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는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살피면 살필수록, 이곳이 내가 아는 그곳이라는 것만이 확실해졌다.
류천화 씨가 물었다.
“한지언 헌터. 뭐 아는 거 있나?”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기둥이 한지언 헌터한테 반응해서 여기로 이동됐으니까.”
“저도 기둥이 왜 저한테 반응한 건지 전혀 모르겠거든요?”
“흠.”
“일단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동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승현 헌터의 말에 사람들이 움직이려던 차, 무언가가 달려왔다.
콰앙! 형의 검이 달려온 것에 박히며 그것의 움직임이 멈췄다.
“기계?”
지화연 씨의 말에 나는 숨을 삼켰다.
기계의 몸으로 다양한 형태를 띠는 몬스터. 지독하게 익숙한 형태였다. 수가 많아 끝까지 날 귀찮게 한 몬스터였으니까.
유아한 씨가 짧게 중얼거렸다.
“많네요.”
“그래도 그리 강하지는 않은 모양인데.”
우리를 발견하고 달려드는 몬스터를 처리하고 나자 저 앞에 몬스터 무리가 보였다. 우리는 그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몬스터 무리는 다가온 우리를 일절 신경 쓰지 않은 채 무언가를 입으로 짓이겨 뜯고 삼키기 바빴다.
‘설마.’
문득 든 생각에 손끝이 저렸다. 싸움 끝에 패해, 시체처럼 늘어져 몬스터에게 뜯어 먹히던 형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냐. 형은 여기 있으니까.’
형은… 그래. 여기에 멀쩡히 서 있다.
쾅! 사람들이 몬스터를 공격하자 몬스터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개중 몇 개체는 제 동족을 버리고 도망쳤다.
몬스터로 인해 꽉 차 있던 도로가 한산해지며, 그 가운데 그것들이 열중하던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동물 사체…….’
다행히, 내가 생각하던 것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런 풍경이 펼쳐진 거지.’
사람들을 착란시키려고?
아니, 이 풍경을 아는 건 나뿐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나를 겨냥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이로써 나를 겨냥하려면, 내가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이전 회차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
그 광경을 보며 멍하니 서 있자, 옆에 서 있던 유주한이 나를 불렀다.
“형!”
“어? 왜?”
“왜긴요. 이동해야 하는데 멍때리시니까 그렇죠. 몸이 안 좋아요?”
“아냐, 그런 거. 그냥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뭔데요?”
“별거 아냐.”
이건 한낱 보여 주기에 불과하다. 그래. 그냥 보여 주기식 도발이다. 반응해 봤자 좋을 거 없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형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계 몬스터가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 모습에 질린 지화연 씨가 말했다.
“여기서 뭘 어쩌라는 걸까요. 몬스터 죽이기?”
“글쎄. 던전의 생각을 읽을 순 없으니. 일단 죽이고 봐야지.”
그러며 하나둘 무기를 들어 공격하려던 찰나.
촤아악!
몬스터가 갈라져 나갔다. 앞이 아니라 뒤에서. 우리가 아닌 다른 것에 의해.
갑작스레 일어난 상황에 모두가 잠시 숨을 죽였다. 후드득 몬스터 사체가 바닥에 떨어지며 그 너머에 있던 무언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후드 망토를 걸치고, 하얀 가면을 쓴, 사람의 형태와 비슷한 몬스터.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모습이었으나, 문제는 몬스터의 손에 쥐어져 있는 거였다.
‘검은 검.’
지독하리 만큼 검은 검. 저건 분명…….
“약간 한지운 헌터 닮지 않았어요?”
유아한 씨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공감했다. 나 역시 공감했다. 반면 형은 아닌지 떨떠름하게 물었다.
“저를요?”
“봐요. 검은색 검에, 하얀 가면. 저게 한지운 헌터가 아니라면 뭐예요?”
“몬스터겠죠.”
그러며 형이 검을 들었다. 아무런 감흥 없이 처리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형의 검이 겨누어지기도 전, 형을 닮은 몬스터 뒤로 또 다른 것이 다가왔다. 불타는 도시 속,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모습을 한 몬스터가 한 손에 레이피어를 쥐고 있었다.
유아한 씨가 몬스터를 보며 말했다.
“저건 지화연 씨네요.”
“그러게요? 저네요.”
“쓸데없이 화려하군.”
그 뒤로 검은 개를 소환수처럼 거느리는 것이, 건틀릿을 낀 것이, 여러 동물이 섞인 키메라가, 어두운 천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것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선두에 서 있던 형을 닮은 것이 잠시 우리를 쳐다보다 이내 고갯짓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그 모습에 지화연 씨가 말했다.
“어쩔까요?”
“위험하니 섣불리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승현 헌터의 말에 유아한 씨가 물었다.
“지금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따라가는 게 낫지 않아요?”
형이 유아한 씨에 이어 말을 보탰다.
“여기 있어 봐야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있는 거라곤 몬스터뿐이니, 지금 새로이 나타난 몬스터를 따라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요.”
“저도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해요. 저 몬스터들, 저희의 모습을 반영한 것 같으니까요.”
“나도 동의하지.”
“그럼… 유주한 헌터와 한지언 헌터는 어떻습니까.”
제각기 의견을 표명한 뒤 승현 헌터가 묻는 말에 유주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도 따라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한지언 헌터는요?”
솔직히 말하면 난 그냥 죽이자 말하고 싶었다. 저것들을 따라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통 모르겠으니까. 만약 저것들을 따라갔다가 기억하기도 싫은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 그것보다 기분 더러운 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따라가는 걸로 거의 확정이 된 상황. 반대하려고 해도 이유를 말할 수도 없었다.
“저도 따라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그렇습니까.”
내 말을 끝으로, 사람들을 닮은 몬스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따라가는 게 좋겠다는 우리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는 몬스터들을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던 와중, 유아한 씨가 감탄사를 내뱉었다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한지언 씨를 닮은 몬스터는 없네요?”
“…그러게요.”
일부러 말 안 하고 있었는데.
유아한 씨의 말 그대로 날 닮은 몬스터는 없었다.
‘이동하는 문이 나한테 반응해, 몬스터도 나만 없어. 오해하기 딱 좋네.’
분란이 목적이라기엔 오직 나만 겨냥한 상황이었다. 나를 목표로, 나에게 무언가 원하는 게 있기라도 한 듯.
유주한이 나를 흘끔 쳐다봤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근데, 이 탑은 어떤 이유로 한국에 생긴 걸까요?”
“이유 말입니까?”
“네!”
승현 헌터가 고민하는 사이 유아한 씨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이유가 어딨어. 그냥 생긴 거겠지.”
“말을 해도……. 지금까지 생겼던 탑들은 다 뭔가 그곳에 생긴 이유가 하나라도 있었잖아. 첫 번째 탑은 혼란을 가중하기 위해 강국에 나타났고, 두 번째 탑은 꿈처럼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부유했고, 세 번째는 바다. 모두 어떤 이유가 있었잖아.”
“그거 전부 인터넷에 떠도는 단순 추측이잖아.”
“누나는 말 좀 이쁘게 하면 어디가 덧나?”
“그냥 진실을 알려 주는 건데?”
“유주한 헌터의 말도 일리는 있지.”
류천화 씨가 끼어들어 말을 이었다.
“전부 추측성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각기 어떤 목적이 있었어. 바다는 말 그대로 바다였으니 완벽한 이유가 되었고. 그렇다면 검은 탑에도 분명 목적이 있을 터.”
“세상을 먹으려는 게 검은 탑의 주된 목적이니, 그걸 중심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 하면 특별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데.”
꽤 일리 있는 말들이었다. 우리끼리 이러쿵저러쿵 따져 봤자 진실은 이곳의 주인만 알기에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지화연 씨가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
쿠웅!
땅이 거세게 진동했다. 나는 진동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곧장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거세지는 불길뿐이었다. 류천화 씨가 말했다.
“몬스터들도 혼란스러워하는 거 같은데. 뭐 같이 협력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거 재밌겠네요.”
“뭐가 재밌다는 거지, 지화연 헌터.”
“저것들이 얼마나 저희를 닮았는지 궁금하잖아요. 승현 씨나 유주한 헌터는 특히 개방 모습이 비슷한데, 능력도 닮았을 것 같지 않아요?.”
“제 치유 능력도 닮았을까요? 그러면 포션 제조 좀 대량으로 시키고 싶은데.”
콰앙!
유아한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물살이 건물 사이사이를 비집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물을 피하려 낮은 건물에서 높은 건물로 차근차근 오르는 사이 어느새 도로 위가 물로 가득 메워졌다. 그 가운데 물이 솟아오르며 점차 무언가의 형태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저건… 세 번째 탑의 주인과 매우 흡사한 모습입니다.”
문어의 얼굴에 푸르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그리고 검은 해적 의상. 승현 헌터가 ‘흡사하다’라고 말한 것이 무색하게, 저건 세 번째 탑의 탑주와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얼굴만 좀 다르지.
물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 우리와 닮은 몬스터들을 향해 무어라 말하는 듯싶다가 공격을 가했다. 몬스터들이 피하니, 그 뒤에서 거대하고 검은 손이 튀어나와 몬스터들을 내려쳤다. 몇몇 몬스터들이 재빨리 피하고, 나머지는 피하긴 했지만 부상을 입은 듯했다.
“…….”
모두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승현 헌터가 로프 다트를 쥐며 말했다.
“도와야 할 듯합니다.”
유아한 씨가 답했다.
“지켜보는 게 낫지 않아요? 대충 보니까 탑의 주인들을 본떠 만든 것 같은데.”
“우리를 닮은 저 몬스터들을 지키는 게 이곳의 클리어 조건일 수도 있잖습니까.”
“소용없습니다.”
형의 말에 시선이 집중됐다.
“무슨 뜻입니까, 한지운 헌터.”
“조금 전에 첫 번째 탑의 주인과 닮은 몬스터를 공격해 봤는데 안 통했고, 저 아래에 있던 세 번째 탑의 주인을 닮은 몬스터에게도 공격을 해 봤는데 안 통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이상하네요. 그럼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희를 이곳에 부른 걸까요?”
그때 옆에 있던 유주한이 소맷자락을 붙잡아 돌아보자, 유주한의 시선이 어딘가에 꽂혀 있었다. 본인과 닮은 몬스터였다. 다만 아까와 달리, 몬스터는 다리 한쪽이 날아간 상태였다. 아무래도 본인과 닮아서 그런지 그 모습이 일종의 경고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이윽고 하늘 위로 새하얀 구가 나타나 몬스터를 만들어 냈다. 그 몬스터에 닿거나 공격을 받은 우리와 닮은 몬스터들이 하나둘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류천화 씨가 짧게 중얼거렸다.
“별로 기분이 좋진 않군.”
우리는 이 자리에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 피해가 오진 않았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이 모든 걸 지켜볼 뿐이었다.
“도대체 목적이 뭘까요.”
유아한 씨가 냉담히 물었다. 딱히 흥미가 없어 지루한 듯 보였다. 형이 답했다.
“경고나, 이렇게 될 것이라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지 않을까요? 정작 저 탑 주인들은 전부 죽었잖아요. 패배한 인물들의 모습으로 그런 암시를 해 봐야…….”
“그런 게 아니라, 저희가 저리 고통스레 죽을 것이라는 암시 같다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쓸데없이 험악한데요? 다른 이유겠죠. 예를 들어 이렇게 하려 했다 같은 거.”
유아한 씨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다만 이 광경의 정체를 아는 내 입장에선 다른 이유가 더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나에게 과거의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걸까.
쿵. 마지막까지 서 있던 검은 검의 몬스터가 쓰러지니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작은 알맹이들로 하나하나 쌓은 것처럼, 그 알맹이들이 부스스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다. 탑의 주인들을 닮은 몬스터도, 우리를 닮은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전부 사라지고 나니, 축축했던 땅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라비틀어져 갈라졌고, 모래가 흩날렸다.
“방금 그 장면을 본 걸로 다 끝난 걸까요?”
지화연 씨의 물음에 곧장 주변을 살피던 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어 형이 짧게 말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형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거리, 아까와 똑같은 하얀 기둥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