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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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다녀온 성과는 하나둘씩 나타났다.
프랑스 EDF는 로사톰과 손을 잡았다. 독자적으로 TWR 개발을 추진하되, 먼저 개발에 성공한 로사톰을 표준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 정식으로 ISO 인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로사톰의 TWR이 국제표준규격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블랑 프랑스 대통령은 OTK배터리 물량을 가져오기 위해 애썼고, 난 향후 CL화학과 SSK이노베이션 유럽공장에서 OTK배터리를 생산해 르노와 푸조에 납품하겠다는 계획을 밝힘으로써 그의 위신을 세워주었다.
그리고 BMW는 내부적으로 카로스 진영에 서기로 방침을 굳혔다.
BMW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고급차. 그러나 대당 10만 달러가 넘는 초고급차 시장에서는 벤츠와 포르쉐 등에 밀리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전기대형차와 전기고급차 분야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BMW만 돌아서도 독일3사의 공조는 깨지게 될 것이다. 카로스와 서성전자는 비밀리에 협상을 벌였다.
그러는 사이 카로스도 바쁘게 움직였다. 무인전기트럭 ADT1은 출시하기도 전부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물류비중이 큰 기업들은 선금을 들이밀며 수백 대씩 선주문을 넣었다.
ADT1의 핵심은 배터리교체시스템. 카로스는 연말 출시 전에 먼저 미국전역에 배터리교체센터(Battery Replacing Center)를 건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텐웨이가 구축한 알고리즘이 동원됐다. 텐웨이는 미국 물류트럭들의 이동경로를 분석해 BRC가 들어설 만한 최적의 입지를 고르고,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터리량을 산출했다.
무인택시서비스도 본궤도에 올랐다.
시범운영기간 동안 사고 없이 주행을 끝마치자, 캘리포니아주와 미시건주에서 먼저 정식으로 운행허가를 발부해줬다.
단, 기존 택시산업에 악영향이 우려되는 만큼 매출의 15퍼센트를 기존 운수산업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하기로 했고, 운행대수와 시간 또한 주정부의 규제에 따르기로 했다.
자율주행기술의 안정성은 이제까지 충분히 입증됐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이다.
미국 전역에서 무인차를 상대로 일부러 위협운전을 하거나, 주차되어있는 차를 부수는 일이 발생했고,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실용성 여부를 떠나 무인차에 대해 반감은 해결해야할 과제였다.
과도기에 생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갈등이 더 커질 경우 대책을 세워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 * *
난 오랜만에 김호민 교수를 만나기 위해 연구소를 방문했다.
OTK배터리 생산이 확대되며, 연구소로 엄청난 로열티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OTK배터리를 개발한 김호민 교수는 평생 써도 다 못 쓸 만큼의 돈을 벌어들였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부자가 됐음에도 여전히 수더분한 모습이었다. 기초과학 지원을 위한 재단을 만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돈에 큰 관심도 없었다.
김호민 교수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직접 믹스커피를 타주었다.
“세상에 좋다는 커피는 다 마셔봤는데, 이것보다 맛있는 커피는 찾을 수가 없어.”
“입맛이 길들여져서 그런 거 아니에요?”
김호민 교수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정답. 아무래도 익숙한 건 벗어나기 힘들지.”
그는 최근 발생한 ESS(에너지저장시스템) 화재에 대해 정부와 함께 합동조사를 벌였다.
“그래서 원인이 뭐였나요?”
“다 문제였어. 배터리, 전력변환장치, 소프트웨어, 운영관리 등등. 아무래도 이런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를 운용해본 경험이 미흡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 문제를 고치며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했어. 배터리 과열이나 쇼트를 미리 감지해 대응만 해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거야.”
ESS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으로 생산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내보낸다. 날씨에 상관없이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 확대에 있어서 필수적인 설비라 할 수 있다.
내가 배터리에 투자한 것은 전기차 때문이었지만, 최근 배터리는 모든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다.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며 배터리 수요가 늘면 늘었지, 절대 줄지는 않는다.
배터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기업들은 앞다투어 투자를 늘리는 중이지만, 기술력으로는 누구도OTK배터리를 따를 수 없었다.
김호민 교수는 소형화에 대한 연구도 지속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쓰이는 배터리 외에도 휘는 배터리와 옷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얇은 배터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배터리는 미래의 반도체라 할 수 있어. 앞으로 효용성은 더욱 커질 거야.”
배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각 기업들은 인재확보에 열을 올렸다. 다른 제조업은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라는데, 배터리업계는 연구직, 생산직, 판매직 가릴 것 없이 구인난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특히 연구원들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OTK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에게도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기업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아 있었다. 이미 업계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있기도 하고, 다들 김호민 교수와 함께 연구를 하며 배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또 하나 했던데. 어제 발표난 거 보니까 내년에 군인들 월급도 크게 올리고, 복무 중 다친 상이군경들에 대한 지원도 늘린다며? 다들 잘했다며 칭찬하더라.”
“회사로도 감사의 전화가 많이 왔어요.”
물론 그 이상으로 욕도 많이 먹었다. 이제는 웬만한 욕에는 그러려니 한다.
“혹시 정치해볼 생각은 없어? 그러고 보니 정치에 뛰어드는 것도 괜찮을 텐데.”
“제가요?”
“출마제의 없었어? 나만 해도 가끔 여기저기서 연락 오던데. 공천 줄 테니 한번 출마 해달라고.”
선거에 나간다고 해도 100퍼센트 당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새정치당이든 자유국민당이든 자신들의 텃밭이 되는 지역이 있다.
그런 지역에 공천 받아 출마하면 당선이 거의 확실하다고 봐도 좋다. 여기에 노벨상 들고 다니며 선거유세하면 금상첨화겠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벨상을 좋아하니까.
“일하기도 바빠요.”
“왜 재벌회장들 중에서도 국회의원 배지 단 사람도 있잖아.”
자본주의는 1원 1표지만, 민주주의는 1인 1표다. 때문에 돈과 상관없이 선거가 이뤄질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A라는 지주가 한 지역의 땅을 전부 가지고 있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다들 A 밑에서 소작농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지역에서 A, B, C가 선거에 출마하면 지역민들은 누굴 뽑을까?
누가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A를 뽑을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떨어진 A가 화가 나서 더 이상 소작을 안 주겠다고 하면, 소작농들의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농지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지주제가 남아있는 나라에서는 지방의회부터 중앙의회까지 의원들 중 상당수가 지주다. 그리고 지주들은 당연히 지주에게 유리한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고, 이는 지주제를 더욱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이와 비슷하게 대기업이 한 지역을 통째로 먹여 살리는 경우, 그 대기업 회장님이 선거에 나가면 거의 몰표를 받으며 당선된다.
아무리 공정하게 선거를 한다한들 사람은 돈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게 현실이다.
“제가 국회에 입성하면 제 멱살 잡겠다고 다들 줄 설걸요.”
내 말에 김호민 교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새정치당이고 자유국민당이고 나에게 이 갈고 있는 의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래저래 나 같은 회색분자는 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리고 꼭 정치인이 돼야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가끔 유명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면 ‘그럴 거면 하던 일 때려치우고 정치해라’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이 주권은 선거할 때 표 행사하는 것만 뜻하는 게 아니다. 경제와 정치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만큼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이 이미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정치에 입문해야만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술책에 가깝다.
미국에서는 글로벌기업 CEO, 할리우드 스타, TV쇼를 진행하는 연예인 등 온갖 유명인들이 지지정당과 지지후보를 밝히며, 자신의 정치적 의견들을 가감 없이 말한다.
그로 인해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본인들의 선택이다.
“나중에도 정치는 영원히 안 할 거야?”
“그건 또 모를 일이죠.”
김호민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대답이야. 인생은 길고 살다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혹시 알아? 나중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게 될지.”
참고로 현재는 나이제한에 걸린다.
난 농담으로 말했다.
“전 출마 가능한 나이가 되려면 한참 남았으니, 교수님께서 출마하시는 건 어때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안 돼. 나중에 학교로 돌아가야지.”
“계속 연구개발 안 하시구요?”
김호민 교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문과는 나이가 들수록 학문적 성취가 높아지지만, 이과는 그렇지 않아. 언젠가 더 이상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학교로 돌아가야지. 내가 가르친 학생들 중 누군가가 내가 못한 일을 해낸다면, 그 이상 좋은 일은 없지 않겠어?”
이 말을 들으니, 확실히 천성이 학자다. 문득 모한 교수와 페트로프 교수가 떠올랐다. 그 둘도 비슷한 느낌이지.
김호민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다른 교수님들과도 친분을 유지해놓는 중이야. 나중에 오라는데 없으면 추천서 써달라고 부탁해야지.”
말은 이렇게 해도 칼텍, MIT, 모스크바대, 한국대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모셔가려고 난리일거다.
김호민 교수는 나에게 물었다.
“나중에 은퇴하면 뭐할 생각이야?”
“글쎄요. 아직 생각한 게 없는데요.”
가끔 미래를 보긴 해도 정작 내 미래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과연 나중에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하긴, 아직 은퇴 후를 생각하기에는 젊으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송 마시요시 회장은 10대 후반에 이미 인생계획을 세웠다고 하잖아요.”
IT, 소프트웨어, 이동통신을 망라한 일본대기업 소프트박스의 송 마사요시 회장은 20대부터 60대까지 돈을 벌어 거대한 회사를 만들고 은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놀랍게도 그 계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이 됐다. 딱 하나 어긴 것이 있다면 바로 은퇴계획.
지금이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변하는 순간이고, 좀 더 일을 해보고 싶다며 은퇴를 미뤘다.
OTK컴퍼니가 생기기 전 세계최대 투자회사는 버크셔캐셔였다.
버크셔캐셔는 워렌 보트 한 명의 능력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버크셔캐셔가 곧 워렌 보트고, 워렌 보트가 곧 버크셔캐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워렌 보트 회장은 90세에 가까운 고령이고, 주주들은 다들 그의 건강을 염려했다. 급격한 건강악화 같은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향후 10년 안에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워렌 보트는 수십 년 전부터 후계자를 양성해왔고, 주주들에게 다음날 자신이 물러나도 다음 회장이 기업을 잘 이끌어나갈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은퇴하더라도 버크셔캐셔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OTK컴퍼니는 어떨까?
OTK컴퍼니가 세계최대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전적으로 내 투자실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는 워렌 보트처럼 오랜 학습과 경험을 통해 쌓은 투자기법이나 통찰력이 아닌, 예지력에서 나왔다.
투자기법과 통찰력은 교육을 통해 전수해줄 수 있지만, 예지력은 그럴 수 없다. 그렇다고 나 같은 사람을 또 찾아낼 수는 없을 테고.
잘나가던 투자회사가 망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세계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라더스를 포함해 유서 깊은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200년 역사를 지닌 베어링스 은행은 닉 리슨 한 명의 잘못된 투자로 인해 파산했다.
내가 떠난 뒤에도 OTK컴퍼니는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기업들이 그랬듯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까?
난 아직 젊고 당장 일을 그만둘 생각도 없다. 그러니 급할 건 없겠지만, 언젠가 생각해봐야할 문제이긴 하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김호민 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 마시러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