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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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엘이 생각보다 쉽게 자신의 사정을 이해해 준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에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잘못을 한 건 분명한 사실이고, 당장 제랄딘으로서는 미엘이 화를 낸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단 쉬고 계세요. 벌에 대한 것은 이후에 차차 말씀드릴 테니.”
“알았… 어.”
하지만 친근한 언니의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는 걸 듣자니, 벌이란 것도 결국은 진실을 밝히면서 생겨났을지도 모르는 어색함을 떨쳐 버리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어릴 적부터 커가는 모습을 봐왔던, 그래서 어떨 때는 딸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동생 같기도 한 아가씨와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벌을 주겠다는 식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제랄딘의 생각이었다. 자신을 동생이 아닌 여신으로 받아들였다면 벌을 주느니 마느니 하는 말 같은 건 떠올리지도 못할 테니까. 벌을 준다는 말에 걱정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두근거리는 기분이 되어 버리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타이탄의 시추 계획서 어디에 있죠?”
“여기 있습니다!”
“언니. 이 서류 좀 복사해 주시겠어요.”
“맡겨 주세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긴 했지만, 비서실은 오늘도 어김없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업무의 연속이다. 요안나가 임신하게 되면서 생긴 업무 공백은 아무래도 당분간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제랄딘은 초광속 항해의 실현으로 인해 잠시 쉬어야 했던 학교를 최근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대학에서의 학업을 이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마당에, 평소보다 배는 많은 양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다보니 천하의 제랄딘이라 해도 역시 좀 지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차게 대답을 하긴 했지만, 규설과 힐리에타는 격무에 지친 나머지 인사를 마치자 자신이 맡았던 업무를 정리하고는 흐느적거리며 숙소로 돌아갔다. 제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닌 주시자들이라 해도, 몰아치는 업무로 인한 정신적인 피로는 역시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수고했어요. 아가씨.”
“고마워. 언니.”
언제 준비했는지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미엘의 모습에 제랄딘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사실을 털어놨음에도 변하지 않은 일상에 절로 기꺼운 마음이 든다.
“음?”
하지만 따뜻하게 우려진 차를 음미하던 제랄딘은 뭔가 몽롱한 기분이 되어 버리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했다.
“이, 이건…”
“후후후… 어때요? 기분은… 놀랄 것 없어요. 몸에 해가 가는 건 아니니까. 그냥, 조금 많이 편안한 상태가 되는 정도?”
“…”
“자, 그럼 벌을 받으러 가볼까요?”
당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하는 미엘의 모습에 벌을 주겠다는 말조차도 잠시 잊고 있었다.
어쩐지 기분이 살짝 몽롱해지면서 숨이 가빠온다. 도대체 차에 뭘 탄 걸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제랄딘은 미엘과 하엘이 자신을 부축해서 어딘가로 데리고 가는 것을 속절없이 따라야만 했다.
“일단은 푹 쉬세요. 한숨 자고 나서 다시 얘기를 나눠 봐요.”
“응…”
졸립다. 하루 종일 몰아치던 업무로 인해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덮쳐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른 이에 의해 지금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면, 권능을 써서라도 강제로 문제를 해결했으리라. 하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미엘.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서는 일단 그녀의 뜻대로 따르는 것이 좋으리라.
제랄딘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마치 바닥없는 늪지대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마저 느끼면서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던 제랄딘은 마치 서서히 안개가 걷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마침내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읍읍!”
제랄딘은 자신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는 것을 깨달았다. 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손과 발에도 수갑이 채워져 있는 상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죄, 죄송합니다. 여신님. 언니가 시켜서…”
“…”
얼른 돌아보니 하엘이 겁먹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엘이 언니라고 부를 만한 이라면 역시 미엘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을 이렇게 결박해 놓으라고 시킨 것은 바로 미엘이란 말인가.
형진에게는 대놓고 반감 어린 표정을 드러내 보이는 하엘이라도, 차마 공포와 죽음에게는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형진이야 인간이었을 때부터 살을 섞고 지낸 사이라 주신이 되었어도 별로 실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공포와 죽음 같은 명명백백한 여신에게 똑같이 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도대체 이게 무슨 꿍꿍이지.
미엘을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그런 제랄딘으로서도 그녀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 건지는 도통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방… 어디서 많이 봤던 곳이다.
주위를 둘러본 제랄딘은 자신이 있는 장소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곳은 제랄딘이 처음 형진과의 신혼을 맞이했던 그리칸의 저택이었다. 왕성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방치되어 있었던 곳이지만,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찾아오게 되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물론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차분하게 옛 추억이나 되새기고 있는 것도 뭔가 이상한 일이겠지만.
그렇게 잠시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문득 문이 열리더니 미엘이 누군가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 제랄딘?”
“…”
미엘이 데리고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형진이었다. 뭔가 미엘이 손을 쓴 것인지 헤벌레한 표정을 짓고 방 안에 들어오다가 제랄딘이 침대 위에 재갈이 채워진 채 결박 당해 있는 모습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놀란 형진의 물음에 미엘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아가씨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중이에요.”
“벌? 제랄딘에게? 왜?”
“그야, 이미 아이를 가져 놓고서도 모르는 척 형진과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요.”
“…”
혹시 지금까지 진실을 숨긴 것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닌가 하고 조마조마한 기분마저 느끼고 있던 형진은 이게 뭔 소린가 싶은 표정이 되었다.
미엘은 그런 형진에게 발돋움해서 입을 맞추어 주고는 다시 말했다.
“아가씨에게 내려지는 벌의 이름은 방치. 우리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저 상태로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 오늘 아가씨가 받을 벌이랍니다.”
“하, 하하… 어엇!”
이건 또 뭔 일인가 싶어 헛웃음을 짓고 있던 형진은 미엘에 의해 떠밀려 소파에 앉아 버렸다.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다 알고 있었으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다니.”
“그거야…”
미엘은 요사스런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그의 무릎 위에 걸터 앉았다.
“그러니 오늘은 힘을 좀 내셔야 할 거에요. 충분히 절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화가 가라앉지 않을 것 같거든요.”
“…”
형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슬쩍 침대 위에 결박당해 있는 제랄딘을 바라보았다. 하기야 누군가가 보는 앞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오늘이 처음도 아니고, 방안에 있는 것도 모두 그의 반려들이니 문제될 것은 없다 싶지만… 그래도 뭔가 기분이 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미엘은 형진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그에게 입을 맞춰왔다. 그리고 그 순간, 확 펼쳐져 있던 그녀의 꼬리들이 갑자기 또다른 미엘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어쩐지 처음 우리가 맺어졌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요?”
“…”
말이 좋아 맺어진 것이지, 그 날 형진은 죽을 뻔 했었다. 아직 신도 아니고 반신도 아니던 시절, 무려 열 명이나 되는 미엘이 잔뜩 발정한 상태로 덤벼드는 걸 감당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물론 지금은 그때와 달리 막강한 힘을 얻은 주신이 된 상태지만, 다시 되돌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주체하기 어렵다.
미엘은 그렇게 움츠러든 형진의 모습을 바로보며 씨익 웃더니, 일제히 달려들어 그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형진은 결국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미엘들에게 덮쳐져 순식간에 옷이 벗겨진 채로 연신 신음을 터트리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제랄딘은 침대 위에 결박된 채로 미엘이 형진을 덮치는 모습을 그렇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방치된 채 둘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제랄딘 역시 뭔가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때였다.
“죄, 죄송합니다.”
“?”
옆에 서있던 하엘이 갑자기 주춤거리며 옷을 벗더니, 결박되어진 제랄딘에게로 다가와 그녀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한다.
“용서해 주세요. 언니가 이러라고 시켜서…”
“…”
그렇다. 그녀의 벌은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형진이 미엘에게 덮쳐지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묘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다른 누군가에게 옷이 벗겨지고 민감한 부위를 자극 당하게 되자 제랄딘 역시 오래지 않아 가쁜 숨을 내쉬며 몸을 비틀어 대기 시작했다.
제랄딘은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이렇게 자극할 거면 확실하게 보내주든가. 그렇지도 않고 계속 간질거리듯 어느 정도 선까지만 자극하고 빠지는 하엘의 행동과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벌어지는 형진과 미엘의 정사에, 제랄딘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한껏 달아올라 전신으로부터 간질거리는 기분마저 느껴지는 뜨거운 몸을 비틀며 신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으응! 으으응! 좋아요. 더, 더!”
“크윽!”
한껏 여자의 기쁨을 느끼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엘의 모습을 보며 제랄딘은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세상에, 이런 지독한 벌이라니.
열 명이서 돌아가며 한 번씩 형진과 관계를 맺는 일이 끝나고 나서야 미엘은 달뜬 표정으로 제랄딘에게 말을 걸었다.
“어때요. 이거… 원하나요? 흐읏!”
숨을 몰아쉬며 형진의 신체 일부를 몸으로부터 뽑아내며 그렇게 말을 하는 미엘의 모습에, 제랄딘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그래요. 그렇게 원하는 군요.”
미엘은 그렇게 말하고는 쉴틈도 없이 연속으로 벌어진 정사로 인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던 형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아가씨께서 원하고 계신대요. 이렇게 축 늘어져 있을 틈이 없어요. 자, 힘내세요. 도와드릴테니.”
“…”
형진 역시 이제는 될 대로 되란 표정이다. 미엘은 그런 형진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이더니, 서로의 체액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린 형진의 신체를 가만히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이미 연속으로 열 번이나 관계를 가진 뒤였음에도, 형진의 신체는 자극을 받자 다시금 원기왕성하게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미엘은 그것을 확인하자 형진을 일으켜 제랄딘이 결박되어 있는 침대로 이끌었다.
하엘은 그제서야 제랄딘에게서 물러나 한 켠에 자리 잡았다. 그녀 역시 살짝 달뜬 표정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건가 싶은 표정 역시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자아, 진. 아가씨가 당신을 원하고 있어요. 만족시켜 주실 수 있죠?”
제랄딘과도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보낸 형진이었지만, 아리따운 아내가 결박당한 채 한껏 달아올라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자 어쩐지 몸 안에서 불길이 확 피어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랄딘 역시 한껏 성이 나서 불뚝거리는 형진의 신체가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거대한 불기둥이 자신의 몸을 꿰뚫자 이미 한껏 달아오른 그녀의 몸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어머, 단숨에 절정에 도달한 건가요? 단지 결합한 것 뿐인데?”
미엘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형진도 제랄딘도 그녀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고 있었다.
“…”
하엘은 형진이 격렬하게 제랄딘의 몸을 탐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자신도 모르게 다리 사이로 손을 가져가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형진에게 범해져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의 일이 떠올라 버린 탓이다.
“하엘. 너도 원하니?”
“!”
어느 틈엔가 다가온 미엘의 말에 하엘은 찬물을 뒤집어쓴 듯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형진과 제랄딘의 정사를 지켜보며 다리 사이를 스스로 자극하고 있던 모습을 이미 들켜버린 상황에서는.
“후후후. 하지만 안 돼. 일단은 아가씨부텨야. 기다릴 수 있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미엘의 모습에, 하엘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의 입은 또한 공손하게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네, 언니… 기다릴게요.”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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