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984
00983 [아침] =========================
아침이 되었다. 형진은 자신의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있는 규설과 힐리에타의 작은 호흡이 자신의 가슴을 간질이는 감각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으로 비치는 태양의 높이로 미루어서는 아주 이른 아침이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정오가 되었다고 하기도 애매한 그런 시간이다.
발치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시트를 끌어와 드러난 그녀들의 몸 위에 덮는다. 모처럼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결국 그녀들은 96수는커녕 48수도 다 채우지 못하고 기력이 다한 채 지쳐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모처럼 용기를 낸 것 치고는 좀 허무한 결말이긴 했지만 그나마도 거듭된 관계를 통해 평범한 존재로부터 변화한 덕분이다. 처음 자신을 받아들였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일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으응…”
여전히 살짝 달아올라 있는 느낌의 피부에 시트가 닿자 힐리에타가 투정을 부리듯 작게 신음하며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든다. 부드럽고 따뜻한 여체의 감촉에 그렇지 않아도 생리적인 현상으로 인해 성이 나있던 그의 육체가 더욱더 화를 내기 시작한다. 허나 그렇다고 지쳐 잠들어 있는 아내들을 상대로 남은 욕정을 쏟아 부을 수는 없는 일. 쓴웃음을 지으며 다른 쪽으로 신경을 돌린다.
[보고하라.]아내들의 숙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메시지를 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 밤의 사건에 대한 보고가 올라온다.
산군들에 의한 심문을 통해 사건의 주모자와 혼란을 틈타 방화와 강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제외한 이들의 석방이 이루어졌다.
여전히 구금 상태에 있는 자들 중에는 도시의 치안을 맡았음에도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절도와 강간 등의 죄를 범한 자를 비롯해, 주모자 측에 속해 있었으나 무분별한 파괴 행위를 보다 못해 그것을 막으려 움직인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장의 판단만으로는 바로 석방하기 어려운 이런 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처결이 먼저 진행되고 난 뒤,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내용이 보고되었다.
급진 과격파의 무장 봉기라는 부분에서는 달리 특기할 만한 사항이 없었지만, 이번 영유권 분쟁에 대한 조정 신청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에서는 여러 가지 새로운 내용이 확인되었다.
[처음부터 나에게 이 땅을 맡기기 위한 술책이었다는 얘긴가.]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본 결과로는 그렇습니다.]내막을 자세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두 나라의 수운이 모이는 장소이며, 그런 이유 때문에 이전에도 몇 번이나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곳을 형진에게 건네기 위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조정 신청을 한 것이라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 신이라는 존재가 처음 알려졌을 때, 사람들을 가장 당혹하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간단한 얘기다. 새롭게 등장한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점이 그들로 하여금 가장 큰 혼란에 빠지게 만든 주된 원인이다.
근거지를 가지고 있는 세력이라면 그곳으로 사절이든 첩자든 보내서 정보를 모으면 된다. 자신들 앞에 모습이 드러나 있다면 강제적인 수단이든 우호적인 수단이든 동원해서 만나보면 될 일이다. 하지만 신은 그런 식으로 정보를 모으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근거지도 없고, 명확하게 실체가 파악된 세력도 찾을 수 없다. 자신들의 인지범위를 벗어난, 그야말로 초월적인 무언가를 어렴풋이 느낄 뿐이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손 놓고 상대의 조치를 받아들이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지성체들에게 있어 가장 크게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무지다.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알아낼 방도조차 없는 상황. 그저 아는 것이라고는, 지금껏 자신들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 정도.
이래서는 대책을 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들은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근거지나 세력을 알 수 없다면, 그것을 만들어 주면 된다. 어떤 식으로든 지상에 형태를 갖춘 무언가를 지니고 있으면, 그것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야만 한다. 또한 가급적이면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운 위치여야만 한다. 물론 반대로 상대의 영향력이 커질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자신들의 상식을 벗어난 존재라면 어떤 식으로는 영향을 받는 건 마찬가지. 어차피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국에 유리하도록 일을 꾸며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양국의 수뇌부들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영유권을 놓고 싸워왔던, 어떻게 보면 자신들의 목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안카로 사라는 도시를 판돈으로 내걸고 그들은 국가의 명운을 건 도박을 벌인 것이다.
안카로 사라는 땅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더구나 최근에는 아예 안카로 사 자체가 두 나라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잘 조율하면, 이곳을 신이라는 존재의 근거지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할 터.
일단 근거지를 가지게 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신이든 그 존재를 받드는 추종자든 결국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그런 식으로 접촉이 가능해지면, 비로소 교섭이든 뭐든 가능해진다. 무지라는 이름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생기는 것이다.
[제법인데.]급진 과격파의 무장 봉기라는 변수가 발생해서 소란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런 식의 반발이 있다는 것 또한 신에 의한 개입 명분이 될 수 있다. 실제로도 형진은 소란이 벌어지자 즉각적으로 개입하여 사태를 진정시켰다. 이 일을 주도한 양국으로서는 상대가 그런 식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했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을 지켜봄으로서 형진의 성향 또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 이 순간 다른 주변국들에 비해 정보라는 측면에서 크게 앞서가게 된 셈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처음부터 안카로 사를 근거지로 제공하려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무장 봉기가 무엇보다도 큰 호재가 될 수밖에 없다. 안카로 사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불평분자들이 횡행하는 곳으로 매도당할 것이고, 이것은 국내외의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 쓰여지게 될 것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일부러 이번 봉기를 배후에서 부추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생길 정도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조금은 긴장한 즈라탈의 메시지를 보며 형진은 씩 웃었다.
[최소한 앞뒤 분간도 못하는 불나방들보다는 낫겠지.] [그렇다면…] [두 나라의 책임자들을 불러라.]물론 이 비유는 이번에 사건을 일으킨 급진 과격파들을 두고 하는 얘기다.
그들이 어떤 이념을 가졌고 어떤 신념을 통해 움직이는지는 이미 관심 밖이다. 누구에게 조종당하는지도 모른 채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는 우매한 자들을 자신의 휘하에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눈곱만큼도 없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반드시 샌다. 자기 앞가림조차 못하는 멍청이들을 품안에 넣은 채 뒤치다꺼리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주도적으로 일을 꾸민 두 나라는 형진에게 있어 좋은 손발이 되어 줄 수 있다.
[직접 만나시겠습니까?] [글쎄.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겠지.]형진은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곤히 잠들어 있는 두 아내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이 세계에 대한 건은 대리자에게 일임할 생각이다. 그렇게 알고 움직이도록.] [명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즈라탈의 대답을 끝으로 메시지를 통한 보고가 끝나자, 형진은 가만히 규설과 힐리에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그 손길을 느낀 것인지, 규설이 먼저 부스스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으음…”
그에 반해 힐리에타는 여전히 꿈결 속을 노니는 모양인지, 작은 신음 소리와 함께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잠시 멍한 눈을 하고 있던 규설은 빙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형진의 시선을 느끼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형진은 작게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지난 밤에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버린 모양이다.
“잘 잤어?”
“네…”
규설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반대편에서 아기처럼 형진의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곤히 잠들어 있는 힐리에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는 몰라도 살짝 상기된 채 행복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규설은 이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며 형진과 눈을 맞추었다.
상체를 일으키자 예쁜 가슴이 드러난다. 너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작은 것도 아닌 적당한 크기의 가슴이 탱글거리며 흔들리는 그 모습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일찍 일어난 새가 먼저 먹이를 먹는다는 얘기가 떠올랐어요.”
그의 기색을 눈치챈 것일까. 규설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만히 형진에게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로 감미롭게 형진의 입술을 탐닉하던 규설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경건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그의 몸에 입을 맞춘다.
목덜미로부터 시작해서 쇄골과 가슴으로 그녀의 입술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맞춤을 이어갔다. 그녀의 모습은 이내 몸을 덮고 있는 시트 아래로 사라졌고, 모처럼 다른 생각을 떠올리며 진정시켜 놓았던 그의 몸을 향해 다가갔다.
“음…”
시트로 감추어진 그녀의 머리가 마침내 어떤 곳에 도착하자, 형진은 작은 신음을 토하며 그녀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자신의 몸을 삼키는 느낌을 받아들였다.
어제 시험해 봤던 자세 중에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치도리의 곡이었나. 자세를 바꾸면서 규설의 예쁜 엉덩이가 시트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 어쩐지 더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원래 형진은 즈라탈의 보고를 받으며 안카로 사라는 이름의 이 도시를 맡길 대리자로 규설과 힐리에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안카로 사를 놓고 경쟁하던 두 나라처럼, 규설과 힐리에타 역시 자신의 사랑을 놓고 은연중에 경쟁하는 관계. 둘에게 이 도시의 일을 맡기면 그러한 경쟁 관계가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떠올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형진은 불현듯 떠올랐던 그러한 생각을 머리 속에서 지웠다. 아바타를 사용할 수 없는 이상 그와 같은 일을 맡기면 결국 이 예쁘고 귀여운 아내들과 보내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분명 하나의 세계를 살피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위해 모처럼 달콤한 신혼 생활을 포기해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도대체 그 신혼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모르긴 해도 희망과 생명이 지금의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히 그렇게 핀잔을 주었으리라.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런 예쁜 마누라를 다른 이들에게 내보이기 싫다. 얼마 동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가능한 한 좀 더 오랫동안 자신의 품 안에 둔 채 보물처럼 다루고 싶다. 나쁘게 말하면 독점욕이라고 비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느낌이다.
조금 기세가 약해졌던 그의 신체가 다시 활화산처럼 성을 내기 시작하자, 규설은 조심스럽게 뒤집어쓰고 있던 시트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키더니, 옆으로 돌아앉은 자세로 그와의 결합을 시도했다. 48수에서는 이 자세를 가리켜 고쇼구루마라고 부르는데 이름만 가지고는 의미나 자세를 떠올리기가 어려운게 사실. 일반적인 기승위와는 다르게 옆으로 돌아앉은 자세이므로 굳이 새로 이름을 붙인다면 기승측위 정도가 어울릴 것 같다.
“흐응…”
일반적인 기승위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단순히 상하 운동만을 하는 게 아니라, 마치 긴의자 형태의 그네를 타듯이 전후좌우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점이 특이하다. 돌아앉은 옆모습의 굴곡이 너무나 예뻐서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다.
가만히 손을 뻗어 규설의 다리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자 그렇지 않아도 숨결이 뜨거워지고 있던 규설은 작은 탄성을 터트렸지만 급히 입을 막아 소리를 억누른다. 모처럼 그를 독점하고 있는 지금의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이어가고 싶은 욕심 때문이리라.
“으음…”
흔들리는 침대의 느낌 때문인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꿀 같은 숙면에 빠져 있던 힐리에타가 다시금 투정을 부리듯 그의 품으로 파고든다. 그녀가 깨는 줄 알고 잠시 긴장했던 형진과 규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잠을 이어가는 힐리에타의 모습에 작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깨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다시금 움직임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그들이 침대에서 벗어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 작품 후기 ==========
숙면을 취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침입니다. 네.
그런 의미에서 후방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