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27
00727 164. 연수 =========================
달인이 간단하게 해치운다고 해서 그것이 정말로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달인이 달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정 분야의 일을 간단하게 해치우기 때문이다.
“으악! 탄다! 탄다고! 얼른 불을 꺼!”
“불을 끄기 전에 냄비를 들어내면 되잖아!”
“이렇게 뜨거운데 어떻게?”
“장갑! 장갑 같은 거 없어?”
“빨리! 다 타버리잖아!”
타는 걸 알아차리고 법석을 떠는 쪽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미리 샐러드나 스프에 쓸 재료들을 준비한다고 하다가 깜빡 하고 있던 이들은 새카맣게 타버린 냄비와 감자를 동시에 목격해야만 했다.
“이거… 익은 거 맞나?”
“글쎄. 그걸로 한번 찔러봐.”
“음.”
젓가락이 아닌 포크로 찔러보니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영 느낌이 애매하다. 물이 다 사라졌음에도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확신하기가 어려워지자 다시 새로 물을 붓고 끓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차라리 감자 껍질을 그대로 놔두고 삶았어야 한다. 감자 겉면이 부서져 내리기 때문이다.
“괘, 괜찮아. 어차피 으깨서 크로켓으로 하려던 참이니까.”
“난 버터구이라는 거 먹어보고 싶었는데.”
“그건… 나중에 다시 잘 삶아서 해보자.”
감자를 삶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마당에 그것에서 발전한 요리들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샐러드는 너무 질척거리고, 그것으로 만든 크로켓은 모양조차 제대로 잡기 힘들었다. 스프는 우유를 너무 많이 넣은 탓에 제대로 엉기지도 않고,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상하다. 왜 이러지?”
“아까는 굉장히 쉬워 보였는데.”
그제서야 아까 형진이 만들었던 음식들을 떠올리고 시선을 돌렸지만, 그것들은 이미 소리소문 없이 정직원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자! 요리가 끝났으면 뒷정리를 하도록 합시다!”
“요리 자체도 중요하지만 뒷정리는 더 중요한 법! 거기! 나머지는 각자 주방에서 다시 해보도록 하고 일단은 치워요!”
틀린 말은 아니다. 요리 초보와 숙련자의 차이가 뒷정리에 있다는 말조차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 말이 나온 타이밍이 참 공교롭다. 형진이 만들어 놓은 음식들의 행방에 신입들이 의구심을 가지려는 순간 나왔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런 식으로 필요할 때 필요한 변명거리를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신입과 경력자의 차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신입들은 투덜거리며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요리, 아니 격투의 결과물을 챙기고 자신들이 벌여놓은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요리를 처음 해보는데 설거지인들 해봤을 리가 없다. 정직원들의 지도에 따라 태워먹은 냄비라든가 이런저런 식기들을 씻고 화덕의 불을 끄고 뒷정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으… 힘들다. 특별히 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피곤하네.”
“그러게.”
“감자 남은 거 좀 줘. 배고프다.”
“여기.”
새카맣게 타버린 겉면을 덜어내자 목이 좀 매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 하지만 역시 이런 걸 먹다보면 입조차 대보지 못한 형진의 요리들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안 되겠어.”
“뭐가?”
“감자 말이야.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야.”
가장 체구가 작은, 1번이라는 번호를 가슴에 달고 있는 여신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피곤하지 않아?”
“피곤하지만, 어차피 내일 식사도 우리가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잖아. 오늘 같이 했다가는 식사 준비하는 것만으로 한낮이 되어 버릴 거라고.”
“그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감자를 깎기 시작한 것부터 계산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이 대략 그 정도니까.
“얼마간이라도 미리 준비해놓으면 내일은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거야.”
“흠…”
몇몇은 귀찮다는 표정을, 또 몇몇은 그럴 듯 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일은 또다른 걸 가르쳐 줄지도 모르잖아. 괜히 헛수고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야. 1번 말에도 일리가 있어. 설령 내일 새로운 걸 가르쳐 준다고 해도 오늘 가르쳐 준걸 확실히 알면 더 쉽게 배울 수 있지 않겠어?”
“그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그저 지금 당장 다시 그 모든 것을 하기가 귀찮다는 것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문제일 뿐.
“이게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하겠지만, 우리가 할 일은 요리가 아니야. 그건 알고 하는 소리겠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듣고 있던 5번이 그렇게 반론을 꺼낸다. 그 말을 들은 1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야 당연히 알고 있어. 하지만 허세와 망상님 밑에서 할 일도 사전 지식이 없기는 마찬가지야. 우리들은 요리든 뭐든 지금까지 무언가를 만들어 본 경험이 없으니까. 당장 요리와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지금 그것을 연습하는 경험 자체는 충분히 겪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1번은 조금 흥분했는지 숨까지 헐떡거리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게다가 연수 기간 동안 어차피 다른 누군가가 만든 요리는 먹기 힘들어. 나는 기왕이면 이 기간 동안 더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어. 모두들 그렇지 않아?”
“그거야…”
확실히 일리가 있는 얘기다. 적어도 연수 기간 동안 오늘처럼 반쯤 타버린 감자만 먹어야 한다면 그건 상당한 고역일 것이다.
“나쁘지 않은 얘기군. 솔직히 새카맣게 탄 감자는 한 번 먹어본 걸로 충분하니까.”
“오늘은 일단 삶아서 냉장고라는 것에 넣어두고, 내일은 다른 요리를 시도해 보는 방법도 있지.”
“와, 그거 꽤 좋은 생각인데? 그런 거라면 나도 찬성이야!”
“나도!”
1조는 곧바로 정직원들에게 가서 감자를 달라는 요청을 했다.
“감자를? 지금?”
“네!”
“흠…”
사실 정직원들은 이미 형진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뒤였다. 감자를 받으러 오는 신입들이 있다면 원하는 만큼 주라는 식으로. 하지만 설마 정말로 감자를 달라고 오는 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까야 시키니까 마지못해 했다 쳐도, 이런 식으로 자청해서 요리를 할 만한 신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구나 한두 명도 아니고 조원 전부가 몰려오는 경우는 예상치 못했다.
“필요하다면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집 안의 주방을 이용할 때도 앞서와 마찬가지로 뒷정리를 확실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사용한 그릇은 청결하게 닦아서 보관하고, 불은 확실히 끄세요. 무슨 말인지 아셨죠?”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감자는 저기 보이는 식재료 창고에 보관중입니다. 감자만이 아니라 달리 필요한 식재료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네!”
당연한 얘기지만 그와 같은 1조의 행동은 형진이나 다른 면접관들의 시야에 확실하게 포착되고 있었다.
“제법인데.”
“그러게. 그것도 혼자 설치는 것이 아니라 조원들을 설득할 줄도 알고.”
“혹시 아까 얘기를 나눌 때 뭔가 말해둔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긴. 그새 새로운 여신을 꼬신거 아니냐는 얘기지.”
“농담이지?”
“글쎄.”
처음에는 기특하다는 듯한 반응이다가, 이내 형진에 대한 의혹 어린 시선으로 바뀐다. 물론 형진으로서는 억울하다. 귀엽다는 생각을 떠올린 적은 있지만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할 수 없군. 이 질투심 많은 여신에게 내 열렬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는 수밖에.”
“어머머! 미쳤어! 다들 있는데 지금 뭐하는… 읍!”
“그럼, 저희는 이만. 모니터링은 요정들이 이어서 할 테니까 다른 분들도 그만 쉬러 가세요.”
형진은 잽싸게 희망과 생명을 보쌈해서 공주님처럼 안아들고 도망쳤다. 공포와 죽음, 그리고 보호와 균형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다른 신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뒤를 따랐다.
“저 친구는 언제봐도 대단하군. 희망과 생명 하나만으로도 솔직히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부러움은 아니고 감탄이라기엔 뭔가 미묘한 말투로 신뢰와 헌신이 그렇게 말하자, 황혼과 망각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신뢰와 헌신님도… 희망과 생명님을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신뢰와 헌신은 펄쩍 뛰었다.
“설마! 갑자기 그런 식의 오해를 하는 건 참아줬으면 좋겠군.”
“흐음…”
신뢰와 헌신의 모습에 꽃과 바람은 피식 웃더니 그에게 이렇게 권했다.
“괜찮으시면 같이 가서 식사나 하지 않으실래요? 거짓된 천국에 꽤 괜찮은 맛집이 있는데.”
“거짓된 천국 말인가.”
“네. 진님 정도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꽤 특색 있는 곳이 많아요.”
“그런가.”
신뢰와 헌신은 잠시 머뭇거렸다. 끌리긴 하는데 이대로 덥썩 수락해 버리는 것도 좀 그렇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생각 없으시면 그냥 저희들끼리 가고요.”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꽃과 바람의 말에 신뢰와 헌신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멈추고 얼른 백기를 들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권하는데 싫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어서 가지. 요리하는 것만 보고 먹지를 못했더니 배가 고프군.”
“네. 그럼 가실까요.”
이제는 꽃과 바람도 황혼과 망각도 신뢰와 헌신이 당황한 순간 말이 길어진다는 것 정도는 파악한 상태였다.
그렇게 연수 첫날이 끝나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1조는 어제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감자 삶기의 오의를 깨달았고, 받아온 감자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삶아서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었다. 그들의 펜션에 비치된 냉장고는 일반적인 냉장고와는 달리, 음식을 단순히 차게 보관하는 것을 넘어 어느 정도 원래의 상태를 보존시켜주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음식을 만들어진 상태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인벤토리 수준은 아니더라도, 겉면의 수분이 촉촉하게 그대로 남아 있는 정도의 상태는 유지시켜줄 수 있는 것이다.
“스프랑 샌드위치 정도면 될까.”
“그게 좋겠어. 그거라면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을테고.”
어제 밤에 좀 고생을 하긴 했지만, 덕분에 1조는 다른 조들과는 달리 좀 더 풍성한 아침 식사를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다.
“맛있다.”
“어제 그 고생을 한 게 쓸 데 없는 짓은 아니었던 셈이군.”
“설거지는 내가 할까.”
“부탁해.”
그렇게 화기애애한 1조와는 달리, 다른 조들은 귀찮아서 아예 아침을 굶거나, 식사 준비를 하다가 티격태격하며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원래부터 그리 규칙적인 생활을 한 적이 없었던 신들에게 있어서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모두 편안한 밤 되셨습니까?”
“네…”
어제의 활기찬 대답과는 어쩐지 좀 거리가 있다. 몇몇 신들은 아직도 잠이 덜 깨서 선채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우선은 잠부터 깨야겠군요. 간단하게 조깅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조별로 모여주세요.”
“네에…”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형진이 시키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느릿느릿 줄이 세워진다. 물론 그렇게 늑장을 부리는 모습 또한 위성을 통해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 요정들에게 하나 하나 체크되어 가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앞열부터 따라오세요.”
당연한 얘기지만 신들은 이런 식의 조깅 같은 것도 해본 일이 없다. 처음에는 잠결에 흐느적거리면서 따라가다가도,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뛰다보니 어느새 숨이 헉헉 차오른다. 덕분에 별로 먼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다시 펜션으로 돌아오자 땀을 바가지로 흘리기 시작한다.
“많이 더운가 보군요.”
“네.”
꾸벅꾸벅 조는 이는 없어졌지만, 대신 기진맥진한 목소리가 돌아온다. 고작해야 오분도 뛰지 않고 이 모양이라니. 아바타를 운용하고 있으면서도 이 정도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형진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씨익 웃고는 다시 말했다.
“그럼 오늘은 바다를 즐기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겸사겸사 식재료도 구할 겸.”
바다를 즐긴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해수욕을 떠올릴 만한 말이다. 하지만 뒤에 덧붙여진 말이 뭔가 심상치 않다.
“식재료를 구한다고?”
“바다에서?”
몇몇 신들은 그런가보다 하는 표정을 짓고 있고, 또 몇몇 신들은 불길함을 느꼈으며, 또 몇몇 신들은 형진이 오늘은 또 무엇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 고작 이틀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이런 식으로 반응이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가볼까요.”
형진의 말에 따라 정직원들이 도구를 챙겨서 앞장을 서고, 신입들은 미적거리며 그 뒤를 따른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