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23
분신으로 절대무신 23화
9장. 다시 사문
본관에 들어선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거대한 동상 때문이었다.
사문은 나를 잊지 않았다.
“그나마 사문에서 먼 곳이 아닌 게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장일은 다른 방법을 궁리해야 했을 것이다.
검존이었던 그의 분신이야 산 한두 개를 넘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만, 장일은 아니었다.
다른 건 둘째라 쳐도 칼 다루는 데 쓰일 내공도 부족할 지경이니 그런 재주를 어찌 꿈꿀까?
이렇다 보니 동굴을 찾으러 가는 길은 그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머물었던 그였기에 그 기억을 바탕으로 그와 유사한 곳을 찾았다.
사문에서 십 리(4㎞) 떨어진 곳에 있는 오추산이라는 곳이다.
산세가 유독 가팔라 보이는 게 과거 그가 보았던 것과는 여러 면에서 달라 보였으나, 장일은 자신의 기억을 믿고 이 산을 오르기로 결정했다.
최소 사흘을 보낸다는 마음으로 식량과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간략히 챙긴 장일은 이후 지독한 고생길을 걸어야 했다.
산세가 험한 것도 험한 것이지만, 유독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추위였다.
산을 오를수록 그 추위도 바람도 거세어져 간 것이다.
아마 사냥꾼인 공 씨에게 산에서의 생존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장일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내려와야 했을 것이다.
밤이 되면 기름 먹은 천 위로 눈을 이불 삼아 바람을 막으며 어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아침이 오면 얼어붙은 몸을 풀어내며 다시 동굴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일이 정말 잘못 생각이라도 한 것이라는 듯 찾고 찾아도 동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 사흘째가 되었다.
“오늘 찾지 못하면 내려가야겠지.”
다른 것보다 가져온 식량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도무지 버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간다면 장일은 방법을 달리할 생각이다. 이곳의 일대의 산에 눈이 밝은 자를 고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공 씨와 같은 사냥꾼이나 약초꾼 정도만 되어도 대단히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장일이 그들을 고용할 일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사흘째인 오늘 장일은 마침내 동굴을 발견했다.
“설마, 이런 변수가 있었을 줄이야.”
어이없게도 그가 찾아낸 동굴은 그가 첫째 날 가장 확률이 높다고 보았던 지형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난 밤 내린 폭설 덕분이었다.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한 굴곡이 그에 눈에 띄었다.
물론 그조차도 장일이기에 발견한 것이지, 여느 이라면 어림도 없었을 차이었다.
그는 그곳을 중심으로 수색했고, 이후 어째서 그간 찾지 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설마 진법이 이리 뒤틀렸을 줄이야.”
숨을 거두기 전 동굴 입구에 펼친 진법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달라진 자연에 용케도 버텨댔다. 그 과정에서 진법은 확장되는 등 변화를 일으키더니 이제 천혜의 진법으로 변모했다.
그에게 이를 가르쳐 준 만통존자가 보았더라면 아마 대단히 흥미를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일은 이 거대하고 뒤틀린 진법을 찬찬히 살펴보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았구나. 그럼 해체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장일은 남은 내기를 억지로 끌어모아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그저 산처럼 쌓인 눈이라 생각되던 부분에서 하얀 연기가 일다 사라지며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드러난 모습의 중심에는 과거와 달리 그 입구가 크게 좁아진 작은 동굴이 있었다.
“이러니 찾을 수 있을 리가.”
설마 지형이 내려앉았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장일은 어이없어하며 동굴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가 좁아지기는 했으나, 몸을 크게 숙이면 못 들어갈 것도 없었다.
-치익, 화아악!
다만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두웠기에 마지막 남은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여 먼저 밝힌 장일은 그제야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으음.”
그렇게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일은 침음을 흘려야 했다.
이미 썩어 사라져 버렸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시신이 너무도 멀쩡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다.
오히려 삭아져 가고 있는 건 그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
그나마 입고 있던 것이 비단옷이라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장일은 자신의 적나라한 나신을 마주 봐야 했을 것이다.
장일은 이번으로 자신의 시신을 두 번째 보게 되는 것이었지만, 지난번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칼날에 찢겨 부패되었던 터라 오히려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이가 들기는 했으나, 멀쩡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니 그 감상은 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신이 멀쩡한 것은 극한으로 단련되었던 육신 때문일까? 아니면 환경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잠시 그 시신을 바라보던 장일은 자신이 온 목적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시신이 있는 동굴을 찾아오게 된 목적은 하나다.
바로 자신이 남겼던 유품을 챙기기 위해서다.
한때 천하를 오시하던 자의 유품이라고 하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없었다.
그의 시대에서는 명검이라 불렸던 이제 녹이 슬 대로 슨 칼 한 자루와 용케 변질되지 않은 이십사수검법이 담긴 검법서, 내상단을 대신해 가지고 다녔던 영약 네 알, 그리고 그의 신분을 증명하는 잘 다듬은 홍목으로 만든 깨알 같은 글씨로 정교하게 쓰인 증패 따위다.
“잠깐 그러고 보니…….”
장일은 시신의 앞쪽에 나열된 그것들을 고스란히 챙기다, 이내 떠오르는 기억에 조심스레 자신의 시신을 조심스레 뒤졌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장일은 미소를 보이더니 무언가가 그의 손에 쥐여 있었다.
옥벽(玉璧)이었다.
옥벽은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옥기로 예기(禮器)에 쓰이는 물건인데, 분신이 활동하던 당시만 해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물이었다.
왕 또는 그에 준하는 신분이어야만 했으며, 그렇지 않은 이가 이를 지닐 경우 사람들에게 염치없다 하며 손가락질을 받았다.
당연히 검존이던 장일은 이런 옥벽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런 귀한 물건이니만큼 이 옥벽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옥도 대단히 귀한 것이었다.
옥은 유가평옥 온윤이택 견치여율(儒家評玉 溫潤而澤 堅致如栗)을 기준으로 삼아 등급을 나눈다.
해석하자면 유가에서 옥을 평가할 때는 부드럽고 광택이 나며 견고하기가 밤나무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장일의 시신이 지녔던 옥벽은 그 조건에 모두 부합되었다.
상품의 옥이라는 말이었다.
여기에 검존이 가졌다는 역사적 사실이 증명된다면 부르는 게 값이다.
하지만 그를 증명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니, 그만한 가치는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그저 상품으로서의 옥으로의 가치만 있을 뿐인데, 이것만 해도 상당한 가치로 팔 수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금 100냥이 들었다고 했을 정도니.”
물론 그만한 가치를 받을 것이라 장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와 달리 옥은 민간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보편화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상품의 옥은 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값을 받을 수 있다 예상할 뿐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을 얻은 셈이라 장일은 크게 기뻐했다.
그렇게 옥벽을 마지막으로 분신의 유품들을 챙겼던 장일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신을 정리했다.
아껴두었던 기름을 시신에 뿌린 장일은 화섭자로 불을 붙였다.
곧, 하얗게 뒤덮인 설산에 검은 연기는 오랫동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 *
-쿵쿵쿵!
이른 새벽.
고요함을 깨뜨리고 누군가 천검문의 문을 두드렸다.
천검문의 3대 제자 용호는 처음에는 잘못 들었는가 싶어 귀를 의심했으나, 다시금 들리는 소리에 서둘러 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누구인데 이런 아침에?”
용호는 투덜거리면서도 일찍이 이를 알았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의 주 일이 경계 당번이기 때문으로, 자칫 이 일이 문제가 생기면 크게 혼이 날 수 있어서다.
“하아암! 죽겠네.”
용호는 부족한 잠을 하품으로 억지로 흩뜨리며 다시금 두드리는 문을 활짝 열었다.
그렇게 문을 열었던 용호는 조금은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열었던 문 뒤에는 아직 약관(20살)에도 이르지 않은 어린 사내 한 명이 있어서다. 귀한 가문의 공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 터라 그는 더욱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문이 정말 사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 이제 이런 일까지 벌어질 줄이야.’
대문파의 문은 함부로 두드릴 수는 없었다.
도가나 불가에서야 민간인들의 기원을 어루만지니 낮다지만, 천검문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문파였다.
서찰을 보내 먼저 약속을 잡고 방문하는 게 원칙이었으며, 그것이 어렵다면 사람을 보내는 게 예의였다.
물론 사문과 연이 깊은 이나 단체라면 그 두 가지 원칙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이미 무언으로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을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어기고 찾아온다면 여러모로 실례를 범하는 것이다. 그 신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그리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용호가 당혹스러워할 만도 했다.
다른 시간도 아니고 꼭두새벽에 찾아와 문을 두드린 어린 사내라니 그로서는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은 일이다.
아마 심보가 고약한 이라면 어린 사내를 호되게 혼을 내며 쫓아낼 테지만, 용호는 그럴 위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문의 어른들께서 아시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 무슨 일 때문에 이리 찾아왔는지 몰라도 이는 예의와는 거리가 머니 정식으로 약속을 찾고 찾아오거라.”
그 말투는 엄했으나 자세히 보면 그의 말에는 잔정이 가득했다.
어린 사내는 그런 용호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입가에 큰 호선을 보이더니 곧 사죄했다.
“마음이 급해 실례를 범했습니다. 하면 이것으로 약속을 잡고자 합니다.”
그러며 어린 사내가 용호에게 내어 준 것은 바로 낡은 검 한 자루였다.
제법 공을 들여 손질을 한 듯 반질반질한 모습이 보였으나 실전에서는 사용되기 어려워 보였다.
다만 어딘가 고풍스러운 면이 있어 유물로서는 가치가 있었다.
얼떨결에 그 검을 받은 용호에 어린 사내는 답을 기다리겠다며 자신이 기다릴 객잔을 말하고는 산을 내려갔다.
“마치 도깨비에 홀린 듯하구나.”
그리 말했을 만큼 이상한 일이었으나, 그 손에 있는 검이 조금 전 일이 현실임을 증명했다. 잠시 검을 바라보던 용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검을 뽑았다.
-스르릉.
낡은 금속 특유의 비음이 뒤를 따르자 용호는 기대했던 마음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검에 조그맣게 새겨진 글자를 본 순간 용호는 충격에 자칫 검을 떨굴 뻔했다.
-검존(劍尊)
검의 지존이라는 뜻이 담긴 이 두 글자는 천검문에게 있어 너무도 특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용호는 어찌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다 이내 서둘러 사문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천검문 본관 곳곳에 불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