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25
00725 164. 연수 =========================
공간을 넘어선 신들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하얀 백사장과 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위를 떠가는 하얀 솜털 같은 구름들의 풍경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거진 숲 위로 높은 산 하나가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높은 산인지 정상 부근에 만년설이 쌓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제 별궁 가운데 하나가 자리 잡은 섬입니다. 앞으로 한 달간 여러분은 이곳에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를 익히게 될 것입니다.”
“와아…”
연수라길래 좁은 방 같은 곳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공부 같은 걸 하게 될 거라 예상했던 신들은 아무리 봐도 공부보다는 휴가나 여행지로 더 알맞을 듯한 주위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별궁은 저쪽입니다. 일단 숙소 배정을 해야 하니 모두 함께 가도록 하죠.”
“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입 모아 대답하는 모습이 마치 알에서 막 깨어난 오리 새끼들 같다. 하기야 신앙이나 공헌도를 지니지 못한 신은 요정보다도 못한 존재. 아바타를 얻긴 했어도 당장 권능을 쓸 수 없으니 그냥 평범한 인간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신입들을 이끌고 해변을 조금 걷자, 긴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는 작은 부두와 등대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안쪽에 조성된 펜션 단지가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예쁘다.”
“정말.”
아기자기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진 펜션들이 주욱 늘어서 있는 모습에, 신들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면접 당시의 조대로 건물 하나씩을 쓰시면 됩니다. 각 건물 앞에 번호를 붙여두었으니 먼저 자신의 숙소 위치를 확인하도록 하세요. 정직원 여러분들은 신입 여러분이 자신의 숙소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정직원들은 우선 신입들을 조별로 불러 모았다.
“우선 조별로 모여 주십시오! 자신의 번호는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거기! 멋대로 움직이지 말고 우선 모여요!”
먼저 인원점검부터 한 다음 각조별로 미리 배정된 펜션으로 안내되었다.
“건물 당 침실과 화장실이 둘씩 마련되어 있으니 남녀로 구분해서 방을 나눠 쓰시면 됩니다. 거실과 주방은 공용이고 지하에 수영장이 있으니 원할 때는 언제든 쓰셔도 좋습니다. 게임룸과 연회장은 저쪽에 마련되어 있으니 언제든 원할 때 이용하시면 됩니다. 이건 각 건물에 비치된 여러 가지 도구들에 대한 사용 설명서입니다. 한 번씩 읽어보도록 하세요. 질문 있습니까?”
반지와 거울의 말에 1번이라는 숫자를 가슴에 달고 있는 작달막한 체구의 여신이 얼른 손을 들고 물어 보았다.
“주방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식사는 조별로 각자 해먹어야 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물론 모두가 함께 하는 연회는 밤의 신께서 준비를 하시겠지만, 그 외의 경우라면 여러분이 직접 식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그게… 저희들은 요리를 해본 적이 없는데요.”
“바로 시작하라는 건 아닙니다. 기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 나갈테니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마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무작정 식재료만 던져주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반지와 거울은 다시 거실 한 켠에 놓여져 있는 가방 하나씩을 신입들에게 건넸다.
“그 안에는 당분간 여러분이 사용하실 속옷, 세면도구, 수건 등을 비롯한 각종 물품들이 들어있습니다. 하나씩 챙기십시오. 방에 들어가시면 옷장에 운동복이 들어 있을 겁니다. 짐의 정리가 끝나면 운동복을 갖춰 입고 다시 광장으로 나와 주십시오.”
“네!”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뵙겠습니다.”
반지와 거울이 다른 조를 안내하기 위해 펜션을 나가자, 1조의 조원들은 가방을 들고는 두리번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1조는 여신이 둘이고 나머지 셋은 남신이었다. 그들은 먼저 침실을 확인하고는 두 개의 방이 크기나 설비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적당히 하나씩 선택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각 방에는 커다란 이층 침대가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이층침대라고 하면 연상되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 가운데 계단이 있고 양쪽으로 하나씩 침대가 있는 형태다.
침대 반대편에는 옷장과 화장대가 놓여져 있었는데, 안을 열어보니 긴팔 셔츠와 반바지 하나가 세트로 걸려 있다. 입어보니 바지는 키가 작은 1번이 입었을 때 무릎이 살짝 드러날 정도의 길이고, 상의는 래시가드에 가까운 느낌이다.
“얼른 갈아입자.”
“응.”
여신 둘이 얼른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자, 건너편의 침실에서 나오던 남신들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남신들은 의외로 볼륨이 있는 여신들의 모습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걸었다.
“벌써 가는 거야?”
“응. 다시 광장으로 나오라고 했잖아.”
그러자 느긋하게 침실에서 나오던 다른 남신이 말했다.
“내 생각엔 조금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은데.”
“왜?”
“다른 신들이 숙소를 확인하고 옷 갈아입고 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까.”
“아… 확실히 그렇겠네.”
“먼저 나가서 멀뚱히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 건물 안의 도구 같은 걸 먼저 확인해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어차피 다 우리가 써야 할 것들이잖아.”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어떻게 보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이런 공동 생활에서는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의견 일치를 본 신들은 얼른 펜션 안에 비치된 도구나 시설들을 확인했다.
“이, 이거… 뭔가 끝내주는데?”
“그러게.”
그들은 욕실 안에 비치된 월풀 욕조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물살에 놀라고, 어떻게 한 것인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채널의 방송을 수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텔레비전에 놀랐으며, 또한 지하실에 마련된 수영장의 모습에 놀라다가, 커다란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는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사용 설명서야?”
“응. 어디보자. 이게 세탁기라는 건가 본데.”
“세탁기?”
“응. 옷을 자동으로 세탁해주는 물건이래.”
“이런 것도 전부 인간들이 만들어낸 물건인가.”
“아마도.”
그런 식으로 비치된 도구나 시설들에 대한 예습을 하고 있자니, 바깥을 살피던 남신이 말했다.
“슬슬 모이기 시작하는데. 우리도 나가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어디. 정말이네. 그럼 나가볼까.”
1조의 신들이 펜션에서 나와 광장에서 조금 기다리자, 마찬가지로 운동복을 챙겨 입은 형진과 대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숙소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네!”
신입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하자,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언가를 잔뜩 꺼내 놓았다.
“좋습니다. 그런 우선 간단한 것부터 시작을 하도록 하죠.”
“이건…”
“식재료입니다. 연수 기간 동안 여러분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료들을 어떻게 손질하고 어떻게 요리하는지, 간단하게나마 배워야겠지요. 이것은 연수 기간 동안 여러분이 먹을 야채들입니다. 정직원 분들은 각 조별로 재료들을 나누어 주세요.”
“네.”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시작부터 이런 식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조금은 당황스럽고, 또 조금은 어리둥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형진은 신입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감자칼 하나를 손에 들고는 손수 감자 깎는 것에 대한 시범을 보였다.
“우선 감자를 깎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니니 차근차근 지켜보고 따라하시면 됩니다.”
곧바로 느긋한 손놀림으로 감자의 껍질을 벗기고 씨눈이 있는 부위를 도려낸 뒤 차가운 물에 담가 놓는다. 각각의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일이 끝나자, 곧바로 정직원들에게 잘 가르쳐 주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신입 연수라고 하면 일단 조별 과제 같은 것을 가장 먼저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조별 과제는 어떻게 보면 만악의 근원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조별 과제를 두고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표현하는 경우까지 있겠는가. 어떤 교수는 한국과 일본에서 유독 왕따 문제가 심각한 이유가 바로 조별 과제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 식재료를 다듬는 것부터 차근차근 요리를 가르치는 것도 결국은 그런 조별 과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한 번 하고 나면 그냥 치워버리는 일반적인 조별 과제와는 달리, 그 결과물을 만든 이들이 직접 먹어야만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조별 과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일이긴 하지만, 많은 이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개성이나 성향을 파악하는데 있어서는 이것만큼 훌륭한 방법도 찾기 힘들다. 물론 여기서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들의 행동을 문자 그대로 일거수일투족 완벽하게 살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각자가 지닌 개성이나 성격, 성향 같은 부분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활용하기 어렵다. 연수 기간 중에 이런 식의 일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당장 신입 사원들에 대한 인권 문제가 제기되어 회사 자체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이곳은 지구가 아니고, 참가자들 또한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아직 지구의 문화를 모르고 인권이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 따지는 것도 뭘 알아야 따지는 법 아니겠는가.
게다가 형진에게는 수많은 위성들을 통해 수집된 정보들을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 기반이 마련되어 있고, 그의 반려 가운데 하나는 무려 관음증 여신이다. 잡신들로서는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자, 그럼 모두 시작해 주십시오.”
“네!”
대답은 기운차게 했지만, 식재료 다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온 이들에게 있어서 이런 단순 반복 작업은 처음 몇 번은 몰라도 한참동안이나 공들여 하기에는 여간 지루한 일이 아니다.
곧바로 여러 가지 유형의 성격들이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먼저 일을 주도하는 이와, 가만히 따라가는 이, 그리고 그렇게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이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이들은 일을 빨리 배우는 이와,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잘 따라가지 못하는 이, 그리고 별로 배울 생각 자체가 없는 이로 다시 나뉜다.
똑같은 일을 똑같이 가르쳐도 누군가는 질문만 하고 누군가는 답변만 하는 경우가 생긴다. 소소한 일도 즐겁게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바로 지루해 하는 이들도 있다.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네.”
“신들도 권능을 빼고 보면 결국은 별개의 인격체일 뿐이니까.”
형진을 비롯한 면접관들은 신입들이 보여주는 행동 하나 하나를 체크해서 데이터 베이스에 착실하게 기록하고 정리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완벽한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개인은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고, 각기 다른 성격에 따라 다루는 방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일반적인 인간도 그러할진데, 신들이야 말할 것도 없는 일. 지금은 힘이 없어서 고분고분 말을 듣는다 해도, 나중에 힘을 갖추고 난 뒤에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그 모든 상황에 면밀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의 데이터 베이스는 미리미리 충실하게 채워두는 편이 좋다.
“널 적으로 삼지 않은 것이, 내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군.”
신뢰와 헌신은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교단을 이끄는 몸이고, 추종자들을 부리는 입장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면밀하게 조직을 통솔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신들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그들이 조직을 통솔하는 방법도 저마다 다르게 마련이지. 이런 방식은 나에게 걸맞은 방법이고, 너에겐 너에게 걸맞은 방법이 있게 마련이야. 어떻게 보면 그게 그 신이 거느린 조직의 특징일 수도 있는 거고.”
“하긴. 그것도 그렇군.”
아직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주시자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신뢰와 헌신이 거느린 수호자나 공포와 죽음이 거느린 집행자, 그리고 희망과 생명이 거느린 사제들은 모두 저마다 조직 특유의 기풍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 형진이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아침이네요. 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