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2432)
EP.2432 2432. 다크 문
나는 피 웅덩이 위에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웃었다.
충만한 힘이 느껴졌다. 여긴 이제 나의 공간이었다.
“올려다보려니 목이 아프군. 우선 내려와라.”
손을 들어 아래로 내린다. 주변에 깔린 피 웅덩이가 내게 공명하며 요동친다. 마법의 힘이 증폭되었다.
[그래비티]하늘에 떠 있던 라훌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라훌은 지상에 완전히 떨어지기 직전에 멈췄다. 그의 주위로 빛나는 돌멩이들이 원을 고리며 두둥실 떠올랐다. 에이사가 사용했던 재액의 돌멩이와 비슷했다.
[블러드 컨트롤]피를 조종한다.
단순히 피를 조종할 뿐이지만, 그 피가 진혈 뱀파이어의 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 자체만으로 강력한 힘을 내포하고 있으니까.
피 웅덩이에서 피가 솟구쳐 라훌을 덮쳤다. 그대로 짜부라뜨리는 게 목표였으나… 통하지 않았다. 돌멩이를 중심으로 펼쳐진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피를 막은 것이다.
“성가시게 구는구나. 단순히 피를 조작할 뿐이어서는 이 지영지석(地影誌石)을 뚫을 수 없다.”
그의 주위에 떠 있던 돌멩이 고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람이 일어나며 주변에 있던 피가 흩날린다.
단순히 저 돌멩이들이 빠르게 움직였다고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다. 나는 저 돌멩이 하나, 하나에 엄청난 질량이 압축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돌멩이 하나가 날아온다. 피를 일으켜 벽을 세웠으나 간단히 뚫렸다.
진혈 뱀파이어의 권능 중 하나, 안개화를 사용했다. 육체를 안개로 바꿔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 몸은 떨어지지 않고 부유했다. 이것 또한 진혈 뱀파이어의 권능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내가 있던 장소에 돌멩이가 떨어지며 거대한 폭음이 울렸다. 힐끗 내려다보니 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블러드 스파이크]수백 개에 달하는 피의 가시가 라훌을 노렸다. 허나 이번에도 놈이 두르고 있는 방어막을 꿰뚫지 못했다.
“…배리어의 출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단하군. 일종의 개념 결계인가.”
“꼴에 마법사라고 보는 안목은 있구나, 뱀파이어. 이 결계는 거대한 바위와 같다. 강철보다 단단하며 무겁지. 수적천석.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하나,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이 필요한 법. 네놈의 피로는 이 바위를 뚫을 수 없다.”
“무슨 소리냐. 너는 바위가 아니잖냐.”
쿨럭.
돌연 라훌이 피를 토했다. 분신이라곤 하나 피와 살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체와 세포 단위로 비슷한 분신이 아니고서야 정밀한 분신 조작이 불가능할 테니까.
갑작스러운 토혈에 당황하던 라훌은 이내 깨달은 듯 신음을 흘렸다.
“내 결계를 무시한… 저주인가.”
“뱀파이어라고 해서 혈마법만 써야 하는 법은 없다. 혈마법 정도는 아니어도 흑마법은 뱀파이어와 궁합이 좋지. 뒤늦게 깨달은 걸 보니 분신 상태에선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군.”
주머니에서 인벤토리에 있는 다크홀을 몰래 꺼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흑마법을 몰래 사용하는 쪽이 더 얼벼다. 다행히 놈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페인 툴라]상대에게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저주를 거는 5급 흑마법.
저주 조건은 하나. 상대와 눈을 마주 보는 것.
보통은 저주에 걸리자마자 고통이 느껴져서 바로 깨닫는다. 정신을 집중하면 마법사가 아니어도 해제하기 어렵지 않은 저주다. 저주 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만큼 해제하기도 쉬운 것이다.
분신이라는 말에 사용해 봤는데 정답이었다.
“병기로 사용하기 위한 분신이다. 고통을 느낄 필요가 있나?”
“음. 네 말이 맞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금 너의 오장육부는 뒤틀렸다. 분신이라 해도 오래 못 버틸 텐데? 길어봤자 3분일 테지. 나는 그동안 네가 죽어가는 모습을 구경하겠다.”
페인 툴라를 해제하더라도 이미 늦었다. 골든 타임은 사라졌다. 오장육부가 이미 뒤틀렸으니까.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미 죽었다. 라훌이 아직 서 있는 건 분신이기 때문이다.
“3분이면 널 죽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라훌이 양손을 벌린다. 그를 지키듯이 떠 있던 빛나는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온갖 방향에서 나를 공격한다.
피하기에는 날아오는 돌멩이의 속도가 많다. 막기에는 그 위력이 너무 강했다.
‘안개화.’
진혈의 권능으로 육체를 안개로 바꾼다.
물리력이 담긴 공격을 무시할 수 있다. 허나 돌멩이에는 지영지석이라는 주술 개념이 담겨 있었다. 안개화를 했으나 돌멩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피해는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내 안에 누적되고 있다.
라훌도 그를 알고 있는지 돌멩이 폭격을 멈추지 않는다. 떨어진 돌멩이는 다시 치솟으며 나를 공격하기를 반복한다.
“육체를 안개로 바꾸는 권능은 정말 성가시군. 허나 버티는 게 고작이 아닌가. 고작 네놈 따위와 버티는 싸움을 하게 될 줄이야. 인정하마, 진혈 뱀파이어. 네놈은 내가 기억하겠다. 죽기 전에 이름을 말해라.”
“네놈의 속셈을 내가 모를 것 같나? 마법적으로나, 주술적으로나 이름은 중요하지. 본체도 아닌 분신에 불과한 네놈에게 알려줄 이름 따윈 없다. 그리고 버티는 싸움? 난 단 한 번도 버티면서 싸울 생각 없다.”
안개화를 유지하는 상태에서도 말할 수 있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라훌은 방어를 포기한 채로 공격에 모든 걸 쏟아붓고 있다. 페인 툴라에 의해 분신의 확정된 이상 어떻게든 내게 피해를 입히고 싶을 테니까. 나라도 그랬을 거다.
‘하지만 덕분에 그 성가신 결계가 사라지고 틈이 드러났다.’
안개화를 하고 있을 때부터 준비하고 있던 6급 혈마법을 사용한다.
[블러드 스크림]피 웅덩이가 펼쳐진 한정 공간에 작은 해일이 수천 번 몰아치기 시작했다. 마치 폭풍을 압축해 놓은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라훌은 블러드 스크림에 삼켜지고, 날 노리던 지영지석은 힘을 잃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안 끝났다. 아직 블러드 스크림의 중심에서 버티고 있군.’
정상인 상태도 아니면서 맨몸으로 블러드 스크림을 버티고 있다. 그 역량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봤자 오래 버틸 순 없겠지.’
예상대로다. 라훌은 30초를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비록 분신이지만, 내 승리였다.
안개화를 해제한 나는 지상으로 내려갔다.
나도 정상인 상태는 아니었다. 라훌의 지영지석은 내게도 착실히 데미지를 입혔다. 밤이 아니라 낮이었다면 내가 졌을 거다.
‘뱀파이어로서 말이지.’
지상에 고여 있던 피웅덩이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 일부는 힘이 되어 내게 돌아왔으나, 썩 만족스럽진 못했다.
인벤토리를 열고 혈액팩을 꺼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마나 각성자의 혈액팩 하나를 열고 입에 물고 마시기 시작했다.
‘맛없군.’
뱀파이어라고 해도 선호하는 피 맛이 있는 법. 내 경우 대부분의 피가 맛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편식할 수는 없다. 뱀파이어에게 있어 피는 음식인 동시에 약이기도 했다.
‘맛과 별개로 좀 살 것 같긴 해. 그 돌멩이가 특별해서 그런지 회복이 좀 더디긴 하지만.’
혈액팩을 하나 비웠을 때, 에이사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엉망이 된 주변을 둘러보다 라훌의 시체를 발견했다.
“맙소사. 진짜 라훌 선배의 분신과 싸워서 이기셨군요?”
“승산이 있었기에 싸운 거다.”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시체가 된 라훌의 분신에 다가갔다.
너덜너덜한 시체. 간신히 머리와 상반신 일부만 남아 있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시체의 머리를 움켜쥐고 혈마법을 사용한다.
[블러드 체이서]라훌의 시체에 남아 있던 피가 꿈틀거리다가 힘을 잃었다.
마법이 먹히지 않았다.
‘블러드 체이서로 본체의 위치를 찾을 생각이었는데… 어떤 조치가 취해져 있군. 일종의 주술인가? 블러드 체이서로 놈의 위치를 찾는 건 불가능하겠어.’
“역시 실패했나 보네요. 하긴, 라훌 선배라면 추적을 방지하기 위한 모종의 방지도 해뒀겠지요.”
“여기 있는 한 그놈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나타날 거다. 네가 여기에 계속 있을 작정이라면 놈에 대한 정보를 말해라.”
“그러죠. 일단 여기서 벗어날까요. 근데 괜찮으세요? 안 그래도 창백한 인상이 더 창백하신데요.”
“난 괜찮다. 이동하자.”
장소를 벗어나기 전, 에이사가 가슴골에서 옥팔찌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거 착용하세요. 라훌 선배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이상함을 깨닫지 못할 거고요.”
“이질적인 힘이 느껴지는군. 그 위대한 정신의 힘인가?”
“네. 축복받은 옥석을 가공한…. 자연의 팔찌. 착용하면 자연스러워지죠. 효과는 대충 일주일 정도 갈 거예요. 일부러 날뛰지 않는 한 라훌 선배에게 들킬 일은 없을 거예요.”
나는 팔찌를 받아 착용했다.
솔직히 드루이드의 주술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신뢰하기 힘들다. 그래도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에이사가 이렇게 자신만만해하는 걸 보니 효과는 확실히 있을 거다.
팔찌를 착용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
“왜 그러세요?!”
“뭐냐, 이건…. 몸이 억눌리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은 밤인데도 태양 빛 아래에 있는 기분이다.”
“…아. 위대한 정신이란 곧 이 세상의 자연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니까요. 드루이드에게 있어 모든 자연은 위대한 정신…. 그러니까 태양 또한 위대한 정신이라 태양이죠.”
“요컨대 태양의 힘이 이 팔찌에 담겨 있다?”
“네. 하하. 어쩔 수 없죠. 참으세요. 라훌 선배에게 추적당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놈을 선배라 잘도 부르는군. 그놈은 널 죽이려 했다만?”
“그렇죠. 근데 전 이게 익숙해서요.”
우리는 멀찍이 떨어졌다.
나는 라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라훌.
에이사의 동문 선배이자, 6급 드루이드.
특기는 분신 주술.
주로 사용하는 주술은 바위 주술. 그중에서도 지영지석(地影誌石)의 주술. 땅의 힘을 작은 돌멩이에 투영시키는 주술.
“공격과 방어. 모두 뛰어난 주술이죠. 드루이드의 실력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데… 아까 봤을 때 라훌 선배의 지영지석은 하나, 하나가 10톤이 넘을 거에요.”
“…라훌의 목적은 뭐지?”
“저도 자세히는 몰라요. 하지만 짐작하기로는… 초월이겠죠. 라훌 선배. 저래 보여도 나이가 50살이 넘어요. 제가 드루이드를 수련할 때도 6급 드루이드였죠. 듣기로는 30년 이상을 6급에 머물러 있다고 해요. 그때도 승급에 대한 열망이 엄청났어요. 그러니 목적은 아마… 7급 승급일 테죠.”
“승급을 위해 타락했다. 뭐, 그런 이야기인가. 흔한 이야기군.”
6급에 오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7급에 오르는 건 더욱 힘든 일이다. 6급에 오른 대다수가 7급에 오르지 못하고 죽는다.
‘6급의 강자들이 미치는 이유가 7급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지.’
지영지석(地影誌石)의 주술. 땅의 힘을 작은 돌멩이에 투영시키는 주술. 공격과 방어 모두 뛰어난 주술.
라훌이 이곳에서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 몰라도, 우리가 이곳에 있는 한 놈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찾아내 죽이려 할 거다.
“귀찮아졌군. 이대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이는군.”
“당연하죠. 취재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는 법이에요.”
“그놈의 취재를 할 수 없게 됐다만.”
“대놓고는 할 수 없죠. 라훌 선배에게 들킬 테니까요.”
그녀가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내게 준 똑같은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
“제가 이 팔찌를 어떨 때 쓰는지 아세요? 바로 잠입 취재가 필요할 때! 지금이 바로 잠입 취재를 시작할 때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