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72
00672 151. 사절 =========================
미친 듯이 질주해서 황성 안으로 들어선 바한 백작은 곧바로 시종들의 안내를 받아 황제와 대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라. 바한 백작.”
“폐하를 뵙습니다.”
“급히 불러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그런 일은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앞서 마차 안에서 투덜거리던 것과는 달리 아주 깍듯하고 공손한 모습이다.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천하에 다시 없을 듯한 충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평소의 그를 잘 알고 있는 이곳의 사람들은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뻔히 보인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본래 그대를 부른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지금은 또 상황이 달라져 버렸다. 백작은 황성 하늘 위에 자리한 일곱 척의 배들을 보았나?”
“네. 오면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작은 물체라도 저렇게 띄워 놓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미동조차 없이 마치 원래 그렇게 존재해 왔던 것처럼 멈추어 서 있다니. 어떤 기술이 사용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아운 제국으로서는 절대 따라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만약 저들에게 그럴 의도가 있다면 황성은 그 순간 불바다가 될 것이고, 저희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
기술의 놀라움까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듣고 있었던 신하들이지만, 뒤이어 나온 전투 예측에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엄하오! 백작. 폐하의 면전에서 그 무슨 망발이란 말입니까!”
대신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꾸짖자, 바한은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듯한 느낌으로 한심하게 바라보며 답했다.
“단순히 저 거대한 함선을 공중에 띄워 놓은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가 따라 갈 수 없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저 높은 하늘 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라.”
라만의 말에 바한은 자세를 바로하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힘이 담긴 목소리로 설명했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하늘을 나는 방법을 연구해왔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늘 그 자체를 또한 연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평온하기 없는 파란 하늘에 불과하더라도, 사실 그곳에는 지상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끊임없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바람… 그런 것인가.”
그제서야 라만은 바한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눈치 채셨겠지만, 바람이 불면 어떻게든 뭔가 반응이 있게 마련입니다. 나뭇잎이나 풀들이 흔들리는 것처럼, 그에 걸맞는 현상이 저 배들에 일어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함선의 단단한 거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 배들은 커다란 돛을 달고 있지 않습니까.”
“그, 그런…”
뒤늦게서야 라만의 말을 이해한 대신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라만은 그런 대신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을 마쳤다.
“하지만 저 배들에는 지금 그런 현상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잠시 바람이 멈춘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무언가 변화하는 모습이라도 있어야 하는 법인데, 그런 현상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간단합니다. 지금 저 배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띄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벽이 존재해 저 배들이 존재하는 공간 그 자체를 이 세계와 격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공격을 가한들, 그 공격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나 하겠습니까?”
“…”
라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감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감탄했다. 계속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자신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을, 이곳으로 달려오는 와중에 잠깐 살펴본 것만으로 알아챈 그의 관찰력과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나라의 마법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말에 부족함이 없는 식견이었다. 정말로 감탄했다.”
“과찬이십니다.”
라만은 그렇게 바한을 칭찬한 다음, 시립한 시종을 향해 말했다.
“그것을 가지고 오도록.”
“네. 폐하.”
곧바로 시종이 널따란 널빤지 같은 것을 하나 그들에게 가져왔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선물이라며 나에게 준 것이다.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겠나?”
“…”
라만이 내민 것을 본 바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긴 것은 꼭 다리미판 같다. 하지만 저런 배를 타고 온 자들이 황제의 옷이 구겨져 있는 것이 보기 안 좋다고 다리미판 같은 걸 선물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물건을 받아든 바한은 일단 그것을 자세하게 살폈다.
재질은 얼핏 나무처럼 느껴지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나무보다 가볍고 단단한 무언가임을 알 수 있었다. 마법 물품인 모양인지 미약하게 마력이 느껴지긴 하지만 어떤 용도인지는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으음…”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뒤집어도 보고, 빛에 비춰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이리저리 살펴봐도 도무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기대에 찬 시선을 던지던 라만이나 다른 대신들 그런 바한의 모습에 결국 작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바한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얼굴일 시뻘겋게 변하더니, 이내 라만에게 물건을 돌려주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폐하. 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이것이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역시… 그런 건가.”
바한 백작조차 알아볼 수 없다면, 이 나라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것에 담겨진 비밀조차 읽을 수 없다면, 하늘 위에 떠 있는 저 범선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죄송합니다만… 혹시 저들이 이것의 사용법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까?”
“알려 주었다.”
“무엇입니까.”
“하늘을 나는 도구라 했다.”
“이, 이것이? 그게 사실입니까?”
놀란 바한 백작의 말에,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대신 가운데 하나가 그를 꾸짖었다.
“무엄하다! 백작은 감히 폐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그저 너무 놀라운 일이라. 죄송합니다. 폐하.”
라만은 손을 내저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다. 신경 쓰지 말라.”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다. 바한 백작마저 실마리를 찾지 못한 이상, 저들의 기술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나 싶어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시 바한 백작이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이것을 선물하면서 그 사용법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시연을 해보이긴 했지만, 달리 사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 말에 바한 백작은 반색하며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의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용법을?”
“그렇습니다. 선물을 받았는데 사용할 수 없다면 그것도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듣고 있던 대신들이 반대했다.
“불가합니다. 사용법을 배운다는 것은, 다시 말해 폐하께서 저 물건에 탄다는 뜻이 아닙니까. 비록 그 안전성을 저들이 보장했다고는 하나. 하늘을 나는 위험한 물건을 폐하가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말에 바한 백작이 다시 말했다.
“꼭 폐하께서 배워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다른 사람이 배웠다가, 나중에 안전성이 확인되면 폐하께도 알려드리겠노라 말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과연. 그런 방법이 있군.”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라도 스스로 카트린을 찾아가 호버 보드를 가르쳐 달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모습을 보아하니 만약 라만이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신하들이 전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질 것 같은 태세다.
황제가 직접 배울 필요는 없다는 바한의 말에는 신하들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누가…”
모두가 찬성했음을 확인한 라만이 다시 그렇게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한 백작이 앞으로 나섰다.
“폐하! 신에게 그 중차대한 소임을 맡겨 주십시오!”
“경이?”
누가 들으면 적의 백만 대군을 물리칠 선봉장으로 뽑아달라고 나서는 줄 알겠다. 목소리도 우렁찬데다 생긴 것까지 맹장 스타일이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오해하고도 남을 것 같다.
“그렇습니다. 비록 제 실력이 부족하여 이 물건의 쓰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사용법을 배우고 나면 그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일단 원리를 알 수 있다면, 조악하게나마 저희들의 기술로도 구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듯 하군.”
보안이 걸려서 구현 방법까지는 알 수 없더라도, 일단 사용해 보면 마력의 흐름이라든가 통제 방법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세계의 마법 체계가 이곳과 다른 것이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원리만 알면 다른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
“좋아. 허락하겠다. 바한 백작은 저들이 머물고 있는 내전으로 가서 이 물건의 사용법을 배우도록.”
“알겠습니다.”
바한 백작은 라만의 말을 들으며 흠칫 놀랐다. 설마하니 저 배에서 내린 자들이 황성 안 한 가운데, 그것도 황제가 머무는 내전에서 머물고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한 탓이다.
혹시 강요당한 것인가.
걸핏하면 뒤에서 어린 황제를 욕하기는 했어도, 자기 나라의 황제가 그런 식의 모욕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바한 백작은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일단 그러한 감정은 숨긴 채, 기사와 시종들의 안내를 받아 내전으로 향한다. 하지만 내전으로 통하는 문에 다가서는 순간, 전신을 검은 옷으로 감싼 존재 두 명이 스르르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을 가로막는다.
“황녀께서는 휴식 중이시다. 무슨 일인가.”
갑작스런 그들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지만, 황녀라는 말에 이들이 내전을 호위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한 백작은 속에서 다시 슬며시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엄연히 아운 제국의 황성 안에 위치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처럼 구는 그들의 모습에 감정을 상한 것이다.
하지만 바한 백작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그런 감정을 숨긴 채 입을 열었다.
“나는 바한 백작이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황녀께 이것의 사용법을 배우고자 하오. 길을 열어주시오.”
하지만 주시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불허. 황녀께서는 휴식 중이시다. 용무가 있다면 내일 다시 찾아와 말하도록.”
“…”
좋게 요청했음에도 단박에 거절당한 데다, 자신의 작위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반말을 지껄이는 그들의 모습에 바한 백작은 다시 한 번 감정이 상했다.
하지만 주시자들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순히 호버 보드의 사용법을 배우고자 하는 것 뿐이라면 그것은 들어줄 수 있다.‘
“정말이오?”
“물론.”
주시자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고, 그 순간 바한 백작의 일행은 어딘가에서 나타난 검은 옷차림의 존재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
바한 백작은 크게 놀랐다. 앞서는 그렇다 쳐도, 방금 전에 이들이 모습을 나타낸 때조차 그는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마법으로 공간 이동을 사용한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면 최소한 마력의 유동이라도 느껴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입구를 지키고 있던 주시자, 노스페라투 렐그낙은 바한 백작이 그렇게 놀라거나 말거나 다른 주시자들을 향해 말했다.
“이들을 데려가 교육시키도록. 단, 황녀께서 소란을 느끼실 수도 있으니 되도록 멀리서 하는 편이 좋겠군.”
“맡겨 주십시오.”
대답과 함께 주시자들은 바한 백작을 비롯한 일행들에게 다가가 손목을 움켜잡았고, 저항할 틈도 없이 그들은 까마득한 하늘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
반응할 틈도 없었다. 지금은 비록 전장에서 벗어나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몸이지만,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전투 마법사인 자신이 움직임을 알아보기는커녕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손목을 잡혀 버렸다.
게다가, 이렇게 간단하게 공간을 이동하다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가.
느닷없이 하늘 위로 장소가 옮겨지자 너무 놀라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바한 백작의 귀에, 그의 손목을 잡은 주시자의 목소리가 전해진다.
“지금부터, 교육을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자, 이젠 정말로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