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72
00572 130. 대결 =========================
무인기 안에 탑재된 인공위성의 숫자를 생각하니 속이 쓰리다. 저거 만드는데 비용이며 시간이며 노력이 얼마나 드는데. 설마 제대로 궤도에 진입하기도 전에 격추 당하는 일이 생길 줄이야.
상승 속도를 높이든 방어력을 높이든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형진은 은신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추락한 무인기의 잔해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스아아아…
스아아아아아…
예의 낙엽 쓸리는 듯한 소음이 다시 이어진다. 아마도 그냥 내는 소리 같지는 않고, 의사소통 수단인 모양인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추종자가 되면 기본적으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자와 의사소통 능력이 생긴다. 이것은 신이 지닌 권능의 한 가지이기 때문에 상대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를 사용한다 해도 적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저들의 음성은 전혀 이해가 불가능하다. 아마도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가청 주파수 대역을 넘어서거나, 흔히 생각하는 언어라는 형식과는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스아아아…
형진이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도 부서진 무인기의 잔해를 뒤적거리며 뭔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더니 그중 하나가 힘을 일으켜 남은 잔해마저 깨끗이 부숴버리기 시작한다.
에고, 아까운거.
아마도 다른 세계의 잔향이나 부서진 성물로부터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신의 힘 같은 것을 불길하다 여긴 모양이다. 형진이 언데드의 힘을 발견하는 즉시 깨끗하게 태워버리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해야 하나.
일단 그렇게 무인기의 잔해를 깨끗하게 정리한 그들은 형진이 처음 도착했던 장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처음 무인기를 띄워 올렸던 장소 역시 확인을 하려는 모양이다.
형진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기회를 봐서 모조리 쓰러뜨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그대로 놔뒀다가 근거지를 확인해서 더 강력한 존재가 없는지 확인하는 편이 옳을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전에 그가 탐사했던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완전히 세상의 구성 요소 자체가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하늘위에 떠올라 있는 태양부터가 그가 알고 있는 그것과 다르다. 천문학자가 아니라서 저것이 어떤 형태의 천체인지조차 추측할 수가 없지만, 적어도 형진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간인 것만은 분명하다.
상황이 이럴 경우 형진으로서는 어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어떻게 보면 앞서의 티폰이나 오래된 자는 형진이 본래 살던 세계의 일부가 언데드의 힘에 오염된 것뿐인지도 모른다. 이곳이야 말로 진정한 언데드의 영역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우주 규모의 세상이 언데드의 힘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실질적으로 신의 능력으로도 정화가 불가능한 수준의 영역이다. 아니, 실제로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 해도 손을 댔을 때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형진이 살던 세계의 대칭점에 있는 거울 같은 세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신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세계를 완전히 재구성할 정도의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둠이 빛을 대신하는, 그런 세계라면 형진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신도 그것에 손을 댈 방법이 없다.
그래서 딜레마가 생긴다. 지금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형진이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그림자 같은 형태를 한 존재들은 그가 도착했던 지점을 수색하더니, 별다른 흔적은 찾지 못하고 무인기의 잔해를 태웠던 것 같은 행위를 한 번 더 취했다. 역시나 아까의 행동은 정화의 의식이 맞았던 모양이다.
차라리 일반적인 언데드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지켜보며 고민할 이유도 없을 텐데.
잠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볼 일을 마치고 어디론가 향하는 그림자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새삼스럽게 파괴와 재생에게 화가 난다. 그 녀석이 엄하게 언데드의 영역에 발을 딛지만 않았어도, 이런 곳에 와서 고민할 이유 자체가 없었을 테니까.
가만히 뒤를 따르자 그림자들은 이내 숲처럼 보이는 공간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동물이 아닐까 싶은, 역시나 그림자로 이루어진 그런 존재에게 투창 같은 것을 던지며 뒤쫓기 시작한 것이다.
“…”
저 모습을 보고나니 어쩐지 한 가지 상황이 연상된다. 이를테면, 원시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초기 문명사회라든가 하는 식의.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지켜보고 있자니, 마침내 사냥이 성공했는지 앞서의 낙옆 굴러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맙소사.
그림자들은 이내 사냥한 무언가를 짊어지고는 다시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허탈해지기까지 한다. 고도화된 마법 문명과 신들의 힘까지 적용된 최첨단 무인기가 고작 원시인의 투창 한 방에 박살이 난 셈이니까.
어쨌든 일단 따라가 본다.
불길한 무언가를 발견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공적으로 사냥을 끝낸 탓인지 그림자들은 흥겨운 몸짓으로 사냥감을 들고 자신들의 근거지로 향했다.
“…”
형진은 그들의 근거지를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이마를 짚었다.
누가 봐도 그것은 고도한 문명으로 일구어낸 주거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잘해야 움막 수준의 건물이 예닐곱 채 정도 있었고,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그림자들의 모습이 보이자 아이들로 보이는 존재들이 달려 나와 그들을 환대한다.
골때린다.
물론 이들은 잠재적으로 매우 큰 위협이 될 소지가 있다. 실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단순히 외침만으로도 일반인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이들에게 제대로 된 문명이 전수되고, 그에 걸맞은 무기나 힘이 주어질 경우 그 파괴력은 실로 표현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무작정 학살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저들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영문 모를 무언가가 나타나 아무런 죄도 없는 자신들을 학살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것은 결국 본능만이 남은 언데드가 사기에 이끌려 소환된 뒤 양민들을 학살하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이다.
머리 아프다. 일단 돌아가서 신들에게 의견을 구해보는 편이 좋을까. 당장 자신의 판단만으로 무언가 일을 저지르기엔 일이 간단치가 않다.
바로 그 때, 사건이 발생했다.
스하아아아아!
스하아아아아!
어딘가에서 거대한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러자 사냥의 성공에 들떠 있던 그림자들의 움직임이 우뚝 멈추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움막 속으로 숨는다. 사냥을 나갔던 전사들은 다시 무기를 챙겨서 일어났다. 마을을 지키는 자들은 목책 같은 것을 일으켜 세우며 명백하게 방어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한다.
뭘까. 혹시 다른 부족의 침입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그림자 하나가 나무 위로 펄쩍펄쩍 뛰어 올라가더니, 한쪽 방향을 살펴보고는 예의 낙엽 굴러가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장하고 있던 그림자들은 일제히 한쪽 방향을 향해 내달린다. 앞서 사냥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전력질주라는 느낌이다.
형진은 은신을 풀지 않은 채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얼마 걸리지 않아, 그곳에서 놀라운 광경 하나를 목격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 감히 저항 따위를 하다니.”
앞서와는 다른 명백한 음성. 게다가 그 모습 또한 형진이 잘 알고 있는 그런 일반적인 언데드의 그것이다.
눈구멍에서 푸른 불길을 뿜어내고 있는 해골 병사들이 그림자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앞서 울려 퍼졌던 외침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주변의 다른 그림자들에게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던 모양이다.
그림자들은 무리를 지은 채 해골 병사들의 군세에 대항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아무리 봐도 불리해 보였다. 서로 생명체가 아닌 언데드이니, 그림자들의 특기인 소리 공격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퍽! 콰득!
투창들이 해골 병사들을 향해 날아간다. 그 투창들은 충분히 위력적이었지만, 해골 병사들은 걸치고 있는 갑옷이 부서지고나 뼈마디 몇 개 박살나는 정도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림자들의 집단을 압박하고 있었다. 그나마 파괴되더라도 그림자들은 물론이고 이 세계 전체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언데드의 힘이 서서히 그들을 원상회복 시키고 있었다.
“많이도 모여들었군. 장군께서 좋아하시겠어.”
해골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해골 코끼리 같은 것을 타고 있는 존재로부터 그런 말이 흘러나온다. 앞서 버러지 운운했던 것도 바로 이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이 녀석도 해골은 해골인 것 같은데, 다른 해골 병사와는 뭔가 미묘하게 다르다. 해골이라기 보다는 비쩍 마른 미이라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변색되고 갈라지긴 했어도 피부도 붙어 있고 근육마저 어느 정도 형체를 갖추고 있는 그런 모습이다.
또한 이 녀석은 그럴 듯한 갑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은은한 흑광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이 이 세계의 물질로 만들어진 종류의 것으로 보였다.
“포획하라.”
가만히 전투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놈에게서 그러한 명령이 나오자, 해골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바꾸며 그림자들에 대한 포위를 시작했다.
방패를 든 해골들이 선두에 서고, 뒤쪽에서 화살 같은 것을 쏘며 포위를 시작하자 그림자들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림자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섰지만, 다음 순간 어딘가에서 지축을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기마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기마병이라고 해서 말은 아니다. 역시나 해골만 남은 야수 같은 것에 탄 해골 병사인 것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해골 보병들과는 다르게 상당한 수준의 기동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아차 하는 사이에 그림자들에 대한 포위망을 완성해 버렸다.
그림자들은 급히 원형진을 형성하며 해골 병사들의 포위에 저항하려 했지만, 다시 후열에 서있던 해골 병사들이 그물과 같은 것을 그들의 머리 위로 던지자 그대로 혼란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멍청한 놈들.”
딱 봐도 이건 견적이 나온다. 지금 이 해골 병사들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노예사냥에 나선 것이다.
형진은 조용히 몸을 움직여 이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대장 녀석의 근처로 다가가 놈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갑주 속에서 은은하게 비쳐지는 어떤 문양을 발견했다.
너무나 눈에 익은 그 문양은, 바로 파괴와 재생의 것이었다.
이렇게 까지 되면 상황은 너무나 명확하다. 지금 이 해골 병사들은 그림자 종족들에 대해 노예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잡은 그림자 종족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은 명확하지 않다. 제물로 삼아 더 강력한 무언가를 연성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자체로 파괴와 재생의 힘을 각인시켜 노예로 부려먹고자 하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대로 이 상황을 그대로 방관한다면 어떤 형식으로든 파괴와 재생에게 도움이 되리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형진이 취해야 할 행동은 너무나 분명하다.
스윽.
느긋하게 거대한 탈 것 위에서 그림자들이 무력하게 사로잡히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대장 녀석의 뒤에 형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응?”
그래도 대장씩이나 할 정도의 녀석이라 그런지, 형진이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그의 기척에 반응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푹!
놈의 약점을 뚫고 들어간 영혼 포식자의 힘에 대장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곧바로 풍화되듯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질서정연하게, 자로 잰 듯이 줄을 지어 움직이고 있던 해골 병사들이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선다. 형진은 그 모습을 보고 혹시나 싶은 생각을 떠올렸지만, 그 기대가 구체화되기도 전에 해골 병사의 눈구멍에서 흘러나오던 불꽃이 붉은 색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제멋대로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쳇. 하긴 일이 그렇게 쉬울 턱이 없지.”
형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통제를 잃고 미쳐 날뛰기 시작한 해골 병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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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