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04
00804 184-1. 밀월 =========================
잠시나마 다른 것을 잊고 단둘이 밀월을 즐기고 있었지만, 아직 밤에 사랑을 나누는 일은 자제하고 있었다. 희망과 생명이 각별하게 그녀의 몸을 보살피고 있고, 성녀이기 때문에 회복되는 기간이 대폭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출산 자체가 여성의 몸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인 것만큼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어쩐지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느끼던 심정적인 부담도 함께 여행을 다니는 와중에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그녀 스스로도 이제는 서서히 그와의 관계를 원하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씻어요.”
불타는 밤 어쩌고 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찌 보면 이 둘의 관계에서는 일상적인 대화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유아의 입에서 같이 씻자는 말이 나온 것은 그런 식의 일상적인 대화나 농담이 아닌, 명백한 신호이다.
“정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유아는 살짝 눈을 피하며 다시 말했다.
“싫음 말구요.”
“아니, 아니. 그럴 리가.”
달덩이 같은 예쁜 마누라를 매일 밤 품에 안기만 한 채 잠드는 건 어지간한 인내심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형진은 자타공인의 변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꾹 눌러 참아왔던 것은 출산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자신이 옆에 없는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치러낸 그녀에 대한 배려였다.
방금 전 여유롭게 농담을 건네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형진은 허둥거리며 자신과 그녀의 목욕을 준비했다. 그렇게 평소답지 않은 형진의 행동에 유아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렇게 웃는 와중에도 뒤이어 찾아올 일들에 대한 기대로 얼굴이 붉어지는 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자, 준비되었습니다. 여왕님.”
“수고하셨어요. 기사님. 쿡쿡.”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주인을 모시는 충실한 기사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경건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그녀의 시중을 든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몸을 수그린 모습으로 신발을 벗기고, 신고 있던 양말을 벗겨서 한쪽에 놓는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던 유아는 그런 형진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그가 얼마나 자신을 아끼고 있는지 조심스러운 손길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형진이 옆으로 다가와 그녀가 입고 있던 원피스의 단추를 풀기 시작한다. 유아는 그의 손가락이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하자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평소의 형진이라면, 몸을 씻기도 전에 바로 밤일에 돌입할 수도 있을 터. 이미 괜찮다고 신호까지 보낸 마당이니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마음의 대비를 해두어야만 한다.
“예쁘다.”
“…”
단추가 모두 풀리고 뽀얀 살결이 어깨 아래로 드러나자 형진은 그렇게 작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유아는 방금 전까지 간지럽다는 듯이 키득거리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제 와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부끄러워진 것이리라.
걸치고 있던 하얀 원피스를 벗자 부드러운 면 소재의 속옷이 남았다. 형진은 경건한 손길로 마지막 남은 최후의 보루마저 천천히 무장해제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자, 유아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엔 제가…”
감히 눈을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떨리는 그녀의 손가락이 형진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처음 관계를 가지는 연인이라면 모를까. 이미 아이까지 낳은 부부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랜 만이라서 그럴까. 둘은 그것만으로도 마구 두근대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서로의 옷을 벗겨주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가만히 손을 내밀었고 유아가 그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마치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듯한 모습으로 손을 잡은 두 사람은 욕실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곳의 샤워기는 지구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작은 구멍을 여러 개 뚫어 작은 물줄기가 쏟아져 나오게 만들어진 지구의 그것과는 달리, 문자 그대로 작은 폭포를 구현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 낭비가 만만치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애초에 이 별장은 최고위급의 신분을 지닌 신혼부부용으로 만들어진 곳이니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설비를 갖춰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벽에 마련된 장치를 작동시키자 마법진이 활성화되며 벽으로부터 폭포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유아는 왕성에 비치된 욕실을 통해 이미 샤워라는 이름의 문화에 꽤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이런 방식의 샤워기는 그녀로서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왕성의 욕실도 이렇게 바꿔 볼까?”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은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하긴. 이런 식이면 몸을 씻는다기 보다는 물놀이 하는 기분이겠네.”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니 조금이나마 어색했던 기분이 사라지는 것 같다. 천천히 손을 잡고 폭포 속으로 들어가 물을 맞았다. 적절하게 조절된 수온의 물이 머리와 어깨 등을 때리며 지나가는 느낌이 신기하다.
“돌아서봐.”
“네.”
가만히 서로의 몸을 쓰다듬으며 물이 골고루 묻도록 도와주던 두 사람은 번갈아 가며 상대의 머리를 감겨 주었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자, 이번에는 비누거품으로 서로의 몸을 씻어내기 시작했다.
미끈거리는 비누거품과 함께 전해지는 상대의 손길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전희가 된다. 원래는 좀 더 천천히 오랜 만의 관계를 즐기고자 했던 둘이었지만, 샤워가 끝날 무렵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몸을 감싸 안고 상대의 입술을 탐닉하고 있었다.
서로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상태의 부부에게 더 이상 거리낌은 없었다. 유아가 벽을 등지고 서자, 형진은 입술을 탐닉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상태로 그녀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렸고, 그 상태로 곧장 그녀의 몸 안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흐읏…”
오랜 만에 맞이하는 그의 몸이 주는 생생한 감각에 유아는 작게 숨을 몰아쉬었지만 더욱더 강하게 그의 몸을 끌어안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으으음…”
신음소리는 형진의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가급적 그녀의 몸을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진입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찰지게 자신의 몸을 감싸오는 그녀의 육체로 인해 절로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둘은 마침내 완전히 하나로 결합했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몸을 합치고 나서야 자신이 너무 급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그렇게 물었지만, 유아는 배시시 웃으며 그런 그를 안심시키고는 그의 목을 더 강하게 부둥켜안으며 입을 맞춰왔다.
츄릅거리며 서로의 타액이 다시 한 번 뒤섞인다. 옆에서는 여전히 샤워기 대신 설치된 작은 폭포가 물소리를 내며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이미 두 사람은 그런 소음 따위 잊어버린지 오래다.
“흑! 허읏! 흣! 학! 하악!”
그렇게 결합의 여운을 즐기며 키스를 나누던 둘의 몸이 다시금 움직이자, 유아는 참지 못하고 교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출산 후에는 당분간 성욕도 감퇴하고 성감대도 둔화된다는 식의 말을 전해 듣고 나름 각오를 다졌던 그녀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런 식의 예상은 완전히 어그러져 버리고 말았다. 진퇴가 시작되자, 그녀는 마치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되어 연신 교성을 터트려야만 했다.
형진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위험했다. 마치 처음 이성과의 교합을 시도한 풋내기처럼 그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정염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모처럼 갖는 관계이고, 유아 역시 그런 자신을 성심을 다해 받아들이고 있는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분출해 버리면 그야말로 남자의 체면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하지만 유아의 몸은 출산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은 여인이라고는 생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그와 상성이 너무나 잘 맞았다. 오랜만에 갖는 관계라서 그런 걸까. 아니다. 뭔가 근본적으로 그녀의 몸 역시 변화를 일으켰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
“아아! 아으아아앗! 아아앗!”
유아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교성은 이제 단순한 신음 소리를 넘어서 얼핏 비명처럼 들릴 정도가 되어 버렸다. 왕성이었다면 의식적으로라도 그런 식의 음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억눌렀겠지만, 이곳은 그녀를 아는 다른 이의 이목이 닿지 않는 전혀 다른 세계다. 그런 점이 그녀로 하여금 지금껏 억눌렀던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기폭제가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눈앞에서 무언가를 갈구하는 시선으로 헐떡거리며 연신 그렇게 교성을 토하는 아름다운 아내의 모습은 형진으로 하여금 내면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감정의 폭발은 그로 하여금 잠시나마 억누르고 있던 무언가를 기폭시켰고, 형진은 마치 리미터가 해제된 것처럼 더욱 격렬하게 그녀를 밀어붙였다.
어느 시점이 되자 유아는 눈빛이 흐릿해지더니 턱을 치켜 올린 채 전신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마침내 절정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눈앞에서 그렇게 아내가 절정에 달하는 모습을 본 형진 역시 커다란 성취감을 느끼며 억누르고 있던 정염을 해방시켰다.
거의 동시에 쾌락의 극한으로 치달아버린 둘은 그 모든 감각의 폭류가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헉… 헉…”
어지간한 일로는 이제 숨을 헐떡거리거나 하지도 않는 신의 몸을 갖춘 형진이었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거대한 쾌락이 휩쓸고 지나간 여운 속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유아 역시 그런 형진의 몸을 끌어안은 채 얕은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형진은 그나마 정신을 차렸지만, 유아는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때문에 형진은 그녀를 공주님처럼 안아 올린 상태로 욕조에 들어가야만 했다.
“미안. 이러려던 게 아닌데.”
모처럼의 부부관계이니 좀 더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했었지만, 신이 되었어도 역시 세상 일이란 건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유아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앉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오히려… 기뻤어요.”
내색은 않고 있었지만, 그녀가 임신 때문에 정상적인 부부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동안에도 형진은 여러 여자를 안고 있었다. 물론 밤마다 항상 자신의 옆자리를 지킨 채 따뜻하게 안아주기는 했지만, 그런 식의 행동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항상 존재했었다. 어쩌면 그녀가 방금 전에 그토록 격렬하게 반응했던 것도 그렇게 쌓여있던 모든 것이 일시에 분출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럼 다행이고.”
그렇게 욕조에서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며 여운을 즐기던 둘은 목욕이 끝나자 침대로 자리를 옮겼다. 서로 자신을 억누르지 못했던 앞서의 관계와는 달리, 이번에는 좀 더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으로 서로에게 다가갔다.
“누워봐요.”
유아는 형진을 침대 위에 눕히더니 천천히 그의 몸에 입을 맞춰주기 시작했다. 입술로부터 시작해서 목덜미와 쇄골, 그리고 가슴으로 이어지더니 나중에는 우람하게 솟아오른 그의 육체까지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이 와닿는다.
“…”
형진은 정성껏 자신의 몸에 입을 맞추어 주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손으로 쓰다듬었다. 목욕을 막 마친 탓에 물기가 남아서 촉촉하게 흘러내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입술과 혀가 자신의 몸을 휘감는 느낌을 즐겼다.
어느 정도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하자, 유아는 그의 몸 위에 올라앉아 스스로 상대를 받아들이고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래쪽에서 유아를 올려다보던 형진은 가만히 손을 뻗어 풍만한 유아의 가슴을 조심스럽게 움켜 쥐었다. 너무 작은 가슴이 불만이라 희망과 생명에게 해결 좀 해달라고 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몰라보게 자라버렸다.
“가슴이 그렇게 좋아요?”
“응.”
“어휴. 못 말려.”
예전에 풍선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형진도 유아도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런 기억들 역시 둘에겐 소중한 추억이다.
그렇게 다시 한 차례 열풍에 휩싸인 두 사람은 다시금 잔잔한 여운을 느끼며 서로의 몸을 감싸 안은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형진은 유아가 옆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알몸에 앞치마만 걸친 유아의 뒷모습이 주방 쪽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달덩이 같은 엉덩이를 드러낸 채 자신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어찌 예뻐보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잠시 모른 척 그녀의 뒷모습을 감상하고 있자니, 요리가 끝났는지 그녀가 몸을 돌렸다. 형진은 아무것도 보지 않은 척, 눈을 감고 잠자는 모습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녀가 옆으로 다가와 촉촉한 입술로 자신을 깨워주기를 기다렸다.
“…”
하지만 유아는 가만히 옆으로 다가오더니,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슬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할 즈음,
“언능 못 일어나욧!”
“켁!”
형진은 갑자기 시트가 훌떡 뒤집히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여담이지만 일본에는 밥상뒤집기 대회라는 것이 있다더군요.
개최장소는 이와테현. 벌써 십년 넘게 치뤄지고 있는 전통 깊은 대회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