하는 순간 흠칫 놀랄 정도의 그런 기운이다.
“이건… 도대체…”
희망과 생명이 경악한 기색을 담아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형진이 움직였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기다리는 것조차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스아아아아…
낮잠을 자고 일어나 나른한 몸을 뒤틀며 기지개를 펴는 듯한 몸집으로 어두운 구멍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던 그 존재는 자신을 향해 다가서는 형진의 모습을 보고는 마치 낙엽이 바람에 쓸려 아스팔트를 뒹구는 듯한 기이한 소리를 냈다.
“인간! 귀 막고 물러나라!”
“크흑!”
다급하게 허세와 망상이 막아서며 외쳤지만, 함께 있던 아유무는 놈이 외치는 소리를 잠깐 접한 것만으로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공포와 죽음의 문장으로 보호를 받고 있던 프리츠조차 현기증을 일으키며 비틀거렸다.
희망과 생명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하고 황혼과 망각이 결계의 강도를 높이려고 움직일 찰나, 마침내 형진과 정체불명의 새로운 존재가 격돌했다.
형진이 휘두른 영혼포식자의 힘에 의해 방어를 시도했던 존재의 팔뚝이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인스턴트 킬이 터진 것도 아니다. 단순히 영혼포식자와 상대의 팔뚝이 마주치는 순간 힘의 폭발이 일어나며 일어난 현상일 뿐이다.
“?!”
상대처럼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형진도 그 소리 없는 폭발의 반동에 영향을 받아야만 했다. 손에 쥐어진 영혼포식자로부터 은은하게 전해져 오는 은밀한 타격에 의해 형진은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순간 형진의 몸에 다시금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보호의 힘이 둘러졌다. 지켜보고 있던 보호와 균형이 다급하게 그에게 거의 전력을 다한 보호의 권능을 부여한 탓이다.
적절한 시기의 도움에 힘입어 형진은 곧바로 사라져 버린 팔뚝의 재생을 시작한 놈의 열린 가슴을 향해 영혼포식자를 찔렀다.
퍼퍼퍽!
그러자 투명한 영혼포식자의 검날이 지나가는 곳으로부터 다시금 격렬한 힘의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놈은 자신의 약점을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온 영혼포식자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돌입합니다.”
“자, 잠깐!”
처음부터 황혼의 결계를 넘어 다른 인간들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가 나타난 것에 놀란 허세와 망상이 그렇게 외쳤지만, 형진은 망설이지 않고 열려진 채 고정된 통로를 향해 뛰어 들었다.
허세와 망상의 우려는 형진 역시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대뜸 그런 존재가 불려 나올 정도의 공간이라면, 그보다 더 강력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 또한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썩은 생선 대가리가 튀어 나왔을 때 그곳에 존재하던 가장 강력한 존재가 티폰이었던 것처럼.
게다가 황혼의 결계를 넘어 영향을 끼친 것도 절대로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는 문제다. 적어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 원인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뛰어드는 건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지만 형진의 입장에서는 이런 강력한 존재가 자리 잡은 공간이야 말로 가장 먼저 탐사와 토벌을 진행해야만 하는 곳이다.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나이를 먹어 죽는다는 식의 개념이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즉, 존재를 인식한 순간 소멸시켜야만 그나마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그가 힘들게 언데드의 영역을 탐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파괴와 재생의 본거지를 확인하고, 놈이 힘과 세력을 얻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다. 방금 전과 같은 존재가 파괴와 재생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이 싸움은 쉽지 않은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아직 등급이 낮아서 그 효과가 미약하기는 해도 공포와 죽음의 문양으로 보호받고 있는 프리츠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방금 전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영향권 안에 들어선 일반적인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력화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만약 지구의 메트로폴리스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수습불가능한 대재앙의 시작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 통로라는 것이 어느 한 지점을 특정해서 열리는 것이 아니니만큼, 지금 그곳으로 넘어가 위치를 확인하고 인지해 두지 않으면 방금 전의 일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더라도 다시는 그곳과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즉, 갔다가 바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넘어가서 위치를 인지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통로를 빠져 나온 순간, 형진은 자신이 이질적인 공간에 들어선 것을 깨달았다.
“여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태양. 일식으로 인해 태양의 모습이 감추어진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 자체로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그런 공간인 것이다.
검다. 모든 것이 검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칠흑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위도, 기이한 형태의 식물도, 흐르는 물도, 산도, 들도, 하늘도 모두 검은 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분명히 어둡고 컴컴한데 사물을 식별하는 데는 아무 지장도 없는 그런 기이한 곳이다.
형진은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보호와 균형의 성물을 꺼내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강력한 보호의 권능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일부터 했다. 척 보기에도, 저 검은 태양으로부터의 빛을 그대로 계속 접하는 것은 몸에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그 일이 마쳐지자, 형진은 위성발사기를 탑재한 무인기를 꺼내 허공으로 띄웠다. 일단 주위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형진은 일단 은신으로 모습을 감춘 채 무인기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무언가 검은 빛 하나가 언덕 너머에서 날아와 무인기를 순식간에 격추해 버린다.
크게 놀라 그곳을 바라보니, 인간의 형상을 닮은 무언가가 투창과 방패 같은 것을 든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가 아니다. 적어도 열 이상. 그들은 무인기가 떨어지자 낙엽이 바람에 스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잔해가 추락한 장소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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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