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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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바람은 곧바로 격리되어 있던 클로리스인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는 그들을 추종자로 만드는 의식을 치렀다.
“아아… 저에게 신의 힘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힘에 의해 깨어났을 때의 격한 감동과 전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온전히 꽃과 바람의 힘을 받아들이고 또한 그 권능의 사용을 빌려 쓸 수 있도록 허락받은 추종자가 되자 클로리스인들은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찌나 격하게 반응하는지, 조금 떨어진 상태로 지켜보는 다른 이들로서는 좀 과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어쨌든 그렇게 추종자로 받아들이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다음 단계의 일을 말했다.
“더 자세한 부분은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그럼 일단 이들은 돌려보내는 걸로 하는 것이 좋겠군요.”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습니까?”
납치가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멀쩡하게 돌아갔다고 하면 그 사건에 대해 당연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딱히 행정이나 기타 다른 부분에 영향력이 없다고는 해도, 클로리스라는 이름의 신을 기리기 위한 박물관의 직원들 대다수가 한꺼번에 납치된 일이라면 모르긴 해도 그들 사회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을 테니까.
“일단은 돈을 노린 인질극 정도로 포장을 해두면 되겠지요. 그것을 위해서 약간의 공작을 할 필요는 있을 것 같군요.”
클로리스인들에 대한 꽃과 바람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확인한 이상, 이런 건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현재 추종자로 받아들인 클로리스인들에게 이번 일을 처리하는 책임자급 몇 명의 명단을 받아낸 뒤, 그들로 하여금 사건을 무마하도록 조정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추종자가 된 클로리스인들은 열성적으로 자신들이 새롭게 모시게 된 여신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너무 많은 정보를 쏟아내는 바람에 규설과 힐리에타가 그것을 정리하느라 고생했을 정도다. 본래대로라면 미아와 리페, 그리고 아란도 그러한 정리 작업에 뛰어 들었어야 했겠지만, 일단은 꽃과 바람이나 신뢰와 헌신이 있는 자리이니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열외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후… 무늬만 비서가 아니니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결국 자잘한 일은 전부 도맡아야 하는 현실에 죄절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떠들 시간 있으면 그냥 입 다물고 일이나 해.”
“쳇. 말도 못하냐.”
어쨌든 그녀들의 노고 덕분에 추종자로 포섭해야할 목록이 만들어져서 꽃과 바람에게 건네졌다.
“행정 수반과 입법, 사법, 그리고 치안과 언론… 이쯤 되면 단순히 사건 무마 수준을 넘어서 정권 장악 수준인데.”
“마찬가지지 뭐. 어쨌든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균열에서 벌어진 전투로 인해 초광속 항해로 이동하더라도 한참이나 걸릴 수밖에 없는 후방에서의 일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을지는 일단 목록에 기재된 인원들을 추종자로 만들면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앞서의 사건으로 인해 보안이 강화되었을 거야. 이걸 소란 없이 뚫으려면 치안 담당자를 먼저 포섭하는 편이 좋겠어.”
“나도 함께 가겠다.”
“뭐… 별 일은 없겠지만, 원한다면 그렇게 해.”
“고맙다.”
형진이나 주시자들이 어련히 알아서 보호를 할까 싶긴 해도, 역시 직접 그녀를 지켜야 마음이 놓이는지 신뢰와 헌신 역시 핵심 인사의 포섭에 동행하기로 했다.
준비가 끝나자 그들은 바로 공간을 넘어서 클로리스인들의 행성 아오라드로 이동했다. 이미 앞서의 미션에서 필요한 장소에 성물을 담은 위성을 은밀히 설치하는 일이 완료된 상황이라, 앞서처럼 공중으로부터 뛰어 내리는 식의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선행하겠습니다.]앞서 벌어졌던 작전에서는 방역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단 즈라탈이 핵심 인사 포섭을 위해 움직이는 꽃과 바람을 호위하는 일을 맡았다. 물론 형진과 규설, 그리고 힐리에타 역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동행하는 중이다.
[이번 작전은 전투가 목적이 아니다. 핵심인사 포섭을 나선 꽃과 바람님을 호위하는 것이 목적이니, 주위 경계에 만전을 기하도록.]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즈라탈은 형진에게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의 등 뒤에 조용히 시립해 있는 힐리에타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순번이 아닌데도 이렇게 호위를 자청하고 나선 것은 형진의 비서로 뽑혀간 딸이 제대로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도 한 가지 목적이라 할 수 있었다.
딸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즈라탈은 평소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매우 세심하게 조원들을 운용하여 호위에 만전을 기했다.
목적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박물관은 그 자체로 클로리스인들에게 정신적으로 중요한 장소였고, 그런 곳을 담당하는 관장은 행성 아오라드의 고위층 다수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든가 가족 관계 같은 것도 제법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치안감 지스는 사실 저와 같은 학교를 나온 동문입니다. 비록 배운 분야는 달랐지만, 이런 식의 지연은 사회생활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법이죠.”
박물관장 테스렐은 꽃과 바람에게 그런 말과 함께 치안감의 숙소는 물론이고 평소 자주 다니는 장소까지 소상하게 말해 주었기 때문에 행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 사람인가요?]얼핏 보기엔 한 행성의 치안감이라기 보다는 잘 나가는 북구의 미녀 같은 모습. 머리에 피어난 푸른 꽃은 좀 깨지만, 전체적으로 클로리스인들은 나이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외모를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압도적일 정도로 여성의 비율이 높다는 것도 한 가지 특징이다.
[네. 맞습니다.] [고마워요. 도와줘서.] [여신께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저로선 그저 기쁠 뿐입니다.]혹시나 싶어 아직 스틱스에 있는 테스렐에게 치안감 지스가 맞는지 확인과정까지 거쳤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자, 일행은 치안감 지스의 거처 주위를 차단하고 그가 머물고 있는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누구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언가를 손에 든 채 바라보고 있던 치안감 지스는 인기척이 느껴지자 예의 국자 비슷한 모양의 무기를 겨누며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꽃과 바람이 앞으로 나서며 존재감을 드러내자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어, 어어…”
단순히 꽃과 바람이 존재감을 발산한 것만으로도 치안감 지스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녀의 의지가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머리에 피어난 꽃이 여신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법열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강렬한 체험을 선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스. 맞나요?”
“마, 맞습니다. 제 이름이 지스입니다. 설마… 클로리스님이십니까?”
“글쎄요. 저에겐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만, 당신이 저를 그렇게 부르기로 마음먹었다면 그 이름이 맞을 수도 있겠죠.”
“아아…”
뭔가 모호한 대답이었지만, 치안감 지스는 눈앞에서 매혹적인 미소를 보여주는 이 여성이 영락없이 여신 클로리스라고 인식해 버리고 말았다.
엄연히 꽃과 바람이라는 이름이 있는 여신의 이름을 멋대로 바꿔 부르면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꽃과 바람의 아바타. 그 새로운 아바타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그건 아바타를 만든 본인의 마음이다. 마치 공포와 죽음이 자신의 아바타에 제랄딘이나 아란 같은 이름을 붙여 사용하는 것이나, 보호와 균형이 미아라는 이름의 아바타를 만들고, 희망과 생명이 리페라는 이름의 아바타를 만들어낸 것처럼.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명맥을 유지한 채 우주의 일부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여신의 은덕. 어찌 그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꽃과 바람은 어쩐지 좀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이 우직하다 싶을 정도로 깊은 믿음을 지닌 이들을 이런 식으로 기만해도 괜찮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주위에 둘러선 형진과, 그녀를 호위하듯 버티고 선 신뢰와 헌신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잠깐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는 자신에게 머리를 숙인 치안감 지스의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당신의 그 마음에 답하는 의미로, 한 가지 증표를 드릴게요.”
“아아…”
곧바로 뻗어진 그녀의 손을 통해 힘이 전해지고, 그 힘을 머리 위에 핀 파란 꽃이 받아들임과 동시에 치안감 지스는 꽃과 바람의 새로운 추종자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단순히 꽃과 바람의 존재감을 직시하거나 그녀의 힘을 느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어떤 느낌이 치안감 지스의 몸을 전율에 떨도록 만들고 있었다. 머리 위에 피어있는 푸른 꽃이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치안감 지스를 추종자로 받아들이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곧바로 행성 아오라드의 고위층에 대한 보안이나 경호에 관한 정보를 모조리 빼낸 다음, 방금 전에 벌어졌던 일들을 그들에게 똑같이 실행했다.
이미 경호나 보안에 관한 최고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치안감이 수중에 들어온 상황이다보니, 행성 아오라드의 고위층들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때문에 포섭은 별다른 저항 같은 것조차 없이 눈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리고 말았다.
“이제 된 건가요?”
“네. 수고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럼 조심하세요.”
꽃과 바람이 신뢰와 헌신과 함께 다시 엘리시온으로 돌아가자, 형진은 그녀의 대리자 신분을 활용해 사건 조작에 들어갔다.
“그냥 해프닝 정도로 마무리 짓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글쎄. 그런 식으로 포장하기엔 너무 일이 커졌어. 게다가 이미 포섭한 고위층들에게 나름의 공적을 세울 기회도 줘야 하고.”
결국 사건은 금품을 노린 조직의 범행으로 포장되었고, 화려한 진압 작전을 통해 납치된 인원 전부가 구출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물론 그래봐야 잘 꾸며놓은 활극에 지나지 않았지만.
납치 사건의 마무리를 지은 형진은 곧바로 행성 아오라드의 고위층들로부터 클로리스라는 종족에 대한 중요 자료를 건네받았다.
“헉!”
“배… 백이십억!”
그리고 그 자료를 건네받는 순간, 형진은 물론이고 비서진들 또한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클로리스라는 이름을 지닌 종족은 20여개 행성에 총 백이십억이나 되는 인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를 꽃과 바람의 신도나 추종자로 받아들인다면… 과연 얼마나 큰 신앙과 공헌도를 모아들일 수 있을까.
게다가 이들은 타나토스처럼 이 신 저 신 죄다 집적거리는 나일롱 신도도 아니고, 오직 클로리스라는 이름의 여신에게만 헌신하는 열성적인 신도들이다.
그들로부터 생성되는 신앙이나 공헌도의 양과 질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은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정도라면 이미 대신의 수준도 넘어설 정도다. 언데드의 힘을 정화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다면, 이미 주신으로 올라선 자신조차도 우습게 넘어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꽃과 바람에게 이런 대박이 날아들 줄이야 과연 누가 알았을까.
“혹시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응? 내가 뭘?”
“꽃과 바람 말이야. 모처럼 신뢰와 헌신이랑 잘 되어 가고 있는데 괜히 유혹하려고 들거나 하지 말라고. 그런 식으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거나 하면 지금의 관계마저도 박살날 수 있으니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날 뭘로 보고.”
희망과 생명의 말에 얼른 반박하긴 했지만, 형진은 속으로 뜨끔하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꽃과 바람이 거머쥘 이 엄청난 수준의 신도들을 보고 나니, 마음 한켠에 그녀를 유혹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그녀를 유혹한다고 해서 지금과 그리 달라질 것도 없다. 어차피 계약을 통해 빨대를 꽂은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니까. 긁지 않은 복권을 뽑은 건 형진 역시 마찬가지란 얘기.
“저… 더 힘낼게요.”
뭘 힘내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향해 두 손을 불끈 쥐어 보이며 그렇게 말하는 미아의 모습에 형진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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