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32)
점심은 PX에서 냉동짬뽕과 만두를 사서 전자레인지에돌려 먹었다.
택규가 말했다.
“간만에 먹으니 맛있다. 그치?”
난 한 입 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인정.”
“집에 갈 때 몇 개 사갈까?”
“밖에서 먹으면 이 맛이 안 날걸.”
그러나 군대에서 먹으면, 미슐랭 쓰리스타 부럽지 않지.
다 먹고 나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난 바쁘게 뛰어다니는 조교들을 보며 말했다.
“쟤들도 고생이네.”
사실 예비군 교육시킨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말을 들어야 말이지…….
“미안하면, PX에 한 1억 정도 선결제 해놓고 가.”
애들 밥 대신 냉동식품만 먹일 일 있냐?
“니가 해.”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얘도 들고 있는 현금만 수백억에 자산이 수십조다.
몇몇 예비군들이 친한 척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래도 예비군훈련장인 만큼 별 사람들이 다 있다.
대체 어느 주식에 투자하면 좋을지랑 지금 집을 사도 될지 말지는 왜 묻는 거냐?
* * *
오후에는 각개전투 훈련이 있다.
훈련장으로 이동하는데, 비가 조금씩 내렸다.
이런 날씨가 가장 짜증난다. 차라리 아예 비가 세차게 쏟아지면, 야외훈련은 취소되고 실내훈련으로 바뀐다. 그런데 지금처럼 애매하게 내리면, 비를 맞으며 훈련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훈련장에 앉아 조교의 설명을 듣는 도중 조금씩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예비군들은 환호했다.
“비 온다!”
“이제 안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땅도 질퍽거려서 앉아있기도 힘든데.”
“실내로 가즈아!”
이 정도면 당연히 실내로 가야한다.
조교들 역시 훈련 진행이 힘들다고 판단하고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했다. 그런데 갑자기 비상이라도 걸린 것처럼 간부들이 뛰어다녔다.
택규는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설마 북한군이 쳐들어오기라도 했나?”
그 순간, 무전을 받은 조교가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뭔데?”
“육군참모총장님께서 오고 계시다고 합니다!”
예비군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뭐? 육군참모총장?”
“예비군훈련장에 육군참모총장이 온다는 게 말이 되나?”
“나 현역 때도 사단장 이상은 본적 없는데.”
“육군참모총장이면 계급이 뭐죠?”
“4성 장군이죠. 포스타.”
“대체 포스타가 여기를 왜 와?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설마 나 때문인가?
정말로 그렇다면, 내가 돈이 많다는 점보다는미국과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한국군은 미군과 긴밀한관계를 맺고 있다.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미군 통수권자 로날드 스탬퍼 대통령과 대단히 친하다.
그렇다 해도 굳이 훈련장까지 찾아올 필요가 있나?
당연하지만 육군참모총장이 혼자서 움직이지는 않는다. 수행원들이 줄줄이 따라오겠지. 아마 준장이 막내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군대를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높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다. 원스타만 떠도 부대는 일주일 전부터 뒤집어진다.
내무반 전체를 치약으로 미싱하는 것은 물론, 총기와 장구류는 빛이 나게 갈고 닦고, 길가에는 낙엽 하나 먼지 하나까지 박멸해 부대 전체를 무균실과 비슷하게 만들어 버린다.(이 짓을 하느라 병사들은 며칠 동안 죽어난다. 그런데 막상 다 해놨더니 스케줄이 바뀌었다며 안 오기도 한다)
모름지기 예비군이라면 눈앞에 북한군이 나타나도 경거망동하지 않는 부동의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육군참모총장이 온다는 얘기를 들었음에도 별다른 동요는 없었다.
어차피 민간인인데, 별 몇 개짜리가 나타나든 뭔 상관인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예비군들 앞에 선 소대장이 말했다.
“이제부터 FM대로 훈련합니다! 훈련병 전원 바닥에 엎드려 포복으로 장애물을 뚫고 이동합니다!”
그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보게, 소대장 양반.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 보고 포복을 하라고?”
“지금 비 오는데!”
“아저씨! 땅 젖어있는 거 안 보여요?”
보통 예비군들이 반발하면 어느 정도 양보하기 마련.
그러나 소대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예비군은 강제퇴소 조치하겠습니다! 포복전진 실시!”
“…….”
낯선 소대장에게서 짙은 고문관의 향기가 난다.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예비군 자극하면 서로 좋을 게 없다.
한 예비군이 소총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나 안 해! 육군참모총장이 오든 말든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그러자 소대장은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당장 소총 집어 들고 훈련에 임하지 않으면 강제퇴소 조치하겠습니다!”
군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뭘까? 군기교육? 화생방? 유격? 혹한기?
아무리 힘든 훈련이라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러나 군 생활이 늘어나는 것만큼은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영창이 최악의 형벌이다. 영창 가있는 기간만큼 복무일이 늘어나니까.
그렇다면 예비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뭘까? 그건 바로 강제퇴소. 왜냐하면 모자란 시간만큼 다음에 다시 와서 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지. 이 짓을 하루 더 할 수는 없지 않나?
잠시 갈등하던 그는 결국 총을 집어 들었다.
“아오! 진짜!”
우리는 소대장의 지시 아래 차가운 비를 맞으며, 질척거리는 흙바닥을 온몸으로 기었다.
예비군들은 이를 박박 갈았다.
“이런 젠장!”
“미쳐버리겠네!”
“이게 예비군훈련이야, 유격훈련이야?”
“현역 때도 이 짓거리 안 했는데!”
택규는 옆에서 같이 기며 말했다.
“너 때문에 이게 뭐야?”
난 소심하게 항변했다.
“이게 왜 나 때문이야?”
“그럼 저 예비군 아저씨들 보러 왔겠냐?”
“…….”
역시 나 때문인가?
군대는 집단생활을 하는 특성상 한 명이 잘못해도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그래서 부대에 고문관이 하나 있으면 골치가 아파진다.
고문관보존법칙에 따라 어느 부대마다 고문관이 한 명씩은 있다.(혹시라도 군 생활 하는 내내 없었다면, 본인이 고문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일병 때 후임 한 명이 휴일에 위병소근무 지원 나갔다가 공포탄을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
실탄도 아니고 공포탄 하나 없어진 게 뭐 그리 큰일이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군대는 탄피 하나만 없어져도 난리가 난다.
휴식은 즉시 중단되고 부대원 전체가 공포탄 찾기에 동원되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누구나 한 번쯤 저지를 수 있는 실수다.
어이가 없는 건 공포탄이 그 후임의 주머니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제야 후임은 탄창을 떨어트리는 바람에 공포탄이 빠져서 주머니에 넣었는데 깜빡했다고 실토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혼날까봐 무서워서 말을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것도 모르고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부대 내를 이 잡듯이 뒤진 것이다.
그때 그 후임을 바라보던 시선이 지금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 고문관이 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다.
열심히 비를 맞으며 바닥을 기고 있는데, 대대장의 안내에 따라 육군참모총장과 장군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는 비 맞으며 훈련받고 있는데 다들 우산을 쓰고있었다.뒤에는 카메라를 든 장교의 모습도 보였다. 국방일보도 왔나?
소대장은 힘차게 경례를 붙였다.
“충성!”
육군참모총장 최형운 대장은 훈련장을 둘러보며 물었다.
“지금 무슨 훈련 중인가?”
“각개전투 훈련 중입니다!”
“평소에도 훈련을 이렇게 하나?”
소대장의 표정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렇습니다!”
그 순간, 택규가 갑자기 기침을 하며 소리쳤다.
“쿨럭쿨럭! 너무 춥고 아파서 못하겠네!”
그러자 다른 예비군들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드러누우며 앓는 소리를 해댔다.
“으악! 팔꿈치가!”
“어깨가 또 빠졌어!”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
“크헉! 암이 재발했나봐.”
“사람 살려!”
예비군들이 전원 동시에 사보타주(?)를 벌이자 대대장과 소대장의 표정이 굳었다.
최형운 대장은 소대장에게 말했다.
“오늘 날씨도 이렇게 안 좋은데, 예비군들에게 이렇게 힘든 훈련을 시키면 어떡하나? 이러다가 감기에 걸려 전투력이 저하되기라도 하면 이거야말로 커다란 국가적 손실인데.”
“죄, 죄송합니다!”
대대장은 바로 소리쳤다.
“뭐하나? 어서 훈련중지 시켜.”
“아, 알겠습니다. 훈련중지!”
아프다고 소리치던 예비군들은 즉시 벌떡 일어나 옷에 묻은 진흙을 털었다.
뒤에 있던 중장과 소장은 혀를 차며 말했다.
“훈련도 상황 봐가며 시켜야지.”
“하여간 요즘 장교들은 적당히를 몰라, 적당히를.”
대대장은 사색이 됐지만, 소대장은 여전히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고문관 당첨이네. 앞으로 대대장과 병사들 속 좀 터지겠구나.
최형운 대장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오! 강진후 대표도 훈련 중이었군.”
그러자 택규는 일부러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뭘 모르고 왔다는 듯 얘기하고 있어? 강진후 때문에 온 거 뻔히 아는데.”
그 말에 최형운 대장은 무안한지 괜히 헛기침을 했다.
“크흠.”
뒤에 있던 대대장은 어떨 줄을 몰라 했다. 현역이었으면 즉시 영창을 보내겠지만, 민간인이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최형운 대장은 나에게 물었다.
“예비군훈련에서 힘든 점은 없나?”
“…….”
이 아저씨는 날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허허, 뭐 때문에 힘든지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얘기하게.”
“…….”
누가 봐도 당신 때문에 힘들잖아! 그걸 왜 몰라? 당신도 고문관이야?
난 비 맞은 생쥐꼴로 있는 예비군을 슬쩍 둘러본 다음 말했다.
“보셨으니 알겠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했습니다. 날도 춥고 비도 계속 내리는데 일찍 끝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
최형운 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대장을 보며 물었다.
“오늘 예비군들이 훈련을 아주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조기퇴소 가능하겠나?
그러자 대대장은 마치 군기가 바짝 든 이병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예비군 전원 바로 퇴소시키겠습니다!”
그 말에 방금 전까지 나를 향했던 원망은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예비군들은 일제히 두 손을 들어 올리며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 * *
[최형운 육군참모총장, 예비군훈련장 전격방문](전략) 최형운 대장은 예비군훈련장을 방문해 부대시설과 훈련 상태를 둘러보며, 조교와 예비군들을 격려했다.
최형운 대장은 ‘예비군은 유사시 대한민국을 적군의 침략으로부터 방위할 핵심전력’이라고말하며 예비군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생업에 종사하는 와중에도 성실히 훈련에 임하는 예비군들이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기사 밑에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3개월 전 남친 군대 보낸 곰신이예요. 잘 몰라서 그러는데, 육군참모총장이면 많이 높은 건가요?
-육군참모총장이 대장이라고 하니 소대장이나 중대장과 비슷한 계급일 거예요. 저도 곰신인데, 제 남친은 장교로 지금 소대장이랍니다^^
-잠깐, 이게 뭔 소리야? 소대장이 육군참모총장과 동급이라고?
-서성전자 신입사원이 임진용과 동급이라는 얘기랑 뭐가 다름?
-그게 그거. 소대장이면 쏘가리일 텐데ㅋㅋ
-요즘 쏘가리들 ㅈㄴ 개념 없음. 고문관들 넘쳐남. 저번 달에 전역해서 다행.
-그보다 육군참모총장이 예비군훈련장을 왜 간 거야?
-ㅋㅋㅋ강진후 보러 갔겠지.
-조교들은 강진후 때문에 뭔 날벼락이냐?
-사진에 나온 이병은 악수하며 무슨 생각했을까?
-뒤에 있는 대대장 표정 보소ㅋㅋ 진급누락 확정인가?
-예비군들은 실실 웃고 있음ㅎㅎ
-참모총장이든 합참의장이든 예비군 입장에서는 걍 모르는 아저씨.
-최형운 대장 속마음 = 허허허, 이 새끼들 현역이었으면 전원 14박 15일 영창 보낼 텐데. 민간인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네.
-예비군들 속마음 = 허허허, 4성 장군이고 뭐고 우리가 알 바 아니고 빨리 집에나 보내줘라.
-마지막 날은 또 누가 방문하려나?
-퇴임식 보겠다고 허창민 대통령이 가는 거 아니야?
-대통령 지금 유럽순방 가있잖아요.
-내 느낌에는 주한미군사령관이 갈 것 같은데.
택규가 말했다.
“누가 주한미군사령관도 오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난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네.”
주한미군사령관이 예비군훈련장을 왜 와?
* * *
“찰리 슈이츠 주한미군사령관님께서 위병소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번에는 예비군들마저 술렁거렸다.
“어제는 육군참모총장이 오더니, 오늘은 주한미군사령관?”
“어차피 미 육군대장이니, 육군참모총장과 계급은 같지 않나요?”
“에이, 어디 한국군 똥별과 비교해요?”
“권위가 비할 바가 아니죠.”
한 밀덕(?)이 다른 예비군들에게 설명해주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사령관이고, 전시에 UN군사령관을 겸합니다.”
“아, 그래요?”
“UN군사령관은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 전쟁이 발생하면,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반도 내의 전군을 지휘하는 거예요.”
예비군들은 깜짝 놀랐다.
“뭐야? 그럼 완전 군대 최고존엄이네.”
“미군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걸요.”
“그런 사람이 왜 예비군훈련장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잠시 후, 정말로 슈이츠 사령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에는 미군 장성들은 물론 한국군 장성들도 늘어서 있었다.
대체 별이 몇 개야?
그리고 대대장은 거의 정신줄 놓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다 나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