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57
00657 148. 유적 =========================
이들이 노리는 것은 육식 유저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높은 가치를 지닌 유물이라 불리는 종류의 물건들이다.
링월드는 높은 문명 수준을 자랑하던 종족들의 거대한 유산이다. 당연히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유물들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일. 특히나 그 가운데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양호한 상태로 보존된 각종 기기들이었다.
폐쇄적인 링월드의 환경 속에서 부식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진 각종 기기들은 실로 그 값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게 마련. 초식 유저들이 찾는 것은 바로 그런 유물들이다. 하나만 제대로 건지면 부양형 자동차 몇 대를 사고도 남을 정도의 엄청난 포인트를 벌어들이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런 식의 행운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바로 지금처럼.
“차, 찾았다.”
유저가 집어든 그것은 일견 팔찌처럼 보이는 물건이다. 하지만 단순한 장신구는 아니다. 이것의 용도는 이른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를 연상시키는 일종의 정보 단말이다.
링월드에서 발견되는 유물들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간단하게는 세탁기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부터 시작해서, 펜 같은 필기도구 같은 것도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면 훌륭한 유물로 취급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많은 포인트를 벌 수 있는, 이른바 로또라고 부를 만한 물건을 꼽으라면 그것은 역시 지금 한 초식 유저가 발견한 것과 같은 정보 단말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정보 단말 그 자체의 가치는 다른 일반적인 가전 제품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 단말이 보존하고 있는 정보 그 자체에 있었다.
[A급 유물 ‘정보 단말’을 습득하셨습니다. 현재 가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제, 제발…”
정보 단말을 주웠다고 끝이 아니다. 이것의 가치는 그 안에 담겨진 정보의 가치에 달려 있기에, 이제부터가 진짜 고비라고 할 수 있다.
유저가 손을 모으고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근처를 탐색하던 유저들이 달려와 그를 지켜본다.
사실 정보 단말 안에 얼마나 중요한 정보가 있는지, 당장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힘들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고도의 문명을 건설하는데 직접적으로 사용된 첨단 기술들이겠지만, 지금 발견한 정보 단말 안에 그런 기술이 담겨져 있다 해도 실제로 그것이 그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에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물론 야바위로 그냥 정보 단말을 A급 유물로 정한 것처럼 일정 액수의 보상을 지급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형진은 그 정도로 야박한 신이 아니다. 적어도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 정도는 당연히 지급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도입한 방법이 정보 단말 안에 저장된 데이터량으로 가치를 환산해 보상을 지급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것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중요한 논문과도 같은 텍스트 얼마보다 야동 몇 기가가 더 큰 가치를 지닌 것으로 계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이런 식의 가치 계산이 더 정확한 것일 수도 있긴 하다. 이를테면, 지금 산장에서 누군가의 몸을 감싸 안고 정보 단말 안의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는 누군가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거 참… 야동은 결국 만국공통, 아니 우주공통의 유산이라 이건가.”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싶긴 해도, 방금 전 한 초식 유저가 발견한 정보 단말에 담겨져 있는 대부분의 자료는 우리가 흔히 야동이라고 부르는 그 물건이 맞았다.
릴은 그녀가 누리던 문명에 대한 기반 지식이 거의 없었지만, 간단한 몇 가지 물품에 대한 사용 방법 정도는 충분히 잘 알고 있었고, 정보 단말은 그녀가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품 가운데 하나였다. 형진은 그녀와 대화하며 배운 그 사용 방법을 이용해 지금 정보 단말을 검색하고 있는 것이다.
“…”
보호와 균형은 눈이 동그래진 채 형진이 보고 있는 입체 영상에 시선을 던지고 있다가, 이내 귀까지 새빨개진 모습으로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만다. 역시나 그녀에겐 너무 하드코어한 영상이었던 모양이다.
“오오, 저런 자세도 가능했던 건가. 정말 놀랍군.”
그런 보호와 균형을 놀리듯 형진은 킥킥거리며 영상을 보다가 이내 그것의 가치를 입력했다. 확실히 데이터 양으로는 압도적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보량대로 다 값을 쳐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반 정도만 계산해서 정산해주기로 했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자신이 발견한 유물의 가치가 판별되기를 기다리던 유저는 마침내 자신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나자 얼른 그것을 확인했다.
“헉!”
그리고 그 금액을 보는 순간, 유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놀랍게도 거기 적힌 것은 부양형 자동차 한 대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대, 대박이다! 대박 났다!”
유저는 펄쩍펄쩍 뛰며 자신의 기쁨을 그렇게 주위에 알렸다. 다가왔던 유저들은 그의 행운에 축하를 보내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젠장… 나도 찾고 말거다!”
“기다려라!”
잠시 시간이 지나자 해당 구역의 언데드를 쓸어버리고 온 육식 유저들 또한 대박 소식을 듣고는 너도나도 탐색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링월드의 탐색은 그런 식으로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으…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나도!”
운영자 비슷한 역할로 탐색을 살펴보던 신들 가운데 몇 명이 마침내 들고 일어났다. 지금까지와 같은 역할이 아닌, 인간들처럼 유저로서 이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글쎄요.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지라.”
모처럼 보호와 균형을 데리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형진은 갑자기 몰려와 마치 맡겨놓은 물건 내놓으라는 듯이 이런 주장을 내놓는 잡신들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사실 엘리시온이라는 이름의 게임은 기본적으로 무료로 서비스 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보다 많은 컨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과금이 필요하긴 하지만, 필요한 단말기만 구입하면 이번 이벤트처럼 캐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많기 때문에 딱히 과금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물론 단말기 자체도 무슨 안마의자를 확대시켜 놓은 것 같은 그런 거창한 것도 아니고 일종의 헤드폰 같은 느낌의 물건이라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형진의 기분이 좋았다면 그 정도 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모습으로 잡신들에게 흔쾌히 제공할 수도 있었다. 잡신 몇 명 분의 단말기라고 해봐야 그에겐 딱히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소소한 금액이니까.
실제로도 그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보호와 균형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귀여운 여신이었고, 자신에게 무척이나 헌신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런 저런 일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하루 해가 순식간에 져 버릴 정도로.
그런 귀여운 신부를 맞이한 상황이니, 어지간한 일 정도는 충분히 웃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잡신 나부랭이들이 몰려와 마치 맡겨 놓은 물건을 내놓으라는 듯이 그를 윽박지르지만 않았더라면.
“간단한 일이 아니라니?”
자신들이 이렇게 몰려와서 해달라고 하면 바로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대로 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대표격으로 앞장선 신은 그의 대답에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하지만 그렇게 속을 바로 드러내 보이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적어도 산전 수전 공중전에 이어 우주전쟁까지 이어가고 있는 형진에게는 너무나 가소로운 짓이 아닐 수 없다.
‘말씀대로입니다. 여러분들은 인간과는 달라요. 당연히 거짓된 천국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도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괜히 본선 진출자로 출입 가능한 인원을 한정한 것이 아니라고나 할까요.“
“그, 그런가?”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듣고 보니 뭔가 그럴 듯한 얘기라 잡신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엘리시온 밖에서 신이 뭔가를 하려면 당연하게 들어가는 것이 공헌도지요.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들이 본선 진출자들을 연습생으로 받아들인 건 그만한 가치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선택한 결정이었던 겁니다.”
형진의 진지한 말에 잡신들은 풀이 죽어 버렸다.
“그럼… 방법이 없는 건가?”
애초에 제대로 시간을 들여 계획을 세우고 상황을 면밀하게 파악한 뒤에 움직인 것이 아니다. 그저 유저들이 재미있게 이벤트를 즐기는 것을 보고 자신들도 그들처럼 이 모든 것을 즐기고 누려보고 싶다는 충동에서 일어난 행동에 불과했다. 그러니, 그럴듯하게 포장한 형진의 기만에 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완전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 정말?”
“네. 하지만… 아무래도 여러분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군요.”
“그게 뭔데?”
형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난처해하는 모습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이번에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알지 못하던 사멸한 고대 문명입니다. 그것을 탐사하고 그들의 문명을 확인해 더 나은 문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는 것이 이번 이벤트의 중요한 목적이라 할 수 있죠.”
“그런… 가?”
갑자기 어려운 얘기가 나오자 신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런가보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형진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원래 이 고대 문명에 대한 것은 제가 계획하고 있던 일에 포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제가 관여하고 있는 여러 곳의 문명을 촉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일전에 오디션을 열어서 여러 신들을 연습생으로 맞이했던 것도 결국 이런 이유에서였죠. 문자 그대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본래는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던 인력이 실제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상황에 처했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형진은 양손을 깍지 낀 채 책상에 올려두고 그 위에 턱을 기댄 채 진지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정말로 여러분들이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거짓된 천국을 즐기고 싶으시다면, 그와 같은 것을 제공하는 대가로 그에 걸맞은 가치를 지닌 노동을 해주셔야 겠습니다.”
“노동… 일을 하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유저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일을 하고 그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 뿐이니까요.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더 큰 보상을 받는 만큼 일도 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음…”
“아시다시피 엘리시온 밖에서는 신조차도 인과율의 법칙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신앙과 공헌도이겠습니다만, 여러분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계시지 않지요. 따라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하셔야만 한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
형진이 말을 마치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신들은 우왕좌왕하는 기색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하고 싶다. 하고는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유유자적하던 생활을 버리고 일을 해야만 한다. 아마도 그 일은 지금 이벤트에 운영자 형식으로 참여하는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고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에 걸맞은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을 제공하면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신앙도 공헌도도 없는 빈털터리에 불과하다.
가만히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형진은 그들에게서 나올 대답을 기다렸다. 결국 몇몇 신들이 머뭇거리며 그곳에서 물러났고, 그렇게 도망치듯 사라진 이들을 제외한 신들은 서로 눈빛으로 의사를 확인하고는 형진에게 말했다.
“그 일, 해보겠다.”
형진은 빙긋 웃으며 그들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계약서입니다. 모든 일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하는 법이죠. 서명해 주십시오.”
신들이 머뭇거리며 대충 살펴보고는 서명을 마치자 형진은 흡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인턴으로서 저희와 함께 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딱 튕기자 몹시 지친 표정의, 게다가 짜증스러운 기색마저 역력한 신 하나가 형진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다.
“뭐야? 왜 불러?”
느닷없이 불려온 허세와 망상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자, 형진은 빙긋 웃으며 앞에 모여있는 신들을 가리켜 보였다.
“요새 일손이 부족하다고 그러셨죠? 여기 새로운 일손들입니다.”
“그래?”
피곤으로 점철되어 있던 허세와 망상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흐흐흐. 그거 아주 잘 됐군. 반갑구나. 아그들아. 자, 그럼 바로 일 하러 가보실까?”
아무래도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지, 몇몇 신들이 얼른 발을 빼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의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형진은 씩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미 근무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용무는 근무시간이 끝난 뒤로 미뤄주십시오.”
“자, 잠깐.”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허세와 망상이 겁먹은 신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말했다.
“잠깐이고 나발이고 얼른 가자. 일이 아주 아주 많아. 마음에 들 거다.”
“히이익!”
============================ 작품 후기 ============================
두편째.
음, 아직 안주무신 건가요? 나쁜 어른이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