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56)
은성차는 IMF 이후 최악의 위기를 겪는 중이다.
에어백 리콜 사태, 매출과 영업이익 하락, 한찬영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 노조의 전면파업 등등.
무엇보다 악조건 중 하나는 나와 은성차의 악연이다.
에어백 리콜 때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애초에 그 일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다. 일부에서는 카로스가 은성차를 타깃으로 삼고 공격할 거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뭐,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이런 우려들이 겹치며 계속해서 은성차 주가를 끌어내렸다. 은성차 주식게시판에는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이 가득했다.
-개새끼들아. 주가관리 안 하냐?
-ㅅㅂ한찬영이고 노조고 다들 죽었으면 좋겠다.
-걍 다 때려치우고 상폐해라.
-은성차 주식 산 내가 ㅂㅅ이지.
-많이 사랑해, 여보. 내가 더 잘할게ㅜㅜ
-은성차 주식에 투자한 못난 남편을 둔 아내에게, 미안하다!!!
-제발 뭐라도 좀 해봐!
-한강 가즈아!
기관, 외국인, 개인 할 것 없이 매물을 쏟아냈고, 우리는 장내에서 조용하고 꾸준하게 주식을 사들였다.
OTK컴퍼니는 정확히 4.97퍼센트까지 매수했다. 5퍼센트가 넘으면 공시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전에 멈춘 것이다.
골든게이트 한국지사 역시 4.9퍼센트를 매수했다. 이 지분은 나중에 OTK컴퍼니가 블록딜로 넘겨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드디어 은성차와의 협상이 끝났다.
현주 누나는 우리를 불러 모은 자리에서 협상결과를 말해줬다.
“어제 종가 기준으로 은성차가 가진 자사주 9퍼센트를 OTK컴퍼니가 인수하고, 카로스가 8조 원 규모의 BW를 순차적으로 매입하기로 했어. 현재 가진 지분 18퍼센트에, 추가로 장내매수와 신주인수를 합치면 지분을 40퍼센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거야.”
BW란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를 뜻한다. 전환사채의 하나로 채권처럼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 받거나, 돈 대신 신주를 인수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대신 이자가 일반 채권에 비해 훨씬 낮다.
굳이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은성차의 자금력 때문이었다. 은성차는 에어백 리콜과 파업 등으로 이미 비용을 많이 쓴 상태라,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만한 자금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OTK컴퍼니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것인 만큼 기존 주주들 역시 BW 발행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만세를 부르겠지.
BW를 매입하는 입장에서는 은성차 주가가 올라야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만큼 제대로 도와주지 않을 수 없으니.
뭐,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지.
“은성차를 완성차업체들 중에서 최우선 파트로 삼고, 자율주행모듈 우선공급, OTK배터리 우선공급, 그리고 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일정한 영업권 보장 등등.”
은성차가 그동안 쌓아놓은 인프라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연간 1천만 대에 가까운 생산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강점이다.
지분도 지분이지만,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OTK배터리를 탑재한 차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수익은 계속 커지게 된다.
OTK컴퍼니, 서성그룹, 은성차그룹의 CEO들은 실론호텔 컨벤션센터에 모여 서로 사인했다.
한찬영 회장은 언론을 통해 밝혔다.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앞으로 은성차는 미래차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소식이 나가자마자 서성전자와 서성SB는 5퍼센트 가까이 치솟았고, 은성차 주가는 바로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직전까지도 게시판에서 욕을 퍼붓던 개인투자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그래도 원금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사람이 대다수였지만.
택규는 기사를 보며 말했다.
“오! 반응 좋은데. 강진후가 드디어 좋은 일 하나 한다고 칭찬하네.”
그만큼 다들 일자리에 목이 말라있다.
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은성차노조는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
* * *
그동안 한국 자동차노조는 은성차노조를 롤모델로 삼고 투쟁해왔다. 그런데 갑자기 경영악화를 이유로 GM은 군산공장을 폐쇄해버렸다.
은성중공업 몰락 이후 GM마저 공장을 폐쇄하고 떠나며, 군산 지역경제는 직격타를 맞았다.
한때 GM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노형준은 불 꺼진 상가 앞을 지나갔다. 벌써 수십 군데 면접을 봤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일각에서는 GM이 한국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정말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GM은 여러 차례 그렇게 한 전력이 있다.
모든 나라의 자동차노조가 마찬가지지만, 호주 자동차노조 역시 강성이었다. GM은 호주정부의 보조금이 끊기자 공장을 폐쇄할 조짐을 보였고, 그전까지 파업을 하며 강경하게 투쟁을 벌이던 노조는 직전에서야 임금과 복리후생을 삭감하고 파업도 안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GM은 미련 없이 철수했다. 그렇게 호주의 마지막 자동차공장은 사라졌고,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전부 실직자가 되었다.
‘그저 정규직의 30퍼센트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면서 뼈 빠지게 일했을 뿐인데.’
그래도 정규직들은 사정이 나았다. 거액의 퇴직금을 받고 희망퇴직하거나, 다른 공장으로 옮겨갔으니까. 그러나 비정규직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그저 위로금 1천만 원과 약간의 실업급여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파업도 안 했다고.’
어차피 파업해봐야 정규직 임금과 복리후생이 좋아질 뿐, 비정규직과는 그다지 별 관련도 없었다. 그런데도 피해는 가장 크게 입었다.
억울하지만 어디 하소연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이니까.
한때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던 원룸은 이제 텅텅 비었다. 관리비만 내고 들어와서 살라고 해도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견디다 못한 건물주는 건축비도 안 되는 금액에 건물을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도 없었다.
노형준은 점심을 먹기 위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한때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고깃집은 텅 비어있었다.
단골가게 주인아주머니는 힘없는 미소로 점심 첫 손님을 반겼다.
둘은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소주잔을 부딪쳤다.
“일은 할 만해?”
“그냥 억지로 하는 거지. 이거저거 떼고 나면 한 달에 150도 간당간당해.”
“그래도 일자리 구해서 다행이네.”
“얼마나 더 하겠냐? 어차피 비정규직인데.”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은 이런 일자리라도 감지덕지였다. 그마저도 없어 놀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상황이 이런데도 은성차노조는 전면파업 중이던데. 거의 한달 가까이 됐나?”
“요즘 은성차 상황 심각하던데.”
“걔들은 여기 공장폐쇄 된 거 보고도 느끼는 게 없는 모양이지.”
노형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은성차 국내공장이 망할 리는 없잖아.”
본사가 미국에 있고, 미국시장을 주력으로 삼고 있는 GM 입장에서야 한국이나 호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은성차는 한국기업이고 한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공장폐쇄는 못할 것이다. 노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를 벼랑 끝까지 몰며 투쟁을 하는 거고.
“넌 앞으로 어떻게 하게?”
“글쎄.”
그는 군산에서 나고 자랐다. 가족도 친구들도 다 이곳에 있다.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은 방법이 없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래저래 답답한 상황이다.
소주를 마시던 친구는 멍하니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
그러자 친구는 가게 주인에게 소리쳤다.
“아주머니! 볼륨 좀 높여보세요!”
TV에서는 긴급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에는 강진후가 나오고 아래에는 ‘OTK컴퍼니, 서성그룹, 은성차그룹 업무협약’이라는 자막이 보였다.
강진후는 카메라를 향해 발표했다.
“OTK컴퍼니는 은성차그룹을 아시아시장의 전략적 파트너로 삼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자율주행과 전기차 분야에서 서로 협력해 나갈 것이며, OTK배터리 역시 우선공급이 이뤄질 것입니다. 또한 서성그룹과 함께 추진 중이던 전기차 산업단지 투자계획에 은성차를 참가시키고, 연간 20만 대 생산규모를 산업단지를 국내에 조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둘은 불판 위의 고기가 타는 것도 잊고, 멍하니 TV만 바라보았다.
강진후는 계속해서 투자계획을 설명했다. 매년 최소 2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고, 고용인원은 무려 1만5천 명.
산업단지 내에서 이뤄지는 직접 고용이 이 정도고, 연관 산업과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그 두세 배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봐도 좋다.
이 정도면 웬만한 신도시 하나가 통째로 만들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산업단지 내에는 연대임금제대를 적용할 예정이며, 기본급은 초임 기준으로 3600만 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이는 대기업 공장뿐 아니라, 협력업체들 공장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상여금과 성과급은 따로 지급하는 만큼 평균임금은 4천만 원 이상으로 예상합니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경우 잔업과 특근을 늘리기 보다는 더 많은 정규직을 채용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친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게 한국에 들어서면, 어디가 가장 유력할까?”
노형준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야 당연히 이곳이지!”
군산 사람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폐쇄된 GM 공장도 있고, 납품하던 협력업체들도 있다.
그리고 기존에 공장에서 일했던 직원들도 상당수 남아 있다. 이들은 별다른 직업교육 없이도 바로 현장에 투입 가능했다.
다시 말해, 다른 지역에 비해 가장 빠르게 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주인 아주머니는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이제 살았네! 이제 살았어!”
* * *
기사가 나가고 나자 군산은 도시 전체가 들썩거렸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려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췄고, 장사를 접으려 했던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미뤘다. 그리고 원룸업자와 건물주들은 헐값에 내놨던 매물을 재빨리 거둬들였다.
군산시청과 전북도청으로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기차 산업단지를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해물질이 배출될 것으로 우려되는 화학공장이나, 분진이 날리는 시멘트공장 등은 기피대상이다. 그러나 유해물질 배출이 적고, 고용유발 효과가 큰 자동차공장은 어디서나 환영이다. 배터리공장에 대한 걱정이 있긴 했지만 산업단지 조성을 맞은 서성물산은 최첨단, 친환경 산업단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군산시장과 전북도지사는 강진후 대표와 임진용 회장, 그리고 한찬영 회장을 만나기 위해 서울로 달려갔다.
한국GM 2대 주주인 산업은행 측에서는 재빨리 공장매각과 지분참여를 검토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다른 지역들 역시 팔짱만 끼고 있지는 않았다.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광역도시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났고, 도시는 활기를 잃었다.
지역 경제가 어려워지니 세금이 잘 걷히지 않고, 지자체가 돈이 없으니 인프라 투자와 각종 지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이는 또다시 청년층이 도시를 떠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양질의 일자리다.
좋은 일자리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 사람이 모이면 지역 경제와 상권이 활성화되고, 지자체는 각종 문화시설과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
-초임 3600만 원 개꿀.
-이것저것 포함하면 평균 연봉은 4000만 원은 될 거라는데.
-ㅈㄴ대박이다. 서울은 어떨지 몰라도 지방에서는 이 정도 연봉이면 완전 아리가또임.
-ㅋㅋ저렇게 퍼줘도 은성차노조 평균 연봉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게 놀랍다.
-절 뽑아만 주시면, 목숨 걸고 일하겠습니다! 은성차노조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군산에 산업단지를 만들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광주야말로 산업단지에 최적화된 곳입니다. 지역 주민들 모두의 염원입니다. 강진후 대표님 편하게 내려오실 수 있도록 길 깨끗이 닦아 놓겠습니다.
-부산 어떠심까? 수출 생각하면 고마 부산이 쵝오 아닌교? 마, 공장만 세워주시면 지가 부산 싸나이의 파이팅이 뭔지 확실히 보여드리겠심더!
광주시장, 대구시장, 부산시장, 충북도지사, 강원도지사, 지방의회의원, 지역구 국회의원 등등 할 것이 없이 모두가 산업단지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전면파업을 이어가던 은성차노조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노조위원들은 당황했다.
“이게 뭔 상황이야?”
“강진후는 또 왜 저래?”
“이 자식 한국에 투자할 생각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성무 노조위원장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러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