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26
00726 164. 연수 =========================
잡신들도 그리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번 연수의 목적이 면접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자신들의 내면을 살피기 위한 것이라는 정도는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몰라도 상당한 수의 신들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눈치 챈 이들은 이와 같은 내용을 다른 신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고 자신만 알고 있는 편이 이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 이들이 특히 신경 쓰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일하는 모습을 멀찌감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정직원들이었다. 달리 그들 외에는 자신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인턴이 되면 그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한 이상 미리미리 친분을 쌓아놔서 나쁠 일이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 물론 그런 부분들까지도 당장 모습이 보이지 않는 대신들이 체크하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로.
“저기… 아까 제대로 못 봐서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건지 다시 한 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은근슬쩍 눈웃음을 치며 그렇게 말을 거는 여신의 모습에 반지와 거울은 별 생각 없이 대답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진주와 장미가 얼른 그를 제지한다.
“이것은 밤의 신께서 여러분에게 맡긴 과제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저희가 아니라 조원이나 다른 참가자들에게 물어서 하는 것이 맞아요.”
“그, 그렇군요.”
반지와 거울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나 싶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진주와 장미는 참가자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자 반지와 거울을 바라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저 여우같은 애가 어째서 너한테 말을 거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거야?”
“그거야…”
반지와 거울도 본래 그리 어리석지 않은지라 그제서야 그런건가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사실 나도 감자는 깎아 본 적이 없어. 그냥 그렇게 대답하려고 했는데.”
“어차피 결론은 같았다는 얘길 하고 싶은 모양이네.”
“그런 셈이지.”
별 상관 없다는 듯한 반지와 거울의 말에 진주와 장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말이란 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장도 달라지는 법이야. 네가 거기서 할 줄 모른다 그래봐. 저 녀석들은 정직원들도 할 줄 모르는 걸 왜 우리한테 시키냐 그럴 거라고.”
“그렇긴 하겠네.”
“…”
반지와 거울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진주와 장미는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남은 열 내서 말하는데 상대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대답하고 있으니 어쩐지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가져다 놓은 감자를 모두 깎는 일이 끝나고, 정직원들이 그것을 안쪽에 기별하자 그제서야 형진이 다른 대신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해볼 만 하던가요?”
“네!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방금 전까지 이런 걸 왜 시키는 거냐며 투덜거리던 신들도 그렇게 입을 모아 대답한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이렇게만 보면 모두 열의에 가득찬 신입 사원들 같은 느낌이다.
이미 그들이 감자를 깎으면서 했던 말이나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기록해둔 형진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준비한 감자를 가지고 간단한 요리를 해볼까 합니다.”
“요, 요리요?”
감자를 깎는 걸로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잡신들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모여 있는 신들 가운데 요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당연합니다. 이 상태로는 먹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요리라고 해도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니까요.”
“그렇다면야.”
대답은 했지만 역시나 미심쩍어 하는 반응이다. 요리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그들로서는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라는 말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탓이다.
형진은 일단 깎아놓은 감자를 조금 가져와서 냄비에 담았다.
“우선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을 해보죠. 이렇게 냄비에 감자를 담고, 살짝 잠길 정도로 물에 담아줍니다. 여기에 설탕과 소금을 약간. 그리고는 화덕에 올려놓고 불을 지핍니다.”
잘 마른 장작에 불길이 화륵 옮겨 붙자, 형진은 손을 놓고 물러났다.
“이게 전부입니다. 남은 건 불을 잘 때면서 물의 양을 확인하는 정도입니다. 다 삶아질 즈음 물이 갑자기 확 줄어듭니다. 물이 없으면 감자가 타버리니까 그것만 주의하면 됩니다. 참 쉽죠?”
“…”
요리라길래 뭔가 대단한 걸 기대했는데, 그냥 물에 넣고 설탕과 소금을 조금 약간 치는 걸로 끝이란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요리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혹시 뭔가 더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계속 지켜봤지만 수십 분이 지나도 가끔 뚜껑을 열어서 남은 물의 양만 확인하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마침내 담겨져 있던 물이 확 줄어들면서 사라지자 형진은 화덕에서 냄비를 꺼낸 뒤 젓가락으로 감자를 콕 찌르며 말했다.
“이렇게 찔러 봤을 때 막힘없이 쑥 들어가면 제대로 익은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작은 접시에 감자 하나를 담아낸 다음, 포크로 살짝 으깬 다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담한 분위기의 여신에게 건네주었다.
“먹어 보세요.”
“저, 저요?”
“네. 막 쪄냈을 때가 가장 맛있답니다.”
“그럼…”
그냥 삶기만 한 감자가 과연 맛있을까 싶어 반신반의하며 포크로 김이 솔솔 풍기는 감자를 떠서 입안에 가져간다.
“후와아아아!”
설탕과 소금 간이 적당히 배어든 포들포들한 감자의 맛이 혀끝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막 삶아낸 탓에 뜨겁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부서져 내리는 그 식감은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어때요. 맛있죠?”
“마, 맛있어요.”
형진은 빙긋 웃어 보이고는 다시 말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지만, 더 맛있게 먹는 방법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방법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고는 삶아진 감자 두 개를 보울에 담는다.
“야채 약간과 햄입니다. 이걸 잘게 썰어서 섞어줄 겁니다. 계란이나 밤 같은 걸 삶아서 같이 으깨서 넣어줘도 맛있지만, 지금 따로 준비하긴 힘드니까 일단 이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나중에 한 번 시험해 보세요.”
곧바로 식재료 몇 개를 꺼내 도마 위에 올려놓고는 순식간에 다져 버린다.
“다진 재료를 섞기 전에 감자는 잘 으깨줍니다.”
포크를 들고 잘 삶아진 감자를 으깬다. 포송포송하게 익은 감자가 으깨지며 나오는 냄새만으로도 둘러서서 지켜보던 신들은 입에 군침이 돌 정도다.
“소금이랑 설탕, 그리고 후추를 조금 뿌린 다음, 마요네즈 약간과 다진 재료들을 넣고 잘 섞어 줍니다.”
설명과 함께 다진 재료들을 보울에 부어 넣고 으깬 감자와 적당히 섞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식빵을 꺼내 샐러드를 안에 채워 넣어 샌드위치를 만든 다음 옆에서 군침을 꼴딱 꼴딱 삼키고 있던 신에게 건네주었다.
“원래 감자 샐러드는 차갑게 식혀 먹는 것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당장은 식힐 시간이 없으니 빵에 발라 먹는 방법을 써봤습니다. 먹어보세요.”
“가,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군침이 흐르는 와중이다. 지켜보고 있던 신은 자신에게 샌드위치가 건네지자 다른 이가 가져갈까 두려운 것처럼 얼른 그것을 받아 입에 넣었다.
“으으음…”
입안에서 화악하고 번져 나오는 식감과 풍미에 신은 눈을 감은 채 황홀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부드럽게 감싸오는 감자의 풍미에 다진 야채와 햄의 맛이 어우러지고 마요네즈의 촉촉함으로 마무리 되는 그 맛이라니.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좀 더 고급스러운 걸 먹고 싶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죠.”
형진은 감자 샐러드를 손으로 작게 뭉친 다음 계란 물을 입히고 다시 빵가루를 묻혀서 달궈진 기름에 튀겨냈다.
“감자 크로켓입니다. 먹어보세요.”
“와아아!”
삶은 감자가 순식간에 그럴 듯한 고급 요리로 변신해 버렸다. 게다가 그냥 뭉쳐서 튀긴 것 뿐인데, 식감이며 맛까지 전혀 다른 느낌의 음식이 되어 버린다. 지켜보는 신들은 그저 신기한 느낌에 감탄을 금치 못할 뿐이다.
“모처럼 예쁘게 삶은 감자를 으깨는 것이 뭔가 아쉽다면, 이런 요리법도 있죠.”
형진은 삶은 감자 가운데 작은 것을 고른 다음 팬에 버터를 두르고 그대로 뒹굴뒹굴 굴리며 굽기 시작했다. 그러자 버터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감자들이 노릇하게 익기 시작한다.
“후와아아…”
마지막에 파슬리 가루를 조금 뿌려서 내자 그냥 삶기만 한 감자와는 또 다른 맛이다.
“이번엔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부드러운 요리를 해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보울에 깨끗한 면포를 덮고는 삶은 감자 두 개를 올려놓고 마구 으깬다. 그러자 면포 아래로 곱게 갈아진 삶은 감자가 빠져 나와 쌓인다.
“그냥은 잘 내리기 힘드니까 이런 식으로 우유를 조금씩 뿌려주면서 으깨주시면 쉽게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감자를 으깨서 면포에 내리는 일이 끝나자, 다시 브로콜리와 양파를 다져서 넣은 다음 버터를 두른 팬에 그대로 붓는다.
“이대로 눌지 않게 잘 저어주기만 하면 훌륭한 스프가 됩니다. 참 쉽죠?”
“그, 그렇네요.”
뭔가 순식간에 후딱후딱 그럴 듯한 요리가 만들어지니 좀 당황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보글거리면서 스프가 끓기 시작하자, 역시나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이제 이 스프를 아까 만들었던 요리들과 함께 곁들이면 꽤 그럴듯한 한 끼 식사가 됩니다. 어때요?”
“와아아…”
삶은 감자와 샐러드 샌드위치, 감자 버터구이, 감자 크로켓, 감자 스프까지 순식간에 테이블이 감자 요리로 채워졌다. 전부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인데,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단숨에 너무 여러 가지를 가르쳐 드리면 헷갈릴 수도 있으니 이 정도로만 해두겠습니다. 자, 이제 조별로 각자 요리를 시작해 보세요.”
“네!”
곧바로 신들은 자신들이 깎아 놓은 감자를 가지고 가서 삶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냥도 맛있고, 응용해서 다른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그들은 금방이라도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질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게 아닌데 말이지.”
옆에서 지켜보던 희망과 생명이 그렇게 말했다. 사실 형진이 하는 걸 옆에서 보면 뭐든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 버리니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그게 그리 만만치 않다.
“뭐든 시행착오가 있어야 자신의 것이 되는 법이니까.”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여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기회에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 보는 건 어떨지?”
그러자 보호와 균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도요?”
“응.”
“시키신다면 하긴 하겠지만, 과연 맛이 있을지…”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조용히 말했다.
“원한다면, 그 정도 쯤이야.”
“뭐?”
옆에 서 있던 희망과 생명이 얼굴을 찌푸렸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말없이 서있던 공포와 죽음이 알 수 없는 자신감을 가득 풍기며 그렇게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는 당황해 버린 것이다.
다른 신들도 별로 다를 바 없는 표정이다. 특히나 신뢰와 헌신은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인가 싶어 당혹스러운 표정마저 짓고 있을 정도다.
“하하…”
하긴 다른 신들로서는 공포와 죽음이 아란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육아와 요리에 전념했었다는 사실을 모르니 이런 반응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확실히 아란이라면 저런 자신감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대만 아니었다면 요리 대회 결선에도 도전해 볼만한 실력이니까.
형진이 그렇게 대신들과 대화를 나누며 안으로 들어가자, 조심스럽게 요리에 몰두하던 잡신들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그게 아니야! 아까 보니까 소금은 한 스푼, 설탕은 두 스푼이었어!”
“냄비의 크기를 보라고! 이건 훨씬 큰 냄비니까 더 많이 넣어야 해!”
“물의 양이 좀 부족한 것 같지 않아?”
“화력! 요리는 자고로 화력이지! 장작을 가져와! 나에게 더 많은 장작을 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직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앞서 형진이 만들어 놓은 감자요리들로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똑같아 보이는 요리라도 형진이 만든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이미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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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나머지는 아침 나절에…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