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13
00613 139. 암투 =========================
마침내 출발일이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이백 명의 탐사단은 실리콘 밸리의 미라지 코어 지사에 모여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 탐사는 그냥 어디 놀러가는 식의 일이 아닌 관계로 각국의 탐사단들은 저마다 그에 걸맞은 장비들을 지참하고 있는 상태였다. 방사능을 측정하는 가이거 계수기라든가, 휴대형 DNA 분석기 등 자기 전문 분야의 연구에 필요한 장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건… 꽤 크군요?”
“죄, 죄송합니다.”
대부분은 간단하게 휴대할 수 있는 장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독일측 탐사단이 가져온 전자현미분석기 같은 것도 바로 그런 장비 중 하나이다.
전자현미분석기는 전자현미경과 비슷하게 미크론 단위의 전자빔을 시료에 발사해서 성분을 분석하는 장비다. 주로 활용되는 분야는 광물 분석 등으로서, 독일 측은 아무래도 이번 탐사에서 티폰의 사체가 어떤 재질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필 생각인 듯 하다.
장비 자체가 꽤 부피가 큰 관계로, 혹시 거부당하면 어쩌나 하며 안절부절하는 기색이었지만, 소지 물품을 확인하는 미라지 코어의 직원은 장비 내부에 무기 같은 위험한 물건을 숨기지는 않았는지 정도만 살피고 물러가 버렸다.
“괜찮은 건가?”
“그런가 본데.”
탐사단의 다른 인원들 중에도 부피가 큰 분석 장치 같은 것을 가지고 온 이들이 많았지만, 딱히 그런 식의 물품 소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한을 가하거나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식이라 탐사단의 인원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미라지 코어에서 처음에 인원을 할당할 때는 각국에 일반인도 포함시키기를 권했지만, 이번 같은 중요한 일에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관광객들로 자기 몫의 인원을 채울 나라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 가까운 사람이 세계적인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일 정도다.
“아무래도 짐을 나눌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괜한 부탁을 드렸나 봅니다.”
“별 말씀을요. 이렇게 열성적인 연구자들 사이에 저 같은 한량이 끼어드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 아니겠습니까.”
“한량이라뇨. 하하. 무슨 말씀을.”
옆에 선 천문학자와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세계에서 우주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미국의 재벌 가운데 한명이다. 사실 그는 독자적으로 우주 탐사를 위한 기업을 운영하던 중이었고, 부양선을 비롯한 미라지 코어의 여러 가지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한량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렇게 회사가 쫄딱 망해 버린 것에 대한 블랙 유머인 셈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가져온 짐들을 점검받고 나서 잠시 기다리자, 이내 하늘로부터 하나의 선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순백의 범선들이다.
“하나, 둘… 일곱이나 되는 건가.”
사람들은 일곱이나 되는 범선들이 실리콘 밸리 상공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모습을 홀린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미라지 코어는 인류의 시야가 닿지 않는 어딘가에 자신들만의 생산 공장을 갖추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스스로를 한량이라고 표현한 기업가는 하늘에 떠 있는 범선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매혹된 채 작게 탄식했다.
“정말 대단하군. 이 모든 걸 생각하고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만나고 싶어져.”
하지만 막상 그 모든 것의 주인은 엉뚱한 일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으으음… 역시 어려운 걸.”
“그러게 진작 좀 하지 그랬어.”
“알다시피 워낙 급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거야… 그렇지만.”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들 이름 때문이다. 일곱 쌍둥이 때도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겨우 이름을 지었는데, 하엘의 다섯 쌍둥이들은 최소한의 여유조차 없이 느닷없이 태어나 버리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이름이 없는 상태다.
좀 상황이 여유로웠다면 이름 짓는 일에 신경을 좀 더 썼을지도 모르지만, 그 뒤로 파괴와 재생이라든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하엘이 낳은 다섯 아이들은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닌 태명 비슷한 것으로 불리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흑요호들이 아기 때의 이름을 대충 부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쑥쑥이 열심이가 뭐야.”
“끙… 반성하고 있다고.”
갑자기 아이들 이름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희망과 생명 때문이다. 그나마 공포와 죽음의 영향력이 미약한 형진의 반려 가운데, 다소 소외된 느낌마저 있는 하엘을 자신에게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떠올린 것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 아이들 이름을 지어봐야 하엘이 딱히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원래부터 쑥쑥이니 열심이니 하는 이름도 하엘이 지어 부르는 이름일 정도니까. 원래 희망과 생명 자체가 좀 마이페이스인 느낌이 강한 여신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영 쓸데 없는 일은 아니다. 형진 본인으로서도 처음 미엘이 낳은 일곱 쌍둥이에 비해 하엘이 낳은 다섯 쌍둥이들에 대해서는 좀 관심이 부족했다고 자책하고 있던 참이라, 그런 여신의 지적에 이렇게 늦게나마 이름을 지으려고 끙끙 앓고 있는 중이다.
“언니들처럼 숫자를 따서 이름을 붙이는 것도 한계가 있어. 열 명까지야 그렇다 쳐도, 열한 번째부터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럼… 어쩌지?”
“차라리, 이 경우엔 엄마인 하엘의 이름에서 따오는 건 어떨까. 보니까 당신이 태어난 나라에는 돌림자라는 걸 쓰는 풍습이 있는 것 같던데.”
“하를 돌림자로 쓰는 건가.”
첫째 공주의 이름이 하늘이니까 굳이 그런 식으로 돌림자를 쓴다고 하면 앞글자보다는 뒷글자로 붙이는 편이 낫다.
탐사단의 탑승을 시작하기 전에 보고를 하러 들렸던 프리츠는 그렇게 끙끙거리며 고민을 하고 있는 형진의 모습에 빙그레 웃더니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보스도 참 고생이시군.”
어쩐지 자기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프리츠는 그렇게 한 번 더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갑판으로 나갔다.
실리콘 밸리 지사 부근에는 벌써부터 범선들을 촬영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직접 호버 보드에 탑승해서 카메라를 돌리는 이들도 있었고, 드론 같은 것을 띄운 이들도 있다. 개중에는 헬기를 이용해 촬영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호버 보드 탑승자와의 사고 위험성 때문에 비행 허가가 내려지지 않았다.
프리츠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 모든 이들의 카메라가 맹렬히 작동하며 세계에 그의 모습을 송출하기 시작한다. 별로 하는 것도 없이 이름만 너무 알려지는 것이 아닌가 싶어 좀 머쓱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처음부터 자신은 이런 역할을 위해 형진에게 포섭된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리며 천천히 사람들 앞으로 걸음을 옮긴다.
“반갑습니다. 미라지 코어의 프리츠 베커입니다.”
그가 인사를 하자 모여 있던 탐사단을 비롯해 멀찍이서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는 기자들까지 함께 박수를 보낸다.
“지금부터 탑승을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지정된 발판에 올라주시면 순차적으로 탑승이 진행됩니다. 질서 있게 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혹시라도 괜히 소란을 피우거나 했다가 탐사단에서 퇴출되기라도 하면 자신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손해인지라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그 말에 따랐다.
가지고 온 물품이 놓여진 발판 위에 올라서자, 그것들이 통째로 떠오르더니 범선의 외벽 일부가 열리며 선내로 곧바로 들어가 버린다. 커다란 장비들을 가지고 온 이들은 혹시라도 옮기는 와중에 파손이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다가, 그렇게 단숨에 자신들에게 배정된 실내로 옮겨지자 놀란 표정을 지어 버리고 말았다.
역시나 이번에도 한 척은 형진에게 배정되고 나머지 여섯 척에 이백 명의 탐사단이 나누어 탑승했다. 원래부터도 내부 공간이 넉넉한 데다, 가급적 함께 타기를 원하는 이들의 요구도 모두 들어주었기 때문에 탑승은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탐사단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과 장비가 배정된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사실상 배 하나를 통째로 장악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 물론 미라지 코어가 처음부터 그렇게 배정한 것은 아니고, 미국이 지닌 외교적 역량이 총동원된 결과이긴 하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각각 이십 명씩을 승선시킨 영국과 러시아다. 러시아는 그렇다 쳐도 영국은 조금 의외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것은 영연방이 오랜만에 하나로 힘을 합친 결과다.
탑승이 모두 끝나자,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프리츠는 자신을 촬영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정중하면서도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일곱 척의 범선들은 그대로 상승을 시작했다. 파란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일곱 척의 하얀색 범선들은 그 자체 만으로도 절로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다.
“대단하군…”
별다른 가속도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태로, 순식간에 멀어져 가는 지상의 모습에 탐사단은 절로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관성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극복한 것인지 당장이라도 달려가 프리츠의 멱살을 잡고 싶어하는 자들마저 있을 정도다.
“이제부터 고속 항해를 시작합니다. 원하신다면 갑판으로 나와서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보통 이런 식의 안내가 이루어질 때는 위험하니 자리에 앉으라던가 하는 식의 안내도 함께 덧붙여지기 마련이지만, 프리츠는 오히려 나와서 자유롭게 봐도 좋다는 식의 말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이 탐사단에 속한 이들은 그런 식으로 경고를 해도 어떻게든 자신이 겪고 있는 일들을 두 눈에 담기 위해 발버둥칠 연구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프리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탐사단의 인원들이 갑판으로 나왔고, 그들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지구의 모습을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도대체… 속도가 얼마나 되는 거야?”
“속도계 가지고 온 사람 있어?”
“글쎄… 휴대용 속도계로 측정이 되기는 할까.”
그렇게 시끌벅적 떠들어 대고 있는데, 문득 누군가가 외쳤다.
“저기! 저길 봐!”
“허엇!”
지구를 출발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어느 틈엔가 시야 저편에서 새로운 천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얗게 떠버린, 마치 심해에 가라앉은 생물의 시체와도 같은 하나의 천체가 조용히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다른 세계의 생물체인 티폰의 사체다.
꿀꺽.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탐사단들도 이번만큼은 입을 다문 채 자신들의 눈앞에 드러난 그 거대한 존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일전의 발표를 통해 대략적인 크기를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것이 눈앞에 드러나자 그대로 압도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이… 별을 먹는 괴수.”
행성급의 크기를 지닌 생명체라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애초에 저런 거대한 생명체가 자신이 지닌 질량에 짓눌리지 않고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가 지구인의 상식으로는 미스테리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티폰 주위를 감싸고 있는 작은 물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것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열이 되어 있었다.
“저건… 뭐지?”
“글쎄. 위성인가?”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몇몇이 열심히 영상을 송출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연구자인 동시에, 이번 탐사단의 일을 세계에 알리는 리포터의 역할도 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렇게 티폰의 구체적인 규모가 직접 시야에 들어오자, 이제나 저제나 하며 텔레비전 앞에 모여들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그 압도적인 규모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티폰의 기괴한 형상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앞에 프리츠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탐사에 들어가겠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 저희들이 지급하는 장비를 반드시 착용하고 탐사에 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