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39)
어째서 채명호가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무슨 일 때문에 온 건지 대충 짐작이 된다.
난 그냥 돌려보내라고 말하려다가 하다가 옆에 있는 김재학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회의 중이니, 기다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정기홍 팀장이 나간 뒤, 난 계속해서 가맹점주들의 얘기를 들었다.
프랜차이즈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창업자 입장에서는 이미 검정된 업체의 영업방식과 레시피를 전수받을 수 있고, 식자재 구매 등을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인테리어, 광고, 마케팅 역시 본사가 책임진다.
본사는 가맹점 창업을 도와주며, 가맹비, 교육비, 매장 인테리어비 등을 받는다. 여기에 로열티와 각종 수수료, 그리고 독점공급하는 재료에 마진을 붙이는 방식으로 또다시 수익을 챙긴다.
문제는 본사가 기존 가맹점에게 과도한 수익을 뜯어내거나, 새로운 가맹점 유치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이다.
치킨값과 피자값은 고공행진을 거듭했지만, 정작 가맹점주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맹점주들이 좁은 매장 안에서 죽어나는 사이 본사는 나날이 덩치를 불렸다.
MCK그룹의 이익률은 20퍼센트에 달한다. 웬만한 프랜차이즈들의 이익률이 10퍼센트 이하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가맹점은 매출과 이익 모두 하락 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본사 매출은 지점이 늘어날수록 커지지만, 가맹점주 입장에서는 가까운 곳에 경쟁자가 생겨나는 셈이니 매출하락을 피할 수 없다.
여기에 판매가격이 올라가면 판매량은 줄어들고, 본사에서 공급하는 재료값 역시 오르면 올랐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대로 항의하기도 힘들다. 각종 불이익을 받거나, 계약을 해지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무슨 떼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자영업에 뛰어든 게 아니다. 다른 먹고살 길이 있었다면, 굳이 프랜차이즈 창업이라는 길을 택하지도 않았겠지.
한마디로 MCK그룹은 생계를 걸고 일하는 가맹점주들의 목줄을 틀어잡고 갑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얘기를 다 들은 나는 가맹점주들에게 말했다.
“말씀해주신 부분은 잘 들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은 간절하게 말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 *
가맹점주들은 일어섰고, 엘리도 회사로 돌아갔다.
회의실을 나온 나는 택규와 김재학과 함께 미팅룸으로 내려갔다.
택규가 물었다.
“누구 찾아왔는데?”
“채명호.”
내 말에 김재학의 표정이 살짝 굳는 것 같아 보였다.
“걱정할 것 없어요.”
내가 들어가자 미팅룸에 앉아있던 채명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이내 뒤따라 들어온 택규와 김재학을 보고 당황했다.
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왔어?”
“아, 그게…… 저번 일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죄송합니다.”
처음 학교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마치 순한 양 같은 모습이다.
난 들고 있던 자료를 채명호의 앞으로 던졌다.
“마침 잘 왔어. 그날 이후 MCK그룹에 대해 조사 좀 해봤는데, 잘도 해먹었더라. MCK홀세일이라는 공급업체를 중간에 끼워 넣어 통행세 붙이고, 할인행사 비용은 전부 가맹점에게 떠넘기고, 광고비와 홍보비 부당하게 걷고, 말 안 듣는 가맹점에는 위생조사하거나 일방적으로 계약해지하고. 보니까 인테리어비와 홍보비 일부는 차명계좌로 받았더만. 횡령, 배임, 탈세 등 걸 수 있는 혐의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채명호는 놀란 표정으로 자료를 훑어보았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녀석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내가 선배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표정과 목소리에서 억울함이 절절하게 묻어났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피해자인 줄 알 것이다. 본인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테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넌 나한테 딱히 잘못한 게 없어. 그런데 왜 나한테 죄송하다고 하는 거야?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을 텐데.”
채명호의 시선이 김재학에게로 향했다.
머뭇거리는 표정에서 모든 게 드러났다.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내가 아니라 김재학을 찾아갔겠지.
채명호가 생각하기에 난 돈 많은 강자다. 그럼으로 얼마든지 고개 숙여 사과할 수 있다. 그러나 가맹점주인 김재학은 약자다.
그러니 나에게 사과를 할 생각은 해도, 김재학에게 사과할 생각은 못한 것이다.
전형적으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타입이다.
뭐, 세상에는 이런 인간도 있기 마련이지.
표정을 보니,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학교나 자퇴해.”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채명호가 눈을 까뒤집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씨발, 강진후!”
놀라 반응하기도 전에 내 옆에 있던 김재학이 먼저 움직였다.
퍼억!
“크억”
김재학의 주먹이 정확히 명치에 꽂혔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채명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난 김재학을 보았다. 그는 스스로도 놀랐는지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래. 원래 성격이 좀 있는 사람이었지. 예전 모습을 다시 보게 된 것 같아서 기쁘다.
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주 잘했어요.”
택규가 말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 이치래드라. 알아들었냐? 지금부터 벌을 줄 테니까, 달게 받아라.”
갑자기 이게 뭔 소리야?
말을 한 택규는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 대사도 꼭 해보고 싶었어.”
“…….”
이제 그만해.
사람이 하고 싶은 걸 다하며 살 수는 없어.
* * *
가맹점주들에게서 모은 자료들을 언론에 제보하는 한편, 검찰에도 고소했다.
이 시점에서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한 점주가 본사의 갑질을 견디다 못해 가맹계약을 해지하고 개인 치킨집으로 바꾸자, 마스터치킨이 그 바로 앞에 커다란 직영점을 세운 것이다.
사실상 보복출점이었다. 결국 또다시 폐업 위기에 몰린 점주는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비하면 소소하지만, 채대호 회장이 경비원과 운전수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여론은 들끓었다.
-치킨값 계속 처올리고, 배달비도 따로 받더니, 가맹점주들 뒤통수나 때리고 있었네.
-가맹점주는 보복출점으로 때리고, 경비원은 주먹으로 때리고, 운전수는 발로 때리고.
-이 정도면 코너 맥그리거랑 옥타곤에서 한 판 해도 될 것 같은데.
-주먹은 몰라도 인성만큼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듯. 둘 다 쓰레기라…….
-통수치킨 시켜먹지 맙시다.
-위의 말이 맞음. 안 사먹는 게 답.
-브랜드 치킨만 좋아하는 것도 문제임. 앞으로 동네 치킨집 애용합시다.
-상생하는 치킨 프랜차이즈도 많습니다.
-걍 생닭 사서 튀겨먹어야겠다.
MCK그룹 채대호 회장이 나서서 사과했지만,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검찰은 MCK그룹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MCK홀세일은 염지닭과 도우, 치즈 등 필수품목의 공급가격을 낮추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늦었다.
가맹점주들의 반발은 거세졌고, 기존 가맹점의 이탈도 늘어났다. 마이스터피자의 경우 상황이 더 심각해 가맹문의가 아예 뚝 끊겼다.
걸린 혐의도 너무 많고 여론도 안 좋아서 결국 검찰은 채대호 회장을 구속했다. 채명호는 구속은 피했지만,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 * *
공사를 끝마친 M피자 본점은 개점만을 앞두고 있었다.
도우, 치즈, 소스 등은 전부 미국 본사에서 납품받았고, 나머지 식자재는 자체적으로 조달했다.
실론호텔은 각 호텔에서 뷔페와 음식점 등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한두개 지점의 식자재 조달에는 별 문제없었다. 나중에 지점이 늘어나면, 그에 맞춰서 공급처도 늘려야겠지만.
실론호텔에 입점한 매장은 배달은 하지 않는 대신 룸서비스가 가능하다. 비즈니스호텔인 실론스테이트 매장에서는 배달도 함께하고.
임수미 사장은 직영점들의 매장매니저와 관리자를 모집하며, 복무 중 다친 상이군경을 우선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절단이나 화상 등의 장애가 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매출의 일부는 상이군경들의 치료와 재활을 돕는데 쓰기로 했다.
한 기자가 매장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하자, 임수미 사장은 딱 잘라 말했다.
“그걸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안 오면 됩니다.”
인터넷에는 칭찬여론이 가득했다.
-ㅋㅋㅋ불편하면 오지 말래.
-수미 누나 패기보소. ㅈㄴ 멋있다.
-기레기 새끼 말하는 싸가지 봐라. 장애가 있는 사람이 불편하지, 그걸 보는 사람이 왜 불편한데?
-서성그룹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이건 진짜 잘한 일.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가 다친 군인들에게 국가가 해준 게 뭐냐?
-강진후가 임수미 사장에게 제안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역시 현역 다녀온 놈이라 뭘 좀 아네.
-군인들 보상 좀 제대로 해줘라.
비난이 쏟아지자 해당 언론사는 슬그머니 기사를 내렸다.
한국 프랜차이즈들은 대부분 로열티는 싼 대신(아예 안 받는 경우도 있다) 식자재와 부자재에 높은 마진을 붙이고, 행사와 마케팅 등의 명목으로 돈을 챙기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M피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로열티 중심으로 영업하기로 했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필수품목도 최소화하고,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할 예정이다. 그리고 가맹점주들이 협회를 만들어 본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가맹문의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 * *
드디어 남산 실론호텔에 M피자 본점이 개점했다.
개점식에 임수미 사장은 물론이고 임진용 회장도 참석했다.
“설마 피자까지 협력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M피자 본사에서는 스케줄이 있는 마일로를 대신해 맥스가 날아왔다.
역시나 오랜만의 만남인지라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 외에도 현주 누나와 엘리, 그리고 상엽 선배와 헨리도 참석했다. 놀랍게도 주미대사도 찾아왔다.
미국 프랜차이즈의 한국진출을 축하하기 위함이다.
로날드 대통령 역시 투위터에 백악관 직원들과 함께 M피자를 손에 든 모습과 함께 ‘M피자의 한국진출을 축하한다. 미국산 밀가루와 치즈로 만든 건강한 피자가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토마스 장 주미대사는 한국계 미국인답게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저 개인적으로 피자를 참 좋아하는데, 광화문 쪽 지점은 계획 없습니까?”
임수미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쪽 실론스테이트에 직영점을 출점을 예정이에요.”
“오! 반가운 소식이군요. 대사관 직원들에게도 말해줘야겠습니다.”
참가자들이 나란히 늘어서 커팅식을 한 뒤, 드디어 고객 입장을 시작했다.
전날 저녁부터 서기 시작한 줄은 이미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첫 손님은 부산에서 올라온 30대 초반 청년으로 유학시절 먹어본 M피자의 맛을 잊지 못해 KTX를 타고 올라왔다고 한다.
밀려드는 손님에 주방의 컨베이어벨트와 로봇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피자를 찍어냈다.
줄이 너무 길어서 매장에서 먹으려면 5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 결국 포기하고 그냥 포장해 가거나, 아예 실론호텔에 방을 잡고 룸서비스를 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임수미 사장은 직접 매장을 둘러보며, 고객반응과 서비스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체크했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피자와 와인을 먹었다.
와인잔이 가볍게 부딪쳤다.
엘리가 말했다.
“생각보다 손님이 훨씬 많네요.”
현주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맛도 맛이지만,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혁신적인 피자라는 이미지가 제대로 먹혀든 거지.”
기존 피자와 비교해 가격은 크게 차이 없는데, 그 이상의 맛과 이미지를 느낄 수 있으니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양이다.
난 피자를 먹으며 오픈주방에서 로봇팔과 컨베이어벨트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도우에 소스를 바르고, 오븐에 집어넣고 빼는 등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였다.
다른 손님들 역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방을 보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오늘 SNS에는 M피자 해시태그가 달린 사진들이 잔뜩 올라오겠지.
언젠가 로봇이 피자를 만드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되면, 그때는 사람이 만드는 피자를 찾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