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그래도 하나 다행인 점은…….’
나와 가까운 인물이 이미 의심을 사고 있었다는 점.
‘의심을 피할 길이 있어서 다행이지.’
형이 아니었다면 나에 대해서만 의심을 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니까. 적어도 의심이 분산되어 있었다.
한숨을 내쉬고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류천화 씨를 바라봤다. 그러곤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이 알려 줬어요.”
“한지운 헌터가?”
“네. 형이라고 이곳에 대해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공간이 반복되는 곳이 있는데 이동된 곳에서 오른쪽으로 몇 발자국, 왼쪽으로 몇 발자국 가면 빈 타일이 보일 거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네. 제가 알아낸 척해서 죄송해요.”
“흠.”
류천화 씨가 전혀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영 안 믿기면 나중에 형 만나서 물어보시든가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거짓말이 아니라면 말이야.”
묶였던 손목이 풀려났다. 해방감이 느껴짐과 동시에 곧장 문양을 개방했다. 풀린 손목에 안도하며 류천화 씨를 노려보자, 류천화 씨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함께할 텐데, 거짓말을 할 리가 없겠지.”
저, 저, 표정 봐라, 저거. 저거 반드시 물어본다.
‘전혀 신용 안 하는 표정이잖아. 근데 왜……?’
의심이 가는 건 끝까지 캐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인데. 이렇게 쉽게 놓는다고?
그런 의심도 잠시, 류천화 씨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나저나, 한지언 헌터는 한지운 헌터에 관한 걸 꽤나 잘 알고 있는 모양이지?”
“…….”
살을 내놓고 뼈를 취한 격이군.
‘나에 관한 건 일단락됐으니 다행이다만, 이젠 형이 문제인데.’
그간 지켜본바, 형은 대놓고 행동하면서도 사실은 드러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이렇게 궁금해하는 거겠지. 지화연 씨도 그랬었고.
‘유아한 씨야 그런가 보다 하고 말겠다만, 승현 헌터도 내심 궁금해했을 터.’
결과적으로 형은, 헌터들의 믿음을 삼과 동시에 의심도 함께 사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가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인데.’
내게 과거의 기억이 있었든 없었든, 형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나에게 자신이 소설에 빙의했음을 알렸다.
‘만약 과거의 기억이 없었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겁에 질려 다 불었을까. 아니면 침착하게 상황을 모면했을까.
“…….”
“한지언 헌터, 침묵을 하는 것 자체로 무언가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아니, 기억이 있건 없건 상관없었다. 둘 다 나니까. 나는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맞아요.”
“…그 말의 뜻을 물어봐도 되나?”
“류천화 씨가 물은 대로, 전 형에 대해 꽤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왜요? 형젠데 잘 아는 게 당연하지. 아니면 제가 형도 아닌데, 형의 비밀을 류천화 씨에게 말해 드려야 하나요?”
“딱히 런 걸 말하라고 한 적은 없는데.”
“말은 안 해도 저 겁주셨잖아요.”
“겁먹었나?”
“먹었죠, 그럼.”
“그렇다면 미안하군.”
“…….”
미안하면 표정부터 바꾸든가. 아니면…….
“미안하시면 보상을 해 주셔야죠.”
“보상? 흠, 그래. 뭘 원하지? 돈?”
“돈은 무슨……. S급 마석으로 주세요. 누구랑 다르게 S급 던전을 돈 적이 적어서 마석이 없거든요.”
류천화 씨는 게이트가 생긴 직후 헌터가 되었으며, 한국 최초로 길드를 세운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자기 회사를 길드로 전환한 거였나.’
어쨌건, 다시 말해 S급 마석을 넘치도록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전에 인벤토리를 털었을 때는……. 그건 두 번 다시 못 할 짓이니 그림의 떡이긴 하다만.
“빨리 줘요. 지금도 있잖아요.”
“지금 주라는 거였나.”
“그럼 언제 주실지 모르는 마석을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해요? 지금 류천화 씨 인벤토리에도 차고 넘칠 텐데 굳이?”
“그렇게 많이 들고 다니진 않는데.”
류천화 씨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손을 내밀었다. 펼쳐진 손바닥을 바라보자 그곳엔 마석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안쪽에 눈 결정이 새겨진 깨진 얼음 조각 같은 마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비 날개 모양의 붉은 마석이었다.
“…뭐예요? 빨간 휴지, 파란 휴지?”
“마석이다만.”
“그건 알죠. 설마 두 개 다 주시는 건가요?”
류천화 씨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바로 마석을 가져오려던 나는, 이 인간이 원래 이런 인간이었나 싶어 일단 손을 멈추었다.
“…혹시 받으면 뭐라도 더 뱉어 내야 하거나 그런 건 아니죠?”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인벤토리에 있는 건 대부분 이미 사용한 거라 품질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서 말이야. 별로 사용하지 않은 것들이긴 하다만.”
“그래도 S급인데요?”
“S급 마석이 만능은 아니니까.”
“그건 그렇죠.”
S급 마석이 좋은 건 분명했다. 다른 마석과 달리 깨지 않아도 장기적으로 기력을 취할 수 있고, 흡수할 수 있는 기력의 질이 다르니까.
‘다만 문제점이 있지.’
S급 마석에 내재하여 있는 기력의 양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 그것을 정확히 알려면 뛰어난 대장장이, 혹은 감정 능력을 가진 이에게 확인을 받아야 했다. 또한 마석의 기력을 다 사용하더라도 마석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가 되기에 간혹 다 쓴지도 모른 채 사용하려다 기력을 얻지 못해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건 그거고.’
별로 사용 안 했다면 거의 새거나 마찬가지지.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나는 주저하던 손을 움직여 마석 두 개를 쥐고는 곧장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러고는 열린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용건도 끝났으니 이만 가죠.”
“한지언 헌터, 궁금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또 뭔데요.”
“왜 길드에 안 들어가는 거지? 길드에 들어가면 S급 던전에 들어갈 기회가 많을 텐데. 복지도 있을 테고.”
“뭐예요? 길드 홍보하시는 거예요?”
“별로.”
“글쎄요. 길드에 들어가는 건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혼자가 편해서. 여러 가지 기회비용을 따지자면 길드에 소속되는 게 더 이득일지는 몰라도,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에 중압감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요.”
“중압감?”
“그, 왜, 책임감이요.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면 어느 정도의 일을 해야 하고, 실적을 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길드에 안 들어간다기에는, 이미 한국의 S급 헌터라는 소속이 있지 않나?”
“그거랑은 다르죠. 봐요, 요리를 하기 위해 냄비를 꺼냈다가 하기 싫어지면 냄비만 다시 집어넣으면 되지만, 냄비에 요리 재료를 넣은 거는 하기 싫다고 돌이킬 수 없잖아요.”
“만약 어느 정도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실적도 안 내도 된다면?”
“그거 봐요. 길드 홍보 맞네.”
“아니라고 부정은 못 하지.”
“방금 해 놓고. 그래서, 갑자기 권유하는 이유가 뭔데요? 물어나 봅시다.”
“한지언 헌터랑 나랑 성격이 꽤 잘 맞을 것 같아서.”
“…….”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을까.
‘역시 이변은 형한테만 일어난 거구나.’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동시에 아쉬움이 조금 드는 건 너무 욕심일까.
그래. 욕심이다. 이걸로 만족해야 한다. 바뀌었다가 어떻게 됐는지 잘 알잖아.
“아무리 입이 있다고 해도 그런 막말은 너무하네요.”
“막말이라니.”
“빨리 가기나 합시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요.”
“그것도 그렇군.”
우리는 대화를 끝내고 입구 너머로 향했다.
입구 너머에 도달함과 동시에 보인 건, 이미 모인 사람들이었다. 우릴 보며 지화연 씨가 말했다.
“꼴등이에요.”
“아하하…….”
형이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별일 없었어?”
“한지운 헌터. 날 너무 망나니로 보는군.”
망나니… 맞지 않나.
류천화 씨와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면 형이 무슨 반응을 할까 궁금했지만, 실제로 말하지는 않았다. 무슨 개판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이제야 모였네.
탑주가 하늘에서 나타나 살랑 내려왔다. 그러나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오진 않고, 어느 정도 높이에서 멈춰서 말을 이었다.
―진짜 마지막 시련에 도달한 걸 축하해.
“이래 놓고 진짜 진짜 마지막 시련, 이러진 않겠죠?”
―그런 건 아니야.
윤시아가 조용히 말했음에도 제 말을 들은 탑주의 모습에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탑주에게 물었다.
“마지막 시련이 뭔데?”
―그건, 보면 알게 될 거야.
“보다니? 설명도 없이 무슨…….”
화악! 바람이 솟구쳤다. 눈을 못 뜨게 하는 바람에 손을 들어 눈앞을 가리기도 잠시, 바람이 멈추어 곧장 주변을 둘러보니.
“또…….”
―이번엔 흩어진 게 아니야.
“그럼?”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질문을 던지며 고개를 돌렸다.
―이곳은 마지막 시련, 결의의 층이야.
“결의?”
―직접 봐.
훅. 바닥의 모습이 단숨에 변했다.
“이건…….”
―너희 세상이야.
말 그대로, 지구였다. 평범하게 돌아가는 도시 말이다.
“그래서, 이게 왜? 뭘 원하는 건데.”
―그건 직접 찾아.
“허?”
―그게 이번 층의 시련…이지만, 너의 경우엔 좀 다르게 해야겠네.
“다르게 하다니? 왜 나만?”
―넌 다르니까.
휙. 바닥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환하게 빛나던 도시는 사라지고, 검은 바닥이 밟혔다.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데, 이 층을 클리어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아하.”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마지막 시련이면서 행복에 관련한 것이라면, 탑주가 원했던 것은 아마.
“꿈을 꿔야 공격을 할 수 있으니, 행복한 꿈이 없는 사람은 시련을 통과 못 하게 한 건가 보군? 그야 꿈이 없어서 네가 공격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야.”
―그래. 결국, 마지막 시련 다음엔 내가 있으니까.
탑주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인정했다. 어쩌면 속여 봤자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기에 그런 걸 수도 있고.
―꿈이 없으면 행복 또한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이어져. 그리고 그 끝은 죽음이지. 꿈도 없는 죽음. 난 그런 건 원치 않아. 나는 모든 꿈의 집합체이기도 하니, 아마 생명 중에선 가장 꿈이 많은 존재일 테지.
“왜 꼭 죽음 뒤에는 꿈이 없다고 생각해?”
―그거야 당연―
“봐 봐. 네 앞에 죽음을 겪고 꿈을 꾼 사람이 있잖아?”
―…….
“물론 지금은 다르겠지만, 옛날엔 나도 꿈이 있었어. 너와 달리 반대로 꿈이 없는 형태가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너만큼 수없이 많은 꿈을 꾸었던 존재였지.”
정확히는 기도를 더 많이 했을 테지만, 기도가 곧 원하는 것을 비는 거고, 원하는 건 곧 가질 수 없는 꿈과 같으니. 그게 그거지, 뭐.
“만약 꿈을 꾸고 행복을 바라는 것이 이번 층의 클리어 조건이라면, 난 이미 통과가 아닌가? 그게 꼭 현재의 일이어야 하는지 과거에 있었던 일이어도 되는지는 말 안 했잖아?”
―…좋아.
화악! 다시 한번 거센 바람이 불고.
“여러분?”
지화연 씨의 목소리가 들려 곧장 고개를 돌리자, 지화연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어느샌가 땅에 내려와 있던 탑주가 말했다.
―이번 층은 클리어야.
짝. 탑주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텅 빈 곳에 새하얀 문 하나가 생겨났다.
―꿈속 깊이 들어올 자격을 취득하였으니, 어서 오렴. 기다리고 있을게.
탑주가 웃었다. 그 웃음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옆에서 데이비드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이제 진짜 집에 가겠다!”
그러며 데이비드가 문고리를 잡으려던 찰나, 유아한 씨가 그를 말렸다.
“뭐라고 상의 좀 하고 열어! 막무가내로 가서 뭘 어쩌게!”
“응? 그야 싸우겠지.”
“일단 가만히 있어.”
“그래. 근데…….”
“너 무슨……!”
유아한 씨가 멈추라 했지만 데이비드의 손은 이미 문고리에 있었다. 곧이어 데이비드가 문고리를 돌리자.
“안 열려, 이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뭐? 비켜 봐.”
데이비드의 말에 이번에는 유아한 씨가 문고리를 잡고 돌렸으나, 역시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돌려도 문고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나.’
문을 붙잡고 부술 기세로 덜컹거리는 형의 옆에 선 내가 형의 손을 밀친 뒤 문고리를 잡고 그대로 돌리자.
철컥. 그렇게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가볍게 울려 퍼졌다.
“무슨…….”
지화연 씨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하다 입을 닫았다. 내가 문을 열 수 있을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듯, 다들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 이미 예상한 상태였다.
‘무슨 꿍꿍이지.’
그도 그럴 것이, 탑주가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