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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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진이 아직 이름조차 묻지 않은, 검은 비늘의 추종자에게 주어진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강제 개종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한 권능 가운데, 스스로 의식하여 사용하고 있지 않음에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저 새카만 어둠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환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암시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바로 그 능력이었다.
“…”
웅크려 앉은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 너머로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동료들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빛은 모든 것을 밝힌다.
그가 빛의 신에게 귀의할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다.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압도하며, 또한 모든 것을 꿰뚫는 절대적인 가치. 그것이 그가 알고 있던 빛이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자신의 동료들은 하나 같이 눈앞에 드리워진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절대적인 가치라고 여겨졌던 빛의 힘을 잃고 대신 어둠의 힘을 얻은 자신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똑똑히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혼란스럽다. 눈앞에 드러나 있는 그 모든 것이, 지금껏 자신이 절대적이라 믿어왔던 모든 것이 부정되는 현실이, 그리고 그러한 현실 앞에 당황하는 자신이.
문득 눈앞에 놓여진 음식으로 시선이 간다.
향기롭다. 그저 바라보고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모든 수양을 허물어 버릴 것처럼 매혹시키는 그 냄새라니.
꼬르륵.
음식의 모습과 향기를 인식하자 곧바로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다. 입 안에서는 침이 흥건하게 고이고, 시선은 고정된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한 입만 먹게 해달라고 자신의 몸이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이가 없다. 나름대로 고된 수련을 통해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믿었었는데, 이토록 쉽게 혼란에 빠지고 현혹되어 버리다니. 마치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듯 한 기분이다.
그의 시선은 문득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 인물에게로 향한다. 바로 신전의 최고 책임자이다.
자신을 강제 개종시킨 이는 아마도 지금 저기 있는 자가 최고 책임자라는 것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그랬다면 지금 빛의 권능을 잃고 이렇게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은 바로 저 자가 되었을 것이다.
동료들에게로 돌아온 그가 배신자로 매도 당하며 그토록 격렬하게 공격 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저 자 때문이다. 저 자는, 신전의 최고 책임자인 자신보다 더 강한 권능을 발현할 수 있는 그에게 계속해서 질시의 눈을 보여왔었다. 그런 이가 느닷없이 빛의 신을 저버린 변절자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니, 모처럼의 좋은 기회다 싶었던 것이겠지.
그 와중에도 질투에 눈이 뒤집혀 자신을 매도하던 모습이라니.
“후우…”
허망하다. 모든 것이 허허롭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강처럼 유구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신앙이 이렇게 쉽게 흔들린다는 사실부터, 또한 자신이 그것을 별로 슬퍼하지 않고 있다는 것 또한 그를 더욱 허망하게 만들고 있었다.
꾸륵.
그 와중에도 뱃속에서는 계속 아우성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 식사를 했더라.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빛의 군세가 패배하고 물러난 직후, 적의 침공을 대비할 때 잠깐 먹었던 건량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의 종족은 꽤 오랜 시간 먹지 않고 버틸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을 지금의 처지로 내몬 그 존재는 지금 이순간의 모습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으리라. 어쩌면 자신이 저 음식에 언제 손을 뻗는지를 가지고 다른 이들과 내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 어쩐지 오기가 치민다. 신들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입장이 되어서도 어쩐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차피 휘둘릴 거라면 한 번쯤은 그런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그런 생각이 든다.
문득 그의 시선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신전의 최고 책임자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여전히 눈앞에서 먹음직스러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음식에 다시 시선이 옮겨진다.
그래. 그렇게 하자. 자신을 변절자라 매도했던 존재가, 저 음식의 유혹에 과연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자. 어차피 변절자로 낙인찍힌 마당 아닌가. 그 정도의 작은 앙갚음 정도는 허락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앞에 놓여있는 음식 접시를 집어 들었다.
꿀꺽.
멀리서 지켜볼 때와는 또 다르다. 이렇게 접시를 손에 쥐고 보니, 다른 건 모두 잊고 일단 한 입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그는 깊게 심호흡하며 눈앞에서 풍겨지는 향기의 유혹을 뿌리쳤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 안에서 음식을 섭취하라 갈망하는 욕구를 뿌리쳤다. 어쩌면, 그가 신전의 최고 책임자보다 더 강한 권능을 발현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그러한 인내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쉰 그는 숨을 참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간신히 억누른 식욕을 주체할 길이 없는 탓이다. 이 음식으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향기의 유혹은 그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보이지 않는 벽 앞에 선 그는 손을 뻗었다. 만에 하나, 이것을 통과할 수 없다면 모처럼의 시도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확신했다. 지금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의도를 알아채고 이 벽을 열어 주리라고.
그의 생각은 맞았다. 손을 뻗은 순간 그를 보호하듯 가로 막고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은 스르르 모습을 감추었고, 그것에 가로막혀 있던 짙은 어둠이 마치 쏟아져 내리듯 그를 덮쳐 왔다.
흠칫하며 놀랐지만, 그렇게 주위를 가득 채워버린 어둠 속에서도 그는 똑똑히 주위의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그는 다시 한 번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 내가 정말로 어둠에 속하는 존재가 되었구나… 라고.
그렇게 잠시 알 수 없는 감회에 젖었던 그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는 목표로 하는 인물에게로 다가섰다.
신전의 최고 책임자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손발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권능은 이미 그를 공격할 때 소진해 버린 상태.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보통의 노쇠한 한명의 보닉에 지나지 않는다.
잠시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손에 들린 접시에서 먹음직스럽게 익혀진 고기 조각 하나를 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의 입으로 가져갔다.
본래대로라면 그런 식으로 음식을 입에 가져간다 해도 보이기는커녕 냄새조차 느낄 수 없어야 맞다. 하지만 지켜보던 누군가의 도움인지 그의 행동과 동시에 신전의 최고 책임자는 자신의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어떤 향기를 느꼈다.
“아… 아아…”
최고 책임자 역시 빛의 군세가 패퇴한 시점으로부터 별로 음식을 먹지 못한 건 매한가지. 물론 이것은 별로 못 먹었다는 것이지, 지금 그에게 음식을 내밀고 있는 누군가처럼 아예 금식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빛의 신에게 막 귀의했을 때라면 몰라도, 신전의 책임자가 된 이후로는 그런 식의 극단적인 절제는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도 핑계거리는 있었다. 모름지기 책임자의 위치에 선 자는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신체 역시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정신이란 신체에 따라가는 법. 신체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면, 정신 또한 최선을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런 그이기에 눈앞에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입안 가득 고이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음식의 유혹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밀어진 미끼를 덥석 물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어떤 의도를 가진 미끼라는 것 정도는, 아무리 아둔한 자라도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크으으…”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이것은 쉽게 견뎌내기가 어렵다. 그가 지금까지 맛 봤던 어떤 진수성찬도 이 향기만큼 강렬하게 후각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손발이 덜덜 떨린다. 식은땀이 흐른다. 마치 저혈당 상태에 빠진 것처럼,
그의 신체는 그렇게 더욱 극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배고픔이라는 이름의 감각이 이성의 둑을 무너뜨리고 단숨에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지금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더도 말고 한 입만 얼른 먹어보는 정도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어쩌면 독이 있을지도 모르니, 미리 자신이 시험해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런 핑계라면 한입 정도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러자.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았을 법한 결론이, 욕망에 의해 이성이 함몰되기 시작하자 그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어서 한입만 맛을 보라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거라고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는 부들거리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
당사자에게는 마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겠지만, 실제로 신전의 최고 책임자가 고민에 빠졌던 시간은 채 이삼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 이삼분 동안의 번뇌를 눈앞에서 뻔히 지켜보고 있던 검은 비늘의 추종자는 마침내 유혹에 넘어가 내밀어진 고기덩이를 향해 손을 뻗는 최고 책임자의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지만, 직접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게 되니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최고 책임자는 자신을 그렇게 씁쓸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마침내 내밀어진 고기 덩이에 닿았다.
그렇지 않아도 억누르기 힘들었던 욕망이, 후각만이 아닌 촉각을 통해 무언가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자 마치 기름을 부은 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주 잘 구워진 것이 분명한, 게다가 온기마저 선연하게 남은 고기 덩이의 촉감이 손에 닿자 그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그것을 얼른 입으로 가져갔다.
“아아…”
그것을 입에 넣는 순간, 신전의 최고 책임자는 황홀경에 빠지고 말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 어떤 감각보다도 감동적이었다.
단순히 음식을 입에 넣은 것 뿐인데, 배고픔에 덜덜 떨리던 육체는 곧바로 기쁨에 젖어들었다. 마치 잔뜩 가물어 버린 대지 위에 촉촉한 비가 내리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새싹이 동시에 움트는 듯한 그 느낌이라니. 고작 음식을 먹은 것 뿐인데 이런 느낌이라니!
하지만 감격에 몸을 떨고 있던 최고 책임자는 순간 자신의 청각을 파고드는 한 줄기 음성을 느꼈다.
“너는 결국 그것을 먹었구나. 어리석은 크츄카여.”
“어?”
마치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신전의 최고 책임자 크츄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목소리. 그는 너무나도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잘 알고 있었다.
한 행성을 총괄하는 빛의 신전의 최고 책임자인 자신을 질투에 빠지게 만드는 그 존재. 카스툴이라 불리는 그 존재의 목소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순간, 주위를 감싸고 있던 모든 어둠이 마치 봄의 햇살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사라져 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그들 모두가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던 일들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어? 어어?”
크츄카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 속에서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그 시선들 속에 깃든 여러 가지 감정들이 그를 순식간에 매몰시켜 가고 있었다.
“…”
그런 그의 모습을 조금은 침울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검은 비늘의 추종자는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그의 발치에 내려놓고는 등을 돌렸다. 마치, 더 이상은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뒤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던 그는 막힌 벽에 도달하자 입을 열었다.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벽이 열리며 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린 신전의 최고 책임자 크츄카가 그를 향해 외치며 달려들었다.
“멈춰! 거기 서!”
하지만 그런 외침이 무색하게 검은 비늘의 추종자 카스툴은 순식간에 열려진 벽 안쪽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그의 모습이 사라진 순간 그들이 있던 장소는 다시 한치 앞을 알아 볼 수 없는 깊은 어둠 속에 빠져 들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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