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47
00847 196. 추대 =========================
기왕 모여든 신들을 그냥 돌려보내기는 아쉬운 일이라 일단 비축하고 있던 음식을 풀어 잔치를 벌였다. 이전에 형진의 요리를 경험해 보았던 신들은 당연히 기뻐했고, 그렇지 않았던 신들 또한 처음으로 접해보는 그 기막힌 진미의 향연에 놀라워했다.
형진은 누군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신들에게서 일일이 인사를 받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다가 잔치를 끝내고 돌아오자 예상 밖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그것은 바로 나이 지긋한, 후덕한 아주머니 모습을 한 포트니아 테론이었다.
“원래는 나 역시 엘리시온으로 가서 처음 추대된 주신을 축하해 주었어야 했지만, 내 상황이 지금 이렇다 보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네. 미안하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앉으시지요.”
“그럴까.”
자리를 나누어 앉자 포트니아 테론은 말없이 형진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자네는 스스로 신들의 정점에 올라섰군.”
“그래봐야 명목상의 일일 뿐입니다. 주신이 되었다 해서 달리 바뀌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엘리시온의 운영권은 이미 형진이 소유한 상태. 게다가 주신의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 권력을 뒷받침할 만한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보기에 이번에 형진이 주신에 옹립된 것은 그저 명목상의 일에 불과했다. 만약의 경우, 엘리시온에 속한 신들이 그들과는 근본이 다른 초월적인 존재와 마주했을 때를 대비한 대표자를 뽑는다는 식의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고개를 저었다.
“과연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그게 무슨…”
“이전에 없었던 일이라는 건, 그 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효과에 대해서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았다는 뜻이 되는 거라네. 이를테면, 이번에 자네가 주신의 자리에 올라선 것처럼.”
“…”
그것은 포트니아 테론의 말대로다. 엘리시온에는 지금까지 대표자라고 불릴 만한 존재가 탄생한 적이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형진은 일단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역시 별다른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달리 조건이 있는 것일까.
그런 형진의 기색을 알아본 포트니아 테론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네. 마지막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그런 것 뿐이니까.”
“마지막 조건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자네가 반신의 지위를 얻었던 과정과 마찬가지네. 파편을 얻었다고 모두가 반신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주신 역시 그에 걸맞은 마지막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
형진은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굳이 포트니아 테론이 이렇게 직접 찾아온 이유 또한.
하지만 뒤에 이어진 그녀의 말은, 형진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종류의 것이었다.
“저주 중에 그런 것이 있네. 독을 가진 생명체들을 하나의 폐쇄된 공간에 몰아넣고, 그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존재를 저주에 쓰는 것이지.”
“…”
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식의 저주에 대해서는 그 역시도 들은 바가 있다. 단순히 독만이 아니라,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에 대한 원한까지 저주의 재료로 사용하는, 그래서 모든 독과 저주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치는 사악한 방법이라던가.
왜 하필 지금 이런 얘기를.
잠시 의문스런 표정을 짓던 형진은 마치 무언가에 의해 뒤통수를 두들겨 맞는 듯한 느낌으로 진실을 깨달아 버렸다.
신이라는 존재는, 특히 엘리시온에 속한 신들은 흔히 생각하는 완전무결이라든가, 영원불멸한 절대적 존재와는 거리가 있다. 이미 형진이 접했던 수많은 신들에게서 보이듯, 그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커다란 결점이 있으며, 견디기 어려운 극심한 타격을 받을 경우 파편이라는 것을 떨구기까지 한다. 만약 그 파편을 얻은 자가 신들에게 인정받으면 반신에도 오를 수 있고, 그 상태에서 신격을 깨달으면 신의 자리에 올라설 수도 있다.
바로, 자신처럼.
단순히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우주 전체를 보살피기 위한 것뿐이라면, 굳이 이런 것들을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
어쩌면 이전에 깨달았어야 할지도 모르는 의문을 형진은 이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것만이 아니다.
신들의 요람이라 불리는 엘리시온의 진정한 목적 역시 그는 이 순간 깨달아 버렸다.
요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엘리시온은 외부에서 신격에 손상을 받은 신들이 휴식과 회복을 취할 수 있는, 그야말로 우주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안전지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방금 전 포트니아 테론의 말대로라면, 그곳은 또한 모든 우주 안에서 가장 악랄한 함정으로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우주는 넓다. 너무나 넓어서 초광속 항해가 현실화된 지금도 그 끝을 알지 못한다. 그런 광대한 우주 안에 신들이 흩어져 퍼져 나가게 되면 도저히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추적하는 일이 불가능할 정도다. 실제로 형진은 파괴와 재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낭비해야만 했다. 만약 놈이 상황의 반전을 위해 포트니아 테론을 찾아 나서지 않고 고통을 꾹꾹 눌러 참은 채 기껏 마련해 두었던 근거지조차 모두 버린 채 어딘가로 숨었다면, 형진은 아직까지도 놈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안전하며 회복까지 가능한 안전지대가 있다면 어떨까.
백이면 백. 다시 엘리시온 안으로 기어들어오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함정이었다. 그 절대적인 안전이 바로 마지막 단계에서 신들을 한곳에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최후의 순간, 엘리시온은 절대로 빠져 나갈 수 없는 함정으로 변화하여 그 안에 모여든 신들 가운데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아부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났을 때 남은 것은 자신을 그러한 상황으로 밀어 넣은 누군가에 대한 독기와 원한으로 마음 속이 가득 차버린, 절대적인 힘을 갖춘 신이었을 것이다.
형진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토록 치밀한 함정이라니. 그런 것을 이제까지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니.
그러고 보면 형진은 포트니아 테론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 이 미지의 존재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지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본래 타나토스에 위치하고 있던 왕성마저 현재 위치로 옮겨 놓았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경계심은 실제로 그녀와 마주하게 되면서 누그러졌다.
물론 그것을 실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당시의 포트니아 테론은 충분히 형진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정도의 말과 행동을 보여주었으니까. 정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떤 계기로 인해 그녀는 형진과 마주한 순간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목적을 버렸고, 그때까지 형진의 경계심을 자극하던 무언가 역시 그 순간 사라져 버렸다고 보는 편이 옳으리라.
“자살… 하려고 했던 겁니까.”
형진의 말에 포트니아 테론은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모순된 일이지. 그토록 아등바등 이 우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뒤로는 죽기 위해 그런 모든 안배를 만들어 두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엘리시온에 속한 아이들이 전부 그 모양인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그녀를 막아선 것은 결국 책임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엘리시온의 진정한 목적도, 따지고 보면 자신을 대신해 다른 우주로부터의 위협을 막아설 수 있는 존재를 속성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도로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럼… 마지막 단계라는 것은…”
형진은 차마 말을 맺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고, 포트니아 테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원래대로였다면, 자네가 진정한 주신으로 올라서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바로 나였을 것이야. 나를 쓰러뜨려 그 근원을 흡수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태초로부터 전해진 의지를 이어받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그랬지.”
굳은 표정으로 포트니아 테론의 말을 듣고 있던 형진은 그녀의 말에서 이전과는 상황이 바뀌었다는 뉘앙스를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이제는 아니라는 뜻입니까.”
포트니아 테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제는 달라졌지. 모든 것이. 아니, 처음부터 내 의도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어느 새인가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한 석양을 바라보며 말했다.
“엘리시온의 아이들은 경쟁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웅크려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지. 마지막 단계의 함정이 발동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힘을 갖춘 신들이 모여들었을 때의 일이야. 그런 식으로 힘이라고는 좁쌀만큼도 없는 신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는 함정이고 뭐고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얘기지.”
순간 형진은 흠칫하며 놀랐다.
“자, 잠시만요. 그럼 이번 회합때 자칫하면…”
포트니아 테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원래대로라면, 이번 회합에서 그 함정은 발동되었을 거야. 물론, 그렇다 해도 결말은 하나였겠지. 어차피 그 안에서 자네를 능가할 수 있는 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자네는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몰아붙인 것에 분노하며 나를 찾아왔겠지. 원래대로였다면.”
“…”
회합에는 다른 모든 신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들 가운데는, 형진의 반려인 세 여신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다. 상상만으로도 눈이 질끈 감겨지는, 그런 무시무시한 상상.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말도 안 되는 함정을 지나쳤다는 사실에 절로 몸이 떨려왔다.
“놀랐는가.”
“네.”
“화가 나는가.”
“네.”
“그렇다면, 자네는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
차분한 포트니아 테론의 말에 형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다시 물었다.
“어째서 함정을 발동하지 않은 것입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필요가 없어졌다고요?”
“그래. 굳이 그런 식으로 모든 신들의 힘을 몰아주거나 할 필요도 없이, 자네는 언제든 나를 죽여 없앨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이미 갖추어 버렸으니까.”
“…”
포트니아 테론은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네가 언데드의 힘을 통제하고 임의로 정화할 수 있는 힘을 갖추었을 때, 이미 나의 운명은 자네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네. 때문에 순리대로라면 그때 나는 자네에게 이 모든 일을 털어놨어야만 했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종말과 안식을 맞이했어야 옳았겠지.”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작게 탄식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욕심이 생겼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이 우주를 그리고 자네와 자네의 가족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 우주를 성장시켜 나가는지 지켜보고 싶어졌네. 그래서 나는 망설여 버렸고, 결국 진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리고 만 것이지.”
포트니아 테론은 잠시 눈을 감고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는 형진에게 말했다.
“나는 이미 아주 오래전에 미쳐버린 것인지도 몰라. 애초에 엘리시온에 그런 것을 안배해둔 시점에서 정상이라고 보긴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 정상이라면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파괴와 재생을 단숨에 없애 버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몰라. 순간적으로 거울을 들여다 본 것처럼 마음 속에서 피어오른 혐오와 증오를 억누를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을 쏟아낸 포트니아 테론은 다시금 깊게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우… 나는 위험한 존재일세. 이미 언데드의 힘에 의해 타락해 버렸고, 한순간의 증오를 억누르지 못해 자식을 스스로의 손으로 죽여버리기까지 했네. 오늘의 나는 엘리시온에 안배된 함정의 발동을 억눌렀지만, 내일의 나 또한 그런 식의 행동을 할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
“그러니, 그러니까… 자네의 손으로 끝장내 주게. 나의 근원을 손에 넣고, 시간이라는 이름의 이 감옥 속에서 나를 꺼내 주게. 그것은… 오직 자네의 손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니까.”
그 말을 끝낸 순간 포트니아 테론은 앞섶을 풀러 심장이 위치한 곳의 살결을 드러낸 상태로 형진의 눈앞에서 눈을 감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여전히 자애로운 아주머니의 모습을 한 채, 마치 그에게 자신의 모든 운명을 맡기겠다는 듯이.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