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03
00603 137. 확대 =========================
“저… 역시 이상한가요.”
“별로.”
그렇지 않아도 혹시 눈치 챌까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해 하고 있던 제랄딘은 희망과 생명의 그런 반응을 일찌감치 알아채 버렸다.
현상 유지라고는 하지만 이전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전에는 공포와 죽음의 아바타라고는 해도, 제랄딘이나 아란 본인 스스로는 그런 자각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인격 자체가 완전히 분화되어 있는 상태인데다, 정보의 교환 자체가 양방향이 아니라 일방통행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은 공포와 죽음에게 그대로 자신의 일로 인식되지만, 그들 스스로는 공포와 죽음으로서의 자각이 전혀 없는 그런 상태였다고나 할까.
둘 다 명목상으로는 공포와 죽음의 추종자이니, 신의 힘이 좀 느껴져도 집행자라서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도 공포와 죽음으로서의 자각이나 정보가 전혀 없으니 행동이나 생각에 위화감 또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들이 공포와 죽음의 아바타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좀 바뀌었다. 사실상 별개의 인격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사실을 털어 놓으면서 그런 애매한 상태를 벗어나 다시 원래의 공포와 죽음으로 통합이 되어 버렸다. 공포와 죽음이지만 제랄딘이기도 했던 상태에서, 온전한 하나의 인격으로 통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제랄딘과 아란이 소멸한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자각이 없던 상태에서 스스로의 정확한 존재를 자각한 것뿐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통합이 되었다고 해서 인격 자체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언제든 제랄딘이나 아란의 인격을 꺼내어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 제랄딘도 아란도 꾸며진 것이 아닌 공포와 죽음의 또 다른 일면에 불과할 뿐이니까.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기존의 제랄딘이나 아란과는 다른 느낌이 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방금 전에 희망과 생명이 묘한 위화감을 느꼈던 것처럼.
“눈치 채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쉽지 않을 걸.”
“그럴까요.”
“아마도.”
“뭐에요. 그게.”
제랄딘은 형진을 향해 살짝 눈을 흘겼다.
사실 둘의 본신은 지금 엘리시온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너무나 멀리 돌아와 버린, 늦어버린 신혼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라고나 할까. 사실 형진의 경우에도 스스로 말하기 전에는 누가 본신이고 누가 아바타인지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 달리 위화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신의 의식은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니까.
마찬가지로 아란 역시 형진의 분신과 함께 왕성 라이언하트에 머물고 있다. 사실 제랄딘보다는 그녀 쪽이 좀 더 골치 아팠다. 일이 이렇게 꼬이게 된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쌍둥이들을 평범한 인간으로 키우고자 하는 그녀의 결정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아란은 독립된 인격을 가진 채 영락없이 자신이 집행자에 불과한 존재라고만 생각했다. 공포와 죽음의 사고가 은연중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결정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칸으로 전출을 보내면서도, 제랄딘이라는 또 다른 아바타의 존재조차 모른 상태로 그저 그것이 형진을 위한 길이라고만 생각했을 정도다.
사실 형진도 공포와 죽음이 자신에게 사실을 털어놓기 전 아란과 제랄딘의 인격이나 심리상태가 정확히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형진이 신으로서 처음부터 존재했던 자가 아니라, 인간이었다가 신의 자격을 얻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태생적인 한계라고나 할까.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저 아란이나 제랄딘이 지금까지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행동이나 생각, 심리 상태에 거짓이 없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 정도가 당장의 형진으로서는 최선일 수밖에 없다.
공포와 죽음은 그래서 형진이 더 고마웠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째서 그녀가 이런 복잡하고 먼 길을 선택해야만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하기보다, 그저 자신을 속이고 기만했다는 사실 하나에만 집착해 화를 내고 분노를 표출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만약 형진이 그런 식으로 반발했어도 사실 그녀로서는 달리 항변할 말조차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공포와 죽음은 이제 온전히 그에게 자신을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자신을 믿고 받아들여 준 것만으로도 이미 그녀는 다른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마저 떠올릴 정도였다. 교단이든 추종자든, 그가 필요하다면 전부 다 내줄 생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 정도로 그녀는 형진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필요 없어요?”
“뭐가?”
“제 모든 것, 원한다면 가져도 좋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제랄딘의 말에 형진은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이미 다 가졌는데.”
“네? 그게 무슨…”
“당신의 몸과 마음. 확실하게 가졌잖아. 뭘 더 가지라고 그래.”
“…”
제랄딘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들으면 훈훈하고 로맨틱한 얘기일 수도 있었지만, 이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니 변태스러운 생각부터 드는 건 어째서일까.
“이상한 생각했지?”
“무, 무슨 소리에요.”
“에이, 얼굴 빨개졌으면서. 하기야, 지금 엘리시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닌가.”
“…”
당연한 얘기지만, 엘리시온은 모든 것이 있으면서도 또한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기도 하다. 변화 자체도 사건 자체도 없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녀가 단둘이 남았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변태.”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제랄딘을 끌어당겨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식사 준비를 한답시고 그렇게 알콩달콩 깨소금을 뿌리고 있으면 옆에서 보는 사람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들 중 하나에게 마음이 있는 상태라면 더욱 더.
“적당히 좀 하지?”
모른 척 하는 것도 정도껏이지. 결국 참다 못 한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말을 던진다. 형진은 그런 희망과 생명의 모습에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흥.”
모르긴 해도, 만약 신들에게 이번 일이 알려지게 되면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은 역시 희망과 생명일 것이다. 형진에 대한 공략을 선언한 시점에서 이미 공포와 죽음이 그와 맺어져 있고, 아이마저 가진 상태였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이들에게도 진실을 밝혀야만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공포와 죽음이 과거의 자신에 대해 좀 더 떳떳해지고, 그녀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들이 아물어 다른 이에게 드러내 보여도 괜찮은 시점이 될 때까지 둘은 일단 이번 일을 자신들만의 비밀로 삼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언제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라 둘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형진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그것을 이해받은 시점에서, 공포와 죽음이 지니고 있던 상처는 반 이상 아물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일전에 촬영을 시도했던 자들이 누구인지 확인되었어요.”
“그래? 어디야?”
“격추된 드론은 중국측 첩보원들의 것이었고, 그 외에 러시아와 이스라엘, CIA도 있었던 것 같아요.”
“참 골고루 모아놨군.”
그야말로 온갖 잡새가 다 날아드는 형국이다.
사실 형진이 지금 이 별장에 계속 머무는 이유에는 그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현재 엘리시온, 그러니까 진짜 엘리시온 말고 거짓된 천국에서는 허세와 망상과 프리츠가 주축이 되어 전력 강화를 서두르고 있었다.
이번에 큰 효용을 보여주었던 무인기는 물론이고, 좀 더 크고 강력한 무기들을 양산해서 본격적인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로 삼은 것은 별을 먹는 괴수인 티폰을 형진 없이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서 그런 무지막지한 존재가 출현했을 경우,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본래의 실력을 보여준 적이 없는 공포와 죽음의 힘이라면 무엇보다도 큰 전력이 되겠지만, 만약 파괴와 재생이 저쪽 세계의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 물량전으로 밀어붙인다면, 몇몇 신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무슨 일이든 전부 형진이 나서서 처리하기 보다는 적어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과한 걱정일 수도 있지만, 모든 대비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만 한다. 근거 없는 낙관이야말로 정작 필요할 때 가장 큰 위험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정도의 힘이라는 것이, 지금의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힘이라는 점. 행성급의 적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란 건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수준의 무기이니 관리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형진은 세계 여러 기업에 생산을 나누어 맡겼던 다른 운송 수단과는 달리, 이번 프로젝트는 오로지 거짓된 천국에서만 전담하게끔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라면, 적어도 생산된 무기가 다른 곳으로 유출될 걱정은 없으니까.
“허세와 망상께서는 뭐라셔?”
“생산라인을 확장하기 위해 좀 더 많은 공헌도가 필요하시다고…”
“쩝… 전쟁은 돈으로 하는 거라더니, 그 말이 정말 딱 맞아.”
무인기나 인공위성 정도야 딱히 생산라인 같은 걸 만들지 않더라도 허세와 망상 혼자 뚝딱 만들 수 있지만, 행성급 괴수를 상대하기 위한 본격적인 무기들마저 그런 식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허세와 망상의 능력이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성과가 너무 미미하다고나 할까.
“그나저나 슬슬 움직임이 있을 법도 한데.”
미라지 코어의 대두 이후로 세계는 급속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당장 마약이 사라지고, 진통제 대신 희망과 생명의 이름이 불려지고 있으며, 호버 보드를 탄 사람들이 도시를 활보하고 있다. 조만간 부양형 자동차가 출시될 예정이며 각국의 조선소에서는 달 개발을 위한 작업선인 스파이더의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이 모든 이들에게 달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나 기존의 종교를 신봉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는 죽음의 천사나 미라지 코어 같은 존재는 그야말로 눈에 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형진이 일부러 드러난 장소에서 휴양을 즐기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미라지 코어의 내부에 숨어든 스파이들이 알 수 없는 고급 정보. 그것을 손에 쥔 것이 확실한 고위급 인사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자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지금쯤이면 슬슬 입질이 올 법도 한데… 아무튼 뭔가 특이한 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해 줘.”
“그렇게 할게요.”
요안나와의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형진의 손은 부산하게 움직이며 요리를 서두르고 있었고, 마침내 그것이 끝나자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한쪽에서 배드민턴에 열중하고 있는 손님들을 향해 외쳤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모두들 와서 식사하세요!”
“네에!”
사실, 형진의 예상대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자들은 분명히 있었다. 당장만 해도 요안나가 파악한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 중앙 정보국은 물론이고 또 하나의 조직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니까.
“아직도 파악이 되지 않은 건가?”
“죄송합니다.”
놀랍게도 그 나머지 한 곳은 다름 아닌 북한의 군부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였다.
앞서 평양에서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북한 정권은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배후에서 정권을 지지하고 있던 중국의 태도 변화에 이어, 주변 4강과 한국이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북한을 장악하고 통일을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한 탓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급격한 상황 변화는 기존의 북한 지배층들에게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주변 4강이 모두 적으로 돌아선 상황에서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던 북한 군부가 마침내 떠올린 것은,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미라지 코어에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같은 초강대국들도 설설 기는 미라지 코어에 무슨 수로 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흔히 테러 내지는 범죄라고 불리는 방법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미끼가 되어 앞으로 나선 형진은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놓칠 수 없는 먹이감이었다. 만약 형진이 그런 식으로 미끼를 자?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미라지 코어의 본사나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개발부에 직접 테러를 가하는 방식을 썼을 지도 모른다. 궁지에 몰린 그들로서는 뭐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형진은 의도치 않게 미라지 코어의 사원들이 처했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스스로 막아선 꼴이 된 셈이다.
“할 수 없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다. 양키 놈들이 냄새를 맡은 모양이니까.”
“그럼…”
“오늘 밤 바로 결행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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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후아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