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72)
오카자키 총리 집권 이후.
양적완화와 엔저에 힘입어 일본기업들의 수출은 크게 늘고 니케이지수는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이에 대해 오카자키 총리는 ‘일본이 돌아왔다’며 큰소리쳤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옛말.
강진후의 토요타 주식 매도로 인해 벌어진 증시붕괴 파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만이 깨진 니케이지수는 회복은커녕 이제 1만5천 선마저 무너질 조짐을 보였다.
단지 금융 불안 때문이 아니라, 한일무역분쟁 이후 일본기업들의 실적악화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게 시작이라는 것이다.
OTK컴퍼니와 손을 잡은 한국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소재와 부품기업들을 육성 중이다.
이는 일본 기초산업을 향한 칼날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실제로 OTK컴퍼니 종속기업들과 거래 비중이 큰 외국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한국기업과의 거래를 점차 늘렸다.
테크닉스는 파산했고, 대기업들도 휘청거렸다. 중소기업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러 경협으로 진행되는, 한반도의 가스관과 철도 건설은 또 다른 악재였다.
일본 입장에서 안 하는 게 가장 베스트고 가능한 막아야겠지만,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숟가락이라도 얹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청구권협정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강진후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이슈로 만들어버렸다.
오카자키 총리는 이를 갈았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가진 힘을 깎아내겠다는 건가?’
잘못 대처했다가는 정말로 일본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잃고 밀려나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이라도 나서서 훼방을 놔주기를 기대했으나, 중국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듯 신중한 입장이었다.
아마 이 역시 강진후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목표는 개헌이었다. 그런데 이제 개헌은커녕 다음 총선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설마 한국인 한명 때문에 이렇게 골머리를 썩게 될 줄이야.’
일본은 패전 이후 한반도를 떠났지만, 식민지배 시절의 영향력은 아직도 남아 언론, 학계, 재계, 정계, 법조계 등 한국사회에 곳곳에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어떤 언론들은 일본에 유리한 기사를 쓰고, 어떤 학자들은 식민사관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어떤 정치인들은 일본의 입장을 대변했다.
기업들 역시 일본계 자금을 빌려 쓰고 있고, 일본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접근하고 싶어 한다. 때문에 어느 기업인도 직접적으로 일본을 적대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강진후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대체 이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오카자키 총리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하야시 신지 관방장관이 말했다.
“너무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한국인들의 습성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국인들의 습성?”
“조부께서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한국인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인을 이용하는 거라고.”
하야시 신지 관방장관은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당시 하야시탄광을 운영하며, 한국노동자를 끌고 와 강제노역을 시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억누르면 반발하는 게 한국인입니다. 원하는 것을 주면 조용해 질 텐데, 굳이 싸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과거 일본이 한국을 쉽게 병합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원하는 한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일본을 도왔기에 가능했습니다.”
오카자키 총리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세상에는 국가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인간이 얼마든지 존재하기 마련.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 한들 강진후가 이제까지의 입장을 뒤집고 우리 편에 서겠나?”
그렇게 한다면, 이제까지 쌓은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강진후가 그런 리스크를 감내할 이유는 없다.
“거기까지 바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강진후가 현재 스탠스를 계속 유지하면서, 조금만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방향을 틀어주면 됩니다. 어차피 투자자는 돈을 좇기 마련입니다. 또한 강진후가 한국정부와 그렇게 친밀한 관계도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은 그 틈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다. 국가의 부와 시장규모 역시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돈을 원하면 돈을 주면 되고, 명예를 원하면 명예를 주면 된다.
‘만약 강진후를 회유해 일본의 편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러면 지금 일본이 처해있는 모든 문제들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오카자키 총리는 눈을 빛냈다.
“강진후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야겠군.”
* * *
예정에 없던 한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오카자키 총리는 방한했고, 청와대에서 양국의 정상은 손을 붙잡았다. 그전까지는 국제행사에서 마주쳤을 때 잠깐씩 얘기를 나눈 적이 있긴 하지만, 정식으로 회담을 하는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무역분쟁 이후 처음이다.
민감한 시기에 열린 한일정상회담인 만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첫날 회담이 끝난 뒤, 오카자키 총리는 언론 앞에 말했다.
“허창민 대통령님과 깊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양국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긴밀하게 협력을 해나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허창민 대통령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한국은 언제든지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 *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오카자키 총리는 한국 기업과 공장들을 둘러보고, 한국 기업인들을 만났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서성전자 반도체공장. 오카자키 총리는 한국의 반도체 기술에 감탄하며, 일본기업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보기 힘든 일이다.
TV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택규가 물었다.
“요즘 일본이 많이 힘든가?”
“힘들지.”
한일무역분쟁 이후 대한수출이 줄며, 많은 기업들이 적자로 돌아섰고, 일부 기업은 파산했다.
한국기업들이 수입을 자꾸 줄이니, 총리가 직접 세일즈에 나선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이제 와서 다시 주문을 늘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망해가는 일본기업들에게 총리가 이렇게 애쓰고 있다는 것을 어필할 수는 있겠지.
오카자키 총리가 방문하는 기업 중에는 OTK컴퍼니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이게 진짜 목적일 것이다.
“못 만날 것도 없지.”
난 방문 제안을 승낙했다.
택규도 자리를 함께하고, 우리 쪽 통역은 정기홍 팀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물론 오카자키 총리가 통역을 대동하겠지만, 우리 쪽 입장을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게 낫다.
내 얘기를 들은 정기홍 팀장은 기겁했다.
“예? 제가요?”
“일본어 잘하시잖아요.”
정기홍 팀장은 두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건 비즈니스에서나 쓸 법한 정도지, 이런 중요한 자리의 통역을 맡을 만한 실력은 아닙니다.”
“이것도 비즈니스의 일종인데요.”
일본어 공부할 때만 해도 설마 일본총리 말을 통역하게 될 줄은 몰랐겠지.
택규는 정기홍 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할 것 없어요. 늘 하던 대로 그냥 편하게 하시면 돼요. 시게루 옹 통역도 긴장하지 않고 잘했는데, 오카자키 따위가 문제예요?”
누가 들으면 이치카와 사장이 오카자키 총리보다 위인 줄 알겠는데.
택규의 말이 좀 도움이 됐는지, 정기홍 팀장은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저 팀장님의 통역에 향후 동아시아의 미래와 한일관계의 명운이 달려 있다는 것만 명심하시면 돼요.”
“……네?”
* * *
일국의 정상이 방문하는 일인 만큼, 몇 시간 전부터 회사 주변에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배치됐다.
시간이 되자, 난 정문 앞으로 나갔고, 검은색 차들이 회사 앞으로 줄줄이 들어왔다.
오카자키 총리가 차에서 내렸고, 우리는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어서 오십시오, 총리님.”
오카자키 총리는 내 손을 붙잡았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그동안 언론을 통해 얼굴을 질리도록 봤고,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TV에서 보던 것보다 많이 늙은 것 같은 모습이다. 얼굴에 주름도 늘고, 머리카락도 회색으로 변했다.
최근 마음고생할 일들이 많긴 했지.
난 OTK컴퍼니를 안내해주었고, 언론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회사구경이 끝난 뒤, 우리는 마주앉았다.
우리 쪽은 나와 택규, 정기홍 팀장 셋, 저쪽은 오카자키 총리와 통역 둘이다.
대통령제를 택한 한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일본은 내각제를 택하고 있다. 집권당 총재가 행정부의 수장을 맡는 내각제 특성상 사실상 연임에 제한이 없다.
그는 전후 최장기 집권총리. 과연 앞으로 얼마나 더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오카자키 총리는 차를 마시며 말했다.
“강진후 대표님께서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계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총리님께서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전 일본에 별다른 악감정이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라는 점을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나눔의 집을 방문하셨더군요.”
“예.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할머니들께서 눈을 감기 전에 일본의 사과를 꼭 받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카자키 총리는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일본은 이미 여러 차례 사과를 했고, 지난번 위안부합의를 통해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런 만큼 또 다시 이러한 문제를 꺼내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일본이 가장 많은 사과를 한 대상이 바로 한국이다. 적당히 사과한 뒤,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고 있는 게 문제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일은 두 나라 정치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 그에 대해 제가 언급하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 다만 북한과 일본의 협정에 대해 자문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두 나라 사이에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과거의 일에 대한 배상액을 산정하는 것인 만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공론화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싶으시다면, 사과와 함께 북한 측이 생각하고 있는 배상금 1천억 달러를 지불하시면 됩니다.”
무상원조나 차관이 아닌 배상금이다. 그리고 배상금은 죄를 지은 쪽이 피해를 배상해주기 위해 주는 돈이다.
오카자키 총리는 고개를 저었다.
“1천억 달러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의 입장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입장을 이해한다면, 현실적인 금액을 제시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 그저 일개 투자자고, 협상에 자문만 할 뿐입니다. 일본의 입장을 북한 측에 잘 전달하는 것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북일협상의 키를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카자키 총리는 표정을 풀며 말했다.
“오늘은 그런 얘기보다 일본에 대한 투자를 요청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택규는 관심을 내비쳤다.
“갑자기 투자요?”
“한국은 자율주행과 승차공유 등에 있어서 여러 규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OTK컴퍼니가 일본에 진출한다면,일본정부는 이러한 규제들을 풀어 자율주행차가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배터리 공장과 자동차 공장 유치를 위해 금융지원과 세제혜택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순간, 귀가 솔깃해졌다.
“어떻게 말인가요?”
“일본에 진출한다면, 제로금리에 가깝게 자금을 대출하고, 한도와 기한도 원하는 대로 맞춰드리겠습니다. OTK게임즈와 페이스잇 등 일본에 있는 관련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로 지원하겠습니다.”
일본이 제로금리라 해도 돈을 빌리는 데는 이자가 붙고, 한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제안대로라면 백지수표를 써주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물론 진짜로 무제한은 아니겠지만, 어느 기업도 받을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매우 좋은 제안이네요. 저희 역시 일본시장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오카자키 총리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과 OTK컴퍼니는 서로의 날개가 되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택규는 신나서 말했다.
“오! 그냥 시장을 개방해주신다면 저희야 좋죠. 바로 진출하겠습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자동차산업은 기간산업이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육성한다.
당연하지만, 이런 시장을 세금까지 써가며 우리에게 그냥 열어줄 리는 없을 것이다.
난 오카자키 총리를 보며 물었다.
“혹시 총리님께서 저나 OTK컴퍼니에 바라시는 게 있으신가요?”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먼저 서로 협력해 현재 산적한 현안들을 잘 해결해나갔으면 합니다. 향후 일한관계의 발전을 위해 같이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돌려 말하고 있지만,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었다. 내가 일본 편에 서줬으면 하겠다는 거겠지.
일본은 1인당 GDP가 4만 달러고, 인구가 1억이 넘는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내 돈 한푼 쓸 필요 없이 이 거대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과연 일본시장에서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총리님 말씀을 들으니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네요.”
“누굽니까?”
난 웃으며 물었다.
“혹시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이라고 아시나요? 아니면, 이완용이나 민병석은요?”
내 말에 오카자키 총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느 나라든 자기가 태어난 국가와 국민을 배신한 인간을 매국노라고 부릅니다. 그들 역시 일본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었겠죠.매국노들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과 다릅니다.”
내가 국가와 국민을 더 사랑한다거나, 정의롭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매국노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난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돈이 존나 많아서요.”
택규는 옆에서 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돈 많지. 나라 안 팔아도 될 만큼 존나게 많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