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79)
현주 누나와 엘리는 디트로이트 시청사 근처의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
전용기가 공항에 착륙하자 역시나 리무진이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는 바로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호텔 로비에서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엘리는 두 팔을 벌리며 우리를 맞이했다.
“둘 다 오랜만이에요.”
왠지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본지가 꽤 됐구나.
난 반가워하며 말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엘리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제시카가 계속 일 시키는 바람에 잘 못 지냈어요. 미국에 오면 좀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주 누나는 피곤에 찌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에도 그렇긴 하지만, 오늘은 유독 심해 보인다.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으세요?”
현주 누나는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너희가 일만 벌이지 않았어도 괜찮았겠지.”
가뜩이나 한국지사 때문에 정신없는 상황에서 투자와 협상 문제로 미국으로 날아와야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거의 쉬지 못하고 일만한 모양이다.
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나도 갑자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원래는 차근차근 진행할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엘리가 물었다.
“이분은 누구세요?”
우리 뒤에는 헨리가 있었다. 어째서인지 헨리는 얼굴을 붉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마신 맥주가 아직 덜 깼나?
난 대신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헨리 골드맨이에요. 골든게이트 CEO인 제임스 C. 골드맨의 손자에요.”
내 말에 엘리는 깜짝 놀랐고, 현주 누나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엘리 킴이에요. 이쪽은 한국지사장인 제시카 오예요.”
헨리는 당황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 예. 반갑습니다. 헨리입니다.”
엘리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수상하다.
이거 설마······?
택규가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엘리에게 반한 모양인데.”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택규는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찔렀다. “너 긴장 좀 해야겠다.”
“······.”
내가 왜?
현주 누나가 말했다.
“인사는 대충 끝난 것 같으니까 둘 다 방으로 따라와.”
우리는 호텔 방으로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지 방 안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난 엘리에게 말했다.
“같은 방 쓰고 있는 거 아니죠? 간접흡연은 몸에 안 좋아요.”
“다른 방 쓰고 있긴 한데,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붙어있어서 소용없어요. 피부 상하면 어떡하죠?”
택규가 말했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서, 간접흡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어.”
“그게 뭔데?”
“같이 담배를 피우는 거야. 직접흡연을 하면 간접흡연을 피할 수 있잖아.”
“······.”
이게 뭔 개소리야?
현주 누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고, 우리는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협상은 어떻게 되었어요?”
“미시건 주정부와의 협상은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야. 본사와 공장부지도 얻어냈고, 기반시설도 주에서 담당하기로 했어. 세제혜택과 각종 지원도 받기로 했고.”
“FCA는요?”
“내일이면 그쪽 실무자가 건너올 거야. 보아하니 이번 기회에 쓸모없는 브랜드와 공장은 싹 정리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던데.”
반대로 잘 나가는 브랜드는 안 넘겨주고 싶어하겠지.
어쨌거나 크라이슬러를 인수하면 일단 구색은 맞춰진다. 여기에 전기차 회사 하나 인수하면 금상첨화일 텐데. 적당한 기업 없나?
“그보다 문제는 미국 대선이야. 지금 전세계 이목이 그쪽에 쏠려있는 건 알지?”
미국이 전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퍼센트 정도. 그러나 전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그 몇 배 이상이다.
군사력은 압도적인 세계 1위고, 미국의 돈인 달러는 기축통화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금리와 정책에 영향을 받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미국이 기침을 하면 신흥국들은 폐렴에 걸린다는 얘기가 있겠는가?
때문에 모든 나라가 미국 대선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한국 쪽 여론은 어때요?”
“로날드는 절대 안 된다는 분위기야.”
“절대로 가능성이 없다는 뜻인가요, 절대로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뜻인가요?”
“둘 다.”
“······.”
어지간히 미움 받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한국에 대해서도 막말을 많이 하긴 했지.
한국이 미국 제조업을 망가뜨리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한미FTA를 폐기하겠다, 한국은 돈도 많으면서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등등.
엘리가 부연설명을 붙였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에요. 로날드가 되기를 바라는 나라는 이스라엘 정도 밖에는 없을 걸요.”
그 이유는 로날드가 반이슬람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
전세계가 다이앤을 지지하는데 우리만 로날드 편을 들고 있구나. 이러다가 로날드가 진짜 대통령이 되면 브렉시트 때보다 더 욕먹게 될 것 같다.
현주 누나는 골치가 아프다는 표정이었다.
“왜 하필 로날드를 지지한 거야? 차라리 다이앤을 지지하지.”
“저도 그러고 싶었는데, 그쪽에서 안 만나주던데요.” 만약 다이앤이 된다는 예지가 떴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졌으려나?
“로날드가 열심히 떠들어대는 바람에 OTK컴퍼니도 같이 주목 받고 있어.”
로날드는 투자 진행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SNS에 올려 자신의 업적을 알렸다.
덕분에 OTK컴퍼니가 카로스를 보유하고 있고, 자동차산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홍보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잘만 되면, 미국 대통령을 등에 업을 수 있는 거잖아요.”
한국은 재계와 정계가 한 몸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내가 은성차와 싸우기로 한 이상 정치권과 손잡기는 글렀다. 밀리지 않으려면 나도 내 편이 필요하다.
그게 미국 대통령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잘 됐을 때 얘기지.”
“잘 될 거예요. 믿어주세요.”
현주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진후 네가 하는 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브렉시트 이후로 신뢰도가 올라간 느낌이다.
엘리도 말했다.
“저도 진후를 믿어요.”
“고마워요.”
현주 누나는 담배를 끄고 손을 풀었다.
“이제 일 시작하자.”
주정부와의 지원협상 문제, FCA그룹과의 인수협상 문제, 카로스의 본사 이전 문제 등등.
일은 그야말로 산더미였다.
이런 상황에서 뜻밖의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 * *
난 엘리와 함께 호텔 미팅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양복을 입고, 안경을 쓴 대머리 남자가 먼저 와있었다. 창백한 피부와 도드라진 광대 때문인지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반갑습니다. 제가 OTK컴퍼니 CEO입니다. 이쪽은 변호사인 엘리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잠시 놀란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20대 동양인 청년이 정체불명의 투자회사인 OTK컴퍼니 CEO라고 밝히니, 신기하긴 하겠지.
진짜냐고 묻지 않는 걸로 봐서는 미리 나에 대해 정보를 입수한 모양이다.
“저는 조엘이라고 합니다.”
그는 다이앤 선거캠프의 수석전략가다. 선거 구호부터, TV광고, 유세 일정 등등 선거전략 전부를 책임지고 있었다.
한창 바쁠 시기인데, 나를 찾아오다니. 아니, 한창 바쁘기 때문에 날 찾아온 건가?
인사를 나눈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일전에 한 번 만남을 요청했었는데, 이제야 보게 되네요.”
내 말에 조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서로에게 좋았을 텐데요.”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겁니까?”
내 물음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만나자고 할 때부터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어떤 의미인가요?”
“후보님께서도 OTK컴퍼니의 투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진행되는 점에 대해서 우려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요?”
“아직 주정부와의 협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명을 연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약속을 어기라는 말씀이신가요?”
내 물음에 조엘은 고개를 저었다.
“잠시 미뤄달라는 겁니다.”
로날드는 OTK컴퍼니의 투자를 자신의 업적으로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투자에 의욕적이지 않거나 투자를 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그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다.
어느 쪽 진영에 서있느냐를 떠나서, 내가 미국 자동차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부탁을 하다니. 이런 게 정치라는 건가?
“그렇게 하면 제가 뭘 얻을 수 있나요?”
“아시다시피 현재 러스트벨트의 주지사들은 대부분 민주당 소속입니다. 다이앤 후보님은 미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위해 자율주행에 대한 규제를 풀고, 무인자동차를 합법화시키고, 자율주행차에 대한 보조금을 지
급하실 생각이십니다.”
카로스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을 개정해주겠다는 건가?
난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 모습이 고민하는 것으로 비쳐졌는지 조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시겠지만, 러스트벨트 몇 개주를 빼앗긴다고 해서 대세에 지장은 없습니다. 옳은 선택을 하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선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로날드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며 추격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이앤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여론조사를 보면 지지율은 물론, 선거인단수도 앞선다.
전문가들은 다이앤이 적게는 310명, 많게는 340명의 선거인단을 무난히 확보해 대통령에 당선될 거라고 예측했다.
조엘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내가 계속 지지한다고 해도 로날드가 승리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지지를 철회할 경우 다이앤의 승리는 확실해진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뭡니까?”
“그럼 굳이 저를 찾아오실 필요가 있었나요?”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입니다.”
“······.”
조금의 변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건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국 대통령이 뒤바뀌게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어쨌거나 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거절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조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후회하게 되실 겁니다.”
협박인가?
난 피식 웃었다.
“비즈니스는 신뢰가 생명입니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지만, 신뢰를 잃으면 그걸로 끝입니다. 다이앤 후보님께서도 이해해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이해 못하면 어쩔 수 없고.
조엘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걸로 다이앤 쪽과는 완전히 틀어지게 된 셈인가? 왠지 입맛이 쓰다. 적을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엘리가 나에게 물었다.
“어째서 거절한 거예요?”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정치인들 말은 믿을 게 못 돼요.”
다이앤이 대통령이 된다고 방금 말한 것들이 실행이 될까?
GM와 포드를 포함한 자동차회사와 유수의 IT회사들이 다이앤의 선거캠프를 지원하고 있다. 그들이 반대하더라도 우리를 위해 법 개정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다이앤이 직접 약속한 것도 아니고, 문서로 써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선된 뒤에 모른 척해도 방법이 없다.
“그럼 로날드는요?”
그 역시 정치인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로날드는 자신이 자동차산업에 대한 투자를 이끌어냈고, 대통령이 되면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잖아요.”
애초에 미국 제조업 부활을 기치로 내건 상황에서 우리를 홀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자신이 비즈니스맨인만큼 웬만해서는 약속을 지키려고 할 거예요.”
적어도 정치인보다는 비즈니스맨이 믿을 만하다.
“그건 어디까지나 로날드가 대통령이 됐을 때 얘기잖아요. 만약 다이앤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에서 계속 사업을 해나가기 힘들 텐데요.”
“로날드가 당선될 거예요.”
엘리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확신을 하는지 궁금할 만도 하겠지.
“그보다 걱정하고 있을 로날드에게 전화나 한 통 해줘야겠네요.”
보나마나 내가 다이앤 선거캠프의 핵심관계자와 접촉했다는 사실은 로날드 쪽에도 알려졌을 것이다.
괜히 쓸데없는 의심을 하지 않도록 안심시켜줘야겠지. 주정부와의 협정서에는 바로 서명하고.
“로날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재선에 실패하면요?”
난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요.”
4년 후면, 미국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OTK컴퍼니가 성장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