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리치가 되려면 최소한 7클래스 이상은 되어야 한다. 아크 리치는 9클래스 이상.
에론 대륙에 전해지는 리치에 관한 전설은 꽤 구체적이다.
마왕에게 영혼을 바쳐야 한다느니, 인간의 감정은 없어진다느니, 결국엔 지옥으로 끌려가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느니…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영혼을 가져가는 주체는 존재한다. 마왕일 수도 있고 마신일 수도 있다. 불멸의 대가를 얻으려면 등가 교환의 법칙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니까.
나중에 지옥으로 끌려간다?
그건 모르지. 소멸한 후에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감정이 사라진다는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기쁨과 행복, 사랑… 긍정적인 감정은 느껴 보지 못한 지 오래됐다.
느낄 일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터.
잠을 자고 싶지만 잘 수가 없고, 배가 고프지만 먹을 수 없어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
사랑? 연애? 이 몸뚱어리로?
남는 감정은 오로지 복수심과 분노, 저주, 광기… 이런 감정은 오히려 증폭되어 밤마다 자신을 괴롭혔다.
그러나 광휘는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오래 살다 보면 가끔씩 즐거운 일도 생기길 마련, 계획에 방해가 되는 가장 큰 대적자가 바로 눈앞에 스스로 나타나 주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름: 정운호
종족: 인간
출신: 지구
능력: 오러 마스터, 7클래스 마법사
상태: 분노
호감도: 최악
신안(神眼)의 권능, 누구든 보기만 하면 정보가 떠오른다.
에론 대륙 최초의 신탁자로서 신이 자신에게 준 능력이다.
아마 저 정운호라는 놈은 이 능력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하다. 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권능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그 대부분을 자신이 가졌으니까.
츠리리리릿!
놈이 날린 장창이 머리를 향해 빛살처럼 날아왔다.
처음엔 그냥 맞아 줄까도 생각했지만…….
‘이건?’
장창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
자신을 오래도록 괴롭혀 왔던 성가신 도마뱀의 물건이다.
‘드래곤 본으로 만든 무기인가?’
그렇다면 그냥 맞아 주면 안 되지.
리치의 본체는 따로 있다.
라이프 베슬.
뼈밖에 남지 않은 육신이야 가루로 변할지라도 라이프 베슬만 무사하면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문제는 드래곤의 기운이 담긴 신물에 적중당하면 베슬도 손상을 입는다는 것.
“블링크!”
광휘는 주문 한 번으로 장창을 피했다.
“어?”
하지만 분명 피했다고 생각한 장창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다시 선회하면서 기어코 광휘의 뼈다귀 몸을 관통해 버렸다.
츠리리릿!
빠각!
“헉!”
파악!
광휘는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지만 세계수 던전에 숨겨 놓은 자신의 라이프 베슬이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 걸. 여전히 멀쩡했지만 금이라도 가면 골치 아프다.
‘역시 맞아 주면 안 되는 거였어.’
드래곤 본 때문만은 아니다. 놈의 힘에도 빌어먹을 신의 권능이 섞여 있었다.
‘결국 너도 신탁자였지.’
만만히 봐선 안 된다.
광휘는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일단 손에 쥔 미오 론티아라는 년을 멀리 던져 버리는 동시에 주문을 외웠다.
“억제!”
마나를 묶어 버리고,
“그래비티!”
움직임을 강제시킨 후,
“스피릿 애로우!”
부정의 마나가 담긴 수백 개의 음습한 검은색 마력 화살을 쏟아부었다.
운호는 저 해골 같은 새끼가 광휘라는 걸 알았을 때 쉽지 않을 거라 알았다.
‘분명히 관통했는데…….’
신력(神力)이 담긴 오러였다.
그런데도 멀쩡해?
불길하다. 도망가야 한다. 도망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골드리안 용병대, 메이슨 대장, 그리고 미오 론티아.
에론 대륙에서 맺어 왔던 소중한 인연들, 제 한 몸 살겠다고 저들을 버릴 순 없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수백 개의 검은색 마력 화살.
아이템은 여전히 작동했지만.
[아뮬렛에 인챈트된 실드 마법이 자동 발동됩니다.] [실드 마법이 취소되었습니다.] [마나 감응력이 하락합니다.] [마나 감응력이 하락합니다.] [마나 감응력이 하락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
아무튼 마법으로 안 되면 몸으로 버텨야지.
퍼버버벅!!
놈이 날린 새까만 화살이 실드도 없는 운호의 맨몸을 파고들었다.
“으윽!”
실드는 없지만 오러는 있다.
오러의 기운이 저절로 움직여 마력 화살의 충격을 상쇄시켰다.
‘맞을 만해.’
츠리리리리릿!
창이 운호의 손아귀로 돌아왔다.
힘껏 창을 꼬나 쥐고.
광휘의 전면으로 돌진하는 운호!
스팟!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특수 던전 ‘유전’을 가득 채웠다.
* * *
운호가 제트 드론으로 데지온 왕국으로 방향을 정할 무렵, 블랙 드래곤 퍼미셀카사는 바리안 왕국에 새로 생긴 찜질방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쭉 들이켰다.
“어허, 시원하다.”
드래곤의 폴리모프는 변신하는 대상의 유전자까지 재현한다. 인간으로 변하면 그냥 인간이 된다. 식욕은 물론 성욕까지 생기고.
유희 중인 드래곤이 폴리모프해서 아이까지 낳아 가정을 꾸린다는 이야기는 진실이다.
그래서 이 찜질방이 주는 묘한 해방감은 드래곤마저도 즐겁게 했다.
‘이번엔 어떤 방을 가 볼까?’
땀을 쭉 빼 주는 방은 다양하다. 소금방에 황토방, 수정방, 보석방도 있다.
‘드래곤이라면 역시 보석방이지.’
수건으로 양 머리까지 한 퍼미셀카사는 입에 든 얼음을 으드득 씹으며 보석방으로 입장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멈칫!
보석방 문을 열던 그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정지했다.
‘음?’
갑자기 신의 음성이 들려온 것.
‘계시라. 허어, 이젠 여력도 없으실 텐데…….’
차원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권능을 아낌없이 소모한 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를 내렸다는 것은 반드시 수습해야 할 큰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무슨 일이지?
“이런!”
계시를 완전하게 이해한 퍼미셀카사는 서둘러 찜질방을 나왔다.
목적지는 데지온 왕국. 그곳의 특수 던전.
드래곤은 던전 입장이 제한되었지만 그건 그곳에 가서 생각할 문제다. 지금은 무조건 빨리 도착해야 한다.
“제발 늦지 않았으면 좋겠군.”
진신체로 변신해 날아오른 퍼미셀카사, 그의 눈에 저 멀리 그 던전이 보인다. 신탁자가 저곳에 들어가는 걸 막아야 한다.
하지만,
“허어.”
입구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땅에서 뒹굴뒹굴 구르면서 먹이를 핥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뿐.
펄럭펄럭,
퍼미셀카사는 커다란 날개를 움직여 육중한 몸체를 땅에 내려앉혔다.
쿵!
고양이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신탁자. 그의 안위만이 중요할 뿐이다.
‘어떻게 던전에 들어가지?’
아니면 그를 구할 수 있는 누군가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자격을 갖춘 인간은 제국의 그 9서클 대마법사 말고는 없다.
제국까지 다녀와야 하나?
“냥?”
그런데 뚱뚱한 고양이가 도망가기는커녕 자신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다.
자신은 지상 최강의 생명체, 그래서 존재 자체만으로 두려움을 주는 존재.
하지만 이 작은 고양이는 폴리모프를 하지도 않은 자신의 진체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소곳이 앉아 자신을 관찰했다.
“넌 뭐냐?”
“냐앙?”
“이름표? 짬타이거라… 아! 그렇군. 넌 신탁자의 동반자였구나.”
“냥!”
“…혹시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느냐?”
“냐앙!”
그게 뭐가 힘들다는 듯 자신 있게 대답하는 짬타.
“아하!”
퍼미셀카사는 이제야 깨달았다. 왜 신이 자신을 이곳까지 보냈는지. 던전에 입장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서도 말이다. 역시 신의 안배는 성긴 곳이 없다.
적당한 대상이다. 거기에 미약하지만 신의 권능까지.
“잠시 네 몸을 빌려야겠다.”
“…냐옹?”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짬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 네 주인이 위험하다.”
“냐냥? 냐, 냐옹? 냥!”
휙!
탁!
그대로 던전 안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짬타를 가까스로 막은 드래곤.
“안 된다. 네 힘으론 어림도 없다.”
“캬악!”
“선택해라. 몸을 빌려줄지, 아니면 네 주인이 저 안에서 죽어 가는 걸 그냥 지켜만 볼지.”
“…냐앙, 냐옹, 야옹?”
“그래, 난 할 수 있다. 네가 승낙만 해 준다면.”
용언 마법은 인간의 마법처럼 이름 같은 건 짓지 않는다.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마법이 수백 가지라면 용언이 할 수 있는 마법은 수천 가지.
당연히 대상자의 몸을 빌려 드래곤의 능력을 실현하는 마법도 있다. 다만 대상자가 협조를 해야 마법이 가능하고.
“급하다. 빨리 결정을 내리거라.”
“야옹, 냐앙, 냥, 냐아앙?”
“믿어라. 나 블랙 드래곤 퍼미셀카사의 진명을 걸고 네게 약속하겠다.”
“냥!”
“그래, 잘 생각했다.”
허락이 떨어졌다.
그리고 퍼미셀카사의 성대 깊숙한 곳에서 오직 드래곤만이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의 언어, 용언이 흘러나왔다.
* * *
쑤숙! 쑤수수수숙!
사막의 모래 밑에서 흉측한 손들이 올라와 운호의 발목을 잡았다.
턱턱턱!
“제기랄.”
블링크 마법도 막힌 마당에 운호가 믿을 건 오러로 단련된 육체의 능력밖에 없었다.
놈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자신의 기동력을 봉쇄하고 있는 것.
“야이, 개새끼야!”
파바바바밧!
운호는 굴하지 않았다.
마법사와의 전투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이 바로 거리. 마법사는 거리를 벌려야 하고, 전사는 무조건 접근해야 한다. 그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승리한다.
운호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디바인 소울 스피어 플라잉 스네이크를 발동합니다.]츠리릿!
창을 날려 보내는 건 기본.
팟! 팟! 팟!
블링크로 도망가는 놈을 추적하게 내버려 둔 후.
[트윙클의 체술 신속 질주를 발동합니다.]기회를 보며 돌진했지만.
번쩍!
놈은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새 멀리 달아나며 즉시 시전 마법을 난사했다.
“다크 스피릿! 이블 파이어!”
쐐액!
쾅!
화르르륵!
퍼버버벅!
“…큭! 이, 이 개 같은!”
대체 메모라이즈된 마법이 몇 개지? 블링크만 해도 백 개 이상 사용한 것 같은데…….
이러면 이판사판이다.
한 대만 때린다. 한 대만!
그러기 위해 놈이 쏘아 대는 마법은 몸으로 다 받아 낸다.
모래 밑에서 뻗어 오는 깡마른 손아귀를 발로 짓밟으며 운호는 무조건 달렸다.
블링크?
도망가 봐! 끝까지 따라간다.
퍼버버벅! 퍼벅!
움찔, 움찔.
마법이 적중될 때마다 뒤로 밀려나는 운호, 그럼에도 밀려난 거리의 두 배만큼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누적된 대미지로 오러홀은 손상을 입었고, 점점 발은 무거웠으며 호흡은 거칠어졌다.
“허억, 허억.”
“껄껄껄, 이 무식한 놈! 넌 딱 그 정도다.”
쩔쩔매는 운호를 보며 광소를 터뜨리는 광휘.
기회다!
자고로 영화나 소설 속 악당 놈은 한 번쯤 방심하게 되어 있다. 비록 현실이라도 말이다.
운호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탁!
마침 비행을 끝내고 손에 자신의 돌아온 본 스피어 장창.
가용한 오러의 절반 정도를 두 종아리에 모으고,
팍!
[트윙클의 체술, 메뚜기의 도약을 발동합니다.]뜨끔,
그렇지 않아도 손상된 오러홀에 느껴지는 격통, 그러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오러홀이 부서지든 말든.
거의 30미터 가까운 거리를 한 번의 도약으로 삭제한 후 남은 힘 모두 짜내 창대를 잡고 그대로 내려찍었다.
스파아아앗!
“어허?”
당황한 아크 리치, 광휘.
“블링…….”
치릿!
창대는 놈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아니, 아깝게도 머리를 살짝 비껴 나가면서 놈의 오른팔 뼈다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뿌드득!
“커헉!”
후두두둑,
“이, 이 형편없는 똥강아지가!”
팔은 문제가 아니다.
광휘의 심상에 보이는 라이프 베슬, 아주 가는 실금이 생겼다. 그 사이로 자신의 생명력이 조금씩 빠져나간다.
광휘는 분노했다.
마나 억제로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놈에게… 잠시나마 방심했던 것이 큰 실수.
“그래, 내가 필요 이상으로 오래 놀아 줬구나. 이젠 그만 끝내자.”
“하악, 하악, 끝내기는 개뿔…….”
털썩.
그러나 운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오러는 이미 바닥이 났다. 마법 또한 사용할 수 없었고.
딱 한 방만 더 때리면 될 것 같은데…….
“다크니스 이블 핸드!”
놈의 뼈다귀 손에 뭉쳐진 검은색 마나.
그 손이 움직일 수 없는 운호의 머리에 얹혔다.
“씨발!”
바로 그때!
쐐애애애액!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마치 미사일처럼 잔상을 남기며 광휘를 향해 돌진하는 작은 생명체.
“…어?”
광휘는 놈에게서 떠오른 정보를 목격했다.
이름: 짬타이거
종족: 고양이, 드래곤
출신: 지구
능력: 용언 마법, 그랜드 마스터(초월)
상태: 분노
호감도: 최악
“…드래곤?”
“냥!!”
콰직!
짬타, 아니 퍼미셀카사가 휘두른 앞발이 광휘의 머리통에 작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