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4
분신으로 절대무신 4화
그렇게 장패의 소속으로 들어가게 된 장일은 큰 막사 하나를 혼자 독차지했다.
백인장에 오르면서 새로운 식구를 받아들이기도 전에 장일이 합류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물론, 이는 장패의 배려도 있었다.
기존의 막사에 들어가면 그의 자리는 너무도 좁아졌다. 거기에 오지랖 부리는 걸 좋아하는 수하들이 그를 괴롭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큰 공을 세우긴 했지만 장일은 이제 열여섯에 불과한 어린 사내가 아니던가?
“…….”
그런 그의 배려는 장일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기나긴 밤의 적막은 뒤늦은 스승의 추모(追慕)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이 든 그날.
장일은 기이한 꿈을 꾸게 되었다.
* * *
-분신.
꿈은 참으로 기이하리만큼 뚜렷했으며, 그 시작도 특이했다.
그가 그랬듯이 꿈에서의 그 또한 죽음에서 깨어나면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깨어난 장일은 한동안 의문 어린 눈빛을 보여야 했다.
“여기가 어디지?”
자신이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지만, 이외에도 주변의 환경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정리도 되지 않은 채 죽은 지 사흘이 지난 전장에서 깨어난 장일과 달리 꿈속 장일이 깨어난 장소는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다행히 그 또한 의식 수준이 성장하면서 별다른 공황에 이르지 않았다.
장일은 지금 처한 상황을 알기 위해 움직였다.
“요나라?”
한나절이 되지 않아 작은 성을 찾은 장일은 그 성이 요나라의 성이라는 것을 알고는 크게 의문을 보였다.
그럴 법도 한 게, 요나라는 고대 사라졌던 국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가 이를 아는 것은 요나라는 장일이 속한 나라인 강나라의 전신(前身) 국가였다.
요나라는 당시 오랑캐로 여기던 강족이 세운 거대 국가로 상당히 호전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전쟁을 업으로 삼을 정도였으며, 식량 등의 생필품은 전쟁에서 잡아들인 노예가 생산했다.
노예가 가장 많던 건국 초기에는 백성과 노예의 비율이 1 : 10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들이 얼마나 전쟁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무슨!”
장일은 그런 요나라에 와 있다는 것에 대해 강한 부정을 보였다.
부활한 것 이상으로 과거에 떨어졌다는 것이 너무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둘째로 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홀어머니가 고생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장일로서는 이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정말이구나…….”
하지만 하루가 채 되지 않아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요나라의 특징인 수많은 노예가 길거리에 넘쳐나는 모습을 비롯해 그의 시대와는 너무도 많은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크게 상심하는 그에게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사용하는 화폐의 가치가 그의 시대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것에 있었다.
현재 장일에게는 은 두 냥이 있었다.
언젠가 집에 보낼 생각으로 1년 동안 모은 급여로, 이 돈이면 평년일 때 쌀을 네 가마니(한 가마니:80㎏)를 살 수 있었다. 잡곡으로 바꾼다면 잘하면 열 가마니도 가능한 돈이었다.
한데, 이 시대에서는 달랐다.
은의 가치가 그의 시대보다 열 배는 더 높았다.
말하자면 그는 잡곡 백 가마니를 살 수 있는 거금을 쥐고 있었다.
요나라 특유의 군 정책과 광산의 기술 수준이 현격히 떨어지던 시대라는 특성이 합쳐져서 생긴 일이다.
그것은 금속 제련에서도 다르지 않아 그가 가진 보급품 무구조차 이 시대에서는 상등품의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당연히 스승으로부터 받은 검은 잘 제련된 것이라, 명검 취급을 받았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자금이 품에 있다는 것은 그에게 그나마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워낙 상실감이 컸기에 방황(彷徨:일정한 목적 없이 헤맴)을 하하긴 했으나, 나흘째 되던 날 그는 자신의 목표를 새로이 세울 수 있었다.
“사문을 찾는다.”
의식의 수준이 높아졌다지만, 장일은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다.
가족을 대신할 새로운 사문을 찾는 목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는 바로 보급품 무구를 팔아서 사들인 말을 타고 길을 나섰다.
장일의 스승 오문은 유난히 말수가 없는 이로, 그가 장일을 제자로 삼은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그가 살날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장일의 근골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근골을 상중하로 나눈다면 장일은 능히 상품(上品)이라 할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난에 의해 제대로 먹지 못했던 것과 배움의 시기가 늦은 것 때문에 그 자질이 많이 퇴색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오문은 장일을 제자로 삼는데 서슴지 않았다.
오래전의 내상이 문제를 일으킬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군에서 이 정도의 자질을 지닌 이를 찾는다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을 만큼 희귀하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장일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오문을 스승으로 모셨다.
오문은 상당히 엄한 스승이었으나, 장일은 한 번도 그를 원망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엄한 가운데 언뜻 보이는 그 따스하기 그지없는 속정(은근하고 진실한 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 장남이라는 무게에 지친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 충분했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그래서인지 사문을 찾기 위해 스승과의 사소한 기억을 떠올리던 장일은 종종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추억을 더듬어서 얻은 것이 많았는데 이 중 당장 중요한 것은 이러했다.
오래전에 망했다는 사문의 이름이 천검문(千劍門)이라고 했던 것과 사문이 지금 시대에 존재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었다.
또한, 천검문이 도봉산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운이 닿았던지 수소문 끝에 찾은 도봉산은 요나라에 속해 있었다.
고생 끝에 길을 나선 지 두 달 만에 도봉산에 도착한 장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천검문이 자리를 잡은 게 3년밖에 되지 않았을 줄이야.”
그가 조금만 더 과거로 떨어졌다면 그는 또 한 번 세운 목표를 잃어버렸을지도 몰랐다.
당시 천검문은 그리 유명한 문파가 아니었다.
도봉산 일대에서나 겨우 소문이 날 정도로 작은 문파였다. 이런 난세에 이 같은 소문파는 이 부근에만 열이 넘었다.
그러나 장일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는 그의 스승인 오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검문이란 이름은 시조께서 천 개의 검을 꺾은 것을 기념하여 지은 이름이라 하더구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분께서는 능히 검귀(劍鬼)라 불려도 무방하시다.”
놀라운 평이었다.
강호인에게 있어 별호는 대단히 중요했다. 평생을 강호에 떠돈 자도 제대로 된 별호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별호에 귀(鬼)가 붙었다? 이는 그가 그 분야에 있어 나라를 대표할 만한 실력자라는 것을 말했다.
그러니 전해지는 일화의 반의반이라도 사실이라면, 천검문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대호(大虎)가 웅크리고 있는 호굴(虎窟:범의 굴)이다.
장일은 심장의 고동이 크게 울리는 것을 억지로 내리누르며 천검문을 향했다.
그러나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것일까?
찾아간 천검문의 모습은 호굴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아니, 흔히 널린 소문파보다 내실이 좋지 않아 보였다.
거기에 장문인이라는 이의 무공은 그의 스승에도 미치지 못해 보였다.
하지만 애초에 큰 힘을 얻고 싶어 찾아온 것이 아니었기에, 장일은 헛헛한 마음을 뒤로했다.
“제자가 되고 싶다고?”
현 천검문의 장문인 문추는 갑자기 찾아온 장일의 청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자네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아닙니다. 부디 저를 천검문의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그것참.”
재차 제자로 받아달라는 장일에 문추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현 사문의 상황이 새로운 제자를 받기에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장일은 뒤늦게 그 사정을 알아보고는 서둘러 돈이 든 주머니 하나를 꺼내었다.
“부끄럽게도 많지 않습니다만, 사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니, 뭐 이런 걸 내어…… 허억!”
말로는 거절의 뜻을 보이면서도 최근 워낙 빡빡한 살림에 저도 모르게 주머니를 받아 든 문추는 그 안의 내용물을 보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주머니 안에는 무려 은 두 냥에 동전도 오백 문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은으로 치면 은 두 냥 반에 달하는 가치였다.
사문을 유지하는 데 1년에 은 한 냥이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거금이었다.
그제야 문추는 촌놈 같은 장일의 외모에 가려진 장점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근골이 생각보다 훌륭하다는 것과 허리에 꽂힌 칼이 검은 자루 안에 있음에도 예기가 느껴질 만큼 상등품이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말까지 타고 왔으니, 그로서는 장일의 신분이 범상치 않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문추의 착각이었지만, 덕분에 문추는 두 번 생각할 것 없다는 듯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 그렇게 원한다니 자네를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크흠, 이건 성의를 봐서 받겠네.”
염치가 없는 이는 아닌 듯 얼굴을 붉히며 주머니를 챙긴 문추는 이후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를 제자로 삼기 전에 아버지께 자네를 인사시키는 게 좋을 것 같네. 마침 지금쯤이면 깨어나셨을 테니 잘 되었군.”
“??”
생각지 못한 전개에 장일의 눈에 의문이 일었다.
그러나 문추는 서둘러야 한다는 듯 풍만한 체격의 부인이 가져다준 약탕을 가지고 사문의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장일을 데려갔다.
문추가 약탕을 가져가는 모습에 힘없는 노인을 생각했던 장일이었지만, 정작 그 방 안에는 몇 달은 굶은 듯한 호랑이 같은 노인이 있었다.
장일은 그 노인과 눈을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눈에서 풍긴 기질이 워낙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아마 과거의 장일이라면 저도 모르게 얼어붙었겠지만, 지금의 장일은 달랐다.
마주 노려보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기세는 감당이 되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인지 노인은 아들이 가져다준 약탕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장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문추는 혹시나 아버지가 장일에게 역정을 내실까 싶어 서둘러 장일을 데리고 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이 멍청한 녀석!”
“아이고!”
아버지의 일갈에 문추는 죽는소리를 내며 바짝 엎드렸으나, 이미 아버지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다시 보아도 최상품(最上品)이로다! 이런 인재가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왔는데 엎드려 받을 생각은 안 하고 이딴 형식에나 신경 쓰다니, 이 멍청한 걸 어디다 쓸꼬.”
“과분하게 평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크하하하.”
장일의 말에 그는 더없이 만족했다.
한눈에 보아도 좋아 보이는 장일의 근골도 만족스러웠지만, 그보다 더 그를 만족스럽게 한 것은 장일의 기질이었다.
기질은 무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나 경지가 상승할수록 더욱 그러했다. 이 기질을 후천적으로 끌어올리려면 상당한 수양(修養)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런데 장일이 보이는 기질은 선천적으로 타고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비록 그가 주화입마로 인해 골골거린다지만, 그는 본래 천하에서 손꼽히는 검을 다루는 강자였다.
그의 아들이 눌리고 사는 것은 아들이 못나서라기보다는 그의 기질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데, 이제 막 무공에 발을 들인 장일은 눌리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으니 실로 믿기 힘든 기사(奇事:기이한 일)였다.
“콜록콜록.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에게 하늘이 이런 선물을 보낼 줄이야.”
그는 떨리는 눈빛으로 장일에게 말했다.
“아들이 감당하기에는 자네의 기질이 너무도 크네. 자네를 나의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네.”
난데없이 스승으로 삼아야 할 이의 사제가 된 셈이었으나, 장일은 두말할 것 없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심각한 병환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스승의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일이라고 합니다. 절을 올리겠습니다.”
이후 과거 오문이 가르쳐 주었던 구배지례를 올렸고, 노인은 그 모습을 떨리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문강이라 하네. 이제 내 남은 삶은 자네의 검의 기반을 세우는 데 쓰일 것이네.”
“…….”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문추는 걱정이 일었다.
실로 오랜만에 열정을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반가운 것이었지만, 저러다 무리하여 몸이 크게 악화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뿐이었다.
놀랍게도 장일을 제자로 삼으면서 삶에 대한 애착이 늘어난 문강의 병세는 나아지지는 않을지언정 더 이상 나빠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