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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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살려줘!
다시 집으로 들어가니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던 형진이 다시 반갑게 맞이한다. 다 먹고 난 뒤의 음식 냄새 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는데도 미엘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집 바보 메이드가 워낙 늦잠꾸러기라 아침을 좀 늦게 먹는 편이거든요.”
“별 말씀을요.”
“그런데… 머리카락이?”
“네?”
아뿔싸. 마법으로 물기를 날려버리는 과정에서 기껏 아침에 정리한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뻗친 모양이다. 가뜩이나 부석거려서 정돈하느라 힘들었는데.
“이게… 왜 이러지? 아하하하…”
“…”
그렇게 어색하게 웃으며 일단 손으로 머리카락을 찍어 누르고 있는데, 설거지 준비를 하던 유아가 다가와 말했다.
“저, 제가 좀 봐드릴까요?”
“부탁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형진은 얼른 미엘의 손을 잡고 사라지는 유아의 모습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설거지하기 귀찮아서 저렇게 빠져 나간 건가. 요즘 들어 정말 곰탱이가 맞는지 살짝 의심스러운 정황이 보인다. 이를테면, 얼마 전의 신발 사건이라든가.
어쨌거나 형진이 그런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른 채 유아는 미엘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와서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정성스럽게 살피기 시작한다.
삐걱.
그때 문가에서 바닥에 깐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트린이 휠체어를 밀고 나타났다.
“아, 미안, 깜빡 했네. 카트린도 이리와. 같이 봐 줄게.”
“…”
별채 식구들끼리 있을 때는 쾌활하게 조잘거리던 카트린이지만, 미엘이라는 이름의 이물질이 중간에 끼어 있는 상황이 되자 입을 여는 대신 살짝 고개만 끄덕이고는 휠체어를 밀고 들어와 미엘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는다.
카트린의 모습에 미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향해 낯을 가리는 잊혀진 공주의 모습에서 어릴 적 제랄딘의 모습을 발견한 탓이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잠시 카트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던 유아가 말했다.
“다 됐어요! 어때요?”
“…”
거울로 시선을 보내자, 그곳엔 낯선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운데로 가르마를 타서 양갈래로 묶은 것 뿐인데 이렇게 촌스러울 수도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솜씨가 가능한 건지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 이건 좀.”
“그래요? 예쁜데. 그럼 잠시만요.”
어쩐지 이대로 놔뒀다가는 하루종일 자신의 머리카락을 장난감 삼아 놀 것 같은 예감이 든 미엘은 얼른 유아의 주의를 카트린에게로 돌렸다.
“저는 그냥 정돈만 해주세요. 카트린도 기다리고, 금방 또 나가봐야 하거든요.”
“아… 주인님이랑 일이 있다고 그러셨죠.”
유아는 금새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밖에서 뭔 일을 하고 다니는지는 몰라도 잠시나마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운 모양이다.
미엘은 유아의 그런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쉬워요?”
“네? 그게 무슨…”
“사랑하는 주인님과 같이 못 나가는 게 아쉬운 것 같아서요.”
유아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손을 붕붕 내저었다.
“사, 사, 사, 사, 사랑이라뇨. 아니에요. 아쉬운 건 맞지만 그, 그, 그런 건.”
“아쉬운 건 맞네요?”
좋은 수다거리를 발견한 아줌마의 표정으로 미엘이 그렇게 묻자, 유아는 흠칫 놀라며 얼른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음, 수도에 오면 같이 음식점이라든가, 시장이라든가… 그런 곳을 같이 살펴봤으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아쉽다는 건 그런 얘기에요.”
“헤에, 결국 데이트를 못해서 아쉽다는 얘기잖아요.”
“아, 아니죠. 데이트라뇨.”
“음식점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옷가게에 들러서 서로의 옷을 봐주고. 훌륭한 데이트라고 생각하는데요.”
“…”
그렇지 않아도 맨날 맹하다고 형진에게 구박 받는 유아가 모습은 비록 어린 소녀의 그것이더라도 실제로는 백년 넘게 살아오며 산전수전공중전을 망라한 미엘을 이길 수 있을 턱이 없다.
유아를 놀리는 것으로 특제 요리로 인한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한 미엘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밖으로 나왔고, 여기에 투덜대며 설거지를 마친 형진까지 나오자 크루그가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받을 만한 의뢰를 좀 살펴봤습니다.”
미엘이야 라야바르트에서도 손꼽히는 집행자이고, 크루그도 의뢰를 수행한 횟수는 적어도 실력만큼은 인정받고 있는 집행자다. 둘에 비하자면 까마득한 신참인 형진으로서는 다소 밀리는 감이 있긴 하지만, 추적 능력이나 필요할 때의 한 방 만큼은 이미 확실하게 증명된 바가 있다. 어지간한 의뢰라면 이미 세 명이 참가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오, 잘했어. 소년. 그럼 바로 준비하고 움직여 볼까.”
그 말과 함께 형진은 인벤토리에 잠자고 있던 특제 요리를 다시 꺼낸다.
“힉!”
특제 과일즙으로 인해 일어났던 위기를 훌륭하게 돌파했고, 식사 시간도 끝났다는 사실에 조금 마음을 놓고 있던 미엘은 경고조차 없이 갑자기 코앞에 들이밀어진 특제 요리의 향기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뒷걸음질을 치다가 입고 있던 드레스 자락을 밟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었을 정도다.
“미엘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화들짝 놀라 넘어지는 미엘의 모습에 형진은 음식을 손에 든 채로 그녀를 부축해 일으키기 위해 몸을 굽혔다.
“자, 자, 잠깐! 거기서 멈춰요!”
“네?”
냄새만으로도 사람을 홀려버리는 악마의 음식을 손에 든 채 자신에게 다가서는 형진의 모습이라니. 미엘은 133년이나 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음식이나 그것을 들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갑자기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미엘의 모습에 놀라 그녀에게 손을 뻗던 형진은 다급한 그녀의 외침에 그대로 우뚝 멈추어 섰다. 얼핏 보면 미엘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라고 외치며 뒤돌아 본 것 같은 모습이다.
미엘은 최대한 냄새를 느끼지 않으려 애쓰며 힘겹게 말했다.
“크흠! 자, 잠깐 물러나 주시겠어요? 일어날 테니까.”
“제가…”
“아, 도와주시지 않아도 되니까,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 주세요.”
“…”
수상하다. 뭔가 엄청나게 수상하다. 갑자기 기겁을 하며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것도 수상하고, 형진이 다가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것도 수상하다.
미엘의 말대로 뒤로 물러서던 형진은 그녀의 시선이 자신이 들고 있는 요리에 꽂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아하. 그런 거였군요.”
“네?”
“죄송합니다.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
다 아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일견 불쌍하다는 표정마저 짓는 형진의 모습에 미엘은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꼈다.
분명히 뭔가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다. 자신에 대해 뭔가 전혀 예상치 못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털어놓는 건 더 난감하다. 당신의 그 요리 때문에 자칫하면 당신을 덮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말 따위, 절대로 입에 담을 수 없다.
미엘의 추측대로, 형진은 지금 오해를 하고 있었다. 한순간 자신의 요리 때문에 찐 살을 뺀다고 매일 밤 난리부르스를 추는 유아의 모습이 미엘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확실히 형진의 음식은 아예 안 먹으면 몰라도 일단 먹기 시작하면 접시를 비워야 끝장을 보고 마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유아는 차라리 덩치라도 크지, 미엘의 경우 본신은 어떤지 몰라도 당장 보이는 모습은 꼬마 마법사이니 한 접시만 먹어도 치명적일 수 있다, 고 형진은 생각했다.
형진은 미엘에게서 등을 돌린 채 크루그와 특제 요리를 먹었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등을 돌리고 먹는다고 그 소리가 안 들리고 향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조금 게걸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로 신들린 듯 음식을 섭취하고 있는 뒷모습을 보는 것 또한 미엘에게는 훌륭한 고문이 아닐 수 없었다.
보답이고 뭐고 그냥 때려 칠까. 의뢰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결국 영겁과도 같이 청각과 후각을 통해 전해지는 고문을 꿋꿋이 견뎌낸 미엘은 두 남자가 음식을 통한 버프를 끝마치자 비로소 의뢰를 시작할 수 있었다.
“…”
그런데, 확실히 특제 요리 버프는 대단한 바가 있었다. 크루그야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제대로 이동스킬을 마스터하지 못한 형진조차 그녀와 비등할 정도의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가 좀 많긴 합니다만, 그리 어렵진 않을 겁니다. 제가 뒤쪽으로 가서 퇴로를 막을 테니, 두 분이 앞쪽을 맡아주십시오.”
“그러지.”
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크루그는 그림자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모습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순간이동 계열은 아닌 것 같은데, 겉모습만으로도 제법 그럴 듯한 느낌이다. 일단 현재 익히고 있는 이동 스킬을 마스터하고 나면 저것도 한 번 배워봐야겠다.
첫 번째 의뢰 대상은 불법으로 화전촌 등을 약탈하고 주민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넘기는 악질 노예 상인들이다. 물론 지금은 그저 평범한 상인들인 척 어전 토너먼트라는 대목을 노리고 상경한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포와 죽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의뢰는 아무래도 암살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암살의 미학을 지킨답시고 하나씩 기회를 봐서 해치우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형진의 당면 목표는 공헌도 두 배 보상이 유지되는 동안 최대한 많은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니까.
“잠시만요. 정신력을 좀 보충해야…”
달리면서 계속 라이언하트를 켜놓고, 장애물을 통과하기 위해 환영의 반딧불 스킬까지 쓰면서 달려온 관계로, 정신력이 상당히 많이 소모된 느낌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그것을 보충하려고 그렇게 말을 꺼냈지만,
“!”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용히 뒤따르던 미엘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사라진다.
모습이 사라졌던 미엘이 다시 등장한 곳은 바로 수도로 가는 오솔길에 쉬는 척 멈춰 서서 지나가는 행인이나 노려볼까 생각하고 있던 노예상인들의 머리 위였다.
“담배 있냐?”
“없어.”
“그러지 말고 하나 주지? 수도에 올라가면 갚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빌려간 담배가 몇 개피인 줄 알아? 꺼져.”
“병신, 고작 담배 한 개피 가지고 쩨쩨하게. 야, 담배 있냐? 있으면 하나만…”
괜히 마차를 수리하는 척 하는 것이 지겨웠는지 그렇게 노닥거리고 있던 패거리 중 하나가 문득 자신의 주위에 드리운 그림자를 깨닫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런 놈의 눈앞에 보인 것은 시퍼렇게 타오르는 뇌전이었다.
“크악!”
“마, 마법사다!”
허공에 뜬 상태로 다짜고짜 강렬한 전격을 내리 꽂는, 어느새 시커먼 두건과 망토를 뒤집어 쓴 작달막한 미엘의 모습에 노예상인들을 기겁을 하고 말았다.
“이거나 먹…”
“너나 먹어라.”
“크악!”
갑자기 뛰쳐나간 미엘의 모습에 놀란 형진은 정신력을 다시 채울 틈도 없이 환영의 반딧불로 뛰쳐나가 석궁을 쏘려 하는 놈의 손목을 집행자의 단검으로 그어 버리고 곧바로 드러난 약점을 그대로 찔러버렸다.
햅튼이란 녀석이 떨어뜨린 룻을 얼른 챙기고 있자니, 그제서야 형진을 발견한 다른 노예상인들이 외쳤다.
“네, 네 놈들은 누구냐!”
너무나 독창성 없는 그 외침에 형진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나 이미 코장식과 목토시, 그리고 눈가리개로 얼굴을 거의 다 가려버린 형진의 표정을 도적들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물어보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형진은 은신으로 사라진 뒤 환영의 반딧불로 질문을 던진 놈의 뒤에 나타나 등에 단검을 푹 박아 넣으며 숨이 끊어지려 하는 녀석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우리는 너희들의 영혼에 공포와 죽음을 각인시킬, 집행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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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냐! 아냐! 아냐! 거기선 그런 식으로 대답이 나와선 안 되지! 그게 뭐냐고! 중2병이냐? 중2병이야? 내가 7화에서 친절하게 시범까지 보여줬잖아? 왜 알려 준대로 안 하는데? 작가가 우습게 보이냐? 그딴 식으로 나오면 너 그대로 고자 확정시켜 버린다. 그래도 좋아?
주인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