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악몽은 끝까지 남는다】
천천히 눈을 떴다. 공간은 변했으나 기억은 여전히 없었다. 어쩌면 여기가 정답이 아닐까. 지금까지 봤던 건 허상이었던 건 아닐까? 새로운 국면이라니, 당치도 않아.
‘…정신 차려.’
그 생생한 것이 단순 허상일 리가 없다. 허상이어선 안 된다. 드디어 찾아온 희망일 터인데. 노력의 결실을 눈 앞에서 보았는데.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살펴봤다. 보랏빛 바다가 넘실거리며 빛나는 것처럼. 찰박거리는 물이 신발 밑창까지의 높이로 깔려있었다. 그 주변은 반짝이는 조각들이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아 이동하려 몸을 움직이자, 손끝에 하얀 조각이 닿았다.
챙강.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기억의 조각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그러니까. 이게 다 내 기억이라는 거지.”
끝이 없는 기억에 절로 한숨이 다나왔다.
“그래 뭐. 해야지.”
작은 소리로 깨져나가는 조각과, 흘러오는 기억에 적어도 내가 50회차의 내가 아니라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다만.
“사소한 기억들뿐인데.”
무얼 먹었다거나, 잡다한 몬스터를 처리했거나. 오늘은 날씨가 좋다느니 한 대화. 그런 사소한 기억만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굳이 없어도 될 정도로 사소한데.’
한참을 걸었을까. 아무리 찾아도 사소한 기억이여서 의욕을 잃어가던 와중. 저 멀리. 빛 무더기가 보였다.
‘조각들이 한곳에 모여 있네.’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저게 중요한 기억이다.
텅! 몸을 날리듯 달려가 빛 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기대와 설렘. 공포와 두려움을 지닌 채 몸은 계속해서 빛 무리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언제나 늘 그렇듯. 인생이 원하는 대로만 흐르진 않는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눈앞에 검은 손이 드리워져 시야를 차단했다. 곧이어 뒤로 밀려나 넘어져, 찰박한 물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능력이…….’
달리는데 느리더라니. 문양으로 생기는 모든 비인간적 요소는 차단된 건가?
여전히 존재하는 문양을 잠시 바라보다가 긴장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올렸다.
알록달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새하얀 아이가 내 눈앞에 서있었다.
“그게 본 모습인가보지?”
―아 맞다. 기억이 없지?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 애초에 우리는 너희의 모습으로 둔갑한 거고. 뭐. 이러거나 저러거나 이 둔갑한 모습의 주인은 내가 아니긴 하지만. 꿈이니까. 상관없지.
그럼 저건 누구의 모습이지? 아니. 당장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지금 내가 능력 사용을 못 하는 것.
‘이곳이 꿈의 영역인건가?’
처음 와보는 공간에 긴장이 되기도 하였지만 그건 곧 과거의 기억들로 묻혔다. 그동안 이 꿈의 군주를 이겨왔으니까. 내가 아는 녀석과 다른 것 같지만. 어찌됐던 근본은 같을 거다.
‘아니. 애초에.’
꿈의 영역이나. 꿈이나.
촤아악!
손을 휘두르며 바닥에 물들을 꿈의 군주에게 뿌렸다. 아무런 효과도 없겠지만, 무어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에 무작정 행동했다. 물이 날카로워지거나 갑자기 소환수로 변할 일은 없겠지만―
―끄아아악!
미친. 뭔데.
내가 흩뿌렸던 물들이 물고기로 변하더니 이윽고 꿈의 군주를 물고 놓지 않았다. 황당한 상황에 눈을 끔뻑이기도 잠시,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주변을 살폈다.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잖아.
‘한데 그 사람은 분명…….’
황당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던 와중. 저 멀리 누군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한지언 씨!”
유아한 씨와, 승현 헌터였다. 어째서 여기 있는 거지?
―이… 얍삽한 것들!
“한지언 헌터. 괜찮습니까? 분명 꿈의 능력은 안 통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러는 승현 헌터랑 유아한 씨야말로 왜 여기에…….”
“저희는 의도적으로 여기 있었습니다.”
“네?”
승현 헌터의 얘기를 듣던 와중, 뒤에서 유아한 씨가 꿈의 군주 앞에 서서 비아냥거리는 투로 답했다.
“얍삽한 게 아니라 네가 우리를 여기로 끌어들였잖아?”
―충분히 나갈 수 있었음에도 왜 있나 싶었더니… 이걸 기다린 건가?
“뭐. 반쯤 맞지. 어찌 됐건 이곳이 꿈속이라면, 이곳 주인이 올 거로 생각했거든. 하물며 우리 세상인데 너한텐 여기 말고 안전지대가 없을 거 아니야? 승현 헌터랑 나만 여기 있으니, 그래도 나머지는 다 바깥이겠구나 싶어서 우선 기다렸지. 운이 좋았어.”
“무슨… 위험하잖아요 두 분!”
내 외침에 두 사람이 눈을 끔벅였다.
“한지언 헌터. 혹시 이상한 능력에 당하셨습니까?”
“예? 아니요?”
내가 급히 답하자 유아한 씨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순해졌지?”
“순해… 그. 별건 아닌데. 기억을 좀 많이 잃은 거 같아요.”
“진심입니까 한지언 헌터? 아니. 얼마나 잃으셨습니까.”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내가 회귀했다는 걸 알고 있나? 데이비드라는 처음 보는 인간도 알고 있긴 했지만, 그 사람은 적군이었고. 만약 모른다면 짧은 시간 내에 설명이 가능한 건가?
이 두 사람은 밍숭맹숭하게 그냥 넘어갈 것 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세히 설명하는 게 이득이 아닌―
“한지언 헌터.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잡생각이 너무 많아요. 뭘 생각하는지도 보이고요. 당신 우리한테 회귀했다고 말했어요.”
“…그럼 얘기가 빠르겠네요. 제가 회차마다 기억을 쌓았다는 것도 아실 테고요.”
“혹시 현재의 기억을 잃으신 겁니까?”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전 50회차 거든요. 그런데 형이란 사람이 제가 회차 세는 걸 그만뒀다는 걸 보니까 아마 더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렇게 순하구나.”
“…딱히 순하진 않았어요. 지금 상황에 희망을 좀 가진 거지.”
“그게 순한 거죠. 아마 지금 한지언 씨는 희망도 안 품고 그냥 책임감으로 일하고 계실걸요? 겉만 보고 말하는 거지만. 저랑 비슷한 부류처럼 보여서.”
“…….”
회피를 안 하던 이유가 그냥 돌진이었던 건가. 뭐… 확실히 그게 더 편하긴 하겠다. 괜히 머리 써봤자 아프기만 하니까.
―태평하게 대화나 하는구나! 계속 꿈속에 있어서 나한테 먹히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 그거 말인데.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뒤늦게야 눈치 챘는데, 유아한 씨 주변에 무언가 연거푸 빙글빙글 떠돌아다녔다. 단순 구름이 떠다니는 것 같기도. 영혼이 모여 있는 것 같기도 하였으나.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니 늑대였다. 웬 늑대지? 싶어 가만히 있자. 유아한 씨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덕분에 오래간만에 재회했거든.”
―…허?
“공격하려면 배경지식부터 잘 알아봤어야지. 뭐. 내가 제대로 말 안 한 것도 있지만. 꿈의 군주나 되어서 이거 하나 모를 줄은 몰랐네. 그거 알아? 힘이 쪼개진 거지, 정신이 쪼개지진 않았어. 덕분에 좀 놀랐어. 설마 문양에 그대로 정신이 담겨있을 줄은. 덕분에 감성에 다 젖었다니까? 그렇죠?”
늑대는 말없이 콧방귀를 꼈다. 문양에 정신이 담겨? 힘이 쪼개져? 이건 도대체 뭔 말이지? 재회라니? 늑대랑 만난 적이 있다는 건가?
“뭐.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완벽한 복제 정도 아닐까 싶어.”
―…말이 안 돼. 바깥의 너나 쟤는 정신을 놓고 날뛰고 있다고! 여기서 차츰 기억을 잊어 가면, 몸을 빼앗기는 것도 금방일 테지!
“그거 말인데. 이분 말로는 네가 심은 거에 우리 기억을 전부 넣고, 그 기억 주머니를 문양에게 넘겨 살아나게 하는 거라던데? 그런데 그 주머니에 담긴 기억을 문양이 받지 않고 다시 나에게 가져다주면. 그냥 돌고 돌아 제자리고. 그 식으로 여기 계속 있던 거야. 바깥에 내가 날뛸 줄 몰랐는데… 뭐. 그게 부작용이라면 어쩔 수 없지.”
―너는 그렇다 쳐도… 쟤는 아니잖아! 문양이랑 만난 적도 없잖아! 그냥 받아들인 거잖아!
“승현 헌터? 맞아. 승현 헌터 몸에 들어간 애는 꽤 위험하대. 자신의 종족을 위해 새 몸으로 들어간 거라나 뭐라나. 하도 위험해서 우리 대단하신 분이 기억 주머니를 훔쳤지.”
―…뭐?
도대체 뭔 말을 하는 걸까.
알 수 없는 것투성이 사이. 승현 헌터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한지언 헌터. 혹시 기억을 아예 빼앗겨 버리신 겁니까.”
“아뇨. 듣기로는… 기억을 완전히 빼앗지 못해서 삼키지 못하고 입에 머금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아마 제 기억의 중요한 부분은 저거 같고요.”
“저 빛 덩이 말씀하시는 거군요. 많이 혼란스러우실 테지만, 하나만 더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저 자를 처리할 방법을 아십니까.”
“…솔직히 잘 몰라요. 형이 오기 전에 했던 말이 그냥 할 수 있다고만 했거든요. 다만 저는 다른 사람처럼 문양을 제대로 쓰는 방법도 몰라서 비겁한 수만 쓸 줄 알아요. 이전 꿈의 군주는 그나마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 무작정 돌진해서 죽인 거지. 물론 그것도 한두 번 운이 좋아서고……. 다른 사람이 도와줘서 가능했기도 하고…….”
“그럼 기억을 먼저 되찾으셔야겠군요.”
“되찾는다고 알까요? 어차피 뒤떨어질 게 뻔한데. 그러니까 그렇게 많이 죽은 걸 테고요.”
“…한지언 헌터가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든 본인의 자유이시겠지만, 제가 본 한지언 헌터는 한지언 헌터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하신 분입니다. 설명할 생각을 하니 벌써 입이 아프군요.”
“그렇게 띄워주시지 않아도 기억은 되찾을 거예요.”
“띄워주기식 빈말이 아닙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만 말하니까요. 다만 한지언 헌터가 본인에게 굉장히 엄해 보여, 가끔은 너그러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하는 거기도 합니다. 하는 일마다 걱정이 먼저 나서지 마시고요.”
“지금의 저나, 그런 부분은 똑같네요. 나는 나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겠다.
나쁜 모습은 아주 꽁꽁 숨겼겠구나. 미움 받기 싫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