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06
00606 138. 전격전 =========================
“부대장 동지. 여기가 도대체 어드렙니까.”
“낸들 알겠냐…”
잊혀진 자들, 그 첫 번째. 용맹하게 형진이 머무는 별장에 뛰어 들었다. 어딘지도 모를 엉뚱한 별에 떨어진 북한군 병사들.
스하아아아…
그들은 지금 밤의 종족들에게 감시를 받으며 행성 정화 작업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생포된 시점에서, 소속과 배후를 확인한 이후로 심문 과정조차 없이 그대로 잊혀져 버린 탓이다. 주시자들은 신이 맡겨둔 인물들이라 함부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식량만 축내게 할 수도 없는 일이라 밤의 종족들에게 감시를 맡기고는 정화 작업을 돕도록 했다. 물론 정화작업이라고 해봐야 언데드의 잔해를 불로 깨끗이 태우고 그렇게 타고 남은 재를 땅에 묻는 정도의 일이다.
생각보다 감시가 꽤나 허술한 탓에, 그들은 상황을 봐서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탈출하고서야 알았다. 이 땅은 그들이 알던 그 어떤 곳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전혀 다른 땅이며, 또한 그들이 알던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잡초 하나 벌레 하나조차도 없는 완벽한 죽음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잘 훈련받은 병사들이고 또한 생존술의 달인들이었지만, 식량이 될만한 무언가는커녕 마실 물조차 찾을 수 없는 곳에서는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움직임은 행성 전체를 에워싼 인공위성에 의해 낱낱이 감시되고 있었으며, 물을 구하지 못해 기진맥진해 있는 것을 스하들이 주워서 다시 작업장에 데리고 와야만 했다.
물론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밤의 종족들을 인질로 삼아보려고도 하고, 이곳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친해져 보려고도 하고, 나름 떠올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떠올려 봤지만 결국 모든 방법들이 실패해 버렸다. 결국 지금에 와서는 자포자기한 채로 작업에만 열중하는 중이다.
“긴데, 이 곽밥… 정말 맛있지 않습네까? 일도 그리 힘들지 않고.”
“이게 다 미제 승냥이들의 계략이야. 씰데없는 소리 말고 날래 처먹기나 하라.”
“아, 알갔습니다.”
곽밥은 도시락의 북한어이다. 그들에게 지급된 식량은 주시자들이 지급받고 있는 전투식량이다. 탈출한 뒤 쫄쫄 굶으면서 헤매다가 그것을 처음 받아먹었을 때, 몇몇 병사들은 말도 못하고 주룩주룩 눈물만 흘렸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처음에 틈만 나면 도망치려 했던 그들이 차츰 탈출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한 건 이 도시락 때문인지도 몰랐다.
스하아아아…
열심히 도시락을 까먹고 있는데, 문득 밤의 종족 가운데 하나가 다가와 물통에 담긴 물을 건네주고 간다. 도시락도 그렇고, 물을 담은 이상한 가죽 물통도 그렇고, 거기에 정말 살아있는 생명체가 맞기나 한 건가 싶은 기이한 그림자 같은 존재들도 그렇고. 무엇 하나도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다.
“미라지 코어인지 하는 놈들… 역시 외계인이었던 겁네까.”
“글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진실을 알 방법도 없고, 안다 해도 지구의 다른 이들에게 알릴 방법도 없다. 자신들을 이곳에 가둬둔 이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일단 살아남는 것만이 최선이다. 물론, 그들을 가둬둔 이는 이미 자신을 습격하려 했던 북한군 병사의 존재 따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상태.
그래도 북한군 병사들 쪽은 그나마 나았다. 최소한 잊혀졌더라도 밥값 대신 정화 작업을 돕는 것 뿐인데다, 몸도 그리 고달프지 않고 오히려 제법 살만했으니까. 하지만 형진에게 잊혀져 버린 또다른 누군가는 참을 수 없는 울분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콜록! 콜록! 으으…”
자신의 말이 중간에서 차단되어 전해지지 못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수영복과 얇은 린넨 셔츠만을 입고 밤새도록 바닷바람을 쐬어 버린 희망과 생명은 감기에 걸렸다. 무려 회복의 능력을 지니고 포션을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권능마저 지닌 여신이 말이다.
“괜찮으세요?”
“안 괜찮아. 보면 몰라?”
보다 못한 보호와 균형이 다가와 그녀에게 권능을 써주려고 했지만, 희망과 생명은 거부하고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실 감기 따위, 그녀에겐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냥 권능을 살짝 끌어올리기만 해도 그냥 사라져 버릴 그런 증상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렇게 방안에 틀어박혀서 끙끙 앓고 있는 것은, 일종의 시위였다. 자신을 바람 맞혀 버린 형진에 대한, 그리고 바보처럼 그를 밤새도록 기다려버린 자신에 대한.
“으으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창피해서 미칠 것 같다. 바람을 맞다니. 물론 이것 바닷바람 얘기가 아니다. 헐리웃의 여신이라고 불리며 어떻게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어 난리를 치는 팬들이 세상에 가득한 그녀가, 먼저 나서서 유혹하려 했건만 바람을 맞아 버린 것이다.
“아으으으으…”
희망과 생명이 머리를 감싸 쥐고 끙끙 앓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보호와 균형은 슬금슬금 물러나 어딘가로 향했다. 형진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요즘 그가 무척이나 바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희망과 생명이 이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건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제랄딘은 그때 쌍둥이들과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대학들을 돌아보러 다니는 중이었고, 요안나만 남아서 형진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래요? 여신께서…”
희망과 생명이 감기에 걸리다니. 보호와 균형의 말을 들은 요안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라리 공포와 죽음이 공포 영화를 보고 무서워서 꺅꺅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모를까. 건강에 있어서는 다른 누구도 따르지 못할 능력의 소유자인 희망과 생명이 감기에 걸려서 앓고 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좋단 말인가.
“아무래도… 몸보다는 마음의 문제인 것 같은데…”
“네?”
“음… 그거 있잖아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병이 나는 거.”
“상사병이요? 여신께서?”
“그, 그게… 저도 잘은 모르지만… 역시 그것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게…”
“흠…”
확실히 요새 희망과 생명이 좀 이상하긴 했다. 요안나 역시 그런 낌새 정도는 눈치 채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사병이라니. 좀처럼 믿기 어려운 일이다.
보호와 균형은 얼마 전 허세와 망상이 했던 말이라든가, 희망과 생명이 나서서 형진을 공략하겠다고 선언했던 일까지 말해야 하는 건가 싶었으나,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당사자도 아닌 형진의 반려에게 그런 말까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요안나는 보호와 균형에게 이렇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진에게 말해 보겠습니다. 그는 여신님의 대리자이기도 하니, 대화를 나눠보면 어찌된 일인지 알 수 있겠죠.”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희망과 생명의 일은 이렇게 해서 마침내 형진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뭐? 여신께서?”
“네. 아파서 틀어박히셨다는데, 한번 가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갑자기 무슨 일이지.”
차마 상사병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못하고, 일단 보호와 균형에게 들은 내용 중 일부만 전했다. 아닐 가능성도 있고, 설령 사실이라 해도 여신의 높은 자존심을 생각하면 함부로 입에 담는 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닐 거라는 판단에서다.
사실 이 시점에서 그럴 마음이 있었다면 공포와 죽음은 충분히 개입할 수 있었다. 비록 제랄딘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요안나 역시 공포와 죽음의 성녀이니만큼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 정도만으로도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포와 죽음은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녀의 말을 전하지 않은 것도 있고, 설마 그 일 때문에 희망과 생명이 앓아누울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너무 중간에서 장난을 치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다. 자칫 형진의 눈밖에 나기라도 하면 본말전도 아니겠는가. 이미 공포와 죽음은 형진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였고, 그에게서 미움을 받는 일은 무엇보다도 두려운 일이다.
중국의 머리 위에 깔아놓은 신무기들을 살피던 형진은 잠시 쉬는 셈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희망과 생명의 방으로 향했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이 빨대를 꼽은 중요 고객중 하나이므로 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
똑똑똑.
문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지만, 희망과 생명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대답하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기척도 내고 싶지 않았지만 하필 이런 때 기침이 나와 버린다.
“콜록. 콜록.”
가급적 소리를 작게 내려고 했지만, 문밖에 서 있던 형진의 예민한 감각은 그 소리를 어렵지 않게 알아채 버렸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며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희망과 생명은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자신이 속옷차림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며, 사흘 넘게 목욕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오, 오지마!”
“네?”
“오지 말라고! 콜록. 콜록.”
다급하게 소리를 쳤지만, 뒤이어 흘러나온 기침 소리를 듣자 형진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방 안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옆에 앉았다.
“오, 오, 오지 말라니까.”
“잠시만요.”
이불 위로 눈만 살짝 내민 채 그렇게 말하는 희망과 생명의 이마 위에 형진은 손을 올렸다. 역시나 열이 느껴진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여신님이 아프다니.”
“나도… 아플 때 정도는 있는 법이야.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여신님의 일인데.”
“그건…”
“잠시만요.”
희망과 생명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밤의 권능 중에는 회복의 능력도 포함되어 있다. 형진은 그녀의 이마를 덮은 손을 통해 조심스럽게 회복의 힘을 사용했다.
“…”
커다란 그의 손을 통해 전해져 오는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회복의 힘에 희망과 생명은 어쩐지 마음이 뭉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열이 나고 어질거리던 느낌들이 봄 햇살에 드러난 눈송이들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몸의 아픔이 사라져가자, 그것에 가려져 있던 마음의 아픔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단 마음이 드러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눈물이 흘러나와 버린다.
“여신님?”
뒤늦게서야 이불로 가려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것을 알아챘다. 혹시라도 자신의 힘과 여신의 힘이 충돌을 일으켰다거나 다른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서 형진은 얼른 손을 떼려 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냥 이대로…”
“…”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형진은 일단 그녀의 뜻대로 계속 조심스럽게 회복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여신의 이마에 손을 올린 채 힘을 쓰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열은 가라앉아 버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아무래도 정상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여신의 모습에, 이마에서 손을 떼며 형진이 그렇게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희망과 생명은 자신이 바람 맞은 것이 고의로 저질러진 일이 아님을 이해했다. 만약 형진이 의도적으로 그를 바람맞힌 거라면, 이런 식의 질문은 나올 수가 없는 일이니까.
그가 요며칠 정신없이 바빴다는 건 여신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불러냈던 그날밤, 누군가가 별장에 침입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음에도 자신이 바람맞아 버린 그 일이 더 크게 사무쳤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마음이 아팠다.
“미안. 신경 쓰게 해서.”
아무래도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는지, 희망과 생명은 다시 이불 속으로 쏙 숨어든 채 그렇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희망과 생명은 그 말을 듣다가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밀폐된 공간 안에서 그와 단둘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속옷 하나 달랑 걸친 채, 얇은 이불 하나로 몸을 가리고.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부끄러움. 하지만 뒤이어 이것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을 깨닫자 희망과 생명의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으으으…”
스스로의 생각을 견디기 어려웠던 탓에 다시 그녀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나온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형진은 또다시 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 싶었다.
“여신님?”
형진이 다가 앉는 기척을 느낌과 동시에, 희망과 생명은 결단을 내렸다.
“자, 잠깐… 할 말이 있으니 귀좀…”
“네?”
이건 또 무슨 영문인가 싶었지만, 일단 그녀의 말대로 귀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렇게 귀를 가져다 대자, 얼굴이 붉게 익어버린 희망과 생명이 머리까지 덮어 쓰고 있던 이불을 확 끌어내리더니, 다짜고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입을 맞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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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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