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2244)
EP.2244 2244. 레조
이연숙을 비롯한 양복쟁이들과 함께 협회 옥상으로 올라왔다.
매서운 바람이 획획 불어와 몸을 때렸다. 이곳에 바람 따위에 몸이 흔들릴 사람은 없었다.
미령은 마석이 쌓인 곳으로 다가갔다. 2,000억 원어치지만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하나 같이 순도 높은 S급 이상의 마석들이었으니까. 최소 1억에 달하는 비싼 것들.
크기는 너무 크지 않았다. 직경 15cm 정도가 대부분이다. S급 이상이 되면 크기보다는 순도에 더 영향을 받는다.
미령이 시작한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쌓여 있는 마석들이 은은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빛무리는 그녀의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저 빛들은 마나고, 마나는 하나의 술식이 되어 모습을 감춘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 이건 단지 하나의 술법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미령의 손짓은 30분 동안 이어졌다.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이 옥상 공간의 밀도가 말이 안 되게 높아졌다. B급 이하의 협회 직원은 버티지 못해 아래층으로 내려갈 정도였다.
천안을 사용하자 미령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술식들이 보인다.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었으나, 남과 같이 볼 방법이 없었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미령의 술식을 이해하는 자들이 있었다.
“수백 개의 술식을 하나로 엮어 결계로 자아내는 건가. 방대한 에너지를 한 번에 다루는 건 불가능하니 이런 식으로 한 것 같은데… 이게 가능하다니. 국내에 이런 인재가 있었을 줄이야….”
마법사건국의 국장인 김지학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10분 전부터 이 상태였다. 마법사이기에 느끼는 바도 다른 것 같다.
“…….”
이연숙은 딱히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회의실에서 계속 담배를 피던 그녀가 지금은 담배를 손에 든 채로 미령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30분 동안 계속 집중해서.
그들은 각각 마법사에 결계사이기도 하니 내가 느끼지 못한 걸 느끼고, 이해하지 못한 걸 이해하고 있으리라.
‘한 가지 확실한 건 미령의 수준이 엄청나다는 거지. 뭐, 그거야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긴 해.’
현실에서 미령을 따라올 술법사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미령의 술법과 현실의 술법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자, 시작할게요!”
미령이 외치며 팔을 뻗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녀가 자아낸 술식이 결계로 구축되어 서울 전역을 뒤덮었다.
천안을 통해 본 그 광경은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소나기가 서울에 내리는 모습이었다.
결계가 유지된 건 약 15초. 그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탐색을 위한 결계였으니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다.
“미령 씨. 결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김지학이 긴장하며 물었다. 실패하면 2,000억 원을 날린 꼴이니 당연히 긴장되겠지.
“성공했어요. 바닥에 표시해 줄게요.”
미령이 바닥을 향해 손을 휘젓는다. 콘크리트 바닥에 서울 지도가 그려졌다. 지도 위로 푸른색 점, 주황색 점, 푸른색 점이 표시되었다.
“설명해라.”
이연숙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할 거예요. 여기 보면 푸른색 점이 대다수죠? 이것도 저주예요. 목숨에 지장이 없는 평범한 저주라고 할까요? 서울에서 약 3만 명 이상이 이런 저주를 갖고 있어요.”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군. 서울에서 저주 피해자는 1만 명 정도가 아니었나?”
“…확인된 피해자만 1만 명 정도입니다. 가벼운 저주는 환경적인 요인에서 발생하니… 본인이 저주에 걸린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죠.”
김지학이 변명하듯 말했다.
대학교애서 배운 게 있기에 저주에 관해선 어느 정도 안다. 그가 말하는 가벼운 저주란 피부가 가렵거나, 악몽을 꾼다는 등의 가벼운 저주를 말하는 것일 터다. 보통 이런 가벼운 저주는 저절로 사라진다. 그게 아니어도 병원에 가서 깔끔히 해주 할 수 있다. 그래도 3만 명은 좀 많은 것 같긴 하다.
“주황색 점은 뭐지?”
“목숨에 지장이 있는 수준의 저주요. 아마 저주로 인해 3년 내로 죽을걸요?”
주황색 점은 대충 500개였다. 대다수가 한곳에 모여 있었다. 나는 그곳이 병원이란 걸 알았다.
“미령 씨. 이거 기록해도 되겠습니까? 목숨이 위험하다면 따로 관리가 필요할 것 같군요.”
“그러세요. 빨간색 점은 수준급 이상의 저주예요. 총 24개.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이연숙은 지도를 빤히 바라보다가 몇 곳을 툭툭 건드렸다.
“이쪽은 빼지. 누군지 짐작이 간다.”
그녀가 뺀 빨간색 점 중 하나는 익숙한 병원에 있었다.
박수호의 여동생인 박가인이 입원한 병원이다. 박가인은 백택의 저주를 앓고 있으니까.
‘어쩌면 미령이 백택의 저주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확인되지 않은 붉은색 점은 총 8개.
“김지학 이쪽 넷은 내가 확인하겠다. 섣불리 접근하지 말고 위치만 특정하도록. 생체 폭탄이 아니라면 특수 병원에 데려와 격리해라. 생체 폭탄이 의심된다면… 억지로 접촉하지 말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유인해라. 억지로 끌고 가려 했다간 펑 터질 거다.”
“예.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연숙은 나와 미령에게도 지시했다.
“너희는 지정해 주는 장소로 가서 기다려라. 역추적할 필요가 있으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죠.”
• • •
이연숙이 지정한 장소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서울에 가까운 마을인데 인프라는 전혀 없으며 사람도 없는 곳. 근데 도로와 집이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어서 기이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마을 끝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나무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모양새다.
“흐으응. 굉장히 주술적인 장소네요. 저 나무는 수호목인가?”
여기저기를 바라보던 미령이 흥미롭다는 듯이 웃었다.
“수호목? 뭔 소리야? 딱히 특이한 마나같은 건 안 느껴지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술은 아니니까요. 기원에 더 가깝다고 할까요. 자, 여기서 이 마을을 봐보세요. 집의 위치, 도로의 생김새를 보면 뭔가 떠오르지 않나요?”
“떠오르긴 뭐가.”
“자세히 보세요. 자세히.”
눈을 가늘게 뜨며 마을을 내려다봤다. 한참을 그렇게 보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한반도? 집은 지역과 도시. 도로는 강. 저기 있는 저수지는 제주도?”
“네. 맞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만… 한국으로 향하는 삿된 기운을 어느 정도 막아주긴 할걸요? 뭐, 그보다는 주술을 사용하기 알맞은 장소라고 할까요. 여기에서라면 역추적도 쉽게 되겠어요.”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나. 관심이 없다 보니 처음 알았다.
마법이나 주술은 몇천 년 전부터 존재했었다고 하니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각성자는 게이트가 생겨나면서 확 늘어났다. 시간으로 따지면 수십년 밖에 되지 않는다.
시간이 좀 지나자 마을 입구에 자동차 여러 대가 들어왔다. 자동차는 충분한 공간이 있음에도 마을 안으로 진입하지 않고 멈췄다. 차에서는 이연숙과 김지학을 비롯한 양복쟁이들이 내렸다. 협회 직원은 구속된 자를 끌고 다가왔다.
“생체 폭탄은 다섯이더군. 공통점은 모두 누군가에게 배운 저주술사라는 것. 아마 그 누군가가 레조겠지. 저마다 기억하는 얼굴이 달라서 추적은 할 수 없었다. 저주를 통한 역추적. 가능하겠지?”
이연숙은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미령은 구속된 자들을 빤히 바라봤다.
“생체 폭탄 저주를 봉인해 두셨네요?”
“중간에 터지면 곤란하니까요. 봉인을 풀어야 합니까?”
김지학의 물음에 미령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잘하셨어요. 봉인됐다고 해서 저주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역추적하기에는 더 편하죠. 시작할게요.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딱히 필요 없겠네요.”
쏴아아아아.
미령의 뒤에 있는 수호목이 바람 없이 흔들린다. 놀라서 지켜보고 있자니 미령이 말했다.
“여주의 이름 모를 산에 있네요. 정확한 위치는 지도를 보고 찌어드릴게요. 산속에서 자연인 생활이라도 하나?”
“유럽에서 놈을 발견할 당시에도 놈은 산속에 있었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군.”
이연숙이 스마트폰에 여주시의 지도를 꺼냈다. 미령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툭 가리키자 다른 이들에게 지시한다.
“김지학. 경찰과 협력해서 주변을 봉쇄해라. 들키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이도록. 레조는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다른 S급 헌터님들에게 협력을 요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럽에서 레조의 토벌은 시시하게 끝났다. 레조의 무력은 S급 중에서도 최하위였다. 유럽은 레조의 테러 행위에 쫄아서 과잉 대응을 했을 뿐이다.”
“그럴 만도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패닉에 빠지기 직전이니까요. 특히나 대한민국은 테러에 내성이 없어서…. 일은 시키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이연숙은 우리를 돌아봤다.
“너희는 어떻게 할 거지? 충분히 해줬으니 여기서 빠져도 좋다. 보상은 너희가 원하는 대로 성유진의 실적으로 지급하지. 덤으로 보상금도 챙겨주마. 얼마 되진 않겠다만.”
미령이 나를 쳐다봤다. 선택권을 내게 넘긴 것이다.
돌아가서 미령이랑 밤 데이트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따라가도 됩니까?”
“못 지켜준다. 괜히 따라와서 죽어도 원망하지 마라. 혹시 보험은 들어놨나?”
“따라가겠습니다. 저희 몸은 저희가 챙기죠.”
S급끼리의 전투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기회를 어떻게 그냥 넘기나. 불구경 다음으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다는 말도 있고.
“당장 움직인다.”
• • •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미 봉쇄는 시작된 상태였다. 이 정도면 레조도 자신의 위치가 들켰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연숙은 입에 담배를 물고 담담히 산으로 걸어갔다. 이곳이 산인데도 흡연에 거리낌이 없었다.
산의 중심에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S급 범죄자인 레조가 확실했다. 그는 숨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 산 자체가 저주로 물들였네요. 큰일인데요.”
돌연 미령이 탄식하듯 말했다.
“뭐가 큰일인데?”
“그러니까 이 산이 저주 폭탄이 돼서… 터진다고요.”
“언제?”
“…3.”
“3분?”
“2. 1.”
콰아아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