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76
76화
깊이 가라앉았다. 그 깊이가 얼마나 아득했는지, 끝도 없이 내려갔다.
앞은 보이지 않았다.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곤 형의 옷깃을 쥔 감각뿐이었다. 서서히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눈이 감기건 말건 캄캄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서서히, 의식이 사라졌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졸음에 빠져들어, 꿈속 깊이 들어갔다. 그렇게 빠져든 꿈속에서.
“…….”
눈을 떴다.
‘다행히 능력은 그대론가 보네.’
하긴, 제트리스 때도 그랬으니. 바뀌는 게 이상하지.
‘내가 예상한 대로라면 여기는…….’
주변을 둘러보자 익숙한 공간이 시야에 들어왔다. 익숙한 천장과 침대에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실패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눈을 뜬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과 옷장을 지나쳐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온 것은 익숙한 소파와 TV, 부엌과 식탁, 화분과 사진. 아까 내가 꿨던 꿈과 같은 공간이었다.
“실패할 리가―”
우뚝. 시야가 일그러졌다. 내 눈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공간이, 익숙한 물건들이 일그러지며 늘어나고 줄어들기 시작했다.
‘…내 예상대로는 된 모양이네.’
꿈. 잘 때 꾸는 꿈과, 헛된 기대로 가득한 꿈. 두 가지로 나뉘나, 여기선 합쳐진 형태였다.
누구나 흔히 꿀 수 있는 꿈은, 꾸면 꿀수록 깊어지고, 깊어질수록 본래의 자신을 망각한다. 그렇게 망각된 자신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격으로 꿈의 이야기를 걷는다.
그러나 여기서 꿈이란 걸 인식하면 흔히 알려진 자각몽이 된다. 나는 꿈을 자각하고 나온 거였다. 능력도 뭣도 아니었다.
내가 꿈을 쉽게 자각할 수 있는 이유? 간단했다. 꿈이 거짓인 것을 깨달았다. 그것뿐.
회차를 반복한 나에겐, 꿈은 가벼운 농과 같았다. 그야 무엇이 현실인지, 지독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니. 그렇기에 꿈을 자각하는 건 내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보통 사람이라면 다 이곳의 능력에 걸려서, 꿈을 헤쳐 나오기 힘들다는 거지.’
꿈에서 만들어진 인격에 뒤덮여 잠에 빠진 본래의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이곳의 힘이었다.
이 능력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평소에 자각몽을 꾸는 사람이거나, 꿈을 꾸지 않는 것. 참고로 면역 능력은 여기서 무용지물이다. 어차피 내겐 없지만.
늘어진 길을 걸었다. 꿈이 꿈을 꾸는 본체를 숨기려 들었다. 먹힌 본체가 영원히 꿈을 꾸도록.
‘이렇게까지 뒤틀리는 걸 보면, 악몽인가?’
공간이 일그러지고, 확장되고, 분리됐다.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갈 길이 멀어진 듯했다.
‘빨리빨리 넘어가고 싶었건만.’
계속해서 앞을 가로막으려는 공간에 진저리가 나기 시작할 무렵, 저 너머 골목, 누군가의 검은 옷자락이 살랑였다.
‘찾았다.’
곧장 달려 나가 골목을 돈 찰나, 시야에 들어온 것으로 인해 몸이 반사적으로 멈췄다.
“…이건 또 뭐야.”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눈앞에 있는 것을 인식했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머리에, 익숙한 이목구비. 검은 답호와… 낫.
이건, 명백한 나였다. 다른 점은 오류처럼 글리치가 껴 있다는 점.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낫을 휘두르자, 내 모습의 무언가는 간단히 갈라져 나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것도 잠시, 또 다른 곳에서 오류 난 내가 나타났다.
“뭔 꿈이야, 이건.”
일단 나한테 악몽이라는 건 알겠다. 평온한 꿈을 꾸고 있다고 했으면서, 괴상한 꿈을 꾸게 하고 있네. 내가 꿈에 들어와 뒤튼 건가?
‘아무튼, 평온한 꿈이 아니라는 건 잘 알겠네.’
아무리 베고, 베어도, 나의 모습은 끝도 없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조금 새로웠으나, 계속해서 나타나는 내 모습에 진저리가 나기 시작했다. 패턴도 똑같았다. 지나가고 있거나, 눈앞에서 달려오거나, 거꾸로 매달려 있거나 하는 등.
그렇게 나를 수도 없이 베던 와중, 유독 이질적인 문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문이 이질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간단했다. 이 공간의 베이스가 우리 집이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무한히 뚫린 공간이라지만 벽지나 가구, 문 등은 전부 똑같은 형태로 반복됐다.
다만 지금 눈앞에 있는 문은, 처음 보는 문이었다. 새까맣게 돼 있는 문이 이곳이라 외치는 듯 보였다.
감흥 없이 문을 열자, 반사적으로 입이 열렸다.
“아, 진짜.”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의 모습에 저절로 역겨움이 솟아올랐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넓은 공간에 내가 가득했으니.
어떤 나는 웃고 있고, 울고 있고, 화내고 있고, 무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 하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꿈이 먹은 본체. 괴상한 꿈의 주인. 그건, 형이었다.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네.’
진짜 무슨 생각으로 여길 들어온 거지? 이렇게 될 줄 몰랐나?
바글거리는 나를 제치고 형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바글거리는 나 때문에 걸음이 어려웠다. 그 사이로 형을 확인하자 형은 아무런 표정 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는 나의 모습을 한 것들이 생전 처음 듣는 언어로, 제각기 다른 억양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문젠가.’
진짜 나 말고, 이 근처의 내 모습을 한 것들.
툭. 옆에 있던 나와 몸이 부딪쳤다. 곧이어 나와 부딪친 것이 펑! 터져 올라 사라졌다.
‘그럼 다 없애지, 뭐.’
퍼버벙! 손에서 떠오른 별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 내 모습을 한 것들을 없앴다. 나 역시 앞으로 쏘아지듯 나가 낫을 휘둘렀다.
그렇게 또 다른 내가 하나둘 사라지며, 바글거렸던 공간엔 고요함만이 흘렀다. 나는 편안히 걸어 형에게 다가갔다. 계획도 없이 이곳에 들어와 함정에 빠진 멍청한 형을 향해 나아가다 우뚝.
“…….”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는 형을 내려다봤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동시에 주먹을 쥐었다.
“개꿈 꾸지 말고 일어나.”
부웅! 능력을 사용한 주먹을 뒤로 물렸다가 이내.
“이 망할 자식아.”
뻐억! 강하게 내리꽂았다.
끔뻑. 눈을 감았다 뜨자, 바닥에 물이 차올라 있는 공간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역시 깨우는 데에는 충격 요법이지.’
인기척에 옆을 돌아보았다. 앉아서 제 머리를 매만지는 형이 시야에 들어왔다.
“빨리 안 일어나고 뭐 해?”
“…한지언?”
“왜.”
“네가 왜 여기에…….”
“하아아아아…….”
멍청한 모습에 한숨이 땅까지 내려앉았다.
나는 바깥 상황부터 내가 이곳에 들어오게 된 이유까지를 내게 이 공간의 능력에 면역이 있다는 거짓말을 합쳐 간단히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형이 짧게 중얼거렸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해명이나 하지?”
“무슨 해명.”
“뭐 계획이라도 있어서 여기 들어온 거 아니었어? 이렇게 멍청하게 당할 거였으면 왜 들어온 건데?”
“…처음에는 깨어 있었어. 착오가 있어서 잠에 빠진 거고.”
“일어났다가 다시 잔 거니 일어나긴 일어난 거라는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제시간에 일어났어도 다시 잔 거면 그냥 잔 거거든?”
“…다른 사람들은?”
말 돌리네.
“아직. 나 방금 들어왔어. 형이 처음이야. 이제 깨우러 가야지.”
“…어떻게?”
이게 소설이라는 걸 알고 있는 작자가 그것도 모르고 있다고?
“그냥 그 사람 꿈에 들어가서 깨우면 되던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아?”
“뭐?”
“꿈에 들어가는 과정. 넌 면역이 있어서 이곳의 능력이 안 통한다며. 그런데 꿈에 들어가는 방법을 어떻게 알고, 꿈에 들어가 깨우는 법을 어떻게 그리 정확하게 알고 있냐고.”
“…아.”
표정이 오묘하다 싶었는데. 의심의 눈초리였나.
‘머리가 장식은 아니었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형의 물음에 답했다.
“누가 알려 주던데.”
“누가?”
“여기 주인.”
“…진심이야?”
“그럼 거짓말을 하겠어?”
거짓말이지만.
“애초에 형이 날 의심하는 게 난 더 어이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사람들부터 꺼내는 게 먼저 아니야? 서로 의심하고 있으면 위험해지는 건 우리라는 거 알잖아?”
“…그래. 내가 예민했던 모양이네.”
미안, 이라며 말을 끝낸 형의 눈에는 아직도 의심이 뒤섞인 듯 보였다.
그렇게 잠시 나를 쳐다보던 형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네 말대로 다른 사람들부터 깨우―”
―그어우…….
괴생물체의 소리에 곧장 고개를 돌리자, 팔다리가 길쭉한 모양새의 몬스터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다.
‘저게 벌써.’
반짝이 가루를 삼킨 듯한 진한 보랏빛 액체의 몬스터가 하나둘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것들의 정체는 꿈. 먹히는 순간 잠이 들어 꿈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었다. 먹힌다고 죽지는 않지만, 닿는 순간 정신을 잃게 돼 위험해진다. 나 말고, 형이. 형도 그것을 아는지 멀찍이 떨어져 공격을 가했다.
몬스터들의 약점은 몸 안에 있는 마석. 능력을 쏘아 터뜨리면 무너지는 간단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수가 많다는 거지.
어찌할까 고민하며 형을 바라보자, 광역 능력을 사용하려는 형이 보여 곧장 입을 열었다.
“무슨 여기서 힘을 그렇게 쏟으려 해!”
“저것들 처리해야 하잖아.”
“그렇다고 광역 능력도 잘 못 쓰면서 광역 능력을 쓸 생각을 해?”
“…그럼 네가 하든가.”
“그럼 손목 줘.”
“뭐?”
“내 기력만으론 다 못 죽이니까 형 기력 좀 쓰자고.”
이것도 거짓말이다.
“네 기력이 그 정도로 없지는 않은 걸로 아는데.”
“아닌데?”
형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게 손을 뻗으려던 찰나.
쿠르릉. 바닥이 동그랗게 뻥 뚫리며, 바닥에 차 있던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 서 있던 나와 형은 속수무책으로 아래로 떨어졌다.
‘진짜 가지가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나는 어렴풋이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탑. 탑 주인의 영역이다. 그리고 영역 안의 주인은 그곳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한 말에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지.’
지금 상황은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부러 한 일이었다. 그 누군가는 탑의 주인이고. 당연한 얘기였다.
떨어지는 우리의 머리 위로 몬스터들이 줄줄이 떨어져 내렸다. 뒤엉키며 떨어지는 모습이 얼핏 보면 액체가 떨어지는 듯했다.
‘형은… 머네.’
떨어지며 무슨 짓이라도 한 건지, 형은 멀찍이 떨어진 위쪽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후욱! 가까이 다가온 몬스터가 팔을 내밀었다. 나는 그 팔을 곧장 붙잡아 몸을 들어 올린 후 떨어지는 몬스터의 머리에 발을 디디고 뛰어올라 형에게 나아갔다.
“형!”
동시에 손을 내밀자, 형이 뒤이어 손을 뻗었다.
이윽고 서로의 문양이 손에 잡혔다. 새로이 느껴지는 기력에 반사적으로 실소했다. 예전에도 몇 번 사용하긴 했다만, 여전히 대단한 힘이었다.
기력은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힘. 사람의 또 다른 능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정확히는 능력을 사용하게 하는 매개체. 그렇기에 기력에는 개개인 고유의 느낌이 있었다. 실처럼 가느다란 느낌이라든가, 망치같이 묵직한 무기 같은 느낌. 뭐, 그런 식으로.
‘기력만으로도 그 사람의 힘이 느껴지는 건 형밖에 없겠지.’
압도적인 느낌에, 나는 절대 따라갈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타고난 것이 달랐다.
손으로 허공을 훑었다. 손이 지나간 자리에 하얀 별들이 생겨났다. 별들이 생겨나는 감각이 평소보다 가벼웠다.
내가 손을 휘젓자 별들이 살랑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곧이어 몬스터와 닿자.
픽.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줄지어진 화약에 불이 붙은 듯, 몬스터들이 줄줄이 터져 나갔다.
‘근데…….’
몬스터는 처리했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후우웅. 끝없이 뚫린 구멍에 바람 소리만 들리며 우리는 여전히 추락 중이었다.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얼마나 떨어진 건지, 떨어졌던 구멍이 보이지도 않았다.
아득한 위쪽을 쳐다보고 있던 와중, 추락하던 몸이 가벼워지며 이윽고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뭔…….”
병 주고 약 주냐?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형은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다. 뒤를 돌아보자 구멍은 언제 뚫렸냐는 듯 메워져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구멍이 있던 자리를 보고 있는데 형이 중얼거렸다.
“빌려준다고 했지 다 쓰라곤 안 했는데…….”
형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시계의 모습을 한 인벤토리를 열었다.
“형, 잠만.”
내 말에 형이 고개를 돌렸다.
“따라와 봐.”
나는 형의 손목을 붙잡아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계속 열려 있는 탑의 입구로 향했다. 바깥에선 안쪽이 보이지 않았으나, 안쪽에선 바깥이 훤히 보였다.
‘미국. 아니, 영국?’
바깥에는 어느 도시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확히 어딘진 몰라도 아무튼 도시니까 한국으로 돌아가긴 수월하겠지.
나는 형을 돌아봤다.
‘이번 일로 확실해졌다.’
휘익! 손목을 붙잡은 채로 형의 멱살을 잡아끌어 형을 입구 앞으로 이끌었다.
‘이곳 두 번째 탑에선, 꿈을 꾸는 형은 필요 없다.’
『형이 소설에 소설에 빙의했다고 한다』
와온 현대판타지 소설
(주)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