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1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1화
* * *
응접실 소파에 앉은 사라는 미리 준비돼 있던 찻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공작님께서 전하라고 하셨던 말씀은 뭔가요?”
사라의 물음에 잠시 망설이던 베론은 품에서 부드러운 천에 쌓인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리고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더니 그것을 건네주었다.
아주 경건한 몸짓에 사라는 자세를 바로 하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펴 봐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조심스럽게 그것을 감싸고 있는 천을 걷어 내자,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맣게 말라비틀어져 생기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금방이라도 썩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나뭇가지였다.
“아, 과연.”
사라는 이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공작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것이 바로 그 암브로시아의 힘이군요.”
“그렇습니다. 역시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알아볼 수밖에요.”
암브로시아 공작가의 살아 있는 저주.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검은 마력.
생명력을 빼앗는, 생명력을 갈망하고 먹어 치우는 힘.
이 힘이 폭주하게 된다면 주변 모든 것들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종국에는 스스로의 생명력마저 힘에 먹혀 죽게 된다.
사라는 이것을 연구하느라 클로드가 태어나고도 6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탑에 처박혀 있었다.
이 힘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암브로시아 공작은 물론이고 클로드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녀가 본 미래에서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가는 힘이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완전하진 않지만, 사라는 이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힘이 폭주했나요?”
“일시적이고 아주 미약했지만, 그렇습니다.”
“그게 언제죠?”
“한 달 전입니다.”
집사의 대답에 사라의 눈가가 미세하게 찡그려졌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사라가 칩거하기 전 공작에게 주었던 아티팩트만으로는 역시나 역부족이었던 모양이었다.
한 달 전. 암브로시아 공작의 힘이 폭주했을 때, 클로드에게서도 같은 힘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클로드가 자라면 자라날수록 아이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힘은 부피를 키워 나갔을 것이다.
암브로시아의 힘은 절망을 먹고 자라니까.
암브로시아 공작의 힘과 클로드의 힘은 같지만 다른 절망을 공유하여 그 힘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사라는 공작의 어둠이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클로드의 어둠은 무엇인지 알았다.
어머니의 부재, 어미를 잡아먹고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아무도 그에게 온전한 애정을 주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분노.
에단 암브로시아가 클로드를 피해 다닌 것이 이런 이유라면 납득이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만나면 절망이 되듯이 암브로시아의 저주받은 힘이 서로 만나면 급격하게 부피를 키울 수 있었다.
“그때 희생당한 것은 이 나무가 전부인가요?”
“…….”
사라의 물음에 베론과 론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대답하지 않아도 사라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모습을 유의 깊게 살폈다. 베론과 론다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표정했다.
공작가의 모든 살림을 살피고 대외적인 손님을 직접 마주하고 대하는 집사와 시녀장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곧 공작가의 얼굴이었으니 말이다.
집사의 표정만으로도 공작이 그 손님을 어찌 대우할지를 알 수 있는 것이 귀족들의 문화였다.
“골치 아파졌군요.”
사라는 고개를 내저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실력을 시험해 볼 시험 문제는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암브로시아의 힘에 의해 ‘표정’을 잃어버린 두 사람이 공작이 사라에게 내려 준 시험 문제였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암브로시아 공작은 사라가 제아무리 위대한 마법사라 할지라도 저택에서 쫓아낼 것이다.
그 다정한 얼굴과 아름다운 미소로 한없이 냉철한 판단을 내리겠지.
“공작님께서도 암브로시아의 힘이 이런 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셨나요?”
“저희들로 말미암아 알게 되셨습니다.”
론다의 대답에 사라는 심각한 얼굴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생명이 아닌 무언가가 빼앗긴 것은 6년간 암브로시아의 저주를 연구해 온 사라로서도 처음 보는 사례였다.
대체 암브로시아의 힘은 무엇일까. 사라는 알 수가 없어졌다.
“저와 론다는 괜찮습니다. 암브로시아 공작가에 누가 되지 않도록, 다른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베론과는 달리 저는 이대로 산다 해도 불편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급격하게 어두워진 사라의 표정을 살피던 베론과 론다는 앞다투어 그녀의 부담을 줄여 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도리어 더 부담이 되었다.
평생을 표정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게 끔찍할 법도 한데 베론과 론다는 오직 암브로시아만을 생각했다.
분명 공작의 힘이 제어를 잃고 날뛸 때 근처에 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일 테지.
사라가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준 아티팩트는 힘을 잘 제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만 할 뿐이었다.
폭주하고 날뛰는 힘을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라리 봉인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의 힘은 아무리 뛰어난 그녀라도 쉬이 건들 수 없는 신비한 무언가가 있었다.
6년간 이 힘에 관해 연구하며 무력감에 치를 떨지 않았던가.
“한 달쯤 되었으면 소문이 났을 법도 한데. 사용인들의 입을 잘 막으셨군요.”
“암브로시아가 곧 목숨인 이들뿐입니다. 소백작님께서도 이 공작가 안에서만큼은 자유로우실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베론의 목소리에선 암브로시아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무려 집사와 시녀장까지 휘말려 버린 폭주에도 공작가 바깥으로 조금의 말도 새어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충분히 그들의 자부심이 되어 줄 만했다.
사라는 괜히 퉁명한 목소리로 작게 투덜거리며 웃었다.
“쯧. 공작님의 시간을 더 빼앗을 기회를 이렇게 놓쳐 버리겠군요.”
“…….”
그들은 사라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남은 1시간을 공작께서 기꺼운 마음으로 협조하실 수 있도록 증명해 보여야겠네요.”
사라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나뭇가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미 수없이 시도해 보았던 마법이지만, 이토록 빠르게 실전에 돌입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매우 섬세하고도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나뭇가지야 실패하더라도 공작의 힘에 의해 명을 달리한 나무는 많을 테니 상관없었지만 집사와 시녀장은 달랐다.
만약 그들에게 쓸 마법이 실패하게 될 경우, 어떤 부작용을 낳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사라는 어느 때보다 더욱 신중하게 마력을 불어 넣었다.
푸르른 마력이 그녀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와 손바닥 위의 나뭇가지에 부드럽게 감겼다.
마력의 흐름에 따라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사라를 감쌌다.
“「흘러라.」”
그녀의 시동어와 함께 나뭇결을 따라서 푸르른 마력이 끊임없이 흘러들어 갔다.
까맣게 변해 버린 나뭇가지가 이제 푸르게 보일 정도로 사라의 마력이 감쌌을 때.
그녀의 손바닥 위로 아주 복잡해 보이는 마법진이 떠올랐다.
“「돌아오라.」”
작게 읊조리는 마지막 주문과 함께 나뭇가지에서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 떠올라 빛을 뿌리다가 천천히 사라의 손바닥 위로 내려온 나뭇가지를 본 베론과 론다의 눈이 부릅떠졌다.
“……!”
“저건!”
까맣게 말라비틀어졌던 나뭇가지에 청록색 빛이 돌기 시작했다.
사라의 마력은 마치 가느다란 실처럼 뽑혀 나와 나뭇가지에 살을 보태고 몇 장의 나뭇잎 형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생명력을 품고 있었을 때의 모습과 가장 가까워졌을 때.
사라는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헉!”
“돌아, 돌아왔…….”
사라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생긋 웃어 보였다.
그녀는 베론과 론다가 차마 완성하지 못한 말을 마저 해 주었다.
“성공했네요.”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더니 다시 한번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마치 신의 권능처럼 죽었던 것이 살아났다.
“감각을 잃어버리기 전에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두 사람 다 내 곁에 좀 더 가까이 오세요.”
사라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베론과 론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시 한번 푸른 마력이 그녀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와 그 둘을 감싸기 시작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한계까지 뽑아낸 마력에 심장이 빠듯하게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눈부신 빛이 그들을 감쌌다.
* * *
베론은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엉엉 울며 제 얼굴을 더듬었다.
론다는 떨리는 손으로 사라가 내미는 손을 마주 잡았다가, 놓았다가, 그리고 다시 마주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밀런 소백작님께서 바라시는 모든 것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맹세할 겁니다.”
“절대,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라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바닥에 엎드린 두 사람을 일으키려 한참을 고생해야만 했다.
“그럼 이제 밀런 백작가로 돌아가려 하니 마차를 준비해 주시겠어요, 베론?”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차가 식었는데, 기다릴 동안 한잔 더 마실 수 있을까요, 론다?”
“다과도 함께 내어 오겠습니다.”
두 사람에게 하나씩 무언가를 부탁하고 나서야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비틀비틀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혼자 남게 된 사라는 적막하게 가라앉은 응접실의 공기를 느끼며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암브로시아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잃어버린 것을 되돌리는 마법 따윈 없었다.
그저 그녀의 생명력을 대가로 뽑아낸 마력을 쏟아부을 수밖에.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던 사라의 허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욱!”
속이 크게 뒤틀리는 느낌과 함께 울컥, 하고 토해져 나온 무언가가 사라의 입술을 타고 흘렀다.
생명력을 바탕으로 마법을 실행한 대가였다.