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89
00789 180. 가속 =========================
자신을 바라보는 잉여신들의 시선을 마주한 채, 형진은 일단 의자를 만들어 자리에 앉았다.
“얘기가 다소 길어질지도 모르니 일단 앉아.”
“네.”
잉여신들은 조심스럽게 형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주도권은 형진에게 완전히 넘어간 상태. 반항은 꿈도 꾸지 못한다. 형진은 이미 대신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이고, 이들은 신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힘은커녕 신격조차 온전하지 못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알겠지만, 지금의 너희들은 밖에 나가봐야 좋은 먹이감이 될 뿐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는 상태니까. 하지만 그런 너희들이라도 커다란 타격을 받으면 신격을 떨어뜨리게 될 테고, 그런 신격들을 일반적인 존재들이 취득하게 되면 신에 버금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만약 그 상태로 신들의 인정마저 받으면 반신이 되어 버리고, 새로운 신격이라도 얻어버리면 그 순간 이들은 너희들을 넘어서는 신이 될 수도 있다. 즉,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 너희들은 그 누구보다도 손쉬운 먹이감이 되어 버린다는 얘기다.”
잉여신들은 침울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엘리시온에 죽치고 있는 이유도 결국 이것 때문이다.
형진은 그들을 돌아보고는 다시 말했다.
“그래서, 너희들이 바깥 세상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도움이 필요하다. 물론 그런 부분이야 보호 같은 권능이 담긴 성물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만, 물건이란 결국 몸 밖의 것이고 그것은 바꿔 말하면 언제든 잃어버릴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따라서 그런 식의 물건과 함께 너희들이 마음 놓고 외부에서 활동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그러자 문득 한 명이 손을 번쩍 들고는 질문을 던졌다.
“조력자라면… 추종자와 비슷한 것입니까.”
조력자라는 말에는 그런가보다 했지만, 추종자라는 말에는 잉여신들 모두가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제대로 신 노릇도 못하는 주제에 어엿한 신으로서의 증명이나 다름 없는 추종자라는 말에는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다.
하지만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건 좀 다르지 않을까.”
“어떻게 말입니까.”
“추종자란 너희들의 문양을 받고, 오직 너희들의 의지를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말한다. 하지만 조력자는 각자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너희들을 도울 뿐이야. 만약 너희들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충분한 보호를 보장하겠지만, 해악이 될만한 존재라고 여겨진다면 즉각 거부하고 쫓아내겠지.”
“아… 그렇… 군요.”
잉여신들은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형진은 그런 그들에게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추종자에 대한 것은 너희들에게 달린 일이야. 만약 너희들이 노력하여 그들에게 신뢰를 얻게 된다면, 그래서 너희들의 존재가 그들에게 있어 필요불가결한 존재가 된다면, 그들은 너희들의 문양을 받아들이고 추종자가 되기를 소원하게 될 것이다. 이건 내가 강제할 수도 없는 부분이고, 또한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했습니다.”
형진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소개해줄 조력자들은 다름 아닌 환수들이다. 들어본 적이 있는가.”
“…”
잉여신들은 서로를 돌아보았지만, 환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들은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어렴풋이 알고 있어서 차마 아는 척을 하기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고.
어쨌든 잉여신들이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어 보이자, 형진은 환수들에 대한 설명을 먼저 시작했다.
“환수들은, 이 엘리시온이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고대의 종족들이다.”
그 말에 신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럼… 신들보다도 먼저 탄생한 종족이란 말씀이십니까?”
“맞아.”
형진은 고개를 끄덕여 그 질문에 긍정의 뜻을 표하고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들은 일반적인 생물과는 다른 체계를 통해 탄생했으며, 때문에 그 생태 또한 일반적인 생물과 전혀 다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신과 보통의 생물의 중간쯤에 위치한 존재들이라 할 수 있지. 그래서 과거의 인간들 중에는 그들을 신으로 섬기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다. 아직 교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신보다도 훨씬 강한 존재들이고, 권능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매우 특별한 이능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런… 존재가 있었다니.”
잉여신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리시온에만 콕 처박혀 있었던 그들로서는 한정적인 조건 하에서의 일이긴 하지만 신을 능가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말 자체가 커다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제대로 교단을 갖춘 신이라면 환수들에게 꿀릴 이유가 없어. 물론 너희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지만.”
“…”
그러나 이어진 말에 잉여신들은 다시 침울한 기색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어느새 형진의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면서 차츰 조련되어 가고 있었지만,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형진은 침울해 하는 잉여신들을 바라보며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던졌다.
“내가 준비한 조력자란, 바로 그 환수들이다.”
잉여신들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러자 형진의 얼굴은 대번에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겠나.”
“물론… 없지요.”
“죄송합니다.”
굳어 버린 형진의 표정을 본 잉여신들은 급히 사과했고, 그렇게 사과를 듣고 나서야 형진은 다시 굳은 얼굴을 풀고는 말을 이어갔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들은 신과 인간의 중간자적인 존재야. 그래서 신처럼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또한 인간처럼 수명을 지니고 종족을 번식시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지게 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통의 인간이나 생물들처럼 쉽게 수를 늘려갈 수는 없어. 신에 비해서는 쉽다고 해도, 일반적인 생명들보다는 훨씬 어렵고 고된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후손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 만약 그들이 보다 쉽게 수를 불려 나갈 수 있는 존재였다면, 아마도 세상은 인간이 아닌 환수들로 가득 차 있었을 거야.”
형진은 그렇게 설명을 이어가다가 다시 잉여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그들의 조력을 받고 싶다면, 그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만 한다.”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간단해. 그들의 아이들이 보다 빠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거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수십 수백년이 걸려야 비로소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나는 환수들의 아이를 너희들이 맡아 기르는 거라고나 할까.”
형진은 일부러 환수들과의 결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완전한 강제는 아니더라도, 지금 여기서 그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환수들을 반려로 맞이하라고 강요하는 일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네?”
“그, 그 말씀은…”
“저희보고 보모라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설마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되물은 그들이었지만, 형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
잉여신들은 아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형진은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너희들이 비록 신격이 훼손되어 제대로 신 노릇을 하지 못하는 처지라고는 하지만, 신이라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아. 그에 반해 환수들은 일반적인 생명체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 성장에 많은 양의 정기를 필요로 하게 되지. 너희들이라면 환수들의 아이가 성장하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양질의 정기를 원활하게 공급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면, 본래 환수들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성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환수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얘기가 된다. 즉, 환수들이 지닌 유일한 약점인 수적인 열세를 보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되는 셈이지.”
“…”
“앞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너희들과 환수들 사이의 동등한 거래다. 너희들은 그들의 아이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그들은 너희들이 외부에서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맡게 되는 거다. 훌륭한 공생 관계가 성립되는 셈이지.”
형진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좀 더 은근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너희들이 이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나 또한 보상을 줄 것이다.”
“보상이라면…”
“우선 너희들이 환수들의 영역에서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아바타를 빌려 줄 것이다. 또한 차후 너희들이 환수들에게서 인망을 얻어 그들을 추종자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너희들이 교단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이런 저런 것들을 지원해 줄 수도 있다.”
잉여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아바타의 지원 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정도인데, 추종자나 교단에 대한 지원까지 있다니 그들로서는 절로 군침이 도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형진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나는 너희들을 엘리시온에서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너희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보상일지도 모르지.”
“아…”
이건 꽤 교묘한 얘기였다. 말만 들으면 형진이 잉여신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가 들이는 비용이라고는 아바타 뿐이다. 그나마도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는 것이니, 나중에 다시 되돌려 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공헌도가 지불되면 실질적으로 형진은 공헌도 한 푼 안들이고 잉여신들을 부려먹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잉여신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그저 감격할 뿐이었다. 하긴 이제껏 엘리시온에만 틀어박혀 있던 이들이 닳고 닳은 형진의 세 치 혀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들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다가올 장미빛 미래에 들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역할이라고는 하지만, 성심껏 잘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미래에 자신들의 추종자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두 가지 신이 존재한다. 추종자가 있는 신과 그렇지 않은 신. 그 정도로 추종자를 거느리는 일은 신들에게 있어 중요한 가치 기준이다.
게다가 처음에 형진도 말하지 않았는가. 잘하면 유명무실해진 신격에 새로운 의미가 추가되어 확장될 수도 있는 일이다.
비록 다른 이들과 교류가 부족한 그들이긴 했지만, 물벼룩과 클로렐라가 신격의 확장을 이루었다는 소문 정도는 듣고 있었다. 그녀의 신격 확장에서 형진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금방이라도 자신들의 신격이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일 것 같은 기분이 되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때.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은근하게 형진이 묻자, 잉여신들은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머리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형진은 곧바로 설득이 성공했음을 환수들에게 알렸다.
“일단은 보모 역할로 한정해 두었다. 그 외의 부분은 너희들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감사합니다. 신경 써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세 환수들이 그렇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자,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아, 그리고… 이번에 일하러 가는 이들의 관리 말인데. 내 생각엔 미엘과 하엘에게 맡겨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미엘님과 하엘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일단 환수 아이들을 돌보는데 있어서 왕성 최고의 전문가들이니 얼치기 잉여신들에게 일을 가르치는 데도 도움이 될 테고, 무엇보다도 내 아내들이니 혹시라도 신이랍시고 깝죽대는 녀석이 나오지도 않을 거야.”
형진의 말에 세 환수들은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과연. 그렇군요.”
“확실히, 그 분들이라면 신들도 함부로 하지는 못하겠지요.”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분들은 공주님들을 돌보셔야 할 텐데.”
소야의 걱정 섞인 물음에 형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잊었나. 그녀들은 흑요호야. 필요하다면 동시에 아홉이나 되는 분신을 사용할 수 있지. 둘이 합해 열여덟. 그들이 마음먹고 살펴보기 시작하면, 나도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라고.”
“그, 그렇군요.”
세 환수들은 어쩐지 이번에 새로 보모 일을 하게 될 신들의 운명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지만, 구태여 그것을 입에 담거나 하지는 않았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