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12
00612 139. 암투 =========================
지금까지 형진은 여러 여자들과 맺어졌지만, 그녀들은 서로 경쟁한다거나 싸울 건덕지가 별로 없었다. 유아야 원래부터 성격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제랄딘과 아란은 아예 동일 인물이었으며, 미엘이나 하엘은 생태 자체가 다른 종족이라 굳이 인간과 다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쪽이다.
특히나 미엘의 경우엔 어릴 적부터 제랄딘을 돌보고 키워온 입장이기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제랄딘이 형진과 잘되길 바라는 쪽이고, 하엘은 미엘을 좋아하는데다 아예 형진의 추종자까지 되어 버린 입장이라 그런 식의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
지구의 문화에 익숙한 요안나는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었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독점적 지위를 확립하기 위해 파편까지 스스로 형진에게 건넨 관계로 타나토스에 주로 머무는 다른 반려들과 다툴 이유가 없다.
물론 사람이란 성격이 맞지 않는다거나 가치관의 차이 같은 것으로도 얼마든지 사이가 벌어질 수 있는 법이지만, 지금까지는 딱히 그런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형진의 입장으로서는 꽤나 형편 좋은 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평온했던 가정생활도 희망과 생명의 대두로 인해 조금은 흔들릴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희망과 생명, 그리고 공포와 죽음은 오랫동안 서로 경쟁해 왔다. 애초에 신격 자체도 생명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종류의 것인데다, 이제는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사랑을 다투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이 관계가 지금까지 형진이 맞이했던 다른 반려들처럼 평온하게 이어진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미라지 코어가 제시한 이백 명의 탐사단 구성을 놓고 각국의 외교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가 특히 물밑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간단합니다. 테라포밍이나 외우주 탐사, 그리고 이번에 발견된 티폰의 일은 분명히 인류사에 매우 중대한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그런 일에 매진할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나라들의 경우, 당장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탐사단에 사람을 보내는 쪽보다, 그 인원수를 가지고 현재 필요한 것들을 받아내는 쪽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과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그렇다면 이번 탐사단에서 제외되어 버린 중국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마찬가지로 외교적인 방법을 동원해 어떻게든 자국의 인원을 탐사단에 끼워 넣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그리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라지 코어의 핵심 경영진 가운데 하나에 대한 북한군의 테러를 은밀히 지원했다는 혐의를 벗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중국 측과 협상을 벌였다가 자칫 자신들에게도 불똥이 튈까 저어하는 것이겠죠.
-중국 측의 공식적인 논평이나 입장 발표는 없었습니까.
-있었습니다. 외무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이번에 중국이 탐사단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습니다만, 다른 나라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현재로서는 뭔가 가시적인 상황 변화가 없는 이상, 중국 측의 탐사단 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중국 내부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입니다. 중국 정부를 옹호하는 쪽과, 그동안 억눌려 있던 민주화 요구 세력들이 서로 나뉘어 연일 충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외국계 합작 회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상해와, 이전부터 본토와의 입장 대립이 이어지고 있던 홍콩 등지에서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시나 텔레비전에서는 티폰의 출현이라든가, 중국이 탐사단에서 제외된 일을 가지고 열심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탐사단 인원수를 가지고 서로 물밑에서 팔고 사는 행위를 하고 있는 건 솔직히 좀 예상 밖이었지만, 그 외의 일들은 그럭저럭 형진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다른 채널에서는 희망과 생명이 형진과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이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이전부터 미스 에스페란토가 희망과 생명 재단의 이사장이 된 것이라든가, 여러 가지 얘기가 많았죠?
-그렇습니다. 특히나 그녀는 복귀 뒤에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죠. 실종 기간 동안 진이라는 이름의 이 남성과 계속 함께 지냈다고 말입니다.
-기억납니다. 당시 미라지 코어에서는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함께 한 것 뿐이라는 해명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렇습니다. 사실 정확한 본인의 입장 표명이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그것이 설령 사실이더라도 실종 기간 동안 어떤 식으로든 교감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죠.
“그렇다는데.”
“흥. 교감은 무슨. 고문이라면 몰라도.”
“하하…”
희망과 생명은 투덜거리면서도 다른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아무래도 자신이 공포와 죽음을 이길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당장 형진 주위의 여자들만 보더라도 유아와 하엘을 제외하면 전부 공포와 죽음 본인이거나 그녀의 추종자가 아닌가. 이제 막 형진과 맺어진 자신과는 기반 자체가 다른 것이다.
때문에 희망과 생명은 이번 기회에 유아를 확실하게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형진이 정식으로 맞이한 첫 번째 반려이며, 또한 아이를 가진 상태라 누구보다도 형진이 애지중지하고 있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의 추종자 가운데서도 대리자를 제외하면 가장 신분이 높은 성녀. 아군으로 삼는다면 당연히 먼저 손을 뻗을 만한 인물이다. 비록 지금은 아이 때문에라도 조용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태교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의 영향력이 작은 건 절대로 아니다. 공포와 죽음이 스스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왕성 라이언하트의 실질적인 안주인이 유아인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니까.
밥 먹다 말고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주먹을 불끈 쥐며 무언가를 다짐하는 모습에, 형진은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싶어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자아, 슬슬 배도 채웠으니 하던 일을 마저 해볼까.”
“응? 그게 무슨… 꺄앗! 자,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하는 형진의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던 희망과 생명은 갑자기 그가 옆으로 다가와 자신을 번쩍 안아 올리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잠깐 뭐?”
“아니… 그러니까, 아직 이도 안 닦았고.”
“그럼 같이 닦을까?”
“으, 응…”
방금 전까지 이런 저런 계략을 떠올리던 것은 까맣게 잊은 채, 희망과 생명은 순식간에 착하고 순진한 새 신부가 되어 버렸다. 공포와 죽음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도 모른 척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형진이 그렇게 여신들과 알콩달콩한 신혼을 만끽하고 있는 동안, 중국 정부는 작금의 사태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부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는 말이오?”
“죄송합니다. 외국 국적의 동포들조차도 각국 정부에 의해 탐사단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대로라면, 이번 탐사단에 우리 쪽과 연결된 사람들은 단 하나도 포함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들이… 감히…”
사실 중국이 이렇게 순식간에 왕따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은, 그동안 그들이 저질러 왔던 행태에도 문제가 있었다. 영토문제부터 시작해서 불법 어획, 그리고 무역이나 화교에 의한 경제 독점까지. 지금까지 제대로 말은 못하고 있었어도 각국이 지닌 중국에 대한 불만은 결코 작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런 모든 문제들이 이번 일을 통해서 단숨에 쏟아져 나온 것이라고나 할까.
중국으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그들이 다른 나라들에 대해 갑질을 좀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거야 따지고 보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런데 자신들만 이렇게 두들겨 맞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억울하다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역시나 중국 답다고 해야 하나.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는 쪽이…”
“이미 늦었습니다. 사과를 한다고 해봐야 이제와서 인원을 새로 할당해줄 가능성도 별로 없고… 오히려 모양만 빠지는 일입니다.”
“그럼 이대로 가만 두고 보자는 말이오?”
“당장은 어렵겠지만, 나중을 생각하자는 의미입니다.”
“나중? 무슨 나중? 배 전부 떠나고 난 뒤의 나중?”
“어차피 우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며 또한 최대의 소비 시장이기도 합니다. 저들이 우리를 버리고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이건 인내심의 싸움입니다. 끈질기게 버티면 결국 이기는 건 우리 쪽이라는 얘깁니다.”
“이러니 우물 안 개구리 소리를 듣는 거요. 저들이 우주로 뻗어나가 버리고 나면 이 조막만한 지구가 얼마나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소?”
“테라포밍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히 이루어지는 일입니까? 적어도 수십년은 소요될 일입니다. 그 기간 동안, 저들이 과연 손가락만 빨고 지내겠습니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시오. 수십 년은커녕 이미 다른 곳에 미라지 코어의 식민지가 있다고 해도 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오. 그 티폰이라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낼 때를 생각해 보란 말이오. 저들은 이미 공간 이동 기술마저 가지고 있음을 정말 알아차리지 못한 거요?”
“눈속임입니다. 그러는 동지야 말로 미라지 코어가 게임 회사로부터 시작한 곳임을 잊은 것 아닙니까? 그런 연출에 속아 넘어가다니, 정말 그 단순함이 치가 떨리는군요.”
“뭐라? 단순? 지금 그거 나보고 한 말이요?”
“그럼 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참모들의 대화가 격해지기 시작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주석이 일갈했다.
“그만!”
주석은 은은하게 분노가 어린 시선으로 참모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끼리 이렇게 싸울 일이 아니오. 이 일이 밖으로 흘러나가기라도 하면 다른 자들이 뭐라고 떠들어대겠소?”
“죄송… 합니다.”
“저 역시, 죄송합니다.”
사과하는 참모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주석은 다른 이를 향해 말했다.
“아직 부양판의 비밀은 확인하지 못한 거요?”
“그렇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부양판에 적용된 기술이 기존 지구의 기술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라는 정도겠지요.”
“그럼… 정말로 저들이 외계인이란 말이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흠…”
티폰의 등장 이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라지 코어의 핵심 인물들이 사실은 지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식의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것은 아직 확정적인 증거가 없는 음모론 수준의 얘기이긴 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혹자는 엘피스 리페 에스페란토의 실종 역시 사실은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전에 저희 쪽으로 데려온 인물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누구 말이오.”
“미라지 코어의 전대 회장과 접촉한 것으로 파악되어 이쪽으로 포섭한 아프리카 사람 말입니다.”
“아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그 사람이 왜?”
“그 사람을 이용해서 적당한 유언비어를 퍼트리면 어떨까 합니다.”
“구체적으로?”
“사실은 미라지 코어는 외계인들의 기업이다라는 식이 되겠죠.”
“흠…”
솔직히 말해서 그게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당장의 중국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만한 상황. 게다가 여론을 적절하게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왕따가 아니라 외계인들의 음모에 당당히 맞서는 영웅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어차피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도 아니고, 제 가족 밖에 모르는 식충이를 앞세워 여론 몰이를 하는 정도라면 리스크도 그리 크지 않다.
누가 아나. 혹시라도 이것이 미라지 코어의 폐부를 찔러 그들로 하여금 협상의 자리로 나오게 만들 수 있을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마당에 뭐든 못하겠는가.
“좋소. 해봅시다.”
“알겠습니다.”
주석의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중국 국가안전부 제16국에 명령이 하달되었다. 제16국은 내부 전산망 관리, 전산망의 외부 침입 방지 및 사이버 정보 분석 등, 인터넷 상에서의 정보전을 담당하는 부서다.
곧바로 약 이십 분 정도의 동영상이 제작되어 공개되었다. 이 동영상에 등장한 남자는 자신이 미라지 코어의 회장과 만났던 일부터 시작해서, 중국의 도움으로 그곳을 빠져 나왔던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인간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누군가에게 피습되어 한동안 끙끙 앓았던 일들을 감칠 맛 나는 말투로 풀어냈다.
이 동영상은 중국 첩보 기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오죽하면 프리츠가 놀란 표정으로 득달같이 달려와 보고를 했을 정도다.
“어떻게 할까요?”
하지만 형진은 별로 당황한 표정도 없이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냅둬. 게다가 어차피 그리 틀린 말도 아니잖아. 정확히는 외계인이 아니라 외계신이긴 하지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어차피 음모론이란 건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이 아니다. 반응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 보라며 더 활활 타오르는 것이 음모론의 속성이니까. 일례로 아폴로 계획 음모론 같은 경우는 아무리 설명을 하고 난리를 쳐도 아직까지도 혹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보다도, 준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형진의 담담한 질문에 프리츠는 얼른 답했다.
“탐사단의 구성은 끝났습니다. 예정대로 내일 오후에 실리콘 밸리의 미라지 코어 지사에 모일 예정입니다.”
“좋아. 모처럼의 큰 이벤트니까. 잘 부탁해.”
“알겠습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으… 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