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4
94====================
20. 동굴곰의 집
생각보다 그리 대단한 아이템은 아니다. 불의 기운이 담겨져 있다고는 하지만 옅은 붉은 빛과 함께 살짝 따스한 느낌이 전해져 오는 정도에 불과한 정도니까. 하지만 신물이라는 것이 꼭 엄청난 효과를 지닌 아이템일 필요는 없다. 대체 불가능한 상징이면 그것으로 충분할 뿐이다.
“세상에! 찾은 건가요?”
“네. 아마도.”
아이템 정보를 확인해 보니 찾으려고 했던 홍염의 인장 반지가 맞았다. 옵션은 약간의 화염 저항 증가가 전부. 역시나 대장장이 길드의 신물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아이템인 셈이다.
“바로 완료하겠습니다.”
“네.”
-퀘스트 보상으로 ‘바이겔 기념 금화’ 3개가 분배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팩션 공헌도’가 666이 분배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업적 보상으로 공헌도 666를 추가로 획득합니다!
인벤토리에 반지를 넣자 임무 완수 메시지와 함께 보상이 지급되었다. 세 명이 균등하게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1300이 넘는 공헌도를 단숨에 획득해 버렸다. 토너먼트 보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반 의뢰로 이 정도의 돈과 공험도를 벌어들일 수 있는 의뢰는 정말 찾기 힘들다.
물품 보상이었던 블리츠소드는 일단 일단 형진이 보관하기로 했다. 다른 이들은 딱히 무기가 필요하지 않은데다, 형진도 집행자의 단검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런데 어쩐지 별로 도움이 못 된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그러게요. 도와드리려고 왔는데, 어쩐지 저희들이 도움을 받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왜일까요.”
“하하. 별 말씀을요. 어쨌든 시간이 늦었으니 일단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
그들은 곧바로 마킹된 위치를 되짚어 동굴을 빠져 나왔다. 빠져 나오고 보니 어느새 달이 머리 위 높은 곳에 떠올라 있다.
“이러다 내일 늦잠 자겠는데요.”
“그러게요. 어서 가요.”
서둘러 다시 수도의 저택으로 돌아온 그들은 내일 아침 다시 만나 얘기를 나누기로 하고는 일단 헤어졌다.
형진은 은신으로 몸을 숨긴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뒤뜰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일단 옷부터 마저 갈아입고 창문을 열고 밖을 살펴보자,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 휘적휘적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둡긴 하지만 형진은 그것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유아?”
얼른 뒤뜰로 가려는데, 문득 다시 새로운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크루그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와요? 아저씨.”
“응. 그런데 쟤 계속 저러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니까.”
형진의 말에 크루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네. 말려볼까도 했는데, 뭔가 잔뜩 몰입한 거 같아서 방해하기가 뭐하더라고요.”
“미쳐. 누가 곰탱이 아니랄까봐.”
혀를 차며 얼른 내려가려는데 문득 크루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져버려서.”
“됐어. 내가 진 걸로 해뒀으니까 그렇게 알고 말 잘 맞춰놔.”
“…”
크루그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다시 뭐라 대답하지는 않은 채 우두커니 형진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형진은 얼른 뒤뜰로 내려가 유아의 상태를 살폈다. 크루그 말대로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가 알려준 매크로 체조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자신이 바로 곁에 와 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라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도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 걸까.
어련히 알아서 희망과 생명이 챙기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유아가 모시는 여신은 공포와 죽음처럼 세심하게 추종자들을 돌보는 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다행히 겉으로 보기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추운 날씨에 몸에서 김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저러다 또 감기 걸리고 그러는 건 아닌지.
그렇게 걱정스런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유아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정신을 잃는다.
가지가지 한다 정말.
형진은 얼른 다가가 우선 상태부터 살폈다. 몸이 살짝 뜨겁게 느껴지긴 하지만 아파서 열이 나는 것이 아니라 격렬한 운동으로 인해 몸이 뜨거워진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대로 그냥 밖에 놔둔다면 그것도 바뀌어 버리겠지만.
어쨌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형진은 얼른 유아의 몸을 안아들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크루그가 다가와 슬쩍 말을 건네고는 사라진다.
“아저씨 방에 뜨거운 물 가져다 뒀어요. 아래층 욕실보다는 그쪽이 나을 것 같아서.”
“고맙다.”
얼른 자신의 방 침대에 유아를 데려다 놓고는 일단 땀으로 흠뻑 젖은 옷부터 벗긴다. 유아의 방에 따로 욕실이 있으면 그쪽으로 옮겼겠지만 없으니 이쪽에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크루그도 이층의 그녀 방에 옷 가지러 왔다갔다 하기에는 아래층 욕실이 적당하지 않다고 여겨서 여기에 뜨거운 물을 가져다 놓은 것이리라.
옷을 벗기니 살짝 달아오른 채 땀으로 번들거리는 유아의 몸이 드러난다.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절한 애를 보고 뭘 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얼른 욕실로 향했다.
크루그가 가져온 뜨거운 물을 욕조에 붓고 차가운 물을 적당히 섞어 너무 뜨겁지 않도록 온도를 맞춘 다음 유아를 안아다 그 안에 눕혀 놓고 씻기기 시작한다.
이래서야 누가 주인이고 누가 메이드인지 원. 깨어나기만 해봐라. 아주 혼구녕을 내줄테니.
그렇게 투덜거리며 몸을 간단히 씻기고는 다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후, 유아의 방에서 잠옷을 가져다 입힌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유아는 완전히 축 늘어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형진이 유아에게 가르친 것은 바로 체력 증진을 위한 매크로 체조였다. 힘이나 민첩 같은 걸 가르쳐 볼까 하다가, 그녀가 희망과 생명의 사제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설마 너무 과하게 적성에 맞아 버린 건가.
문득 은신을 처음 배울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형진도 한참을 몰입하고 그랬지만, 깨어났을 때는 온전히 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이렇게 탈진 비슷한 모습으로 쓰러질 때까지 수련을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투덜대며 잠옷을 다 입히자, 형진은 유아를 안아 올려서 그녀의 방 침대에 데려다 눕혔다. 이불 안이 좀 싸늘하긴 하지만, 몸에서 열이 후끈후끈 나고 있는 상태니 금방 덥혀질 것이다.
걱정한 것도 모르고 볼을 발그하니 붉힌 채 쌔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모습이 얄밉게 느껴진다. 형진은 그녀의 코를 잡고 흔들어 보이다가, 이내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곰탱이, 내일 아침에 두고 보자.”
형진이 그 말과 함께 문을 닫고 나가고서도 한참 뒤, 그제서야 유아가 슬며시 눈을 뜬다.
“…”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 맞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손으로 이불을 들어올리고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살폈다. 그리고 단정하게 입혀진 잠옷을 잠시 내려다 보다가 슬쩍 옷을 들춰 속옷이 있는지 살폈다.
없다. 경황이 없었는지 형진은 속옷은 어디다 팽개치고 잠옷만 덜렁 입혀 놓고 가버린 것이다.
“…”
유아는 속옷이 없음을 확인하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이 거짓이 아닌 현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매크로 체조가 끝났을 때 그녀가 쓰러진 것은 탈진해서가 아니었다. 한순간 혼이 빠져 나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의 혼은 잠시 육체를 떠난 사이,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고 왔다. 그녀는 몰랐지만, 그녀가 다녀온 곳은 바로 엘리시온이었다.
그렇게 영문도 모르고 다른 세상을 유체 상태로 떠돌아다니던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확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에 다시 타나토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보았다. 형진이 자신의 몸을 욕조에 담근 채 정성스럽게 씻기는 모습을,
“아…”
그녀의 머리카락을 감기고, 팔과 다리를 씻긴다. 가슴을 어루만지고, 배꼽 아래의 부끄러운 부분까지 서슴없이 씻기는 그의 모습에 유아는 얼떨떨한 기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은 꿈일 거라고. 자신이 너무 음탕한 상상에 젖어버린 나머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것이라고.
그렇게 정성껏 유아의 몸을 씻기던 형진은, 이내 수건을 가져다 물기를 닦아 내더니 자신의 방에서 잠옷을 가져다 입히고는 침대에 고이 눕혀 놓았다.
그리고는 뺨에 살짝 입을 맞춘다.
형진이 나가고서도 유아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 얼떨떨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어느 순간 무언가가 확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정신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다. 전부 현실이었다. 형진이 자신의 몸을 씻겼던 것부터 시작해서, 볼에 입맞춤을 남겼던 것까지 전부 다.
화악!
유아는 온몸의 피가 전부 얼굴로 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엘리시온에 갔었던 일 따위는 이미 머리 속에서 날아가 버린지 오래. 남 일처럼 보았던 형진의 행동 하나 하나가, 그의 손길이 닿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이 마치 불덩이에 데인 것처럼 확확 달아올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그렇게 얼굴을 감싸쥔 채 고개를 붕붕 젓다가 침대 난간에 머리를 부딪혔지만, 그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유아는 계속 머리를 저어대다가 나중에는 몸 전체를 좌우로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침대 난간에 정강이나 발가락이나 기타 등등 충격이 가해지면 엄청나게 아픈 부위들이 부딪혔지만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나기는커녕 끄떡도 없었다. 부딪혔다는 느낌이 없는 건 아닌데, 아픔이 느껴지기도 전에 순식간에 나아버린 것이다.
“어, 어떡하면 좋아.”
내일 아침에 형진의 얼굴을 볼 엄두가 안 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려서 돌아버릴 것만 같다. 물론 처음 함께 둘이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만, 크루그와 카트린 남매가 오면서 그런 기대감도 어느새 희석되어 방심하고 있었던 참이라 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아가 방에서 어쩔 줄 모르며 몰라몰라를 시전하고 있을 때, 형진은 일단 욕실 청소를 간단하게 하고는 뜨거운 물을 가져다가 몸을 간단히 씻은 다음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어디 보자.”
지금 침대 위에는 갈고리 팔찌와 곰가죽 트렌치코트, 그리고 강화석이 놓여 있었다. 형진은 반짝거리는 강화석을 집어 들어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음식 중에는 없지만, 비약 중에는 행운을 올려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행운이 올라간다고 해서 강화 확률이 올라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형진이 직접 시험한 것은 아니고, 이것 저것 분석하기 좋아하는 유저들이 실험을 통해 통계를 낸 결과에 불과하지만.
즉, 강화는 그 자체로 다른 변수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복불복의 문제란 얘기다.
“역시 제물을 들여서 시도하는 게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겠지.”
고민하던 형진은 일단 갈고리 팔찌를 집어 들었다. 동굴곰을 잡고 나오면서 세 개를 더 구한 덕분에 현재 그의 손에 쥐어진 팔찌의 숫자는 모두 여섯. 모두 실패한다고 가정해도 세 번의 강화를 시도할 수 있는 개수다.
“후우…”
떠도 좋고 안 뜨면 제물 썼다 셈치고 트렌치코트를 가공하면 된다. 형진은 그렇게 자기 최면을 걸면서 강화를 시도했다.
곧바로 팔찌 두 개가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명하더니 철커덕 붙어 버린다.
[축하합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1 질긴 갈고리 팔찌’를 획득했습니다.]“헐?”
아까는 그렇게 속을 썩이더만 이번엔 한 방에 붙어 버린다. 제물이 붙어버리면 어쩌자는 건지. 그래서 일부러 공포와 죽음께 기원하지도 않았는데.
형진은 노강 팔찌 두 개를 들고 다시 한 번 강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또 붙어 버렸다. 그냥 철커덕하면서 단숨에 붙어버렸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잘 붙어?
“끙…”
이제 남은 노강 팔찌는 두 개. 여기서 선택지가 둘로 갈린다. 그냥 노강끼리 붙여 버리는 것이 하나이고, +2를 두 번 시도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던 형진은 +2를 시도하기로 했다. 지금 한창 잘붙는 타이밍이라면 +2 팔찌를 하나 더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서.
퍼석!
하지만 그런 안이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팔찌는 힘없이 부서져 사라지고 말았다. 망할. 어쩐지 그럴 거 같더라니.
투덜거리며 제물이 터졌으니 트렌치코트의 강화를 시작한다. 액세서리와는 달리 강화석 혼자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대번에 덜커덕 붙어 버린다.
“어디…”
강화 성공시 확률적으로 힘, 지구력, 매력 중에 하나가 옵션으로 붙는다고 했으니 어떤 옵이 붙었을까 하고 살펴봤다. 하지만 결과는 꽝. 아무런 옵션도 붙지 않았다.
“미치겠네. 이거.”
이래서 강화는 할 게 못된다고 하는 모양이다. 형진은 허탈한 표정으로 트렌치코트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 번 제물이 될 팔찌의 강화를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2 질긴 갈고리 팔찌’를 획득했습니다.]그런데 이게 웬 일. 이번에도 철커덕 붙어 버리고 말았다. 하나도 만들기 어렵다는 +2 팔찌가 두 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음… 양 손에 하나씩 차면 되겠네.”
이제 문제는 트렌치코트. 제물도 없이 그냥 막 강화를 하려니 다시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냥 나중에 제물이 생기면 강화하고 일단은 냅둘까. 아니면 그냥 미친 척 하고 한 번 질러볼까. 어차피 액세서리와는 달라서 단숨에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을테니 상관없지 않을까.
“그래. 까짓 거 인생 뭐 있나. 터지면 동굴곰이나 또 잡으면 되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간절하게 공포와 죽음께 기원했다. 제발 좀 붙여달라고.
[안타깝습니다! 강화에 실패했습니다!]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실패. 이럴 수가 공포와 죽음께 기도까지 했는데 실패라니.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넙죽 엎드려 절을 하며 다시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그래. 정성이 부족했던 거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붙여달라고 징징댔으니 공포와 죽음께서 보기에 짜증스러우셨던 것이리라. 그래, 그게 틀림없다. 그렇게 불경스러운 모습으로 붙여 달라 그러면 자신 같아도 안 붙여줄거다.
그렇게 몇 번이나 절을 하며 기도를 하다가 다시 시도를 해 보았다. 이번에는 제발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이미 자신이 강화라는 빠져 나올 수 없는 늪에 발을 담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축하합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강인한 곰가죽 트렌치코트’에 새로운 옵션이 생성되었습니다.]그러자 이번에는 기도에 응답하신 것인지 대박이 터져 버렸다.
“으샤!”
얼른 확인해 보니 새로 붙은 옵션은 다름 아닌 지구력. 좀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붙었으면 된 거다.
형진은 다시 한 번 엎드려 절하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고는 강화를 시도했다.
[축하합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강인한 곰가죽 트렌치코트’에 새로운 옵션이 생성되었습니다.]“예쓰! 예쓰! 예에쓰! 바로 이거야! 공포와 죽음님! 감사…”
이번에 붙은 옵션은 힘! 하지만 형진은 감격에 몸을 떨다가 그대로 흠칫하며 굳어버리고 말았다. 좋아서 발광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다시 강화를 실행해 버린 것이다!
“아, 안 돼! 그만! 멈춰! 어, 어어!”
당황해서 강화를 멈추려고 했지만 공명음은 멈추지 않았고, 그대로 강화가 실행되어 버렸다.
[안타깝습니다!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강인한 곰가죽 트렌치코트’의 내구도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강화가 실패한다면 아이템이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형진이 살펴보니, 반짝거리던 신품이었던 트렌치코트는 어느 새인가 몇 년은 험하게 입은 옷처럼 허름하게 변해 있었다. 뭐… 이건 이것대로 분위기가 나긴 한다만.
“그래도 파괴되지 않은 건 다행인가. 끙…”
실수로 한 번 더 누르지만 않았어도 반짝 반짝 윤이 나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닐 수 있었는데.
아쉽긴 하지만 좋은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성공이 기쁘더라도 발광은 하지 말아야겠다. 괜히 아까운 아이템 날리는 수가 있으니까.
그나저나 내구도 복구하는 방법은 없나. 내일 지부장에게 스킬 문의도 할 겸 가서 물어봐야겠다. 한숨과 함께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형진은 늘어놓았던 아이템들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 작품 후기 ============================
작가: 여기서 문제, 분배시 사라진 금화 한닢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공죽: 크흠. 난 모르는 일이외다.
(2017.3.10) 블리츠소드에 대한 내용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