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27
27화 내 기반은 지구
신화 그룹 회장실.
“좀 쉬어라. 머리도 식히고, 검찰 쪽은 내가 알아서 하마. 사내가 실패 한번 했다고 의기소침해서야 쓰겠느냐? 길드 관련한 일은 그룹 미래 기획팀에서 진행할 테니 걱정 말고.”
내용만 따지면 손자를 걱정하는 할아버지다.
그러나 무미건조한 말. 표정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신형섭은 급하게 신종호에게 다가가 애걸했다.
“하, 할아버님…….”
그러나.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가 다가오는 신형섭의 앞길을 막았다.
“여기까집니다.”
“더 이상 다가오시면 곤란합니다.”
신종호의 충실한 경호원이자 비서들. 그들도 신형섭과 마찬가지로 S등급의 헌터다. 사실 그 이상일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헌터 등급을 판별하는 최고 기준은 S등급이다.
공식적인 등급이 그렇다는 것이지 S등급이라고 다 같은 실력이 아니다. S등급 이상을 식별하는 기준이 아직 없어 뭉뚱그려 다 S등급이라 칭하고 있을 뿐.
그래서 손자 신형섭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한 채 조부에게 애절하게 호소했다.
“하, 할아버님! 제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번만 믿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쯧쯧, 네게 맡기기엔 일이 너무 커져 버렸어. 그룹의 존망이 걸린 문제야. 두 번 말하지는 않겠다. 근신해라.”
근신!
그 단어를 듣자마자 신형섭은 자신의 아버지 신평도의 일이 기억났다.
아버지는 몇 가지 개인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를테면 연예인 성추문, 마약 파티, 이혼 소송 등 사실 가벼운 실수였다.
그러나 여론이 안 좋아지면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었고, 그로 인해 신화 그룹이 진행하고 있었던 국가적인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자 그때도 신종호는 아들 신평도에게 ‘근신’을 명했다.
지금 아버지는 중국 상해 신화 자원 통상 기업 지사장으로 거의 유배된 상태. 한국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다.
원래 신종호는 그런 사람이다. 잘못을 저질렀다 싶으면 자식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 그래도 된다. 대체할 자식들도 많고, 손자 손녀들도 많다.
아버진 고작 개인적 실수, 하지만 자신은?
신형섭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된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친혈육도 못 미더워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하지도 못하게 하는 사람이다.
“알겠습니다. 근신하겠습니다.”
신형섭은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시퍼런 불길이 치솟아 올랐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나가 보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그래, 걱정 말거라. 넌 장점이 많은 아이야. 난 언제나 네게 기대를 걸고 있단다.”
“감사합니다.”
신형섭이 나가자 신종호는 피곤한 듯 의자에 등을 완전히 기댔다.
‘손자가 S급 헌터라고 부러워하는 놈이 많지만 그건 정말 모르고 하는 얘기지.’
비록 손자라도 야심 많은 S등급 헌터는 곁에 두기 두렵다.
‘어쩌면 잘됐는지도 모르겠군.’
비서실 인터폰을 누르는 신종호.
“검찰 총장과 식사 약속을 잡도록 해. 으흠, 내일 저녁으로.”
* * *
늦은 밤, 대영 그룹 정휘선 회장의 자택.
정 회장을 앞에 두고도 미친 듯이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자 정지훈.
‘쯧쯧쯧, 뭐가 저리 좋다고…….’
정운호에게 받은 집중력 목걸이라 나? 차 보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보기만 해도 엄청난 효과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글 쓰는 것이 정말 좋은가 보다. 그럼 그걸로 된 거지.
“뭐라도 좀 먹고 쓰지 그러냐.”
“어, 할아버지 3천 자만 더 쓰고.”
집중력 목걸이 말고 손자가 받은 아이템이 두 개나 더 있다. 먼저 정휘선도 익히 잘 알고 있는 따뜻한 활력의 반지, 그리고 기운찬 근력의 반지.
빌린 돈 갚기 위해 줬다지만 정휘선은 손자를 신경 써 주는 운호가 고맙다. 10억에 세 개라니, 밑지는 장사인 거 다 안다.
과거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아들 내외가 비명에 간 이후 정휘선은 손자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왔다. 자신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어받았으면 했지만 당사자가 싫다는데 어쩌겠나?
-우리나라 경제는 재벌 2, 3세가 망친다. 창업 재벌들이 가진 도전 의식이나 헝그리 정신이 없다. 고로 나도 안 된다. 그룹 말아먹을 거다.
이것이 정지훈의 핑계다.
그래도 괜찮다.
경영 참여만 않는다뿐이지 자신이 가진 지분은 손자에게 그대로 상속될 테니까.
생각해 보면 그게 훨씬 더 낫다. 유약한 지훈이에겐 전쟁과도 같은 아귀다툼에서 한발 벗어나 유유자적하는 삶이 더 가치 있고 행복하겠지.
부모를 잃은 충격 때문에 한때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잘 극복한 손주다. 금쪽같은 내 새끼. 정휘선이라고 손자가 더 잘난 사람이 되길 왜 바라지 않을까?
누구는 S등급 헌터고, 또 누구는 미국 명문대 수석 졸업생이고, 또 어떤 놈은 경영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재원이고.
이쪽저쪽에서 들리는 소문을 듣다 보면 당연히 부럽다. 부럽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 그러나 정휘선은 지금 현 상태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너만은 그냥 오래오래, 마음 내키는 대로 살거라.
“참! 할아버지.”
“왜?”
“이거!”
“응? 이거… 활력 반지 아니더냐.”
“생각해 보니까 난 젊잖아.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활력이 샘솟을 나이라서 별 필요가 없더라고, 나도 할아버지 나이가 되면 모를까, 근력의 반지도 있고, 할아버지가 더 필요한 거 같아.”
“허허허, 나도 필요 없다. 이미 하나 끼고 있는데, 어디 두 개 낀다고 효과가 더 좋아진다더냐?”
“더 좋아진다고 하던데? 두 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 보다는 두 개가 쬐끔 더 낫데. 뭐, 싫으면 할 수 없고.”
“…이리 다오.”
정휘선은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활력의 반지를 받아 끼웠다.
* * *
운호는 서울 상봉동의 건물에 와 있었다. 총 5층짜리, 지금은 자신의 소유가 된 던전이 안에 숨겨진 건물. 1층과 2층은 천정을 터 기둥만 남겨 놓았다.
입구에 거대한 철문이 있고 그 옆에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문이 있다. 들어가 보면 넓은 체육관 같은 곳에 던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이 던전을 오룡 던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현재 3, 4, 5층은 한창 인테리어 공사 중. 운호의 거주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엄청 비싼 자재를 쓴단다. 이럴 필요까진 없는데 대영 그룹 비서실에서 직접 나와 모든 걸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제 여기가 내 집이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자신의 둥지는 여기, 지구다. 그리고 차원 기여도 점수를 무한하게 획득할 수 있는 곳도 바로 지구. 물론 현질이 필수지만.
그 현질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천천히, 차곡차곡 일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너무 급하게 왔다 갔다 했다. 여유가 필요하다. 에론 대륙이나 지구 양쪽에서.
에론 대륙에 지구 문명의 새싹이 발아했으니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리고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다 생각되면 다음 아이템으로.
운호는 종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종이라기보다는 책이다.
그 문제에 대해 정지훈과 이미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님, 한지(韓紙) 생산 방법만 적어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닥나무나 닥풀 뿌리도 찾아보면 있을 건데. 없으면 연금술사들 많잖아요. 명색이 화학자들인데.”
“내가 생각하는 건 종이 생산에 대한 문제가 아니야.”
“뭔데요?”
“책이지.”
“종이로 만들면 되잖아요!”
“에론 대륙에도 책은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지. 그것도 종이보다 고급스럽고 비싼 마법 양피지로 만든 책들. 그런데 읽는 사람만 읽어. 예를 들어 마법사들이나 학자들만 책을 접하지 일반 사람들은 구경하기도 힘들어.”
에론 대륙의 출판 사업은 규모가 매우 작은 편이다. 주문 생산, 수작업으로 사람이 손으로 한 자 한 자 써서 책을 만들어 낸다. 인쇄술을 시작할 기술은 있지만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수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은 관심도 없다. 그까짓 책! 읽으면 뭐하나?
종이와는 성격이 다르다. 종이가 일상 생활 용품이라면 책은 사치품이다.
“내가 단순히 종이 팔려고 책을 만들까?”
“그럼… 아! 종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구나.”
“그래. 뭔지 감이 오지?”
정지훈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 아니다. 운호의 의도가 뭔지 알았다.
하지만 안색이 어두워지는 정지훈.
“이거 위험하겠어요.”
“맞아, 기득권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어. 그러니까 신중해야지.”
운호가 의도하는 것은 책의 대중화, 계급을 초월해 누구나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지식의 대중화’로 귀결된다. 사람들이 똑똑해지는 사회. 당연히 기득권들은 싫어할 테고.
간단히 말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대량 생산된 성경책이 유럽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종교 개혁과 시민 혁명으로 전통적인 계급 체계가 무너져 버렸다.
“책의 대중화라, 이거 급진적인데요?”
“그러니까 은밀하게 접근해야지. 목적을 숨겨야 해.”
“무조건 흥미 위주로 출발해야 한다면, 야설 어때요?”
“야설? 그렇게 노골적인 거 누가 떳떳하게 사간다고!”
“그럼 제가 동화책 몇 권 각색해 볼까요? 판타지스러운 거, 예를 들면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
“판타지 세상에 판타지가 무슨 재미가 있냐? 그거 말고 막장으로 가자.”
“막장?”
“그래, 같은 막장드라마 있잖아. 그걸 배경에 맞춰 리메이크하는 거지. 예를 들어 ?”
“오!”
정지훈의 엉덩이가 들썩인다.
그거면 통한다. 누구나, 또 어느 시대에서 나 통하는 소재. 로맨스, 불륜, 복수!
“나 원래 인물 심리 묘사가 약점인데… 잘됐다. 맘껏 파쿠리, 아니 표절해서 이 기회에 연습 좀 해 봐야겠네요.”
“표절이 아니라 각색!”
“그거나 이거나, 뭐!”
정지훈의 할 일은 정해졌다. 아마도 지금쯤 열심히 쓰고 있을 것이다. 집중력 목걸이도 건네준 터라 작업 속도도 매우 빠를 테고.
자신은 그걸 에론 공용어로 번역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 * *
정휘선 회장과도 따로 사업 이야기를 나누었다.
복지 재단의 밑천이 될 광산 개발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업이다. 빨리빨리 돈을 쓸어 담을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필요하다.
정 회장이 따뜻한 활력의 반지를 쓰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이 반지는 너무 좋아서 탈이야.”
“좋으면 좋지 뭐가 문젠가요?”
“허어, 그게 아니라… 혹시 유효 기간이 정해진 반지 같은 건 없는가? 한 1년 정도면 적당하겠지. 기한이 지나면 효과가 완전하게 사라지는 거 말이야.”
“…아!”
운호는 정 회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지속적인 판매처 확보가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지. 그래도 줄을 설 거야. 반지 유효기간을 1년, 그리고 가격을 5억이라 가정해 보세. 1년간의 젊음을 단돈 5억으로 사는 거네. 10억이라고 해도 달려들 판에…….”
가능할 것도 같다.
“그것뿐인가? 이 반지를 판매한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서 권력 행사지.”
“권력을 행사한다고요?”
“원래 판매자가 을이고 구매자가 갑이지만 이 경우는 전혀 반대야. 자네가 갑이 되는 거네.”
역시 사업 해 본 사람의 조언을 들으니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아무나 살 수 없는 물건이네요.”
“그렇지. 돈이 있다 해도 손에 넣지 못하지. 판매자가 허락해야 얻을 수 있으니.”
“그리고 만약 반지를 원한다면 돈 이상의 그 무엇을 지불해야 하고요.”
“축하하네. 이거 참! 누군 평생을 노력해도 가지지 못한 힘을 자넨 고작 반지 하나로 가지게 생겼어.”
정 회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운호도 마찬가지.
“회장님!”
“음?”
“우리 같이 그 힘을 휘둘러 보죠.”
“우리?”
“네, 아무래도 회장님이 직접 세일즈에 뛰어들어야 할 것 같아서. 무게감이 다르잖아요!”
“허허허! 나 보고 영업하라고? 나야 감사하지. 슈퍼 갑이 되는 건데 누가 마다하겠나!”
이제 에론 대륙에 다녀오기만 하면 된다.
그전에 운호가 만든 복지 재단이 첫 사업을 시작하고 그 기여도가 점수로 환산되어야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이윽고!
무지막지한 현질의 기반이 될 재단이 만들어졌다.
‘운호 재단’
돈을 기부하는 주체가 확실하게 명시되어야 한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차원 기여도 점수를 온전히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