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68)
짧은 휴가를 끝마치고 돌아온 나는 택규가 어떻게 던전 오브 다단계(?)를 클리어 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예전에 동탄 집으로 찾아와 뭐 하나라도 내놓으라고 매달리던 친척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뒤로 조용하기에 평범하게 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 설마 다단계 사기를 치고 있었을 줄이야.
그러나 이 사건보다 더 궁금한 게 있다.
“그래서 그 여자애랑은 어떻게 됐어?”
“민하영?”
“응. 고등학생 때 좋아했었잖아.”
택규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그냥 동창일 뿐이지.”
“…….”
진짜 관심 없는 거야, 아니면 관심 없는 척 하는 거야?
언론에서는 이번 사기사건을 계속해서 보도했다. 검찰은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함석훈과 최남우는 당연히 구속됐다.
함석훈은 최선을 다해 모든 책임을 최남우에게 떠넘겼고, 그제야 전모를 알게 된 그는 자신도 속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기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사촌누나 강미영을 포함해 친척들이 도와달라며 또다시 어머니를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만남조차거절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왔다. 어찌나 귀찮게 구는지 없던 정마저 떨어지게 생겼다.
무엇보다 최남우가 구속된 걸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내가 고소한 것도 아니고, 내가 재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설마 내가 사비를 털어서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주기라도 바라는 건가?
꼭 친척들만이 문제는 아니다. 어머니가 동탄 주택에 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기저기 알려졌다. 예전부터 알고 지낸 동네주민들도 있는 데다가, 예전에 부모님연합이 한동안 집 앞에서 활약(?)을 펼친적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필요하다는 사람들이나 각종 자선단체에서 줄을 이어 찾아왔다. 어머니는 어디까지나 그건 아들의재산이지, 자신은 아무 권한이 없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이 막무가내였다.
언더도그마(Underdogma)라는 말처럼 좋은 일을 한다고, 약자라고 해서 반드시 착한 것은 아니다.
기부하라며 스토킹 수준으로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돈 주기 전까지 못 돌아간다며 집 앞에 드러눕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계속 돈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면, 사람이 죽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데도 모른 척 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누가 들으면,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이 굶고, 바다에서 고래가 죽어가는 게 모두 우리 어머니 탓인 줄 알겠네.
택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워렌 보트 할아버지도 오래전에 산 작은 주택에서 계속 산다며? 거기는 그런 일 없대?”
“그러게.”
그래도 워렌 보트는 소도시에 산다. 만약 LA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 살았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사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법이라, 성공하는 순간 있는지도 몰랐던친척과 친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건 어디든 마찬가지다.
미국은 주법에 따라 로또 당첨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데(실제 당첨자를 공개함으로써 공정성과 투명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판매량을 올리려는 술책에 가깝다) 얼굴이 알려진 순간 온갖 사람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난 택규와 함께 동탄으로 내려가 어머니를 설득했다.
“이 집에 추억이 많긴 해도, 이제 그만 이사하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빌딩은 아예 못 들어오게 하면 그만이고, 내가 살고 있는 삼성동 주택 역시 보안이 철저하다.
그러나 이 집은 일반주택으로 지어진 만큼 경호나 보안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아예 옆과 뒤에 있는 주택을 매입해 경호동으로 썼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만약 경호원들이 없었다면, 문제가 생겨도 진작 생겼을 것이다.
“아니면, 당분간만이라도 다른 곳에 계세요. 이 집은 관리인에게 맡기구요.”
한참을 고민하시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안 그래도 하도 사람들이찾아오는 데다가 근처 마트 한 번 가는 것도 불편했는데. 정말 그러는 게 좋겠네.”
“잘 생각하셨어요.”
살 집은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고, 저번처럼 남산 실론호텔로 거처를 옮기셨다.
내가 어머니를 잘 부탁드린다고 하자, 임수미 사장은 같이 식사도 하고, 운동할 사람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 * *
전기차 산업단지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서성전자는 세계최대 IT 하드웨어 제조회사. 그리고 은성차는 연간 900만 대가 넘는 생산력을 갖춘 자동차회사다.
여기에 OTK컴퍼니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하면, 그야말로 미래차 분야를 선도할 수 있다.
산업단지의 위치는 국내는 군산, 해외는 베트남으로 결정됐다. 베트남정부는 아예 전담부서까지 마련해 모든 행정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오히려 한국의 상황이 지지부진했다. 한국GM은 수익성악화를 핑계로 군산공장을 폐쇄할 때만 해도 가능한 빨리 매각하겠다고 발표했으나, 막상 우리가 사겠다고 하자 나중에 다시 생산을 재개할 수도 있다며 슬쩍 말을 바꿨다.
기존 공장들 가동률도 70퍼센트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리 없다.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배짱을 부리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시 크게 아쉬울 게 없었기에 정해진 기간 안에 매각절차를 진행하지 않으면, 산업단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러자 군산시와 산업은행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다.
임진용 회장이 말했다.
“저희 쪽 경제연구소 판단에 따르면 판매전망치를 지금보다 두 배로 올려 잡아도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의 전기차공장과 TS컴퍼니의 배터리공장 역시 거의 완공돼 생산을 앞두고 있고, 서성SB는 생산라인을 바꿔가며 OTK배터리 양산에 돌입했다.
은성차 역시 산업단지 투자 외에 생산량이 줄어든 국내외 공장을 서둘러 전기차공장으로 전환했다.
생산시설은 충분히 갖춰진 만큼 이제 만들어서 팔기만 하면 된다.
택규는 웃으며 말했다.
“돈 벌 일만 남았네.”
* * *
중국 베이징.
아프리카 정상들과 회담을 하고 돌아온 장핑화 국가주석은 리쑤웨이 상무부 부장의 보고를 받았다.
바로 OTK컴퍼니가 추진하는 전기차 산업단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게 얼마나 위협이 될 것 같나?”
“자율주행, 배터리기술 측면에서 우리 기업들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큰 위협이 될 겁니다.”
자동차는 고용집약적이면서도동시에 기술집약적이다. 그리고 산업은 물론 군사적으로 필수재나 다름없다.
현재 자동차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이다.
중국 역시 개혁개방 이후 자동차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지만, 내수시장에서만 많이 팔릴 뿐 외국에서는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막대한 보조금을 퍼부어가며 자율주행 전기차, 배터리산업을 키웠다.
그런데 또다시 미국에 뒤처지게 생겼다. 그 가장 큰 원인은 OTK컴퍼니다.
OTK컴퍼니는 카로스를 인수하고, OTK배터리를 내놓음으로써 자율주행과 배터리라는 미래차의 핵심기술 두 가지를 확보했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출신의 석학들은 OTK배터리를 입수해 실험해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용량을 두 배 이상 늘리면서도 안정성을 확보한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그로인해 LFP고 NCM이고 기존 배터리들은 다 무의미해졌다. 그동안의 노력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핑화 주석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기존 자동차산업에서는 뒤처졌어도 미래차 분야에서는 반드시 중국이 앞서 나가야해. 중국이 뒤처졌을 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잘 알지 않나?”
“물론입니다.”
청나라 시절까지만 해도 중국은 거대한 제국이었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서구열강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동안 중국은 세계의 흐름에서 뒤처지고 말았다.그 뒤는 몰락의 연속이었다.
아편전쟁, 일본의 침략, 국공내전 등등.
결국 일본을 몰아내고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지만 이후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실패하며, 다시 위기에 처했다.
그런 중국이 다시 세계에 전면 부상한 것은 20세기 후반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추진한 이후 중국은 엄청난 속도로 세계의 자본과 기술을 빨아들였다.
그러던 도중 2008년에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거의 모든 나라의 부동산이 폭락했고,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이때 중국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미국이 휘청거리고 있는 사이 중국은 계속 고도성장을 구가하며 세계경제를 이끌었다. 그리고 어느새 일본과 러시아마저 제치고, G2로 우뚝 섰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세계의 헤게모니는 여전히 미국에게 있었다.
한때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이 10년 안에 미국을 추월할 거라 예측했다. 금융위기 직후만 하더라도 그런 주장을 하는 경제학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은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또다시 패권을 쥐고 흔드는 반면, 중국의 성장률은 점차 둔화되고 있었다.
중국 경제정책으로 대표되던 바오바(8퍼센트 경제성장률을 지키는 정책)는포기한 지 오래고, 이제는 7퍼센트 성장도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그나마도 각종 지표를 조작해 간신히 맞추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자국기업과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 웬만한 제조업은 따라잡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IT와 첨단산업의 기술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천재지변 같이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이 격차를 뒤집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로 그 천재지변이 발생했다.
바로 빅원이다!
금융과 산업은 경제의 두 축. 뉴욕 월스트리트가 미국 금융의 중심이라면, 실리콘밸리는 미국 첨단산업의 요람이다.
빅원은 실리콘밸리를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남았고, 그곳에 있던 기업들 역시 건물을 잃은 것을 빼면 멀쩡했다. 그리고 그들은 장소를 옮겨 또 다른 곳에서 실리콘밸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장핑화 주석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때 다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미국의산업경쟁력이 10년은 후퇴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내부는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겠지.
그 틈을 타 중국이 또다시 글로벌 리더로서 급부상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빅원은 오히려 미국이 왜 세계최강국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을 뿐이다.
‘강진후만 아니었어도…….’
생각해 보면, 중국 입장에서는 강진후 때문에 손해 본 게 한둘이 아니었다.
OTK컴퍼니는 빅원발생 이전 중국기업들에게 막대한 양의 철강과 구리, 시멘트 등을 고정금액으로 구매했다.
그런데 빅원 이후 원자재 가격이 치솟았다. 특히 철강과 구리는 두 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철광석과 광물 가격도 치솟으며, 중국기업들은 이익을 보기는커녕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그렇다고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강진후가 그 물량을 전부 미국에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상대가 일개 기업이라면 모를까, 미국정부를 상대로 계약을 파기할 수는 없는 노릇.
이대로라면 파산할 수도 있다고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수준으로 가격을 조정하긴 했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었다.
장핑화 주식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언제나처럼 베이징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미세먼지로 인해 맞은편 건물도 잘 보이지 않았다.
“OTK컴퍼니를 중국 쪽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겠나?”
리쑤웨이 부장이 말했다.
“저우차 쪽에서 접촉할 예정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기차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나라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엔폰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 역시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어느 기업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 * *
난 회사에서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50대 초반 정도의 중년남성이었다. 특징은 일단 키가 엄청 작았다. 굽이 있는 구두를 신었음에도 160센티도 안 되어 보였다.
체구도 작았지만, 얼굴의 주름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함이 느껴졌다.
그는 내 손을 붙잡으며 딱딱한 영어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저우자동차 부회장 왕이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