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이해】
“형, 이번에 탑 클리어 시간이 저번보다 빨랐대요. 이번에는 한 달밖에 안 걸려서 다행인 것 같아요. 근데 왜 빨랐을까요? 시간이 다르게 흐른 걸까요?”
“아마 그럴걸.”
“형, 그거 알아요? 이번 탑에선 사망자가 아홉 명밖에 안 된대요.”
“…그러냐.”
호텔 안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서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어느새 다가온 강희민이 휴대폰과 나를 번갈아 보며 지금까지 나온 정보들을 읽어 주었다.
…말해 달라 한 적은 없지만.
“심지어 그 사망자들도 몬스터한테 죽은 건 아닌 것 같대요.”
“…윤시아 헌터랑 마허윤은 어디에 두고 나한테 왔냐.”
“허윤이 형은 자러 갔고, 윤시아 씨는 진…메이 헌터랑 대화 나누러 갔어요.”
“근데 윤시아 헌터 안 따라가고 왜 나한테 와 있냐?”
“탑에선 통역이 자동으로 됐지만 여기선 아니잖아요. 전 중국어 할 줄 몰라요…….”
“…계속 떠들어.”
강희민이 화색을 띠며 다시 온갖 뉴스에 대해 떠들어 댔다.
‘…진메이.’
이번 탑으로 인해 유명해진 건 나도, 다른 헌터도 아닌 진메이였다. 거대한 용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붙잡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게 그 이유였다. 그리고 하늘이 도왔는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메이의 가족이 진메이의 앞에 나타났다.
참고로 우리가 떨어진 위치는 이탈리아였다. 간단히 말해서 진메이의 가족은 인질로 잡힌 적이 없었으며, 중국 헌터가 거짓말로 진메이를 현혹한 거였다.
‘운도 좋지.’
진메이는 복수 국적을 지녔기에, 아마 중국으로 돌아갈 일은 없어 보였다.
“그것 말고도 이번 탑에서 나온 아이템 경맷값이 10억을 넘었대요.”
“…무슨 아이템?”
“어, 이름이… 꿈의 파편? 이라네요. 이거 얻은 사람이 많나 봐요.”
“꿈의 파편이라고?”
그거라면 류천화 씨도 갖고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보니 회수해 가거나 그런 조짐이 없었지.’
강희민이 놀란 내 모습에 의아한 듯 물었다.
“왜요? 아, 설마, 형도 가지고 있어요?”
“아니, 나 말고…….”
어느 순간부터 손에 안 들고 있길래 회수된 줄 알았더니, 설마 이 인간…….
「검은 취향이 아니거늘.」
그냥 검이 안 맞아서 사용 안 한 거…….
“…….”
그것만 사용했어도 몇몇 층은 쉽게 클리어했을 텐데.
‘말을 말자.’
아무리 그 인간이라고 해도 그 좋은 물건을 아예 안 쓰진 않았을 것이었다. 내가 안 본 새에 사용했겠지…….
…했겠지?
“형?”
“아, 아무것도 아니야.”
“아뇨… 그게 아니라…….”
“한지언 씨.”
부르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지화연 씨가 생글 웃으며 서 있었다.
“탑 클리어에 관해서 얘기해야 할 게 있어서요.”
“아, 그런가요?”
이미 처리된 보스이고, 앞으로 나올 확률도 낮고. 보스에 관한 정보는 필요 없어 안 묻는 건 줄 알았는데. 단순히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물어본 거였나?
‘아니면 협회에서 요청했나?’
어찌 됐건 필요하다 하니 얘기는 하겠다만.
그때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강희민을 보며 지화연 씨가 말했다.
“강희민 헌터는 잠시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네? 희민이는 왜요?”
“한지언 씨와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요.”
“…….”
왠지 모를 불안함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강희민을 카페테리아에 놔둔 채 나는 지화연 씨와 함께 어느 응접실로 들어왔다. 안쪽을 둘러보자 그곳에는 류천화 씨가 있었다.
단순히 보고만 하는 건데 류천화 씨가 필요한가? 아니, 다 같이 듣는 건가.
나는 휑한 응접실을 보며 물었다.
“유아한 씨랑 형은요?”
“유아한 씨는 이탈리아 측의 협조 요청을 승낙하셔서 잠시 파견 나가셨고요. 한지운 씨는… 글쎄요. 잘 있겠죠?”
“그렇겠죠……?”
그러며 지화연 씨가 어느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듯 웃어 보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대로 소파에 앉자, 지화연 씨가 류천화 씨의 옆에 앉았다. 묘한 의아함이 들었으나 나는 이내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보스를 클리어한 경위에 대해 말하면 되나요?”
“네. 기억나는 대로 처음부터 얘기하시면 돼요.”
그러며 지화연 씨가 태블릿 컴퓨터를 펜으로 툭툭 두드렸다.
“처음부터라면……. 보스에게 향하는 문이 열리고,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랬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아이템을 받고……. 아, 그 아이템들은 나중에 다 돌려줬습니다.”
“빠르네요.”
“그 후에 문으로 들어가서―”
“긴장 하나 하지 않고 들어가셨죠.”
“…….”
지화연 씨의 말 직후, 눈이 마주쳤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지화연 씨가 웃었다만.
‘…왜 불렀는지 알겠네.’
류천화 씨가 있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의심할 줄은…….
‘아니, 어쩌면 한참 전부터 의심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문양 발현을 한 직후에 만났을 당시에는 감정이 꽤 다채로웠던 것 같은데, 요즘엔 성숙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회사에서 자주 볼 것 같은 웃음이에요.」
그때부터?
‘아니, 그 전에도…….’
…아니, 지금은 언제부터 의심했는지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미 의심이 시작됐다면 그것의 시발점을 찾을 게 아니라 저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야지, 의심으로 겹겹이 싸인 껍데기를 한 꺼풀이라도 벗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원하는 건 아마, 무엇을 알고 있느냐겠지. 류천화 씨도 미로에서 그 점을 의심했으니까.’
그리고 류천화 씨가 여기 있다는 건, 그때 의심이 형에게 넘어간 게 아니라 일단 넘어갔던 거였나.
‘쉽게 말해 줄 것 같나.’
나에 대해 털어놓는다? 바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었다. 생을 반복한다니, 웃기지도 않지.
그렇다고 형에 대해 털어놓는다? 기껏 잘 살고 있는 인간들한테 세상은 거짓이에요! 라고 말하는 꼴이지.
털어놓는다고 해도, 당장은 아니었다. 당장은. 아니, 어쩌면 이번 생엔 사실을 털어놓을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나는 지화연 씨의 웃음에 덩달아 아무런 의미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뒤로 문안으로 들어가서, 탑의 주인과 만나 싸웠습니다. 결과는, 네, 잘 나왔네요.”
“문안에서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특별한 일이요? 음……. 아. 왜 다른 사람들은 못 들어왔냐 물으니 자격이 안 돼서 저만 들어올 수 있었다고 했어요.”
“그 자격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어……. 아뇨. 그거까진 안 물어봤네요.”
“…….”
류천화 씨는 가만히 소파 등받이에 팔을 댄 채 턱을 괴고 있었다. 무언갈 골똘히 생각 중인 듯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침묵에 어색한 듯 손을 매만지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툭. 태블릿에 무언가를 쓰는 듯하던 지화연 씨가 펜으로 태블릿을 한 번 가볍게 쳤다. 그러곤 아까와 달리 내려앉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한지언 씨, 그거 아시나요?”
“뭐를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가면을 쓴 사람을 꽤 자주 봐요.”
“그렇…죠? 아무래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앞에서는 자신을 숨기게 되니까요.”
“그런데 한지언 씨는 가면을 쓴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네요.”
“저는 언제나 진실해요. 가면이란 게 무얼 말씀하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걱정 마요. 더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러며 지화연 씨는 아까부터 무얼 쓰는 듯 보였던 태블릿을 돌려 내게 보여 주었다. 태블릿에는… 웃는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혹시 보고서는 핑계였나요?”
“정답이에요.”
“…….”
그럼 그렇지.
이미 처리한 보스에 대한 건 협회에도 그리 자세히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생김새가 어찌 생겼는지, 능력은 무엇이었는지, 특이점이 있었는지 정도만 작성해서 보고하면 됐기에 내가 보스를 만나러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불필요했다. 다만 탑주라는 그 특이점 때문에 더 자세히 알아보려는 걸 수도 있어서 큰 의심은 안 했거늘.
나는 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뭐였는데요.”
“물어보면 말해 주실 건가요?”
“보나 마나 저기 옆에 앉아 계신 류천화 씨와 같은 얘기겠죠.”
아까부터 말이 없던 류천화 씨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는데요. 전 진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보기에도 그래 보여요.”
“그럼 왜 부르신 거예요.”
“사람 인생 뭐가 어찌 될지 모르잖아요?”
“…더 이상 용건이 없으면 나가 보겠습니다.”
지화연 씨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방석 같던 소파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류천화 씨가 물었다.
“그때 했던 말에 거짓이 있었나?”
“그럴 리가요. 전 늘 진실했어요.”
…문양이 생겨나고 몬스터가 생겨나는 걸 말해 준 적이 있으니 형이 말해 줬다는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니지.
“그럼 가 보겠습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등 뒤에 달라붙는 시선을 떼어 내고, 나는 겨우 문밖으로 나섰다. 내가 문을 나서자마자 한 일은…….
“어, 그, 지언?”
마침 복도에 데이비드가 있었다. 나는 인사하는 데이비드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혹시 저희 형 못 보셨어요?”
“형? 누구? 근데 우리 말 되게 잘하네.”
“붉은 허리끈에, 검은 검을 들고 있던 남자요.”
“아, 그 사람? 아까 공원에 있던 거 봤어.”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러곤 곧장 데이비드를 지나쳐 복도를 걷자, 또다시 데이비드가 말을 걸어왔다.
“있지, 표정이 너무 어두운 거 아냐?”
“…표정이 어둡다뇨?”
마침 옆에 있던 거울에 시선이 닿았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멀쩡했다. 평범한 표정인데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기울이자 데이비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은 무슨 표정을 짓건 그게 다 표정에 드러나거든. 그러니까 웃어! 다음에 볼 땐 밝은 표정 짓기!”
“…예에.”
어쩌면 데이비드 본인의 모습이 밝아서 대비되어 그런 건 아닐까 싶었다.
‘공원이라 했지.’
복도를 걷다 보니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창문 너머, 공원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보였다. 곧장 창문을 통해 나가 공원으로 향하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는 뒷모습을 따라 벤치에 앉았다. 나의 등장에 형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언제부터…….”
“방금 왔어. 말할 게 있어서.”
“말할 거라니?”
내 말에 형의 얼굴에 옅은 화색이 비쳤다. 아니, 형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고.
“만약 사람들이 나에 관해 물으면, 형이 나한테 정보를 알려 줬다고 말해 줄 수 있어?”
“…….”
바람이 옅게 불었다. 여름이 다가오기 직전의 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날씨가 화창했다. 그러나 오늘의 운세는 날씨만큼 화창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형이 물었다.
“역시, 무언갈 알고 있구나.”
선선한 바람. 분명히 기분이 좋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형이 말을 이었다.
“사실 전부터 의아했어. 지화연 씨한테서 들었어. 문양을 발현한 지 하루도 안 돼서 불법 던전을 돌았다며. 그리고 그곳에서 네가 구해 준 박우윤이라는 사람이, B급에서 A급이 됐고.”
“…….”
“그것뿐만이 아니야. 우연히 갔던 바닷가에서는 납치된 사람들을 구했고, 그중에 S급 대장장이가 있었지.”
우연이라고 말해 봤자 믿지 않을 표정이었다. 저번과 같은, 확신에 찬 표정.
“그 밖에도… 내가 모르는 네가 많았어.”
“…….”
“그래서, 더 안 물은 거야. 내가 무언가를 알고 있듯, 너도 그러해 보였으니까.”
“…….”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널 이해해, 지언아.”
쿵. 그 말에 심장이 내려앉은 듯했다.
“그러니까…….”
아니, 내려앉았다기보단… 차가워진 것 같기도 했다.
“…이해한다고?”
“응?”
누가, 누굴, 이해한다는 거지?
“헛소리하지 마.”
아무런 대가 없이 소설이라는 기억을 가지고, 아무런 대가 없이 강한 몸을 가져 놓고. 아무런 대가 없이, 한지운이라는 사람의 인생을 살아 놓고.
누가, 누굴, 이해한다는 건데.
“…지언아?”
“형은 절대, 절대로 이해 못 해. 이게 얼마나…….”
이게 얼마나 힘든지. 지옥 같은지.
“…지언아, 무슨…….”
“이해 못 해. 평생 이해 못 할 거야.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인간이 뭘 이해해. 형은 평생 이해 못 할 거야.”
모든 생에 엮여 왔던 사람들에게 매번 의심을 받고, 죽는 걸 보고, 이별을 겪고, 고통을 겪고, 두려움을 겪고. 이 모든 걸, 형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이해 안 하는 게 좋다. 이딴 고통을 받는 건, 나 한 명으로 족했다.
“…형.”
내 부름에 형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 인간의 얼굴만 보면, 이상하게도 표정 관리가 잘 안됐다. 수없이 많은 표정을 숨길 수 있으면서, 왜 딱 한 사람의 앞에서만 숨기지 못할까.
깊은 곳에 숨겨 놨던 말이 돌연 밖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형을 증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