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80
00580 131. 각성 =========================
자신의 신격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형진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웃자, 희망과 생명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흥. 너무 좋아하지 마. 네 신격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신의 힘이란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따르느냐에 따라 달린 일이니까.”
“하하,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걸 잊을 리가 있나요.”
멀리 볼 것도 없이 대신 중에 하나이면서도 제대로 된 신도 하나 없이 계약에 묶인 채 더부살이하고 있는 허세와 망상 같은 이도 있다. 반면교사의 예로서 이보다 더한 경우가 있을까.
“뭐야? 다들 왜 나를 보는 건데?”
다른 이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허세와 망상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아무튼, 뭐… 축하해. 훌륭한 신격을 얻었으니. 나머지 하나도 멋진 것을 얻었으면 좋겠네.”
희망과 생명은 뭐가 그렇게 쑥스러운지 시선을 피한 채 그렇게 말했고, 다른 신들도 뒤늦게서야 형진에게 연이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저도 축하드려요! 이제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진님도 완전한 신이 되겠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축하… 드려요.”
꼬맹이 신들이 그렇게 축하를 건네자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이어진다.
형진은 씩 웃으며 그들에게 감사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모두 여러분께서 잘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인사를 나누던 형진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프리츠와 아유무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 두 분이라면 걱정 않으셔도 돼요. 아유무님은 얼마 뒤에 다시 정신을 차렸고, 프리츠님도 회복을 받은 다음 안정을 취하면서 휴식중이에요.”
“그렇군요. 제가 없는 동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밤의 종족으로부터 터져 나온 외침을 듣고 타격을 받았던 이들에게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자 형진은 다시 물건 하나를 꺼내 보였다. 앞서 저쪽에서 회수했던 문양이다.
“이거, 아시는 분 계십니까. 안식과 동굴이라는 신의 성물이라던데.”
그러자 신들은 놀란 기색으로 그것을 살폈다.
“안식과 동굴…”
“예전에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어요.”
“흥, 꼬맹이들은 모를 수도 있겠네. 아주 오래 전에 활동하던 신이니까.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인다 싶더니, 저쪽으로 넘어가 있었던 건가.”
“예전, 그러니까 인간들이 문명을 일구기 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신이었지. 어느 시점이 되면서 차츰 잊혀지기 시작했지만.”
“아, 생각나요. 말수도 적고 조용한 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 위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그게 딱 맞는 건가.”
그런 식으로 얘기가 오가는 것을 듣고 있던 형진이 조용히 한 마디를 덧붙였다.
“확실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문 결과 파괴와 재생의 반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뭐?”
“그 미친놈이, 반려?”
“믿기지 않는데. 있는 짝도 걷어차고 가버린 놈이… 흠흠.”
허세와 망상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다가 다른 여신들의 눈총을 받고는 얼른 입을 다문다. 있는 짝이라니 누굴 말하는 걸까.
설마?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해진다.
[그가 누구와 짝이 되든 그건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크흠. 미안.”허세와 망상이 헛기침을 하며 사과했지만, 어색해진 분위기는 바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놀라운 일이다. 공포와 죽음은 파괴와 재생이랑 남매 지간 아니었나?
그런 기색을 눈치 챘는지 희망과 생명이 한 마디 건넨다.
“흥, 영원을 사는 신들에게 인간의 법도를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이야. 게다가 짝이라고 해도 제대로 맺어졌던 것도 아니고.”
“그렇군요.”
내용은 그렇다 쳐도 희망과 생명이 공포와 죽음을 변호하는 모습이란 건 어쩐지 좀 색다른 느낌이다. 그런 의미를 담아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녀는 시선을 홱 돌리며 얼버무렸다.
“따, 딱히 그 녀석을 두둔하거나 그러려던 건 아니거든? 그냥 너도 이제는 신의 반열에 올랐으니 쓸데없는 편견 같은 건 가질 필요 없다는 뜻에서 한 얘기니까 오해하지 말아줄래?”
“네, 네. 알겠습니다.”
역시 츤데레 여신. 연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석적인 대화 패턴에 형진은 작게 감탄마저 해버렸다.
아무래도 이 얘기는 이쯤에서 자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형진은 성물에 대한 얘기를 다시 꺼냈다.
“일단… 저들이 이것을 매개로 증원 병력을 보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잘 활용해서 저들의 본거지를 들이칠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어려울 걸. 동굴의 권능은 입구와 출구의 개념이 명확해서, 어느 한쪽이 막혀 있는 경우 통과하기가 쉽지 않아.”
형진의 말에 허세와 망상은 성물을 살피며 그렇게 답했다.
“심문 결과 그런 비슷한 얘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하지만 연구해볼 필요는 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어디 꺼내놓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 그걸 통해서 놈들이 공격을 가해오면 오히려 이쪽이 역공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단은 스하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한 그 세계에 대한 간단한 보고를 마치고 난 형진은 간단하게 검역을 마치고 엘리시온을 벗어나 왕궁으로 돌아갔다. 제대로 된 신격을 얻은 건 그에게는 물론이고 가족들에게도 크나큰 경사이니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신들은 일단 뒷정리를 한다는 핑계로 제단 근처에 남았다. 하지만 막상 형진이 모습을 감추자,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회의에 들어갔다.
앞서 형진과 대화를 나눌 때보다도 훨씬 심각한 기색이다. 차마 본인 앞에서는 드러내지 못했지만, 이번 사건은 그들에게 있어서 결코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문제는 역시 밤이라는 신격이다. 그 신격의 높음은 일단 차치해 두고서라도, 그것은 명백하게 저쪽 세계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치 차야 메사가 밤과 낮의 영역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설마 밤의 신격을 얻을 줄이야… 설마 제 신격이 영향을 준 걸까요?”
황혼과 망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희망과 생명이 콧방귀를 뀌었다.
“지낸지 얼마나 되었다고 영향을 줘. 너 설마 우리들 몰래 쟤랑 자기라도 했어?”
그 말에 황혼과 망각은 손을 내저었다.
“네? 그, 그, 그, 그, 그게 무슨… 그럴 리가 없잖아요.”
평소 조용한 그녀답지 않게 크게 당황하며 격렬하게 반응하는 모습에 희망과 생명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팩 돌렸다.
“흐응, 뭐, 그렇다면 상관없지 않아? 물론 황혼이란 것이 결국은 밤을 여는 문과 같은 개념이라고는 해도, 실제 신격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당사자의 심상에 달린 일이니까.”
사실 꼬맹이 여신들도 그에게 대리자 권한을 맡기고 계약을 한 상태이니 완전히 관계가 없다고 하긴 어렵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영향을 강하게 준 것을 따지자면 공포와 죽음, 파괴와 재생, 희망과 생명, 허세와 망상의 네 신들 쪽이다.
희망과 생명은 문득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그래도 가장 먼저 발현한 권능이 회복 계열이라니 좀 놀랐어. 보나마나 전투 쪽일 줄 알았는데.”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누군가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촌철살인이랄까. 예리하게 파고든 그 한 마디에 희망과 생명은 얼굴이 확 붉어졌다.
“조, 좋긴 누가 뭘 어쨌다고 그래?”
[아님 말고.]
“큭…”
갑자기 훅 들어와 치고 빠지는 공포와 죽음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발끈했다. 설마, 아까 형진 앞에서 파괴와 재생의 짝이었던 사실을 말했다고 저러는 건가?
“흥! 흐흥! 부, 부러워? 대단하신 공포와 죽음께서 손수 거둬들여 반신까지 올린 분이시니 권능도 딱 그쪽일 줄 알았는데.”
[…]
역시나 핵심을 찔러 버린 것일까. 잠시 아무런 대답도 없는 공포와 죽음의 반응에 희망과 생명은 옳다 싶었는지 연신 공세를 취했다.
“하기야 반신으로 올린 것도 내가 나선 덕분이지. 넌 별로 내키지 않아하는 기색이었고.”
[그랬던가.]
“그랬거든? 확실히 그랬거든? 내가 먼저 나서니까 마지못해서 인정하고 그랬거든?”
[그랬군.]
하지만 뭔가 반응이 심드렁하다. 어쩐지 좀 기운 빠지는 느낌이랄까. 싸움을 걸고 싶어도 상대가 이래서야 영 흥이 나질 않는다.
옆에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희망과 생명의 모습을 지켜보던 허세와 망상이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신격을 얻은 건 물론 축하할 일이지만, 역시 밤은 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언데드들이 아니라고는 해도, 신도들이 너무 저쪽 세계에 편중된 것도 마음에 걸리고.”
차야 메사 쪽은 정화를 거쳐 더 이상 언데드가 아니게 되었고, 이번에 맞이한 스하 쪽의 추종자들 역시 본질적으로 언데드와는 차이가 있는 밤의 종족이라고는 해도 저쪽 세계의 주민인 것은 분명한 일이다. 아유무와 프리츠의 예에서 보듯이,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의 주민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물론 밤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자면 저쪽 세계의 주민을 추종자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언데드만 아니면 저쪽 세계의 법칙에 맞춰 태어나고 자란, 조금 특이한 생명체일 뿐이니까. 그러나 저쪽 세계의 신도가 더 많아진다는 얘기는, 바꿔 말하자면 이쪽보다는 그쪽의 기반이 더 커진다는 뜻이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는 힘이든 뭐든 저쪽 세계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는 뜻이다.
형진은 지금까지 매우 유능한 모습을 보여 왔다. 물론 언제나 완벽한 것만은 아니어서 이런 저런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적어도 여기 모여 있는 신들이 어떤 식이든 간에 그의 도움을 받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만약 그런 유능한 신이 저쪽 세계로 완전히 넘어가 버리거나 한다면, 그건 파괴와 재생이 몰고 온 이번 위기보다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걱정도 팔자다. 처자식들이 전부 이쪽에 있는데, 설마 그 팔불출이 그대로 넘어가버리기라도 할 것 같아?”
희망과 생명의 말에, 허세와 망상은 고개를 저었다.
“처자식이라고 해봐야 인간일 뿐이야. 임의로 반신의 위를 넘겨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신격을 얻은 순간, 평범한 인간과는 이미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이해해야만 해.”
“그건…”
두 신의 대화에 꼬맹이 여신들이 눈동자만 뒤룩뒤룩 굴리고 있는 가운데, 가만히 듣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그녀의 말에 허세와 망상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녀석이 저쪽 세계로 완전히 넘어가 버리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뭐 그런 얘기인 거다.”
“이를테면?”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녀석의 식구들, 특히 아이들을 우리들의 견실한 추종자로 끌어들이는 것이 되겠지. 다른 건 몰라도 녀석은 아이들이라면 끔벅 죽으니까.”
“…”
신들은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신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이용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녀석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어떤 식의 분노보다도 더 강렬한 분노를 폭발시킬 테니까.
“아이들을 건드리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도요.”
“그건 오히려 녀석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일 수도 있어. 나도 반대.”
보호와 균형을 시작으로 희망과 생명까지 그렇게 반대하고 나서자, 허세와 망상은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있긴 해.”
“어떤?”
“너희들이 아이들을 건드려도, 녀석이 뭐라 할 수 없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이지.”
그러자 여신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아이들은 형진의 역린이라 할 수 있다. 효과야 확실하겠지만, 건드리는 순간 자칫 그의 분노를 뒤집어쓸 각오 또한 해야 하니까. 그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형진이 뭐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라니.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방법이… 있어요?”
꽃과 바람의 말에 여신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모이자, 허세와 망상은 잠시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간단해. 너희들이 녀석의 아이를 낳으면 돼.”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