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87
분신으로 절대무신 87화
-스슥.
“전에는 너무 순하여 문제였건만.”
별다른 기척도 없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장일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조한의 당황스러움은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검군을 비롯한 이 비무를 본 자들이 장일의 이형환위에 놀라 당황하였다면, 조한이 당황한 것은 스승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다.
“죄송합니다.”
변명 없이 죄를 뉘우치는 제자에 장일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했을 일이었다. 다행히 인명은 해하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
괜찮다는 스승의 말에도 조한은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장일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검군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으음. 괘, 괜찮습니다.”
말과는 달리 한동안 요양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검군은 달리 말하지 못했다. 만약 장일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어찌 될지 예상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하면 제자는 이제 증명이 된 것입니까?”
그 말에 검군은 얼굴을 붉혔다.
화가 나서가 아닌 자신이 벌인 실태에 부끄러움을 느껴 보인 태도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조한을 검선을 만나 일찍이 천살성이라는 힘을 만개한 운 좋은 애송이라 여겼다. 당연히 최근 천하삼검에 비한다는 명성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애송이는 나였다.’
그의 평생의 절학이라고 여겼던 백아가 무참하게 깨어지면서 그 또한 많은 것이 부서져 버렸다.
칠군 중 하나로 천하를 오시하는 절대강자로서의 오만(傲慢)과 자만(自慢)이 한순간 무너진 것이다.
그로 인해 이른 허탈감은 너무도 큰 것이었지만, 장일은 검군의 그런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당장이야 괴롭겠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기회가 되겠지.’
그리고 그 기회를 잡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면 사파는 또 다른 제왕을 올려다보게 될 것이다.
“더는 귀찮은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장일은 검군의 말에 달갑게 받아들이며 아직도 주눅이 든 제자의 등을 툭툭 치고는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 길지도 않았던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이 비무는 한나절도 채 되지 않아 무림맹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남궁 세가 때의 공적이 있음에도 그간 수라검이 비무를 피하는 모습에서 소문이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차였다.
한데, 이번 검군과의 비무를 통해 그 소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겨우 이긴 것도 아닌 검군의 백아를 깨부수기까지 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으니, 그럴 만했다.
자연 수라검의 검이 천하삼검에 비견된다는 말에 신빙성이 일게 되었다. 이 비무의 파장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검선에 대한 소문도 그와 함께 맴돌았다.
그가 사자후를 다루어 그 비무를 그치게 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간 주춤했던 제석천이라는 별호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입방아에 올리고 있었으나, 장일은 그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최근에 다시 만난 성녀 덕에 바빴기 때문이다.
성녀 일행들은 1년 전을 기점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고, 하여 장일은 처음에는 모종의 압박이 있어 생긴 일이 아닌가? 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불왕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성녀를 본 장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4년 전까지만 해도 더없이 건강했던 그녀가 실로 보기 안타까운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밝고 탄력이 넘쳤던 피부는 어둡기 그지없었으며, 얼굴과 몸 곳곳에서 부종이 올라와 있었다.
과연 그 고결한 아름다움으로 정의맹의 수뇌부들을 휘어잡았던 동일인물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성녀 특유의 맑고 깊은 눈빛이다.
숨 쉬는 것도 버거운 그녀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밝은 눈빛으로 장일을 맞이했다.
“하아. 검선이라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경하드립니다. 은공.”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약왕인 그로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병세였기에 장일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크게 당황하는 장일의 모습에 성녀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놀라 하실 것 없습니다. 온께서 결국 잠이 드시어 생긴 일에 불과하니 말입니다.”
“신병이란 말입니까?”
신병은 신을 모시는 무녀들이 앓는 병을 말했다.
보통은 신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병이나, 이처럼 신이 강제로 떠나면서 앓기도 했다.
물론 민간의 신과 온을 같은 동상에 두는 말이니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성녀는 이에 대해 대수로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지막이 웃음을 흘리다 이내 콜록콜록 기침을 흘려댔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마검이 익숙하다는 듯 품에서 작은 환단 하나를 꺼내어 그녀에게 먹여주었다.
과연 그 환단의 효과가 났던지, 얼마 가지 않아 그녀는 기침을 멈추었으며 그 안색도 전에 비해 확연히 나아졌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대화는 할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사실 저는 온께서 잠이 드시는 것과 함께 저 또한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성녀는 그 일이 2년 전이라고 하였다.
그럼에도 순리를 거슬러 지난 2년을 버틴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장일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장일은 짧게나마 성녀에게 있어 그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자연 의문이 일 수밖에 없었다.
“저를 만나고자 하셨다면 찾아오셨으면 되었을 것을…… 어찌 이리.”
순리를 거스른 그녀가 앓는 고통이 짐작되어 꺼낸 장일의 말에 답한 것은 마검이었다.
“이미 그때는 몸이 악화될 대로 된 상태였네. 그 같은 여정을 꿈꿀 수 없을 정도였지.”
그렇기에 마검은 서신이라도 보낼 것을 이야기했으나, 성녀는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장일이 오히려 답답하여 묻자 성녀는 아이 같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제가 은공을 다시 뵙고자 한 것은 부탁이 있어서입니다. 염치가 있다면 은공께 부담을 줄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이게 더 부담을 주는 일임을 모르는 것입니까?”
“아하하. 사실 그것을 노리기도 했습니다.”
“…….”
성녀의 농에 장일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농이 더는 농이 아니게 되어서다.
“편히 말씀해 보십시오.”
“감사합니다.”
그 말에 성녀는 크게 기뻐했다.
장일의 말은 실상 그녀의 부탁을 가능한 들어줄 것이라 말한 것이나 다름없어서다.
그녀는 불편한 목소리를 어렵게 가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처음 온께서 은공을 이야기하셨을 때, 불사의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피조물(被造物)로서의 한계를 넘어선 이라고 하셨지요.”
“…….”
장일은 그 말에 놀라는 것도 잠시, 다른 면에서 흥미를 보였다.
온이라는 이 대단한 신조차도 자신의 권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장일의 모습을 어찌 생각하는지 성녀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기를 은공으로 인해 자신은 완전해질 수 있다고도 하셨지요.”
“저로 인해 완전해질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은공께서 율을 죽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
그 말에 장일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
신을 죽인다는 것의 의미가 너무도 말이 안 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장일은 이에 대해 의문을 보이면서도 또한 새로이 드는 의문에 결국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알기로는 율은 온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면 제가 그를 죽이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율과 온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이니 장일이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성녀는 장일이 그리 물을 것을 예상했는지 그 의문을 이내 풀어주었다.
“육신이라는 틀이 있어야 하는 피조물과는 달리 신은 그 틀이 필요 없는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그렇다 보니 죽음이라는 것의 의미는 생명체의 죽음과는 다릅니다. 굳이 말하자면 존재에 대한 의의가 사라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율의 죽음은 온의 죽음과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율의 죽음으로서 온은 마침내 자신의 반대편까지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게 가능해진다.
마침내 완전해지는 것이다.
“그 말은 그분께서 더는 이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설마 혈교가 더는 부활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까?”
“혈교만이 아닙니다. 광천교도 더는 존재할 이유가 사라지지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장일의 말에 성녀는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신의 격이 높아진다는 것은 더는 세상에 관여를 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 의의가 둘이라 강제로 반으로 나누어졌을 때야 이처럼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분께서 하나가 되신다면 더는 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지요.”
“으음.”
성녀의 말에 장일은 그제야 오랫동안 품은 의문 하나가 풀어졌다.
화선의 시대에서 혈교가 아니 광천교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그나마 생각해 본 것은 용 제국의 영향에 의해 광천교가 숨어서 포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혈교가 천하에 끼친 악영향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고, 그로 인해 용 제국이 탄생되었다지만 중부 대륙을 지울 뻔한 혈교의 악행을 본다면 그 강대한 용 제국이 가만둘 리 없었다.
당시에는 그리 생각하고 넘어갔으나, 실상은 그것과는 달랐다.
아마도 본래의 역사에서의 그는 성녀의 바람대로 율을 죽인 모양이었고, 그로써 혈교 또한 완전히 멸하게 된 것이다.
다만 그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가는 가운데, 잠시 숨을 고르던 성녀가 그의 의문을 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신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신뿐입니다. 온께서 말씀하신바 피조물로서 한계를 넘은 은공이시라면 가능한 일이지요.”
‘존재감을 말하는 것인가?’
또다시 거론된 피조물의 한계를 넘었다는 말에 장일은 대번 존재감을 떠올렸다.
하기야 1이 채 되지 않은 존재감으로 율의 혈독과 저주 따위도 가볍게 지워 버렸던 그였다.
본 역사에서 그는 1.9의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으니, 정말로 성녀의 말대로 율을 죽이는 것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마침 이번 부활에 있어 율의 의지가 매우 강합니다. 망왕을 상대하셨으니 아시겠지만 과거 사악보다 더 큰 권능을 다루고 있지요. 그만큼 율의 화신체인 혈마 또한 상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화신체에 담긴 율의 존재가 크다는 것을 말했으니, 장일이 혈마를 죽인다는 것은 곧 율이 지닌 의의가 부활하기 불가능한 수준이 된다는 것을 뜻했다.
간단히 말해 혈마의 죽음은 율의 죽음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감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었고, 장일은 그런 점에서 본 역사의 그보다도 넘치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