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08
00608 138. 전격전 =========================
공포와 죽음이 자신의 존재를 숨겼던 것과는 별개로, 지금의 상황은 엄연히 반려가 있는 남자를 여신이 강제로 범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상대 역시 강력한 신격을 지닌 신이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아직 일이 치러진 것이 아니라고는 해도 어쨌든 맥락은 그런 식이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이건 아니라는 제랄딘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머리에 열이 올라 있을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희망과 생명은 휘청거리는 모습으로 형진에게서 일어나고는 뒤돌아 선 채 브래지어를 착용했다. 그리고 참담한 기분을 느끼며 곧바로 방을 빠져 나가려 했지만, 제랄딘이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어딜 가려고.”
희망과 생명은 입술을 깨문 채 제랄딘을 돌아보며 답했다.
“놔줘.”
“왜?”
“그 정도 하면 됐잖아. 더 이상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말고 놔달라고!”
“쯧…”
제랄딘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를 빽 지르는 희망과 생명의 모습에 짧게 혀를 차고는 다시 말했다.
“난 네가 진과 맺어지는 것에 대해 딱히 반대할 생각이 없어.”
“뭐?”
예상치 못했던, 실로 무지막지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희망과 생명의 완력에 의해 찢겨진 셔츠 자락을 여미며 자리에 일어서던 형진마저 그 말에는 놀라버렸다. 물론 코앞에서 그 말을 들은 희망과 생명도 마찬가지.
“반대할 생각이… 없다고?”
“그래. 애초에 난 그런 걸 간섭할 수 있는 입장 자체가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허세와 망상이 아이 얘기를 꺼냈을 때, 희망과 생명이 나서는 것을 보고서도 공포와 죽음은 딱히 반대의 입장 같은 걸 보이지 않았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순히 자신감 같은 것의 표출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딱히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았겠지.”
“그거야… 그렇지만.”
그 말에는 형진마저 찔끔 해버리고 말았다. 확실히 지금의 그는 농담으로라도 여자관계가 깔끔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니까.
“이제 와서 여신 하나쯤 그의 곁에 달라붙는다고 해서 그걸 반대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야.”
“하지만…”
희망과 생명은 그 말에 반박하려다가 형진의 시선을 느끼고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하려던 말은 별게 아니다. 지금까지 형진과 함께 했던 이들은 사실 신적인 존재와는 거리가 있는 인간이나 그 외 다른 종족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공포와 죽음, 그리고 희망과 생명은 여신이다. 그럴 의지만 있다면, 영원히 그의 옆을 지킬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의미다. 그 지위는 물론이고 능력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형진과 함께 했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당사자인 형진 앞에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애초에 형진이 그녀들을 사랑한 것 자체가 능력이나 지위 같은 것으로 결정된 것이 아닌 이상, 이런 말을 입에 담았다가는 극한 반감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아직 제대로 맺어지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런 식의 말을 입에 담았다가는 그야말로 자기 발등을 찍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은 제랄딘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방금 이렇게 말했다. 여신 하나쯤은 이라고.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그의 옆에 서는 순간 지위니 신분이니 능력 같은 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희망과 생명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럼… 왜 방해한 거야.”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 돌아온다.
“네가 강제로 그를 범하려 했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희망과 생명은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그 점에 있어서는 실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니까.
“합의하에 마음이 통해서 이루어지는 관계라면 나 아닌 누구라도 그를 방해할 수 없어.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나는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설 수밖에 없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게 말하고는 희망과 생명의 팔을 잡아 끈다.
“일단 씻어. 그리고 다시 제대로 얘기를 해. 이런 꼴로 첫날밤을 보내고 싶은 거야?”
“무, 물론 아니야. 절대로.”
“따라와. 도와 줄 테니까.”
그렇게 둘이 욕실로 들어가 버리자 형진은 어쩐지 뭔가 따돌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버렸다. 자신에게는 딱히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가 버린 탓이다.
“어쩔 셈이야.”
“뭘?”
당연한 얘기지만 그때 둘의 본신은 엘리시온에서 서로의 몸을 감싸 안은 채 그 안에서만 즐길 수 있는 평온이라는 감각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로 그녀를 받아들이라고?”
“흐음… 난 그저 제대로 얘기를 나눠보라고 했을 뿐인데. 그럴 마음이 역시 있긴 하다는 뜻?”
공포와 죽음은 눈을 살짝 흘기고는 그의 가슴을 꼬집었다.
“아얏.”
“그럴 입장이 아니라고는 해도, 나 역시 질투 정도는 한다고.”
“질투는 그렇다 쳐도, 그럴 입장이 아니라는 건 좀 그런데.”
자신의 말을 뒤집어 답하는 형진의 말에 공포와 죽음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드러난 그의 가슴에 입을 맞추며 다시 말했다.
“사실 강제니 뭐니 하는 건 핑계였는지도 몰라.”
“정말?”
“정말.”
형진은 몸을 뒤집어 공포와 죽음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했다. 공포와 죽음은 자신을 내려다 보는 그를 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또? 게다가 지금?”
“뭔가 문제라도?”
“좀 쉬는 편이 낫지 않나 싶어서.”
“당신을 보니 그럴 수가 없게 되버리는 걸.”
“못 말려.”
형진은 곧바로 엘리시온배 부부 레슬링대회 자유형 제39차전을 시작하려 하다가 그대로 우뚝 멈춰 버렸다.
“왜?”
갑자기 그의 행동이 우뚝 멈춰 버리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의문어린 표정을 짓는다.
“하필 이럴 때…”
형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공포와 죽음은 그곳에 드러난 영상을 통해 그가 행동을 멈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 측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미라지 코어는 우주 조약을 위반 했다.
-우주 조약에 따라,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궤도상에 핵무기를 포함한 기타 모든 종류의 대량 살상 무기를 배치할 수 없다.
-당 조약의 제6조는 비정부 주체에 대해 당사국의 국가적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조약 당사국으로서 미라지 코어의 행동을 제어할 책임과 의무를 지닌다.
-당 조약의 제12조에 따라, 천체상의 모든 배치소, 시설, 장비 및 우주선은 호혜주의 원칙에 따라 본 조약의 다른 당사국 대표에게 개방되어야 한다.
형진은 우선 북한군에 대한 얘기를 언급할 거라 생각했지만, 중국 정부는 그것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대신, 자국의 머리 위에 배치되기 시작한 미라지 코어의 무기들에 대한 비난을 시작했다.
“우주 조약?”
“음… 나도 미처 몰랐는데, 이런 게 있었나보네. 잠깐만.”
형진은 곧바로 새로운 아바타를 하나 꺼내서 요안나에게 보냈고, 곧이어 그녀를 통해 자세한 내용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우주 조약이라는 것 때문에 궤도 폭격이나 우주 전함 같은 개념은 일단 국제법상으로 위법이란 얘기가 되는 건가.”
“네. 물론 이건 핵무기 확산조약과 마찬가지로 강대국이 자신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요.”
“흠…”
실제로 미국은 스타워즈 계획을 수립한 적이 있고, 지금 미라지 코어를 비난하고 있는 중국 역시 신의 지팡이라는 이름의 대량 파괴 무기 관련 기반 기술을 연구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 왔다. 구 소련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고. 그야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전에야 어찌 되었든, 현재 미라지 코어가 궤도상에 무기들을 집결시키는 상황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들도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 지금까지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던 중국이 이때다 하는 식으로 여론 공세를 시작한 건, 결국 이런 명분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행동인 셈이다.
“그대로 밀어붙여도 딱히 우리의 행동을 제어할 방법은 사실 없어요. 궤도상의 인공위성을 요격하기 위한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그건 지금까지의 위성을 요격하기 위한 것이라 미라지 코어의 무기들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거나 다름없죠. 다만 핵을 사용한다면 문제가 커지겠지만요.”
실제로 러시아는 2015년에 위성 요격 미사일 누돌(Nudol)의 발사 실험에 성공한 전례가 있고, 중국 역시 둥펑 탄도 미사일로 자국의 극궤도 기상 위성에 대한 요격 실험에 성공한 예가 있다. 미국이야 말하면 입 아프다.
하지만 이런 무기들은 기본적으로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기존 인공위성들을 파괴하기 위한 수단이라서 미라지 코어가 사용하는 병기들이 지닌 방어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이 요격 시스템들이 기본적으로 탄도미사일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 핵탄두 같은 걸 이용하면 어떻게 가능하지 않을까 싶긴 해도, 그런 식으로 핵을 운용했다가는 당장 자국의 전자 기기들이 대량의 EMP를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핵 같은 걸 쓸 정도라면 이미 그런 걸 감안하고 말고 할 상황조차 아닐 것이고, 궤도상에 배치된 미라지 코어의 전력이 그런 게 날아오는 걸 뻔히 지켜본다는 전제하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어차피 의미 없는 얘기.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생쥐가 발악을 할 때 가능성 따져서 하던가. 일단 저질러 놓고 만에 하나라도 성공하기를 바라는 식이지.
“다른 나라들은?”
“조심스럽게 우려의 입장을 표하는 정도에요. 중국이 이런 식으로 미라지 코어에 굴복하고 나면, 이후에는 자신들의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흥.”
그들로서는 그럴 법 하다 싶긴 해도, 한편으로는 귀찮은데 다 때려 치고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갈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미 기반이 될 만한 다른 행성들을 발견했고, 어차피 거짓된 천국만 있으면 당장 필요로 하는 물자의 생산 정도는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형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귀찮다고 그런 식으로 밀어내기 시작하면 결국 허세와 망상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이미 세계는 그로 인해 변혁을 시작한 상황. 언젠가 지구에서 손을 떼는 날이 오더라도, 최소한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납득을 시켜야 한다는 얘긴가.”
이대로 힘으로 눌러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들 역시 잠재적인 적대 세력이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어쨌든 우주 조약은 지구상의 국가들이 그렇게 하자고 정한 약속이니만큼, 최소한 그것을 어기는 이유 정도는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납득을 시키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쉽지 않을 거에요.”
결국은 그에 상응하는 이득을 제시하든가 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 듯 했지만, 형진은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그 말에 답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있나.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간단한 방법이요?”
요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자, 형진은 손바닥을 내밀고는 그곳에 하나의 영상을 띄워서 보여 주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요안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 그거라면 확실히…”
“그렇지?”
“네.”
곧바로 미라지 코어는 긴급 기자 회견을 준비했고, 형진은 다시 한 번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궤도 상에 배치된 미라지 코어의 여러 장비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큰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그것이 왜 지금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곧바로 플래시가 연이어 터지는 가운데, 형진의 뒤쪽에 영상 하나가 나타났다. 검은 바탕에 별이 가득 떠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우주의 모습이다.
“지금 보시는 것은 지구와 화성 사이의 빈 공간입니다. 정확한 좌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측의 비난에 이어 긴급 기자 회견을 가지길래 그에 관한 입장 발표 같은 것이나 별장 습격 사건 등에 대한 내용 같은 것이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엉뚱한 우주의 모습과 좌표를 공개하자 취재하는 기자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실황으로 지켜보는 사람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형진은 잠시 방송을 통해 해당 좌표가 각국의 정보망에 제대로 전달되기를 기다린 후, 그곳에 하나의 물체를 출현시켰다.
갑자기 공간이 열리며 그곳으로부터 거대한 천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죽어버린 심해의 생물체처럼 하얗게 탈색되어 버린 그 천체는 기존에 어떤 지구인들도 본 적이 없는 기괴한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저희가 CG 같은 걸로 조작한 영상이 아닙니다. 방금 알려드린 좌표를 확인해 보시면 알겠죠. 좀 더 지구 가까이로 옮겨볼까도 했습니다만, 워낙 질량이 큰 물체이다보니 자칫 큰 위험이 될 수도 있는터라 일단 적당한 장소로 옮겼습니다.”
“저게… 뭡니까?”
떨리는 음성으로 기자 가운데 하나가 묻자, 형진은 짤막하게 답했다.
“다른 우주에 존재하던 생명체의 사체입니다. 저희는 저것을 가리켜 별을 먹는 괴수, 티폰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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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