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07
00607 138. 전격전 =========================
“읏?”
갑자기 팔을 뻗어 목을 끌어안으려 하는 희망과 생명의 모습에 형진은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동체 시력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어서, 이런 와중에도 필사적인 희망과 생명의 모습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던, 촉촉하게 젖은 눈시울을 질끈 감았다. 홍시처럼 영글어 버린 볼은 그녀의 부끄러움을 대변하듯 붉게 물들어 있었고, 도톰하고 아름다운 입술은 마치 붕어의 그것처럼 내밀어진 모습으로 돌격을 시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웃기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필사적인 그녀의 심정이 절절하게 배어나오는 그런 모습이랄까.
그럴 마음이 있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진이 잠시 멈칫하며 그대로 그녀의 행동을 받아들여 버린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딱!
얼마나 필사적으로 돌격을 시도했는지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 와야 할 접촉이 추돌 사고로 이어졌다. 이빨끼리 부딪히는 소음과 함께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의 고통이 이어졌지만, 희망과 생명은 꾹 눌러 참고 계속해서 돌진을 시도했다.
“…”
뭔가 참. 이걸 뭐라고 해야할지. 필사적인 희망과 생명과는 달리 형진으로서는 아등바등하며 자신에게 키스를 밀어붙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난처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기는 했어도 벌써 그가 맞이한 부인이 몇이던가. 다소 보수적인 사고를 지닌 한국인이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 정도는 이제 그에게 있어 일반적인 스킨십이나 다름없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조금은 침착하게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형진과는 달리, 희망과 생명은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머리가 어질거리는 극단적인 반응을 경험하고 있었다. 사실 명색이 여배우인데 키스신 정도야 이미 경험해 보고도 남았다. 물론 베드신이나 농염한 러브신까지 찍은 일은 없다지만, 미국에서 배우 생활을 했는데 그 정도 스킨십의 연출 정도는 당연히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그녀가 찍었던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도 더 자극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작해야 입술이라는 이름의, 일반적인 피부와는 달리 외부로 살짝 드러난 점막까리의 접촉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생명은 전신의 피가 모조리 폭발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마저 경험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흘 넘게 침대에 처박혀 끙끙 앓던 사람에게 이런 식의 갑작스런 혈압 상승은 별로 좋지 못한 일이다. 아니, 건강한 사람이라도 갑자기 이런 식으로 폭발할 듯한 심박수의 증가와 그에 따른 급격한 혈압의 상승을 경험하면 자칫 골로 가기 쉽다.
여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아바타는 일반적인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견고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런 위험한 반응에 대한 자체적인 조기 경보 시스템의 작동 또한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으…”
결국 견디다 못한 희망과 생명은 눈이 팽팽 돌아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현기증을 일으키며 이 장렬한 돌격의 끝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여신님?”
갑자기 헤롱거리며 늘어져 버리는 희망과 생명의 모습에 형진은 얼른 그녀의 몸을 안았다. 현기증 때문에 끌어안고 있던 그의 목을 놓아버렸던 희망과 생명은 이내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시 그대로 굳어버렸다.
비로소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저질러 버렸는지 이해했다. 명색이 여신이라는 존재가 이런 저런 말도 않은 채 느닷없이 남자의 입술을 강탈해 버린 것이다.
“으… 으으…”
그렇지 않아도 새빨갛게 익어버린 그녀의 얼굴은, 이제 정말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형진은 그런 여신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정하십시오. 괜찮습니다.”
괜찮다니. 뭐가 괜찮은데. 진정하라니. 뭘 진정하라는 거냐고.
터질듯한 심장의 고동이 머리로 치고 올라와 북을 치듯이 쾅쾅 울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희망과 생명은 자신의 속옷 차림이 그대로 형진의 시야에 들어와 버렸다는 사실과, 사흘 동안 씻지도 못했다는 사실 역시 떠올렸다.
이 상황에 그런 거나 떠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함과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이 나쁜 놈을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라는 외침이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서 복고풍의 신파극에서나 흘러나올 법한 느낌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인데 좀 씻고 예쁘게 꾸민 상태에서 마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과 그런 식으로 여유를 부렸다가 이 망할 변태놈이 그새를 못참고 또 어디론가 가버린다든가 하는 일이 벌어지면 어쩔 거냐는 힐난이 마음 속에서 3차대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열띤 싸움을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이 심장에서 치고 올라온 고동 소리로 인해 쾅쾅 울리는 와중에, 그렇게 사고마저 혼란스러운 지경에 처하자 희망과 생명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 처하고 말았다.
“여신님?”
다시금 희망과 생명의 눈이 팽팽 돌아가며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 되자, 형진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뺨에 손을 가져갔다.
머리에 잔뜩 피가 몰려서 그런가. 갑자기 조금 차가운 그의 손이 뺨에 와닿자 희망과 생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망설일 때가 아니다. 체면 차릴 때가 아니다. 감기에 걸린 것도 따지고 보면 공연히 기회를 잡네 분위기를 만드네 하는 식으로 여유를 부리다가 벌어진 일이 아닌가.
그렇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돌격해서 쟁취한다. 적어도 엘피스 리페 에스페란토의 방식은 그것이다. 그런 용맹과감한 저돌적인 성격이 헐리웃의 여신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내었다.
뺨에 자신의 손이 닿는 순간,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던 여신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형진은 안도할 틈도 없이 그녀의 눈빛에 서린 어떤 강한 의지와 집념, 그리고 결단을 알아챘다.
“왁!”
미처 그 눈빛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갑자기 맹수와 같은 모습으로 손을 뻗어 자신을 침대로 끌어당기는 그녀의 힘에 형진은 크게 놀랐다. 지금까지 도대체 어디에 그런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희망과 생명은 마치 이종격투기 선수라도 된 것처럼 목을 확 끌어당겨 침대에 눕히더니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곧바로 마운트 자세를 취한다.
“여신님?”
“조용.”
아까 키스를 시도하다가 입 안이 살짝 찢어졌는지, 그녀의 입술 사이로 살짝 피가 배어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형진은 방금 전까지 비 맞은 사슴처럼 와들와들 떨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흉폭한 암사자 같은 모습으로 돌변하자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떡 삼키고 말았다.
“헉!”
하지만 희망과 생명의 행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악스런 손길로 형진의 웃옷을 움켜잡더니 그것을 그대로 확 잡아 뜯어 버린다.
“여, 여신님?”
뭔가 다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녀의 몸에서는 엄청난 힘과 기백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물론 얼굴은 여전히 붉어진 채였고 닿아있는 몸 역시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기백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희망과 생명이라고는 차마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제서야 형진은 깨달았다. 이 여신이 단순한 신의 힘만으로 따지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존재라는 사실을.
“자, 잠깐… 이러지 말고 잠깐 진정하시고 일단 말로… 웁!”
형진은 주특기인 말빨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 보려 했지만, 이미 되돌아 건널 다리 따위 단숨에 해일과 폭풍우로 밀어버리고 교각을 이루던 돌기둥마저 모조리 쓸어버린 채 배수의 진을 친 희망과 생명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시도에 불과했다.
더 이상 말할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희망과 생명은 다시 한 번 거칠게 키스를 시도했다. 어지간한 존재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으스러져 형체가 남지 않을 것 같은 우악스런 힘으로 그의 몸을 꽉 끌어안은 채 자신의 입술을 형진에게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형진은 실로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일단 키스는 받아들였지만, 지금 이 여신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매우 명확해 보였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차지하고 말겠다는 의도가 너무나 명확해서 굳이 물어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다. 그 절박함이 너무나 사무쳐서, 차마 거절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라고나 할까.
형진도 바보가 아닌 이상, 희망과 생명이 자신에게 간간히 호감을 표출하고 있는 상황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공포와 죽음이라는 반려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전해 듣고 이제야 감추는 것 없이 제대로 마음을 주고받는 과정을 이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도 엘리시온에서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행복감에 젖어 있는 상황에서 다른 여신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그건 둘 모두에게 실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로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참이나 그렇게 형진에게 격렬한 입맞춤을 가하던 희망과 생명은 슬쩍 몸을 일으키더니 등 뒤로 손을 뻗어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고는 그것을 벗어 옆으로 집어 던졌다. 그나마 걸치고 있던 속옷이 그런 식으로 사라져 버리자 풍만하면서도 매혹적인, 실로 모성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아름다운 가슴이 출렁거리는 움직임과 함께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도망… 치지마.”
“…”
형진은 눈앞에 드러난 아름다운 육체를 보고, 확고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가 완전히 마음을 굳혔음을 이해했다.
이제 공은 그에게로 넘어왔다.
그녀를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거부하고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날 것인지.
아무리 희망과 생명이 강력한 힘을 지닌 여신이라 해도, 그가 완강하게 거부한다면 무작정 자신의 의지를 강요할 수단은 그리 많지 않다.
여신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이다.
형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신은 이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속옷으로 손을 뻗었다. 최후의 보루처럼 남겨져 있던 그 신성한 천조각에 여신의 손이 닿으려는 바로 그 순간.
“정신 차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인물 하나가 희망과 생명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 갈긴다.
“컥!”
불의의 기습에 맥없이 뒤통수를 내주고만 희망과 생명의 머리가 홱 하고 앞으로 숙여진다. 놀란 희망과 생명이 얼른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어느 틈에 돌아왔는지 제랄딘이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너…”
희망과 생명은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었다. 제랄딘이 형진의 부인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신인 자신의 뒤통수를 이렇게 대놓고 후려갈길 위치냐 하면 그건 아니다. 게다가 방금 전 갑자기 등장한 것도 이상하다. 자신이 알기로는 그녀는 흑요호와 계약을 맺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기는 해도 그것이 능력의 전부인 집행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순간, 희망과 생명은 그 안에 깃든 힘을 알아보았다.
그 눈빛에 담긴 것은 정순하고도 강력한 신의 힘. 자신과 비견될 만한 힘을 지닌, 몇 안 되는 여신들 가운데 하나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힘.
자신이 유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강림을 한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이내 그것이 아님을 바로 이해해 버렸다. 이것은 그런 식의 간접적인 접촉과는 다르다. 완전히 자신의 소유인 아바타를 통한 현신이 아니고서는 드러낼 수 없는 그런 힘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너… 설마… 공포와 죽음?”
희망과 생명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으로, 실제로도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좀 더 심정적인 의미를 담아 그렇게 눈앞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제랄딘을 향해 말했다.
스스로 말해 놓고도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싶었다. 유아의 몸 안에서, 그리고 아바타를 통해 밖으로 나오고서도 계속 옆에서 지켜봤던 인물 가운데 하나가 제랄딘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사실은 그녀가 공포와 죽음의 아바타였다는 사실에 직면해 버렸으니 얼마나 크게 놀라버렸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깨닫자, 뒤이어 이전의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특히나 허세와 망상에게서 형진의 애를 낳으라는 둥 마음을 사로잡으라는 둥 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공포와 죽음이 심드렁한 태도를 보였던 일이 특히나 확연하게 떠올라 버린다.
“너… 너… 그래서…”
그래서 그렇게 태연했던 건가. 이미 그의 옆 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해 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미, 그와 맺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이건 아니지. 조용히 하고 일단 옷부터 입어. 할 얘기가 많으니까.”
제랄딘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브래지어를 집어 희망과 생명에게 건네주며 그렇게 말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