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88
00788 180. 가속 =========================
세 환수들은 바로 자신의 종족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 이전에 형진이 왔을 때처럼 대표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지금 우주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그런 흐름에서 환수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냥 조용히 애나 키우며 살면 안 되는 건가.”
“그러게. 솔직히 말해서 종족의 미래니 뭐니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지도 잘 이해가 안 가고.”
누가 신들과 같은 뿌리를 지닌 존재들 아니랄까봐 설명을 듣고서도 그렇게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 일의 주체는 다름 아닌 형진. 어머니라 불리는 포트니아 테론이 그들을 맡긴 신이 자신들을 위해 준비한 일을 그냥 모른 척 씹어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니 그 역할을 맡을 이들은 제외하고, 당장 별다른 일이 없는 자들부터 거짓된 천국이란 곳에서 일을 하도록 만드는 편이 좋겠어.”
“찬성. 종족의 미래란 건 따지고 보면 결국 아이들의 미래를 말하는 거야. 그 아이들이 자라서 스스로의 일을 결정할 시기가 되었을 때, 다른 종족들에게 무시당하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나 역시 그건 동감이야.”
사회적인 부분이 다소 결여되었다고는 해도, 어쨌든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다 보니 귀찮아하는 기색이 있긴 해도 거짓된 천국에서 신들을 돕는 것에 대한 논의 자체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문제는 의미가 상실되어 신격으로서의 가치마저 잃어버린 잉여신들을 그들의 사회에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괜찮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색이 신인데, 여기서 왕처럼 군림하려고 들면 곤란하지 않겠어?”
“아무리 많은 아이들을 속성으로 키워낼 수 있다 쳐도, 그 일을 제외하면 별로 쓸모도 없을 것 같은 존재들을 떠받들며 사는 건 역시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반푼이든 제대로 된 신이든 누군가가 머리 위에 올라앉아 있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 환수들은 자유로운 종족이야. 어머니나 그 분의 뜻을 받드는 밤의 신이라면 몰라도, 다른 신들까지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 문제는 신중할 필요가 있어. 자칫 종족의 미래를 생각한답시고 우리 아이들 모두를 노예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니까.”
노예라는 말이 나오자 환수들의 표정은 신중해졌다. 미래라는 말의 중대함을 지닌 심각성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신들을 우리들의 사회에 받아들이는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는 나 역시 동의해. 반려를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우선권은 우리가 가져야만 해. 밤의 신께 그런 부분을 잘 설명해 줬으면 하는데.”
“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밤의 신께서도 신중하게 고려해주실 거라고 생각해. 어쨌든 그 분은 밤의 신이기 이전에 흑요호 아이들을 기르는 아버지이기도 하니까.”
“혹시 모르는 일이니 내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
“그래. 부탁한다. 규설.”
규설은 다시금 왕성으로 돌아가 형진에게 환수들의 우려와 의견들을 종합해 보고했다.
“무슨 얘기인지 알겠다. 충분히 그들로서는 우려할 만한 내용이라고 본다.”
“그럼… 이해해 주시는 건가요.”
“사실 이건 누가 더 아쉽다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해. 하지만 어떻게 교섭하느냐에 따라 결과 역시 확연하게 달라지겠지. 그 부분에 있어선 나에게 맡겨 두도록.”
“감사합니다!”
팔은 안으로 기우는 법이라고, 형진이 환수들 쪽에 더 신경을 써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 말마따나 그가 흑요호 아이들을 기르는 아버지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환수들의 우려와 요구 조건을 전해들은 형진은 그제서야 엘리시온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곳에 처박혀 있는 신들을 모두 불러보았다.
[집합. 안 오는 놈은 엘리시온에서 쫓아낸다.]꾸벅꾸벅 졸면서, 하는 일이 없이 뭉개고 있던 잉여신들은 그와 같은 형진의 기별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헉!”
“이게 무슨 소리야. 쫓아내다니?”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해?”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방금 그건 도대체 뭐지?”
쫓아낸다는 말은 둘째 치고 갑자기 들려온 강압적인 메시지에 잉여신들은 당황했다.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오랜 세월 동안 엘리시온 안에서 뭉개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메시지를 받아본 건 이번이 처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설마 자신들을 엘리시온에서 쫓아낼 수 있을까 싶기는 해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하는 관계로 잉여신들은 결국 뭉기적거리며 형진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쯧쯧…”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나타난 잉여신들의 모습에 형진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신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명목상의 일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스스로 신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격 자체가 유명무실해진 상태이니 다른 신들과 마주치는 것 자체가 꺼려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게 다른 신들과 마주하는 것을 꺼리다보니 결국 다른 이들의 이목이 닿지 않는 곳에 처박혀 있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냥 운이 나빴다고 할 수도 있다. 이미 엘리시온 밖으로 나간 다른 신들도 따지고 보면 지금 형진의 눈치를 보고 있는 잉여신들과 그리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그런 식으로 처박혀 있어도 신격에 손상이 가지 않는 자들이라는 정도. 이들은 신들 가운데 흙수저라 할 수 있는 수호신들 중에서도 특히 운이 없는 존재들인 셈이다.
“누구지?”
“글쎄…”
“저런 신이 있었나?”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존재감이 엄청난데.”
“정말 그러네. 부럽다. 나도 저런 신격이 있었으면 지금 같은 꼴은 아니었을 텐데.”
잉여신들이 그렇게 쑥덕거리는 것을 듣고 있자니 형진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는 처음부터 엘리시온에서 신격을 타고난 존재도 아니었고, 지금 가지고 있는 신격 또한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획득하고 또한 확장시킨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한심한 잉여신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는 그런 식의 욕구를 꾹 억눌렀다. 형진으로서는 당연한 얘기일지 몰라도, 그런 당연한 얘기도 이들에게는 그저 듣기 싫은 말일 뿐이다. 그렇게 듣기 싫은 말을 자꾸 하는 이를 꼰대라고 부르던가. 나중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는 않으니 지금부터 미리미리 조심할 필요가 있다.
“모두 모였군.”
형진은 가만히 잉여신들을 돌아보고는 다시 말했다.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밤의 신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자신의 소개를 하자 잉여신들은 깜짝 놀랐다.
“헉!”
“밤의 신이라고?”
“뭔데? 밤의 신이 누군데? 알아?”
“일전에 얼핏 들었어. 원래 인간이었는데, 말도 안 되는 신격을 얻어서 대신의 반열에 오른 이가 있다고.”
“뭐? 그게 말이 돼?”
조심스럽게 형진의 눈치를 보던 잉여신들은 순식간에 장바닥에 모여든 아줌마들처럼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도 다른 신들과 교류가 별로 없던 이들이다 보니, 이런 이슈에도 크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용.”
형진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동안 일상적인 대화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도 생긴 것인지 잉여신들은 얘기를 멈추려 들지 않았다.
“조용!”
“히익!”
결국 존재감을 담아 큰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잉여신들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입을 다물었다. 원래부터도 존재감이 장난 아닌데, 일부러 그것을 증폭시켰으니 제대로 된 힘은커녕 신격조차 유명무실한 상태의 잉여신들로서는 감당할 도리가 없다.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흘깃거리는 잉여신들을 보며 형진이 다시 말했다.
“오늘 이렇게 너희들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은, 앞으로 엘리시온의 운영 정책이 변경되기 때문이다.”
겁에 질리긴 했어도 형진의 그와 같은 말에 잉여신들은 바로 반응했다.
“우, 운영 정책?”
“그런 것도 있었나?”
지금껏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세월을 엘리시온 안에서 뭉개고 있었지만, 따로 운영 정책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조차 없다.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엘리시온은 만들어진 이후로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으니 운영 정책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형진은 잉여신들이 그렇게 반응하거나 말거나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엘리시온은 아무런 대가없이 무상으로 신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왔지만, 내가 그 운영권을 손에 넣은 이상 그렇게 방만한 상태로 놔둘 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선언한다. 너희들이 엘리시온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할 것이다.”
순간 잉여신들은 정수리에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마, 말도 안 돼!”
“엘리시온은 어느 일개인의 것이 아니야! 대가라니!”
“이건 폭거다!”
하지만 그들의 옹알거림은 뒤이어 이어진 형진의 일갈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시끄러! 싫으면 나가!”
“…”
중이 싫으면 절이 나가는 법이라든가. 아니, 원래는 그 반대가 맞는 말이겠지만 지금 상황은 이쪽이 오히려 더 맞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엘리시온은 본래 외부에서 힘들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신들에게 무한한 안식을 선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곳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않고 뭉기적 대는 잉여신들만 드글거리는 곳이어서는 의미가 없다.
이전에 다른 신들을 밖으로 끌어낼 때만 해도 형진은 이런 식의 강압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엘리시온에 기거하는 신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고, 또한 그런 식의 우악스런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끌어낼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형진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그런 식의 방법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엘리시온에 뭉개고 있는 이들이다. 이미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끌어낼 방법이 없으니, 마침내 극약처방이라 할 수 있는 방법을 쓰게 된 것이다.
보통의 신들이라면 극렬하게 반발하며 타락이든 뭐든 해서라도 형진의 의도에 저항하려는 생각을 떠올렸겠지만, 이들은 반응조차 보통의 신들과 달랐다.
순간 그들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신격이라도 온전하면 뭔가 해볼 도리라도 있겠지만, 그들은 그렇지도 않다. 엘리시온에서 쫓겨나는 순간 문자 그대로 요정보다도 못한 신세로 전락해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이미 의미가 없어진 신격에 손상이라도 입게 되면 어떻게 될까. 엘리시온에 돌아올 수도 없으니 그 끝없는 고통을 그대로 영원토록 감당해야만 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지옥보다도 더 심한 형벌일 수도 있었다.
그들은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막막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동정을 바라고 하는 행동 같은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의 신세가 너무 처량해서 감정을 추스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 뿐이다.
“쯧쯧.”
반발도 발악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잉여신들의 모습에 형진은 혀를 찼다. 이 정도까지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한 존재들이 정말 신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존재들이라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다. 대부분의 신들을 엘리시온에서 끌어내긴 했어도, 포트니아 테론이 내준 과제에는 이들 또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지. 원한다면 엘리시온에 머무는데 드는 비용 정도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들어보겠나.”
“그, 그게… 정말입니까?”
“물론.”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신격이 유명무실해진 너희들이라도, 충분히 쓸모 있음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일이야. 운이 좋다면 평생을 함께할 반려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고, 정말로 운이 좋다면 유명무실해진 신격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게 되겠지. 어때. 한 번 들어보지 않겠나.”
“…”
순간 잉여신들은 다시 한 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이렇게 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상태에 만족하며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잉여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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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밥 먹고 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