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14
00614 139. 암투 =========================
탐사단에 지급된 장비는 형진이 사용하던 2세대 호버 보드를 개량한 것으로, 밴드 형태의 물품을 손목에 착용하면 비행 능력과 보호 능력이 부여되는 물품이다.
티폰의 사체는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해서, 일반적인 우주복 같은 걸 입은 상태에서는 자칫 날카로운 부분에 찢기거나 틈새에 빠져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단순히 상처 하나 나고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탐사단에 참여한 인원들이 손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죽어버릴 가능성마저 존재하므로, 이런 장비가 필요한 것이다.
“허… 이 작은 손목 밴드 하나로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미라지 코어의 기술은 도대체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얘기지.”
호버 보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그 충격이 얼마 가시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다음 세대의 물품이 이렇게 수백 개나 쏟아져 나왔다. 장비를 직접 착용해서 사용한 탐사단원들은 물론이고, 그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이들마저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 장비도 판매 예정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네? 어째서입니까.”
“당장 다른 곳에 수요가 발생해서 그곳의 물량을 맞추는데 집중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른 곳…”
프리츠가 말한 다른 곳이라는 말에, 각국 정부의 수뇌부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비행 능력과 보호 능력.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 이번 탐사와 같은 특수 목적을 제외하면 역시 가장 그 효용을 크게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군사 분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범선을 불과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몇 척이나 만들 정도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미라지 코어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 물량을 맞추는데 급급하다고 말하고 있다. 과연 이게 무슨 뜻일까.
“역시… 미라지 코어는 외우주에 이미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인지도.”
지하 상황실에서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각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에 대한 정복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 수도, 단순히 적대적인 환경에서의 탐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긴 과거 지구상에서도 죽음의 천사를 비롯한 수많은 정체 불명의 인물들이 독재자나 학살자들을 처벌했던 전례를 생각해 보면 이건 전혀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런 부분을 일체 드러내지 않고 있던 미라지 코어가 은연중에 그런 뉘앙스의 행동이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을 비롯한 각국 수뇌부들은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해야만 했다.
어쨌든 장비의 착용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 끝나자 프리츠는 다시 말했다.
“보시다시피, 티폰의 사체 주위에는 초소형의 인공위성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탐사가 진행 중인 동안에는 이 인공위성의 범위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이 점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탐사를 시작해 주십시오.”
그러자 탐사단 가운데 한명이 급히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자, 잠깐만요. 다른 장비는 없는 겁니까?”
“다른 장비라면?”
“산소 마스크라든가, 아무튼 그런 식의 생존을 위한 물품 말입니다.”
방금 나눠준 장비에 비행 능력과 보호 능력이 있다는 건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타고 있는 범선 바깥은 엄연히 진공에 가까운 우주. 그런 공간에 그냥 이대로 들어가서 탐사를 진행한단 말인가.
그 말을 들은 프리츠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필요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문자 그대로, 필요 없습니다. 티폰의 사체 주위에는 지금 여러분이 서 계시는 범선의 갑판과 마찬가지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온도나 유해 방사선, 호흡 가능한 대기, 모든 환경이 조성되어 사전에 면밀한 확인을 거쳤으므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 그럼 혹시 앞서 인공위성의 범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하신 것이…”
“맞습니다. 그 권역이 바로 생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 영역입니다.”
아무래도 그냥 말만으로는 믿지 않을 것 같아서, 프리츠는 직접 범선 밖으로 나가서 티폰의 겉껍데기에 해당하는 곳에 올라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몇몇 사람들은 다소 못 미더워 하는 느낌이었지만, 유일하게 일반인에 가까운 참가자인 기업가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살짝 흥분한 표정마저 지은 채 그의 뒤를 따랐다.
“정말이군.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이야.”
“아무런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도대체 어떤 원리인지…”
기업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곧장 수직으로 뛰어 올랐다.
“앗! 잠깐!”
함께 움직이던 사람이 기겁을 하고 그를 말리려 했지만, 기업가는 빠른 속도로 인공위성이 있는 위치까지 상승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대로 우주로 튕겨져 나가 버릴 것 같은 모습에 비명을 질렀지만, 기업가는 이내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에 튕기며 멈춰서고 말았다.
“과연. 나갈 수 없다는 건 이런 의미였나.”
손을 뻗어 봤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느껴진다. 기업가는 제법 명석한 사람이고 첨단 산업을 이끌어 가는 기수 중에 한 명이었지만, 도대체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이 어떤 원리를 통해 만들어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궁금증은 풀리셨습니까? 엘스크씨.”
“아, 죄송합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아닙니다. 저 역시 그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다른 분들이 보고 계시니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괜히 따라하는 사람이 생기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약간의 해프닝이 있기는 했지만, 범선 바깥의 외부 환경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탐사단들은 자신이 목표로 했던 일들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남아 있는 티폰의 사체에서 시료를 채취해 그것을 가지고 온 장비로 바로 분석하기 시작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형진이 이 녀석을 해치울 당시 벌어졌던 틈으로 들어가 그 내부 구조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 모든 상황은 몇 개의 인터넷 동영상 채널로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시료의 분석과정 같은 것마저도 일체의 편집 없이 모두 가정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으으음…”
이 모든 과정에서 소외된 중국 정부는 동영상들을 남김없이 녹화하고 그것을 분석하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방송되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비밀스러운 일들이 더 많을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특히나 티폰의 사체로부터 채취한 여러 가지 시료들이 이후에 어떤 형태로 활용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저 행성 규모의 생명체가 어떤 식으로 그 거대한 육체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골격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이루는 신체의 성분에 이루기까지 단순히 학문적 관심을 넘어 작은 티끌 하나마저도 문자 그대로 보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래도… 테라포밍을 완성하는데 수십 년은 걸릴 거라는 헛소리를 할 겁니까.”
“으음…”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저 거대한 사체에 우주복이나 기타 다른 생존 장비조차 없이 활동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적당한 수준의 물만 가져다 부어도 곧바로 식물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막말로 지금 당장 달을 저 영역으로 감싸고 충분한 양의 물만 가져다 들이 부은 다음 여기저기 나무만 가져다 심어놔도 테라포밍은 완성되는 거나 다름없다. 테라포밍은 지구화라는 의미도 지니지만, 한편으로는 지구에서처럼 인류가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의미도 가진다. 아니, 테라포밍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인류의 생활권을 임의로 조성한다는 것에 있다.
중국이 지금까지 미라지 코어에 대해 뻗댈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인가. 테라포밍은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을 내다 봐야 하는 장기적인 일. 하지만 사람은 결국 당장 먹고 사는 일이 급할 수 밖에 없으니, 이 열기가 식고 나면 결국 세계의 공장이며 최대의 소비 시장인 중국의 의도대로 일이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버티면 결국 이긴다는 논리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동영상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이고, 그들 가운데 테라포밍의 목적이나 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멀게만 생각했던 그 일이 이미 코앞에 다가와 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나마 중국의 뜻에 동조하던 자들 역시 그대로 등을 돌릴 것이 뻔하다. 더 이상 그들의 갑질에 동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끝장이군.”
주석은 이마를 감싸 쥔 채 그대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아찔하게 몰아치는 현기증을 더 이상 견딜 도리가 없는 탓이다.
“벌써 연락이 온 건가.”
열심히 아이 이름 짓는 일에 매진하고 있던 형진은 요안나가 가져온 서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만의 총통이 직접 작성한 친서와 제안서였다. 원하는 모든 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있으니, 자신들이 국가를 세우고 운영해 나갈 행성을 불하해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대만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바로 티벳과 신장 위구르 같은 중국내 소수 민족들이 다급하게 의사를 타진해 왔고, 한국처럼 좁은 땅에 과다한 인구가 몰려 있는 나라도 넌지시 의향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 테라포밍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도 재빨리 미라지 코어에 접촉을 시도했다.
“이야… 역시 사람이 많으니 일이 꽤 수월하네.”
자신이 국왕의 자리에 있는 엘 파르드만 해도 땅이 남아돌아서 문제인데, 이 지구는 워낙 많은 인구가 있다 보니 대충 한 나라만 떼어다 가져놔도 행성 하나는 충분히 개발하고도 남을 인력이 나와 버린다. 10세기의 인구가 약 3억 정도로 추산될 정도니까, 전혀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기계화 영농이라든가, 여러 가지로 땅을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많으니까 생산성 또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것에 문제가 없고, 아이를 낳아 기르기에 충분한 환경이 제공된다면, 인류는 다시 한 번 거대한 인구 폭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앞으로 백 년 동안은 실업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어.”
“그건 다행이네.”
물론 아무리 일이 많고 풍요로워도 일하기 싫은 놈은 놀고먹으려 들겠지만, 적어도 일이 없어서 노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무작정 인류의 생활권만 넓혀가는 것이 아니다. 행성의 환경을 유지하는 기반 기술은 물론이고, 티폰과 같은 외우주의 위협을 막아내고 퇴치할 수 있는 능력 또한 미라지 코어가 독점하고 있다. 지구의 인류가 그렇게 뻗어나가기 시작하면, 형진이 빨대를 꽂고 있는 신들의 영향력도 당연히 무한대로 확장될 터. 희망과 생명이 고작 타나토스라는 작은 행성에서 모은 신앙만으로도 최강의 신으로 군림했던 걸 생각하면, 파괴와 재생이 타락을 통해 아무리 큰 힘을 모은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쇼 미 더 머니. 물량 치트야 말로 전쟁에서 이기는 지름길이지.”
손 안에 지구의 영상을 띄워 놓고 큭큭거리며 마치 악의 조직 두목처럼 웃고 있자니,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희망과 생명이 공포와 죽음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거… 좀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뭐가?”
“저러다 번식이라든가, 발정이라든가, 그런 식의 신격을 얻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
“음… 그건 확실히 문제가.”
속닥거린다고는 해도 형진이 그걸 못 들을 이유가 없다.
“다 들리거든?”
“들으라고 한 소리거든? 자제 좀 하세요. 변태씨.”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핀잔을 주자, 형진은 음흉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오호라. 그런 소리를 해도 괜찮겠어?”
“뭐가?”
“말을 꺼낸 당사자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어? 그, 그건…”
희망과 생명은 당황하고 말았다. 자칫하다가는 신혼 며칠 만에 독수공방하게 생겼다.
“음, 난 별로 자제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해.”
공포와 죽음이 바로 배신해 버렸다. 아, 덧없는 여신들 사이의 우정이여. 하긴 애초에 이 둘에겐 딱히 우정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으니 상관없나.
“오, 그거 아주 좋네. 그럼 가실까요. 여신님.”
“기꺼이.”
형진이 일어나 공포와 죽음을 번쩍 안아 올려 침실로 갈 준비를 하자, 희망과 생명은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
“잠깐 뭐?”
“그러니까… 딱히 지금 당장 자제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해서…”
“킥.”
형진은 공포와 죽음을 한쪽 어깨에 올려 앉히더니, 희망과 생명 역시 한손으로 엉덩이를 받쳐서 그대로 자신의 어깨 위에 앉혔다. 신쯤 되니까 가능한, 그야말로 묘기에 가까운 행동이다.
“요안나. 당신도 와.”
“저도요? 아니, 저는…”
“어서.”
“네…”
요안나는 여신들 사이에 자신이 껴도 되나 싶은 표정이었지만, 형진의 말에 못 이긴 척 따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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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시원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