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02
00602 137. 확대 =========================
“끄아아아아악!”
갑자기 터져 나온 커다란 비명 소리에, 궁 안에 있던 자들은 모두 흠칫 놀랐다.
“이 소리는?”
“설마… 신께서?”
이전에도 파괴와 재생은 자기 분에 못 이겨 고함을 지르며 난동을 부린 전례가 몇 차례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파괴라는 이름을 지닌 신이 분노를 터트리면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은 제대로 남아나지 않는다.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든, 살아있지 않은 것이든 간에.
다시금 미친 신의 발광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 이들은 급히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나중에 벌을 받게 될 수도 있지만, 그 나중이라는 것도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얘기다. 미친 신의 분노는 너무나 무서워서, 휩쓸리는 순간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지축이 흔들리며 커다란 파괴의 전조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전조를 느낀 시점에서는 이미 도망이고 뭐고 소용없는 일이란 걸 그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자신에게 닥쳐올 소멸의 순간을 기다릴 자들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기 위해 더욱 아우성치며 급하게 도망치면 모를까.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궁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문자 그대로, 파괴의 두려움 아래 다스려지는 곳이다 보니 더 큰 두려움이 나타나자 그대로 무질서가 소용돌이치는 지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꽝!
아니나 다를까. 건물 하나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발하며 부서져 내린다. 도망치던 자들은 기겁을 하며 머리를 감싼 채 몸을 웅크렸지만,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폭발? 붕괴? 폭음? 진동?
물론 이런 단어들은 파괴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이미지의 일종이긴 하지만, 그 파괴의 주체가 신이라면 이런 일반적인 형태의 파괴는 보통 잘 일어나지 않는다. 신이 괜히 신이겠는가. 신이 일으키는 파괴는 미처 인지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지켜보는 자들은 물론이고, 직접 파괴당하는 대상조차도 스스로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때문에 지금 들려온 폭음과 진동이 이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화가 많이 나지 않으신건가?”
“그럴지도.”
방금 전까지도 두려움에 휩싸여 아우성치며 도망치던 자들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건물 하나 때려 부순 정도로 끝났으니, 그들의 경험으로는 이 정도면 생각보다 별로 화가 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끄으으으으…”
파괴와 재생은 언데드의 영역에 넘어온 이후로 지금보다 더 크게 화가 난 적이 없었다.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밉살스런 누이와 마주한 것만으로도 속이 터질 것만 같은데, 고작해야 파편의 일부를 얻은 하찮은 존재에게 일격을 당해 파편의 일부를 강탈당했다. 그 분노를 어찌 필설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해야 건물 하나 정도 부숴 먹는 정도로 밖에 분노를 표출하지 못한 것은, 강제로 파편을 찢겨 나간 충격이 그의 몸과 마음을 갈기갈기 흩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끝의 세포 하나 하나까지 모조리 불타버리는 듯한 고통이 쉴새없이 몰아치니, 제 아무리 미친 신이라도 견뎌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잠시 발버둥치며 버텨봤지만, 고통은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엘리시온에 들어갈 수 있다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달리 이 끔찍한 고통을 잠재울 방법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바닥을 구르며 발버둥치던 파괴와 재생은 문득 자신이 감금하고 있는 여신 하나를 떠올렸다.
그녀의 이름은 다름 아닌 안식과 동굴.
동굴은 통로를 뜻하기도 하지만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안식을 취하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게다가 또 하나의 권능은 다름 아닌 안식.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엘리시온과 비슷한 느낌의 장소를 만드는 일 정도는 가능한 존재인 셈이다. 어찌 보면, 안식과 동굴이 엘리시온으로부터의 추방이란 형벌도 무릅쓰고 언데드의 영역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그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그녀에게서 강제로 신격의 일부를 빼앗아 자신의 찢겨진 신격을 채운다면 이 고통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럴 수 있음에도 그녀를 놔둔 것은, 어디까지나 보다 완전한 자신으로의 회귀를 위한 것. 하지만 유일한 가능성이었던 아이마저 놓쳐버린 지금의 상황에서는 다 쓸 데 없는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기왕 그렇다면, 이참에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자신의 신격을 채울 희생양으로 삼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끄으으… 끅…”
파괴와 재생은 영혼이 찢겨지는 듯한 고통을 필사적으로 억누른 채 그녀를 감금해둔 장소를 찾았다.
부들거리는 걸음으로, 거의 바닥을 기듯이 움직여 간신히 그녀의 거처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일까.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이 피어오르고 있어야 할 그녀의 궁 주위에는 불꽃이 남아 있지 않았고, 더불어 그 안에 있어야 할 존재들 역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이게…”
파괴와 재생은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지금의 이 상황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바로 이해했다. 별로 복잡한 인과관계도 아니다. 아마도 그가 파편이 뜯겨나간 충격과 고통으로 인해 바닥을 뒹구는 사이,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되는 불의 결계가 무력화되었고, 그것을 확인하자 여신과 그녀를 모시는 추종자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버린 것이다.
“끄아아아악!”
파괴와 재생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안식과 동굴이 감금되어 있던 궁전을 단숨에 파괴해 버렸다. 잠시나마 신의 분노가 잦아들었으리라 생각하고 슬금슬금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려던 그의 노예들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대한 신의 분노가 다시금 작렬하자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냅다 도망쳤다.
“…”
고통과 분노에 휩싸여 발광하는 누군가와는 달리,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는 작은 비명조차 내지 않은 채 어두운 은신처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여신님. 통로를 여는 중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놈은 날 찾을 수 없을 테니.”
추종자의 말에 안식과 동굴은 식은땀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작게 대답했다.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인 탓일까. 아니면, 강제로 아이를 낳는 일을 저질러 버린 탓에 밀려드는 고통 때문일까. 그녀의 얼굴은 마치 시체처럼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쿠츄와는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결계 같은 것에 갇힌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가요.”
“일단, 제 고향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곳이라면 놈도 쉽게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폐가 될 텐데…”
고통과 분노에 미쳐 발악하는 파괴와 재생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찾으려 할 것이다. 물론 그 방법은 일상적인 수단과는 거리가 먼 것일터.
“통로가 열렸습니다. 가시죠.”
“미안해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신은 우리들의 여신이십니다.”
추종자들이 그렇게 안식과 동굴을 데리고 그곳을 탈출하자, 파괴와 재생은 고통와 분노로 몸부림 치는 와중에도 그녀가 자신에게서 완전히 도망쳐 버렸음을 인지했다. 아기에게 그러했듯이, 그는 안식과 동굴에게도 자신의 소유라는 낙인을 찍어 두었던 것이다.
“도망칠 수 없다. 도망치지 못한다!”
파괴와 재생은 발악하며 무언가를 자신이 있는 곳에 불러들였다. 비록 상처입은 야수와 같은 꼴이 되어 버렸지만, 이 세계에는 쓰고 넘칠 정도의 힘이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안식과 동굴이 도망쳐 버리긴 했지만, 또한 이 세계에는 그의 발이 될만한 존재가 얼마든지 있었다.
쿠구구구구구!
간신히 발작이 끝났나 싶어서 다시 궁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며 머뭇거리던 노예들은 갑자기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며 궁 한복판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검은 힘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 저게… 뭐지?”
“몰라! 하지만 일단 도망쳐!”
노예들은 크게 놀라 개미떼처럼 흩어졌지만, 어차피 그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지금 파괴와 재생이 불러낸 존재 때문이다.
순식간에 궁이 붕괴되고, 그것으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처음에는 마치 언덕과 같은 것이 새롭게 솟아나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이내 거대한 산의 형상이 되었고 어느 순간이 되자 거대한 구체의 형상으로 세상 모든 것을 굽어보는 듯한 모습을 갖추었다.
지금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존재의 이름은 바로 티폰. 별을 먹는 괴수이다.
그 즈음. 희망과 생명은 무사히 신의 아이가 담긴 알을 엘리시온에 가져다 놓는 일을 마치고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 자신의 아이는 아니지만, 본래 희망과 생명은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존재. 혹여라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이중 삼중으로 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시간이 꽤 걸리고 말았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꽤 일을 잘했다 싶어서 얼른 별장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됐어요?”
“잘 모셔두고 왔어. 이제 괜찮을거야.”
“정말 다행이다아… 수고했어요.”
“뭘 이 정도 가지고.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인데.”
원하는 상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꼬맹이 여신들에게 칭찬을 듣고 나니 어깨가 조금은 으쓱거린다. 하지만 막상 정말로 칭찬을 받았으면 하는 대상은 어째서인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어?”
“네? 누구요?”
“그… 변태놈 말이야.”
“아하, 진님이요?”
어쩐지 진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기가 머쓱해서 떠오르는 대로 말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제대로 통한다는 점이 무섭다.
“제랄딘님이랑 잠깐 시장 보러 가신다고 나가셨어요.”
“그래?”
정체가 밝혀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란과 제랄딘의 존재를 지워버린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란에게는 쌍둥이라는 가족이, 제랄딘 역시 비록 요새는 연락이 뜸하긴 해도 공작 가문의 친지들이 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미엘 역시 제랄딘의 가족이나 마찬가지고.
이제 와서 사실은 공포와 죽음이에요 라고 말한다고 아 그렇습니다 하고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랄까. 어떻게 보면 그들로서는 형진이 겪었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기에, 일단은 현상을 유지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단 둘이 되어 버리면 본색이 드러나 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쳇. 누구는 열심히 일하고 왔는데, 누구는 마누라랑 탱자탱자 데이트를 즐기러 갔다 이 말이지?”
희망과 생명은 불퉁거리며 말했지만 만약 진실을 알았다면 그런 식으로 말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형진과 제랄딘은 그녀가 없는 동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적인 일을 겪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투덜거리며 앉아 있는데, 요안나가 웃으며 다가와 그녀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뭔가 급한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정 뭐하시면 제가 바로 연락을 해볼게요.”
“아, 아니! 그렇게까지 할 건 없고.”
요안나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당황해서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속보이는 짓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엔 이제 와서 라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해서, 요새 희망과 생명은 말로 직접 표현만 하지 않았다 뿐이니 누가 봐도 명백할 정도로 형진에게 신호를 마구 마구 보내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잠시 기다리자 고대하던 이가 차를 몰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아, 와계셨군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이는 무사히 잘 있나요?”
형진은 차에서 짐을 내리다가 희망과 생명을 발견하자 곧바로 질문부터 던졌다.
“물론. 내가 누군데.”
“그렇군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맛있는 점심을 해드리겠습니다.”
“흥. 맛만 없어봐라.”
속으로는 좋으면서 겉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리던 희망과 생명은 문득 형진과 함께 짐을 나르는 제랄딘에게서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딱히 뭐가 이상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는데도, 묘하게 신경이 거슬리는 듯한 기분이랄까.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랄딘을 살피던 희망과 생명은 이내 착각이겠거니 하며 요안나가 가져다 준 음료수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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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