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09
00609 138. 전격전 =========================
다른 우주에 존재하던 생명체!
그 말이 형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세계는 다시 한 번 들끓었다.
그것은 기자회견이 벌어지고 있는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시 패닉 상태에 빠져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리던 기자들이었지만, 이내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외계인? 외계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다급한 어떤 기자의 외침에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글쎄요. 아무리 봐도 인간과 유사한 종류라고는 보기 어렵지 않을까요.”
형진이 그렇게 답변을 하자, 다른 기자들도 일제히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CG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만, 미라지 코어의 기술력이라면 허상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조만간 여러 나라의 전문가들과 일반인을 초빙해 탐사단을 꾸리도록 하겠습니다.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CG인지 실물인지 확인할 수 있겠죠.”
“저것은 어디에서 발견한 겁니까?”
“그 부분은 보안 사항이라 이곳에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방금 전 저 물체가 출현할 때 사용된 방법은, 설마 워프입니까?”
“그것 또한 현재로서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위성 궤도 상에 배치된 무기들은 저것을 상대하기 위한 겁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긴 설명이 필요합니다. 잠시 진정하시고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을 경청해 주십시오.”
흥분의 도가니로 변해버린 기자 회견장을 바라보며 짤막하게 답변을 이어가던 형진은, 단상에서 물러나 뒤쪽에 자리 잡은 티폰의 영상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 이 영상으로는 구체적인 크기를 알기가 어렵겠지만, 이 거대한 존재의 실질적인 크기를 태양계의 행성과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형진이 손을 뻗어 티폰을 가리키자, 주위에 태양계 내의 천체들의 영상이 나타난다. 지구, 금성, 수성, 화성, 그리고 달이다.
“보시는 바와 같이, 티폰의 지름은 달의 약 3분의 2 수준입니다. 태양계 내에서 비슷한 크기의 천체를 찾는다면… 얼마 전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린 카이퍼 벨트의 왜행성이며, 식별번호 134340번 천체인 명왕성 정도가 비슷하겠군요.”
“세상에…”
명왕성이 비록 행성의 지위를 잃어 버렸다고는 하지만, 카이퍼 벨트 상에 존재하는 왜행성들 가운데 가장 큰 천체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행성급의 크기를 가진 생명체라니,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다는 말인가.
“이 정도 크기의 존재라면 행성 주위에 출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재앙을 초래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녀석이 단순히 우주를 유랑하는 정도를 넘어, 주위의 행성을 잡아먹는 포식자라는 점이죠. 실제로 이 녀석이 발견된 지점 근처에서는 단 하나의 소행성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이 녀석이 잡아먹은 탓입니다.”
형진은 주위에 늘어놓았던 여러 행성의 영상들을 지워버린 후, 이번에는 살아 있을 당시 티폰의 모습을 재구성해서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지금 여러분에게 공개한 모습은 티폰이 생존해 있을 때의 모습입니다. 이 거대한 괴수의 가장 두려운 점은, 일반적인 무기로는 파괴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압도적인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끊임없이 재생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세한 부분은 직접 탐사를 해보시면 밝혀질 일입니다만, 현존하는 어떤 인류의 무기로도 이 녀석을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핵무기도 포함해서 말입니까?”
“포함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실 핵무기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분명히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단숨에 행성급의 천체를 박살낼 수 있는 수준이냐면 그건 아니다.
벙커 버스터 같은 특별한 기술을 추가해서 내부로부터의 폭발을 일으킨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지름만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천체를 중심부까지 관통시켜 핵무기를 내부에 주입할 수 있는 수단이 인류에게 있을 리 없다.
즉, 핵무기를 써도 겉껍질만 좀 태워먹고 마는 수준이고, 그나마도 티폰이라면 재생력으로 금방 수복해 버릴 수 있으니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어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표면에 착륙해서 드릴로 뚫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심대한 위협에 대해 미라지 코어는 두 가지 대책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형진은 다시 단상에 올라 말을 이었다.
“첫째는 인류의 생활권 자체를 확대해서 설령 이 거대한 재앙이 지구를 덮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인류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달에 대한 테라포밍은 그것을 위한 시험 무대가 되는 셈이고, 이미 그 계획은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을 통해 구체화되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을 끝마치자 형진은 한 손을 들어 올렸고, 다시 그의 뒤쪽에는 거대한 구조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괴물이 나타나서 우리의 고향을 먹어치우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구상한 또 다른 수단이 바로 이 무기들입니다. 구체적인 스펙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이 무기들이라면 최소한 저 거대한 재앙들의 발을 묶어두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형진의 말대로 현재 중국의 머리 위에 놓여져 있는 무기들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바로 티폰의 발을 묶어두는 것에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티폰 정도의 규모를 가진 적이라면 일반적인 무기로는 파괴 자체가 힘들다. 게다가 그 정도의 적을 단숨에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의 병기라는 얘기는 바꿔 말하자면 일반적인 행성도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의 병기란 뜻이 된다. 그런 무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직 지구조차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인류에게는 너무 큰 위협이라고나 할까.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언론 플레이의 가장 간단한 방법이고, 또한 가장 흔히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정치적인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묘하게 톱스타의 스캔들이나 마약 사건 등이 터지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번에 미라지 코어가 터트린 이슈는 그런 소소하고 시시껄렁한 이슈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었다.
곧바로 탐사단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고, 중국이 시도하려 했던 언론 플레이는 순식간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티폰의 공개는 인류에게 있어 그만큼 커다란 이슈였다.
“탐사단의 선별은 어떻게 할까요.”
요안나의 물음에 형진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너무 적어도 곤란하겠지. 전문가, 기자단, 일반인 합쳐서 이백 명 정도로 끊어봐.”
지금 상태에서 이백 명의 탐사단은 너무나도 적게 느껴지는 숫자다. 하지만 지금까지 백 명 이상이 동시에 우주로 나선 일 자체가 ‘하늘’호의 항해 뿐이었음을 고려하면 이것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정치인이나 외교관은 제외하는 건가요?”
“굳이 포함시킬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다면 전문가쪽에 자기들이 알아서 끼워 넣겠지.”
곧바로 탐사단에 대한 모집 공고가 이루어지고 각국에 인원이 할당되었다. 몇몇 나라들에서 인구나 기술력 등을 전제로 인원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식의 이의를 제기했지만 형진은 가볍게 씹어 버렸고, 또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국가인 중국의 참여도 배제되어 버렸다.
이렇게 중국이 탐사단 선정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자, 당장 그들 내부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이런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중국에 미래는 없다.”
누구에게서 먼저 언급된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우주로의 생활권을 넓히는 과정에서 중국은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고, 또한 그 과정에 참여할 수도 없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미래를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과연 이 일이 어떤 식의 후폭풍을 가지고 올까. 그것은 이 모든 사태를 촉발시킨 이로써는 꽤 즐거운 구경 거리가 될 것이다.
“자,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기자 회견을 마친 형진은 요안나에게 탐사단의 구성과 그들의 활동을 지원해 주도록 지시를 내렸다.
“마, 많이 기다렸지?”
구체적인 지시가 끝나자 다시 별장으로 돌아와 느긋하게 세계 각국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데, 마침내 꽃단장을 마친 희망과 생명이 그제서야 제랄딘의 손에 이끌려 그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동안 씻지도 않은 채, 옷이라고는 속옷 하나 달랑 걸치고 있던 그녀가 맞나 싶을 정도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화사한 꽃이 방 안에 가득 피어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싶더니 상당히 공을 들인 모양이다. 역시나 헐리웃의 여신. 이렇게 꾸미고 나니 과연 여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름다우시네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말해 놓고도 스스로가 그 느끼함에 치를 떨어 버렸다. 제랄딘 역시 그게 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막상 그 말을 들은 당사자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역시 호구신. 아까 그 난리를 치고 나간 것이 거짓말 같이 느껴질 정도다.
“크흠. 일단 앉으시죠.”
“응.”
자리를 나눠 앉기는 했는데, 어쩐지 뭔가 엄청 서먹하다. 마치 선보러 나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형진은 일단 인벤토리에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일단 긴장도 풀어줄 겸 간단한 차와 과일 같은 것을 대접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토론이나 면담 등을 수행할 때, 그냥 아무 것도 없이 얘기만 나누는 것보다 뭔가를 먹는 쪽이 훨씬 대화의 분위기가 살아나고 상대의 호응을 얻기가 쉬워진다. 막강한 요리 실력을 지닌 형진은, 이미 이런 점에서 상대에게 한수 앞선 상태로 대화에 임하게 되는 셈이다.
잔뜩 긴장한 기색을 보이고 있던 희망과 생명이었지만, 형진이 타준 따끈한 차와 달콤한 과일 앞에서는 금새 전신에 두르고 있단 긴장의 갑옷을 벗고 무장 해제 상태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희망과 생명이 어떤 상태인지는 앞서의 일들로 충분히 확인한 상태. 사실 희망과 생명은 형진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일 자체가 없었다. 어찌 보면 앞서의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대화의 부재로부터 촉발된 사태라고 봐도 틀림이 없다.
“솔직히… 좀 의외였습니다.”
“그, 그랬나?”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굳이 저 같은 변태가 아니더라도 여신님이라면 달리 좋은 상대가 얼마든지 있을 텐데.”
“그게 가능했다면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겠지.”
“그런가요.”
하기야 감정이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 사람 마음대로 딱딱 나뉘고 조절되던가. 그것은 얼핏 전지전능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신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엘리시온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전지전능이란 말 자체가 의미 없는 것도 사실이고.
“그럼 전 이만.”
문득 차 한 잔을 비운 제랄딘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려고?”
“네. 쌍둥이들을 놔두고 와서요.”
“그랬지.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
“네.”
비록 인격이 통합되었다고는 하지만, 제랄딘으로 있을 때의 공포와 죽음은 그 역할에 충실한 상태였다. 대화는 물론이고 행동마저도. 희망과 생명은 그런 제랄딘의 모습이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되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일단 그렇게 제랄딘이 자리를 비우자, 방 안에는 둘 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색한 분위기가 둘 만 남게 되자 더 어색해지고 말았다.
말없이 찻잔만을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잔이 비어 버리고 말았다. 뭐라 말도 못하고 형진의 눈치만 살피며 애꿎은 찻잔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문득 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다가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자, 잠깐.”
“네?”
“뭘… 어쩌려고?”
“글쎄요. 어쩐지 이대로는 대화가 쉽게 이어질 것 같지가 않아서 말이죠. 그렇다고 아까 하던 일을 바로 이어서 하기도 그렇고.”
“…”
형진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몸을 씻고 단장을 할 때만 해도 이런 저런 할 얘기가 많았는데, 막상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그 모든 생각들이 깨끗하게 머리 속에서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새삼 자신이 이렇게 말주변이 없었나 싶을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 말도 못한 채 붉어진 얼굴로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는 희망과 생명의 모습에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인 형진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일단 키스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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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