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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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김명준 교수님의 전화를 받았다.
[시간 괜찮으면, 축제 때 학교에 한번 놀러와. 애들이 너 안 오냐고, 아주 난리야.]“그래요?”
내 인기가 이 정도다.
“안 그래도 기홍 선배 간다기에 같이 갈 생각이었어요.”
[잘됐네. 애들한테는 말해주지 말아야겠다.]“왜요?”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 마지막 날 올 거야?]“예. 같이 술 한 잔 어떠세요?”
[나야 좋지.]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가는 김에 친구들도 만날 생각이다.
내가 전화를 걸자 민경일은 신나서 말했다.
[가고 싶었는데, 잘 됐네. 가즈아!]얜 원래 노는 거 좋아했다. 축제랑 체육대회 때면 혼자 불타올랐지.
“알았어. 그때 보자.”
[아! 혹시 유리도 온데?]“그건 왜?”
[아니, 뭐 오랜만에 얼굴 보면 좋잖아.]응. 유리 너한테 관심 없어.
이번에는 김민영에게 전화했다. 카투사로 군대를 다녀온 경일이와는 달리 민영이는 졸업을 하고 방위산업체에서 대체복무 중이다.
민영이는 전화를 받자마자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이게 말이 좋아 대체복무지 완전 현대판 노비가 따로 없어.]현역이든 공익이든 대체복무든, 원래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힘든 법이다.
“뭘 해도 군대보다는 나아. 이 더위에 고생하는 국군장병들 생각하며 열심히 해.”
[그런데 무슨 일이야?]“이번에 학교 축제 가려는데, 같이 가자고. 경일이도 오기로 했어.”
[나도 가고 싶은데, 여기 충남이라서. 왔다갔다 하는 시간 생각하면 휴가라도 내야 하는데, 이번 달 말까지 정신없이 바빠.]“안 되면 다음에 보고.”
[일단 얘기는 한번 해볼게.]“그래. 무리하지 말고.”
잠시 후, 민영이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야! 가도 된대!]“안 될 것 같다며?”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강진후랑 약속 있다고 하니까 바로 가보라고 하네. 회사를 통째서 사서 싹 다 자를까봐 걱정됐나봐.]“…….”
* * *
저녁식사 자리에서 엘리에게 말을 들은 현주 누나는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한국대 축제를 가자고?”
“예. 재밌잖아요.”
현주 누나는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매만졌다.
“잘 모르나본데, 우리 학교 축제 재미없기로 유명해.”
누나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10년 전부터 꾸준히 재미없었던 모양이다. 이러기도 쉽지가 않은데.
축제가 노잼인 것도 역사와 전통인가?
다행히 최근 이 전통이 깨졌다.
“요즘은 많이 재밌어졌대요.”
엘리의 말에 현주 누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가.”
“청첩장도 드려야 한다면서요?”
“뭔 축제에 가서 청첩장을 드려? 나중에 따로 식사자리 마련하기로 했어.”
현주 누나가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미리 헨리를 섭외해놓았다.
헨리는 웃으며 말했다.
“데이트하러 다녀오는 게 어떨까요? 저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현주가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둘러보고 싶기도 하구요.”
“그, 그래요?”
엘리는 재빨리 말했다.
“이럴 때 다 같이 놀러 가면 좋잖아요. 골든게이트 직원들 중에서 간다는 사람 많아요.”
“에이, 그래도……. 가서 뭐해?”
“뭐하긴요? 후배들한테 골든게이트를 알려야죠. OTK컴퍼니는 홍보팀장까지 가서 홍보한다는데, 이러다가 인재들 다 빼앗기면 어떡해요?”
법무팀장님께서 애사심이 넘치신다.
두 사람의 계속된 설득에 현주 누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갈게. 가면 되잖아. 분명 말하지만, 그냥 얼굴만 비추고 올 거야. 하아, 이 나이 먹고 축제 가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 그래요. 제 학번이면 화석이라는데.”
여기에 10을 더하면, 거의 암모나이트 아닌가?
택규는 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우리 누나 정도면 캄브리아기 학번이라 할 수 있지. 교수님보다도 나이가 많지 않나?”
그러자 현주 누나는 순식간에 인상을 썼다.
“닥쳐.”
“넵.”
얘는 꼭 2절까지 해서 누나를 화나게 한단 말이지.
혹시 혼나고 싶어서 이러나?
* * *
엘리는 아예 회사를 조퇴한 뒤, 집으로 달려와 준비를 서둘렀다.
“그냥 놀러가는 거니까, 꾸밀 필요 없어요.”
“무슨 말이에요? 대학생들이니 다들 어릴 거 아니에요? 진후 친구들도 온다니까 최대한 예쁘게 보여야죠.”
엘리는 스키니진에 흰색 민소매 셔츠를 입었다. 긴 다리와 탄탄하고 굴곡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기초화장과 눈 화장만 했음에도 모델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어때요?”
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대학생 같아요.”
“헤엣, 고마워요.”
나도 정장 대신 청바지에서 린넨셔츠를 입었다. 이러니 진짜 축제에 놀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준비를 끝마칠 때쯤 유리도 우리 집으로 건너왔다.
유리는 하늘색 스프라이트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얇은 흰색 가디건을 걸쳤다. 회사에서는 단정하게 묶고 다니던 금발을 풀고,살짝 펌을 했다.
“너도 대학생 같네.”
“당연하죠. 전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잖아요.”
택규는 청바지에 만화 캐릭터가 커다랗게 그려진 티셔츠를 입었다.
“그러고 가게?”
“뭐가 더 필요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캐릭터 뜯어내기 전에 다른 티셔츠로 갈아입어.”
준비를 끝낸 우리는 한국대를 향해 출발했다.
축제는 사흘에 걸쳐서 이뤄진다.
이중 피크는 당연히 마지막 날. 보통 졸업생들도 이날 많이 온다.
올해는 라인업이 더욱 화려해졌다. 보통 대학축제에 대여섯 팀 부르면 많이 오는 건데, 한국대는 무려 아홉 팀이다.
이 모든 게 Edm엔터의 성장 덕분.
라인업도 화려해 한류스타라고 할 만한 그룹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워낙 출연진이 많아 공연은 이틀에 걸쳐서 이뤄졌다.
놀랍게도 정문부터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난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누가 보면 축제라도 하는 줄 알겠네.”
엘리가 말했다.
“지금 축제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요. 축제할 때도 축제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우리 학교의 특징이었는데.”
심지어는 수업도 그대로 진행해 축제인지 모르는 학생들도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한국대 축제 진짜 많이 발전했구나.
주차장은 진작 만차였고, 극심한 정체현상이 일어났다. 다행히 우리 차는 이미 Edm엔터 관계차량으로 등록을 해놓았다.
“그래도 되는 거야?”
“당연. 우리만큼 관계가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어?”
택규는 어차피 안네케가 있는 공과대 주점으로 갈 예정. 괜히 우리랑 같이 있다가 얼굴 팔릴 일은 없을 것이다.
“넌 혼자 가?”
“이따 하나도 오기로 했어.”
“민하영은?”
“아직 마감 안 끝났다고 울더라. 째고 오겠다는 걸 끝날 때까지는 올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
“마감 하루 정도 미루면 안 되나?”
택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뭔 소리야? 아무리 재밌는 축제라도 마감이 우선이지. 마감은 독자들과의 약속이야. 마감도 못 지키는 주제에 놀러 다닐 생각하는 작가들은 전부 반성해야 돼.”
“…….”
이 얘기 들으면 민하영 또 울겠는데.
유리는 핸드폰을 보더니 말했다.
“기홍 선배와 현정 선배 방금 도착했대요.”
“우리도 간다고 전해줘.”
* * *
한국대 경영학과 학생들은 마치 유니폼처럼 과티를 입고 열심히 호객행위를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복학생들은 혀를 내둘렀다.
“이야! 우리 과가 언제부터 이렇게 단합이 잘 됐어?”
“우리 때는 선배가 억지로 시켜야 했었는데.”
“다 강진후 선배님 덕분 아니겠어?”
세계최고의 투자자이자, 부자인 강진후가 학과 선배다. 그리고 그 선배가 만든 OTK컴퍼니는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회사고,사실상 세계 시총 1위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런 만큼 학생들이 학교와 학과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도 남달랐다.
“요즘 신입생들은 등하교 할 때는 물론이고, 소개팅 할 때도 과티 입고 간다더라.”
“크크, 미친놈들.”
그렇게 말하는 복학생들 역시 과티를 입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프로그램 진행 중이었다. 올해 진행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MC땡동이 맡았다.
학과주점마다 호객행위가 한창인 가운데, 경영과 주점에 졸업생 두 명이 등장했다.
“얘들아, 안녕. 오랜만이야.”
정기홍과 주현정이었다. 그들을 발견한 신입생들은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래도 머리가 굵은 재학생들은 농담처럼 말했다.
“선배님 또 오셨어요?”
“오랜만이긴요. 너무 자주 오시는 거 아닙니까?”
“누가 보면 아직 학교 다니시는 줄 알겠어요.”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기홍은 무려 OTK컴퍼니 홍보팀장이다. 게다가 후배들에게 자주 비싼 밥을 사준 덕분에 좋은 선배로 소문이 자자했다.
정기홍은 후배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가 안 반가워할 줄 알고, 오늘은 특별히 게스트를 모셔왔어.”
“정말이에요?”
“누구요?”
“이제 올 때가 됐는데.”
잠시 후, 청바지에 셔츠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 옆에는 모델 같은 느낌의 여성이 함께였다.
경영학과 학생들은 놀라서 소리쳤다.
“강진후 선배님!”
* * *
신입생들 재학생들 할 것 없이 나란히 서서 나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어, 그래. 안녕. 반가워.”
누가 보면 군기 잡는 줄 알겠네.
기홍 선배 결혼식에서 본 얼굴도 많이 보였지만, 모르는 얼굴이 더 많았다. 인사가 끝난 뒤 한동안 후배들과 사진 세례가 이어졌다.요즘 세상에 인증샷은 필수 아니겠나?
여자후배들은 엘리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광고 너무 잘 봤어요.”
“정말 모델 같으세요.”
엘리가 찍은 광고가 좀 유명해야 말이지.
난 옆에서 중얼거렸다.
“피칩피칩.”
그러자 엘리는 웃는 표정으로 내 옆구리를 찌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마디만 더 하면 죽일 거예요.”
“……네.”
난 살기 위해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직접 보니 더 예쁘세요!”
“저도 광고보고 베스터 래쉬가드 샀어요!”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엘리는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운동장 끝에 행사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양쪽으로 주점이 늘어섰다. 여기까지 보면 예전과 비슷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어이! 왔어?”
“잘 지냈냐?”
경일이와 민영이는 먼저 와서 자기들끼리 마시고 있었다. 우리는 테이블을 붙여 앉았다. 술은 맥주와 소주, 막걸리, 안주로는 파전과 골뱅이무침 등이 나왔다.
“맛있겠는데요.”
엘리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보기만 그럴 듯한 거예요.”
학과주점에서 맛을 기대하면 안 된다.
엘리는 파전을 찢어서 입에 넣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맛있는데요.”
“예?”
난 파전을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전혀 기대 안 했는데, 놀랍게도 먹을 만하다. 아니, 맛있다. 이 정도면 음식점에서 팔아도 될 것 같은데.
“신입생 중에 음식점 하는 애라도 들어왔어요?”
기홍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다 HMR 덕분이죠.”
HMR(Home Meal Replacement)이란 가정간편식. 즉석요리의 진화형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반죽 같은 것도 다 해서 나와서 프라이팬에 붓기만 하면 됩니다.”
간편가정식의 발전으로 이제 학과주점에서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니. 기술의 발전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구나.
엘리는 나에게 물었다.
“오랜만에 학교 오니까 어때요?”
“좋네요. 옛날 생각도 나고.”
“거봐요. 오길 잘했죠?”
난 후배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대학생이라는 느낌이다. 신입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3, 4학년들까지도 어린애들처럼 보였다.
내가 진짜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다.
당연하게도 재학생들 중에 내 선배라 할 사람은 없었다. 있더라도 이런 자리에는 안 오겠지.
화석 학번이라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나도 저 때는 풋풋했었는데.”
내 말에 경일이는 썩은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야? 난 너 처음에 보고 복학생 선배인 줄 알았어.”
“응. 닥치고 술이나 먹어.”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내가 왔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학교 전체로 퍼졌고, 바깥쪽에서는 소란이 일었다.
“야! 강진후 왔대!”
“우와! 진짜?”
“애인이랑 경영과 주점에 있대!”
“뭐? 어디 있다고?”
마치 연예인 구경이라도 하듯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중에는 스마트폰과 짐벌을 들고 다니며 동영상을 찍는 이들도 있었다.인터넷방송에 축제를 생중계하고 있던 모양이다.
다행히 후배들이 알아서 몸으로 바리케이드를 치며 주점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았다.
“여기서부터는 손님들만 입장 가능합니다.”
“저희도 술 사먹으려구요.”
“맥주 두 병 주세요.”
저 많은 주점들 놔두고 굳이 여기로 찾아온 이유는 나 때문이겠지? 내 얼굴 내보내면 구독자를 끌어 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스마트폰과 짐벌 맡기고 들어가세요. 나갈 때 돌려드릴게요.”
“아, 아니, 그냥 잠깐 인사만 하면 안 될까요?”
“안 돼요!”
“1초만요.”
“안 됩니다! 저희 선배님 합방 같은 거 안 합니다.”
후배들의 철통방어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엘리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저 사람들은 뭐예요?”
“글쎄요. 카프리아TV BJ 같은데요.”
내 말에 엘리는 얼굴을 붉히며 화들짝 놀랐다.
“BJ요? 어떻게 학교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엘리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자 엘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뭘 생각했는데요? 한번 말해 봐요.”
“여기서요?”
지금 후배들 다 보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말해?
설마 이거 아까의 복수인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엘리가 말했다.
“전 브로드캐스팅 자키 생각했는데. BJ하면 브로드캐스팅 자키지, 다른 게 뭐가 있어요?”
“아, 예. 뭐, 그렇죠.”
그런데 난 왜 다른 걸 떠올렸을까? 나만 쓰레기야?
내 표정을 본 엘리는 웃음을 터트리더니, 귀에 속삭였다.
“사실 그거 생각한 거 맞아요.”
“…….”
진짜 못 당하겠구나.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다보니, 슬슬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축제는 해가 지고 나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