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510)
외전1. 아이돌메이커99 (2)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에서의 공정성 시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심사위원이 특정소속사 연습생을 밀어주거나, PD에게 돈을 건네면 뽑힐 수 있다는 등의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래서 아이돌메이커가 택한 해법은 심사위원이 아닌 시청자들이 직접 투표를 해서 뽑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시청자들이 아이돌 멤버를 뽑는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호응을 얻으며 아이돌메이커는서바이벌경연 프로그램 사상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시즌5까지 이어졌고, 이를 베낀 프로그램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물론 그 과정에서 특정 연습생에 대한 밀어주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어쨌거나 투표 자체는 공정하게 이뤄졌을 거라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투표결과가 조작됐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밖의 일이었다.
정한수는 가설을 제시했다.
“혹시 이거 처음부터 순위가정해져 있었던 게 아닐까요?
연습생 별로 득표율을 정하고, 총득표를 0.04로 나눈 것을 상수로 해서 각 순위별로 계수를 곱한 거죠. 그래서 같은 표차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하위권에서는 표차가 극도로 적어진 겁니다.”
“집계 편의상 그렇게 했을 가능성은?”
“그렇게 변명할 수는 있겠죠. 그건 원본 데이터를 확인해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허어, 참나. 이게 진짜야?”
“조작을 해도 왜 이런 식으로 했을까요?”
“이건 초등학생이 계산기만 잠깐 두드려 봐도 이상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인데.”
“그냥 프로그램 이용해서 난수만 뽑아내도 됐을 텐데요.”
조작이 너무 허접하다보니, 오히려 믿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이전 시즌 자료도 한번 찾아볼까요?”
“그게 좋겠네.”
“아예 매화별 투표결과도 확인해보죠.”
그들은 저녁도 건너뛰고 전시즌에 걸쳐서 투표 자료를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번뿐만이 아니라 아이돌메이커가 이제까지 진행한 총 5개 시즌에서 전부 같은 방식으로 조작이 이뤄진 것이 발견됐다.
“시즌3에서는 상수가 6358로 나옵니다. 그런데 17등만 6538로 나옵니다. 이건 왜 이럴까요?”
“그냥 팻 핑거 같은데요. 입력하다가 오타가 난 거죠.”
그나마 한두 명 순위를 뒤바꿔서 데뷔시킨 거라면 정상참작의 여지라도 있다. 그런데 프로그램 전체가 조작된 거라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이건 관련자 몇 명이 옷 벗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GJ미디어가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거지?”
“설마 심심해서 순위를 조작하진 않았을 테고.”
“기획사들과 뭔가 오고갔겠죠.”
“이거 공표하면 어떻게 될까요?”
“난리가 나겠지.”
“GJ미디어 타격이 만만치 않겠는데.”
“망하진 않겠죠?”
“망하진 않겠지만, 주가는 폭락하겠지. 당장 경연프로그램은 전부 폐지될 테고, 여기저기서 손해배상소송에 시달릴 테고.”
GJ미디어는 20여개의 케이블 채널을 가지고 있고, 영화, 음악 공연 사업을 거느린 미디어 업계의 최강자다.
하지만 에이튜브나 넷플레이 같은 OTT의 확대로 인해 영향력이 점점 축소되는 중이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콘텐츠 플랫폼에서 콘텐츠 제작자로 사업전환을 꾀하는 중이었다.
아이돌메이커 시리즈는 그중 가장 대표적인 콘텐츠다.
플랫폼을 활용해 직접 아이돌을 키워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으로 여러 기획사와 손을 잡고 수십억을 투자해 제작했고, 다행히 매 시즌마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아이돌 제작 프로그램은 방영하는 동안 광고수익을 얻을 수 있고, 데뷔시키기 전부터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후 공연과 음원 판매수익을 기획사들과 나눠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아이돌 메이커 시리즈가 인기를 얻자, 대형 기획사들 역시 적극적으로 연습생들을 내보냈다.
만약 조작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GJ미디어는 물론 관련기획사들, 더 나아가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발칵뒤집힐일이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원본 데이터는 GJ미디어가 가지고 있고, 절대 공개하지 않을 겁니다. 의혹을 제기한다고 해도 언론사들과 얘기해 적당히 덮고 넘어가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부대표님이 걸고넘어지면 얘기가 다르지. GJ미디어가 아무리 대기업이고 미디어 업계 큰손이라고 해봐야 OTK컴퍼니 입장에서는 구멍가게나 다름없는데.”
“그건 그렇죠.”
그 순간, 정한수의 머릿속에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잠깐만요. 부대표님께서는 어째서 이 일을 파헤치라고 지시하신 걸까요?”
그의 선배인 백종훈이 말했다.
“아까 말씀하셨잖아. 리나가 떨어져서 그런 거라고.”
“그건 그냥 표면적인 이유죠. 설마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를 모아다가 투표조작의 증거를 찾아내라고 하셨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종훈은 뭔가 깨달았다.
“서, 설마 이 일을 계기로 국내 엔터 업계를 완전히 재편하실 생각인 건가!?”
“바로 그겁니다. OTK컴퍼니를 보면국내에서는 Edm엔터를 가지고 있고, 카로스 OS에 기본적으로 탑재되는 자동차용 OTT 렛츠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역시 그렇군 본인이 투표한 연습생이 떨어졌다고 이러시는 게 아니었어!”
오해였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투표한 연습생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러는 거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이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부대표님께서 이런 무서운 심계를 가지고 계셨을 줄이야!’
‘역시 OTK컴퍼니 부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하마터면 그냥 믿을 뻔했네.
오오! 부대표님.
정한수는 계속 말했다.
“이제까지 방송한 프로그램을 전부 살펴보고, 매화발표된 득표율, 관련 기사, 게시물, 댓글 등을 싹 다 분석해 누가 탈락하고 누가 수혜를 입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일이 향후 엔터 업계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도 면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김민혁이라는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왜 그래요?”
“! 제가 GJ미디어 주식을 갖고 있는 게 좀 있어서 빨리 팔려구요.”
그 순간, 정한수는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건 내부자정보도 아니고, 우리가 직접 분석해서 알아낸 겁니다. 그럼 이 정보로 매매를 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그 말에 모두가 눈을 빛냈다.
시장은 투자자들에게 공정해야 한다. 임직원이나 주요 주주가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거래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내부자거래가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걸리게 될 경우 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에서도 잘린다.
하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내부자도 아니고, 내부자에게 정보를 빼낸 것도 아니다.
미공개 정보긴 하지만, 직접 분석해서 얻은 정보인 만큼 불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누군가 한마디했다.
“돈 벌 기회가 눈앞에 왔는데, 가만히 있는 것은 바보짓인데.”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스마트폰을 꺼내 MTS를 켰다.
***
난 택규와 함께 골든게이트에서 퀀트(Quant)로 일하는 정한수라는 직원을 만났다.
그는 며칠은 못 잔 것 같은 표정으로 보고서를 내밀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시즌뿐 아니라 전 시즌에 걸쳐서 광범위한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연습생 별로 득표율을 정해 놓고, 전체 득표수를 곱한 방식을 쓰다 보니, 각 순위마다 일정한 표차이가 반복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게 우연일 가능성은요?”
정한수는 딱 잘라 말했다.
“차라리 자루에 부품을 넣고 흔들어서 비행기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을 겁니다.”
난 깜짝 놀랐다.
“진짜로 투표가 조작이었어?”
택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거봐. 내가 조작이라고 했잖아.”
그는 자료를 보며 말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뭔가요?”
“이번 시즌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진행한 온라인투표의 경우 99명 중 11명을 클릭해야만 투표가 완료됩니다. 따라서 총 투표수는 11을 소수로 갖게 되고, 11로 나누면 숫자가 딱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그렇겠죠.”
“그런데 여기 자료에 따르면 홈페이지 총 투표수는 5,050,557로 11로 나누면 소수점이 나옵니다. 이것부터가 말이 안 됩니다.”
난 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조작을 했어도 이렇게 허접하게 했단 말이에요?”
“저희도 그 점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택규는 이를 갈았다.
“이럴 줄 알았어. 이놈들이 이런 더러운 주작질로 리나를 데뷔조에서 떨어트리다니. 이러니까 내가 한통에 100원이나 하는 문자투표를 그렇게 열심히 보냈는데도 리나가 떨어지지.”
“저희가 방송 프로그램을 전부 보며 확인했는데, 순위가 뒤바뀐 걸로 추정되는 연습생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난 보고서를 훑어보았다.
조작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어느 연습생과 기획사가 혜택을 봤는지, 이 일이 시장에 어떤 파장을 가져오게 될지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기업분석 리포트도 이 정도로 열심히는 안 만들 것 같은데.
난 보고서를 덮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거 분석하시면서 수익 좀 얻으셨어요?”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부터 얻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택규는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
아이돌메이커99 시즌5에서 데뷔조로 뽑힌 11명의 연습생은 정식 걸그룹이 되었다.
앞으로 GJ미디어의 지원 아래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일본과 중국, 동남아 시장 등에도 진출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기조실이영채 실장에게 보고를 받은 유병문 회장은 노성을 질렀다.
“OTK컴퍼니에서 아이돌메이커99 투표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원본 데이터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이영채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거절하면 의혹을 공표하겠다고 합니다.”
유병문 회장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OTK컴퍼니가 왜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 건데?”
이영채 실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강진후 대표가 그때 일에 대해 화가 아직 안 풀린게 아닐까요?”
“그때 일? 진욱이 때문이라고?”
유병문 회장에게는 외도로 낳은 유진욱이라는 막내아들이 있다.
그는 재계에서도 난봉꾼으로 유명했다. GJ그룹 회장 아들이자 예능총괄팀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연예계 데뷔를 꿈꾸는 여성들을 강제로 추행했다.
그로 인해 몇 번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그때마다 유병문이 돈과 권력을 이용해 덮어주었다.
그러다 하필이면 강진후 애인에게도 헛짓거리를 하고 말았다. 그 사실이 알려지기 무섭게 광고를 주던 대기업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유병문 회장은 강진후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막내아들을 경찰에 자수시켰고, 유진욱은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죄를 자백했다.
피해자가 워낙많다 보니 합의에도 시간이 걸렸고 재판도 길어졌다. 유진욱 측은 일부러 적극적으로 변론하지 않았다. 처벌이 약하게 나올 경우 강진후가 화를 낼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기나긴 재판 끝에 1심에서는 징역 3년형이 나왔다. 그때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났고, 강진후 역시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듯했다.
그는 얼마 전 아들과의 면회를 떠올렸다.
같은 구치소에서 수감된 죄수라고 해도 개털과 범털은 대우가 다르다. 그는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독거실에서 지냈고, 매일 같이 변호사 접견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구치소가 편하다고 해도, 고시원에서 사는 것만 못하다.
그는 면회를 온 아버지에게 울며불며 소리쳤다.
‘저 한달만 더 여기 있으면 목매달아 죽을지도 몰라요! 얼른 빼줘요, 아버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이 초췌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는 아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정앤김에 변호를 맡겨서 전직 판사와 검사들로 변호인단 꾸려 놨다. 조금만 참아라.’
피해자들과 합의도 다 끝났고, 탄원서도 받아놓았으니, 2심에서는 충분히 집행유예로 감형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항소심에서 팀장님을 빼내려는 것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유병문 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이번 일은 진욱이를 강하게 처벌하라는 강진후 대표의 경고인 건가?”
“그럴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OTK컴퍼니가 고작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투표조작을 걸고넘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겠군.”
만약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이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그룹 전체가 와해될 수도 있다.
강진후는 그럴 만한 돈과 힘을 지녔다.
아무리 사랑스런 막내아들이라고 해도 그룹보다.
소중하지는 않다.
유병문 회장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정앤김에 연락해서 진욱이 변호팀 전부 철수시켜.”
“전부 말입니까? 그럼 변호는 어떻게 합니까?”
“그냥 국선변호사 선임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유병문 회장도 이영채 실장도, 설마 부대표가 투표한 연습생이 떨어지는 바람에 이러는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